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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라이트노벨
너와 함께
작가 : rororiri
작품등록일 : 2017.7.2

인간을 증오하는 드래곤 ‘엘리시아’와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인간 ‘이유하’는 누군가의 음모로 이세계에 떨어졌다. 차원이동의 부작용으로 하필 유하가 가장 꺼려하는 로리가 된 엘리시아. 곧 죽어도 싫어하던 둘이지만 점점 서로에 대한 감정은 싹트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유하와 엘리의 이세계 모험기.

 
엘리의 독백(5)
작성일 : 17-07-04 11:15     조회 : 58     추천 : 1     분량 : 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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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수가 절벽 앞에서 돈좌했다.

 그 거대한 몸뚱이는, 내가 밟은 땅만을 스쳐서 부서트리고는 다시 대밀림 아래의 어두운 허공의 공간속으로 사라졌다.

 ―젠장. 신이시여, 대체 왜 제게 이런 고난만을 주시나이까?!

 더 이상 지탱할 공간이 없는 발을 허우적거려 보았지만, 그럴수록 몸은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더욱 기울어진다.

 

 “엘프도 구하고, 간신히 살아서, 함께 희망찬 미래를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강제 하의탈의 패션 덕택에 변태 취급이나 받고. 내 인생도 참 기구하지.

 터억―.

 응? 기울어짐이 멈췄다?

 

 “그런 계획, 저는 동의한 적 없는데요……!”

 “엘프?!”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가 내 팔을 붙잡아 주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수치를 줘버린 내가 죽든 말든, 그녀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엘프의 심성은 달랐어! 아직 세상은 따뜻함과 정이 넘치는 살만한 곳이라고!

 

 “저, 저기요, 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생명의 은인이신데……. 그리고 저는 엘프라는 사람이 아니라 ‘푸엘루리엘’이라고 해요.”

 

 미안함과 민망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그녀의 앳된 얼굴이 보인다.

 짙은 눈썹과 파란색 눈. 엘리와 마찬가지로 젖살이 아직 덜 빠져 귀여움을 탑재하고 있는 얼굴.

 비록 제대로 시선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다가 작고 가냘픈 팔과 상당히 ‘가벼워 보이는’ 상체.

 ―하아, 설마설마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어째서 엘프가…….

 

 “알았어. 어서 올려줘. ‘로리2’.”

 

 언젠가 유행했던 티비 광고가 있었다.

 스키장에서 한 남자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 여성의 뒷모습을 보고 따라가 리프트를 탔는데 알고 보니 로커였다는.

 말하자면 지금 내 기분은 그렇다.

 거울을 굳이 보지 않아도 지금 내 눈은 저절로 반쯤 감긴 졸린 눈처럼 반개하며, 눈동자는 생기를 잃어 동태처럼 초점이 흐릿하게 보일 것이다. 분명히.

 

 “네, 네? 로리2? 그, 그게 뭐죠?”

 

 그녀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을 보니 내 표정에 대한 예상이 적중한 듯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땀을 삐질 흘리는 그녀가 나를 잡고 있는 손 말고 다른 쪽 손으로 이마를 긁적거렸다.

 

 “아냐, 일단 올려줘.”

 “네, 네!”

 

 ‘로리2’는 건어물처럼 축 늘어진 내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려 절벽의 늪에서 꺼내주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로 빨빨 다리를 구르며 달려간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저 엘프 녀석, 키도 작고 껌딱지다.

 그래도 150cm도 안 되어 보이는 엘리보다는 키가 커서 내 ‘이성’ 기준의 마지노선이지만, 지나치게 앳된 체형과 얼굴 때문에 이상형으로써는 자격 미달. 만약 성격마저 안 좋으면 엘리처럼 가까이 하는 걸 기피하고 싶을 정도다.

 ―역시 아까 체구가 작게 느껴졌던 건 내 기분 탓이 아니었어…….

 기껏 말로만 듣던 엘프녀를 실제로 만나보나 했더니, ‘로리2’라니!

 

 “엘프는 말야, 키도 크고! 몸매도 좋고! 드래곤 버금가는 아름다운 종족이란 말이야! 흐흐흑……!”

 

 나는 그대로 좌절하며 무릎을 꿇었다.

 땅을 치며 흐느끼고는, ‘엘프로리’와 지쳐 쓰러져있는 ‘드래곤로리’ 둘을 번갈아 보고 또다시 땅을 친다.

 

 “저, 저기, 괜찮으세요? 그리고 일단 하의부터 입으시는 게…….”

 

 어딜 다녀오나 했더니, 그녀가 괴물의 입김 때문에 멀리 날아가 땅바닥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던 내 치마를 가져와 걸레짝 건네듯이 건네며 말했다.

 

 “젠장, 지금 ‘그딴 게’ 중요하냐! 꼬맹이들 따위……, 떼거지로 몰려와도 전혀 두근거리지 않는다고! 두근거리는 게 오히려 이상하잖아! 크흐흑!”

 “으음……. 저어, 아까 말씀드렸듯이, 전 엘프나 로리라는 사람이 아니라 푸엘루리엘이라고 해요. 3대 세계수 중 하나인 ‘옐드라실’에 거주하는 ‘앙고리아’족인데요…….”

 

 ―됐어! 이미 세상은 끝났어! 로리 때문에 멸망하고 말거야!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것보다, 시원시원한 내 하체에 찬바람이 들어와 부르르 떨리니까 새삼 부끄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딴 건’ 생각보다 중요했다.

 

 “큭! 보, 보지 마!”

 “보고 있지도 않지만,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건 오히려 제 쪽인데요…….”

 

 당연하지만 그녀는 치마를 건네준 뒤로 몸을 뒤로 돌려 나를 쳐다도 보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보지 말라고 오히려 으름장을 놓는 건, 부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런 하의탈의 패션이 취향인 변태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여기에는 다 말 못할 사정이 있어.”

 “아―, 그러시구나. 죄송해요! 오해해서……!”

 

 그래도 이 녀석은 걸핏하면 주먹부터 나가는 ‘로리1’보다는 성격이 좋아 보인다.

 싹싹하고, 예의바르고, 이해심 넓고 제대로 사과할 줄도 안다!

 

 “그건 그렇고, 어쩌다가 저 미친 괴물에 쫓기게 된 거야, ‘엘프로리’?”

 

 나는 재빨리 원시부족의 것 같은 이 이파리 치마를 다시 걸치고 나서 엘리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물었다.

 ―진짜 잠 들었나보네.

 뭐, 생각해보니 이 녀석도 무진장 배고픈 채로 나 때문에 계속 마법을 썼으니까 무리도 아닌가.

 

 “엘프로리가 아니라니깐요. 제 이름은 푸엘루리엘이라구요. 혹시 부르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거라면 ‘루리’라고 부르셔도 돼요. 흔히 있는 일이니까.”

 

 뭐냐, 그 ‘-웹’자만 붙이면 내가 자주 눈팅하던 사이트로 빠질 것만 같은 애칭은?

 

 “알았어, 루리. 그래서, 저 괴물은 뭐라고?”

 “네? 임해수(林海獸)를 모르세요?”

 

 임해수? 내 중학교 친구 임해수? 푸웃! 저 괴물 이름이 ‘임해수’인 건가? 키키킥!

 ……크흠!

 

 “웃을 일이 아닌데……. 하여튼 임해수는 세계수 지역에만 있는 초거대괴물이에요. ‘숲의 바다’ 아래에 살고 있다고 해서 임해수라고 부르는 거구요.”

 

 루리는 건너에 있는 대밀림과 그 아래의 허공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런 의미였냐. 그래서 어쩌다가 임해수 씨의 먹이가 될 뻔한 건데?”

 “………….”

 

 루리는 잠시 얘기하는 것을 망설이듯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하다가 어렵게 무거운 입을 떼었다.

 

 “저희 앙고리아족은 3대 ‘세계수’ 중, ‘옐드라실’이라는 세계수에 거주하며 주로 ‘레드링’이란 열매를 가꾸거나 채집해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이에요. 하지만 최근 십여 년 사이에 해적들이 레드링으로 과실주를 만들어 팔기 위해 옐드라실의 과수원을 약탈하거나 저희 부모님처럼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을 납치해가는 일이 잦아졌죠…….”

 

 이야기를 하던 루리의 얼굴에 그림자가 짙어지더니, 이내 눈물을 흘린다.

 

 “어, 어이. 울지마! 뚝!”

 

 ―이런, 애들이란…….

 나는 애써 루리를 달래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루리는 손으로 그녀의 파란색 눈동자에 반짝 빛나는 고인 눈물을 힘겹게 훔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 부모님도 몇 개월 전, 해적들에게 납치 당하셨어요. 그래서 혼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임해수에게서 안전한 영역을 벗어나면서까지 레드링을 채집하다가 그만……. 흐윽, 흑흑……!”

 

 루리가 눈물을 간신히 참아내면서 절절한 목소리로 사연을 마저 읊다가 결국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 모습을 보니, 마치…….

 

 “흐어어엉! 너무 슬프잖아!”

 “네, 네?”

 

 저보다 오히려 더 크게 슬퍼하는 내 모습을 본 루리가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슬픔의 상대적 효과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울음도 뚝 그친 루리였다.

 

 “원래 여자아이는 동정하지 않지만, 이 오빠가 너만큼은 반드시 도와줄게……!”

 

 루리의 사연에 눈물 콧물 질질 짠 나는, 가엾은 루리를 안아서 등을 토닥여주었다.

 ―근데 뭐지? 이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은…….

 

 “이 더러운 색골이……. 잠시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아직 어린 새끼 엘프에게 해괴망측한 짓거리나 하고 있었던 거냐!”

 

 뻐어억!

 엘리의 진심펀치를 얼굴 정면에 맞았더니 호빵에 주먹을 갈긴 것처럼 얼굴이 함몰되는 것 같다.

 ―언제 또 일어났냐? 그보다 이건 명백한 오해인데…….

 이렇게 또 죽는 건가? 삶과 죽음이 참 쉽구나.

 

 

 * * *

 

 

 껌뻑껌뻑.

 벌써 저녁인가. 하긴, 꽤 오래도 걸었었지. 눈 감기 전에는 해가 황혼의 끝자락을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으니.

 그러고 보니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느흐어어어!”

 

 기억 속을 유영하면서 편린들을 이리저리 들추어보다가 엘리에게 맞아 함몰된 얼굴을 떠올리니 저절로 상체가 일으켜진다.

 ―젠장, 저 다혈질 자식 때문에 또 황천길에 발 담그고 돌아왔다!

 

 “깨어났느냐.”

 “괘, 괜찮으세요?”

 

 하아. 눈만 떴다 하면 흰색 뿔 달린 꼬맹이가 매번 시야에 들어오니, 살아도 지옥이요,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

 ―그런데다가 꼬맹이 하나가 더 늘었어……. 슬프다.

 

 “얘기는 이 아이를 통해 들었다. 이 몸이 너를 오해했더구나. 미안하다.”

 “사람 죽여 놓고 미안하다고 하면 장땡?!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도덕성이야? 쳇, 괘씸죄 추가로 사형이다! 땅땅땅!”

 

 애초에 반성하는 기미도 별로 안보이긴 했지만 내가 삿대질을 하며 따지자 엘리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다.

 

 “평소 행실이 낳은 결과라고는 생각을 못하니, 정말이지 언제 생각해도 우매한 녀석이로구나.”

 

 ―지금 내 백번 옳아 마땅한 지론을 폄하하는 거냐! 너같이 살인에 무감각한 사이코패스 범죄자들 때문에 대한민국에 상처받는 피해자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고...! 이 괴팍한 로리가!

 

 “저어…….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정말로 도와주시는 건가요, 모험가님? 벌써 제 생명의 은인들이신데……. 게다가 전 그 은혜를 갚을 능력도 없고…….”

 

 루리가 다시 눈가에 눈시울을 붉히며 목소리를 떨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민폐를 끼쳐 미안하면서도 도움을 바라 마지않음이 느껴졌다.

 

 “유감이지만 나와 이 녀석은 어서 떠나야 하―”

 “물론이지. 분명 도와준다고 약속했으니까!”

 “잠깐―”

 

 엘리가 들떠있는 나를 제지하기 위해 팔목을 붙잡더니, 루리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저렇게 울먹거리는 아이를 두고 모르는 척 하는 건 양심에 가책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나는 변태일지언정, 눈앞에 불의를 보고도 무시하는 악인은 되고 싶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변태라는 소리는 아니긴 하지만.

 

 “너도 루리의 사연을 들었다며? 근데 어떻게 모르는 척 할 수 있어? 아까도 말했잖아! 인간이기에 돕는 건 당연하다고. 난 인간답게 살고 싶어!”

 “쓸데없는…… 오지랖일 뿐이다. 그 시간에 어서 지구로 돌아갈 단서나 찾는 게―”

 

 인간보다 최소 수십 배는 오래 사는 드래곤이면서 그렇게나 서두르는 이유가 뭐야? 매정하네, 거참.

 

 “빨리 지구로 돌아가서 방구석에 박히는 선택도 나쁘진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작정 단서를 찾기보단 덕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구. 그리고 우리에겐 시간이 많잖아.”

 “시간…….”

 “아니면 급하게 돌아가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거야? 둥지에서도 오랜만에 나왔다며. 바깥세상을 좀 더 구경한다는 셈 치면 안 되겠어?”

 

 엘리가 내 반박 불가한 지론에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이마를 만진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생각 해둔 논리가 있다면 어디 보여줘 보시지!

 역시 인성은 드래곤보다 인간이 더 뛰어난 것 같다. 그녀의 괴팍한 성격에서부터 도덕성을 의심했는데, 인간다움이란 게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인지 가르쳐 줘야겠다.

 안 그러면 도덕성이 부족한 이 녀석 손에 아까처럼 심심풀이로 죽을지 모르니까.

 ―최초로 드래곤을 길들인 인류의 역사상 최고의 업적을 남기는 인물이 될지도!

 

 “넌 어떨지 몰라도 난 루리를 도와줄 거야. 설사 너랑 다른 노선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허세 가득한 목소리로 엘리에게 단호히 말한 뒤 다시 루리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이럴 때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게 정공법이지. 거기에 냉정하게 휙 돌아서 정말 내 갈 길을 가는 척을 한다면 금상첨화고.

 아쉬우면 패배하는 거다. 분명 반응이 올 거다.

 ―엘리가 내 좁은 등을 향해 힘없고 가냘픈 목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리는 게 들렸지만, 나는 그것을 귀 기울여서 들으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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