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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라이트노벨
너와 함께
작가 : rororiri
작품등록일 : 2017.7.2

인간을 증오하는 드래곤 ‘엘리시아’와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인간 ‘이유하’는 누군가의 음모로 이세계에 떨어졌다. 차원이동의 부작용으로 하필 유하가 가장 꺼려하는 로리가 된 엘리시아. 곧 죽어도 싫어하던 둘이지만 점점 서로에 대한 감정은 싹트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유하와 엘리의 이세계 모험기.

 
만남, 그리고 시작(3)
작성일 : 17-07-02 15:43     조회 : 61     추천 : 1     분량 : 5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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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제비츠.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오― 엘리시아. 웬일이냐. 히키코모리 드래곤께서 백두산까지 행차를 하시고 말이야. 그 어울리지 않는 말투는 ‘그때’ 이후로 여전하구나?”

 

 즐비하게 매달린 종유석과 솟아오른 석순. 어디가 끝인지 모를 미답의 화산 동굴의 어둠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터.

 

 “‘그이’가 했던 말 중에 생각난 게 있어서……, 겸사겸사 와보았지. 무슨 이유에서 그런 말을 한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천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 인간을 잊지 못한 건가. 정말로 많이 사랑했었나 보군.”

 

 그녀의 얼굴에 순간 씁쓸한 미소가 번졌지만, 이내 궁금증을 그 위에 덧씌우며 지워버렸다.

 

 “근데, 히키…… 코모리가 뭐지?”

 

 찰랑거리는 은발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엘리시아가 편평한 석순을 의자삼아 앉았다.

 은빛의 머리카락과 자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완 달리, 새카만 흑발과 흑안에 캐주얼한 옷을 입고 있는 미청년―메르제비츠는 엎드린 상태로 노트북을 두드리면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 몇 년 만에 세상에 나온 거냐?”

 “200년.”

 “인간 기준으로 치면 2년에서 3년 정도인가. 그것도 잠깐 나왔었던 거지?”

 

 엘리시아는 대답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 참, 가끔은 밖에 나와서 세상 물정을 공부라도 하는 게 어때? 너처럼 둥지에 박혀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는 녀석을 히키코모리라고 그래. 다른 말로는 ‘은둔형 외톨이’라고도 하지.”

 “어째서 하찮은 인간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지? 200년 전, 간신히 마음을 추스리고 잠시 나왔을 때에도 인간은 더럽고 추악한 벌레보다도 너절했다.”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의 고지식한 말에 메르제비츠가 눈썹을 번갈아 들썩이며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아 옆에 놓여있던 편의점 파우치음료를 빨아마셨다.

 

 “엘리시아, 그런 소리 마라. 지금은 다시 명백한 인간의 세상이야. 그리고 인간들은 꽤나 재미있단 말이지……. 특히나 그 끝없이 성장하는 잠재력과 변화하는 문화는 더더욱. 크크큭!”

 

 플라스틱 컵에 담긴 고동색의 음료가 바닥을 치며 호로록거리는 소리와 함께 얼음이 잘그락거렸다.

 

 “참, 나 요즘 대학교 출강도 나간다. 하하.”

 

 메르제비츠가 손가락을 튕기자 자신이 집필한 강의 교재가 마법처럼 그의 손에 나타났고, 그것을 엘리시아에게 보여주었다.

 

 “‘지구정복학’? 쓸데없는 짓을.”

 

 엘리시아가 책을 대충 넘겨보며 말한다.

 

 “하하. 그리고 이걸 봐봐. 인간들은 이런 오락을 하면서 산다고. 얼마나 재밌는 지 아냐?”

 

 그가 노트북을 돌려서 보여준 화면에는 본인이 플레이하고 있던 게임의 화려한 그래픽으로 가득 차있었다.

 

 “원래는 인터넷이라고 하는 통신망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할 수 있지만 마력으로도 충분히 기능하더라고. 하핫.”

 “흐음. 이런 종류의 오락에는 흥미 없지만, 200년 전보다 기계가 발전됐다는 점은 재미있군.”

 

 엘리시아가 턱을 괴고 그의 노트북을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더니 피식 미소를 지었다.

 

 “훗, 확실히 인간이 재미있어졌다는 점은 동의한다. 이곳에 오기 전 어떤 인간을 만났는데, 내 뿔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길래, 공포를 각인시켜줬거든. 그런데도 그건 뒷전이고 내 몸을 탐하는 색골이 하나 있었다.”

 “설마, ‘형상기억’ 마법이라도 쓴 거냐? 너무 과잉 대응인데. 그 인간 불쌍하네. 근데 뭐, 요즘은 내 뿔을 보고도 위화감을 느끼는 인간이 별로 없어서 말이지.”

 

 메르제비츠가 자신의 머리에 돋아있는 황소 같은 뿔을 가리키며 말했다.

 엘리시아의 머리핀 같은 느낌의 뿔과는 다르게 그의 뿔은 악마의 그것과 정말로 비슷한 형태였다.

 

 “요즘의 인간들은 우리 드래곤이 실존한단 사실을 몰라. 그저 여러 매체에서 저들이 멋대로 상상하는 대로만 알고 있을 뿐.”

 

 그가 그러면서 게임 속의 드래곤이 브레스를 내뿜는 모습을 엘리시아에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폴리모프 상태로는 드래곤임을 인지하지 못해. 뿔도 그저 장신구나 코스프레 정도로 생각하니까.”

 “코스……?”

 “아―, 그냥 무시해도 돼 그 말은.”

 

 메르제비츠는 설명하기 귀찮은지, 손바닥을 파리 날리듯 휘저으며 얼버무렸다.

 

 “그렇군.”

 

 엘리시아가 짧게 대화를 끝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을 나갈 채비를 하자, 메르제비츠도 배웅하기 위해 일어났다.

 

 “자,”

 

 메르제비츠가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엘리시아에게 던졌다. 그녀는 그것을 가볍게 받아내고는 그에게 물었다.

 

 “이건?”

 “휴대폰이라는 거야. 거기에 마력을 주입하고 번호를 누르면 세계 어디로든 쉽게 연락할 수 있어. 내 번호도 등록 되어있으니까 자주 연락 좀 하고 살아.”

 

 그가 이를 드러낼 정도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다. 또 놀러오지.”

 

 엘리시아가 짧게 인사를 마치고 다시 드래곤으로 폴리모프한 뒤 동굴을 빠져나갔다.

 

 “안 그래도 부를 참이었는데, 때마침 스스로 찾아오다니……. 잘 가라, 엘리시아. 나의 유희를 위해 방해꾼은 사라져줘야겠어.”

 

 그녀가 떠나고 혼자 남겨진 텅 빈 둥지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로 실실 쪼개는 메르제비츠였다.

 

 

 * * *

 

 

 후―아아암―.

 나른하다.

 드디어 잠에서 깬 건가? 살다보니까 말이지, 정말 어처구니없는 꿈도 다 꾸네.

 

 “……흐어어!! 이게 뭐야?!”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기지개를 켜는데, 피로 범벅이 된 공터 그 자리에서 깨어났다.

 

 “폴리스라인…… 쳐져있는데……. 그리고 저 총 들고 있는 사람들은 뭐지. 설마 경찰특공대?”

 

 에이, 설마……. 그래도 이 폴리스라인은 왠지 진짜 같은데.

 

 “그럼 꿈이 아니라는 말이야? 진짜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그 말이 맞다. 인간.”

 

 내 뒤쪽에서 예상하지 못한 한 여성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와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흐이익―! 깜짝이야! 근데 이 목소리, 이 말투는 설마…….”

 

 고개를 뒤쪽으로 돌리자 그 곳에는 마침 방금 도착했다는 듯이 내게로 걸어오고 있는 은발의 여신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의 양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저, 저기, 여신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죽었다가 살아나는 게 말이 돼?!”

 

 그녀는 내 말 중 ‘여신’이라는 대목에서 눈썹이 올라가더니, 내 팔을 가볍게 쳐냈다.

 

 “무례하구나. 아첨도 적당히 해야지.”

 “앗, 죄, 죄송합니다.”

 

 나는 괜히 들뜨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아까처럼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 반쯤 능욕당하는 것은 사절이니까.

 

 “이래서 멍청한 인간이란……. 네게 ‘형상기억’이라는 마법을 걸었다고 하면 이해하겠느냐? 직접 영면시키거나 마법을 해제시키지 않는 이상은, 사망한 위치에서 내가 마법을 걸은 시점의 형상으로 부활하는 마법이지.”

 “혀, 형상기억 마법……?”

 

 미친……. 그런 마법이 있다고?

 파이어볼이나 라이트닝볼트, 메테오. 이런 게 좀 더 마법다운 것 아닌가?

 

 “두 사람 뭐야, 손 머리 위로 올려.”

 

 어느새 나타난 검은색 방탄과 보호구를 입은 한 남성들 중 한 명이 소총을 겨누며 말했다.

 ―어두워서 “설마, 헛것을 본 거겠지.”하고 말았는데, 진짜 경찰특공대였다.

 

 “여기는 찰리. 현장을 지키던 도중 신원미상의 두 남녀를 발견했다. 테러범으로 추정되지는 않지만 만일을 위해 브라보 팀은 복귀바람.”

 [여기는 브라보, 수신양호. 즉시 이동하겠다.]

 

 그 남성은 어깨에 달린 무전기로 통신을 주고받고는 이어서 낮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들어왔지?”

 “아…… 저, 그게…….”

 

 큰일 났다.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감도 안 잡힌다.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뇌정지 상태.

 

 “호오. 보아하니 머스켓과 비슷한 무기로구나. 과연 200년 동안 얼마큼 발전했는지 시험해보고 싶군.”

 

 내 뒤에 있던 그녀는 꽤나 흥미로운 듯이 턱을 괴더니 경찰특공대쪽으로 나아갔다.

 

 “움직이지 마! 더 이상 움직이면 대테러지침에 따라 적으로 간주하고 발포하겠다!”

 “인간 따위가 감히 내게 명령하는 것이냐? 어디 맘껏 해보거라.”

 “발포 허가한다! 발포!”

 

 경찰특공대의 소총에서 뒷산이 다 울릴 만큼 천지개벽할 소리가 울렸다.

 ―흐아아!!! 깜짝이야! 진짜, 나는 좀 빼달라고!

 총성이 멈추고 질끈 감은 두 눈 중 한쪽을 떠보니, 그녀의 앞에 생긴 마법진 같은 형광의 빛이 원형방패처럼 총알을 막고 있었다.

 

 “하, 여전히 인간의 무기란 한낱 장난감에 불과하지 않은가? ‘대 마법시대’ 시절의 어린애 장난 같은 인간의 마법보다도 수준이 낮구나. 실망이다.”

 “대체 저건 뭐야? 계속 발포해!”

 

 다시 한차례 총성이 울리고 화약 냄새가 코를 들쑤시고 나서야 총알세례가 멈췄다.

 그러나 꽤나 많은 탄피가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그녀와 내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자, 그럼 드래곤에게 덤빈 죗값을 치르게 해주마.”

 

 그녀는 손을 뻗어 손바닥의 중심에 하얗게 빛나는 에너지를 응집시켰다.

 특공대원을 통솔하던 사람이 아직까지도 멀쩡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한다.

 

 “크윽! 저 괴물은 대체 뭐야?! 총이 안통하다니!”

 “고통스럽게 죽진 않을 테니 안심하거라.”

 

 설마, 이 사람들 진짜로 죽일 셈인 건가?

 자신이 드래곤이라고 주장하는 이 여신을 처음 봤을 때의 경험과 지금의 상황을 바탕으로 생각한다면, 여러 명의 죄 없는 목숨은 날파리처럼 사라질 것이다.

 ―마, 막아야해…….

 

 “야, 야이! 드래곤아아아!!!”

 

 나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딸려왔다.

 특공대원들도 미처 상정하지 못한 상황에 버벅거리고는 뒤늦게 총을 갈겨댔지만,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시각이라 제대로 조준하지 못한 듯 했다.

 

 “―뭐하는 거냐. 방해하지 마라!”

 

 크허억!

 몇 백 미터 못가서 그녀가 내 팔을 내팽개치듯이 뿌리쳤고, 나는 땅에 등짝을 처박아버렸다.

 ……하지만 저 여자를 막지 못한다면 세상은 떠들썩해 질 거고, 나는 테러범이라는 누명을 쓸지도 모른다.

 아니, 그 문제 이전에 이 여신이 진짜 드래곤이라면 사람 수십, 수백 명은 죽을지도 모른다.

 

 “그,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잖아!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마!”

 

 나는 고꾸라진 몸을 재빨리 일으켜서 다시 그녀의 팔을 잡고 뛰었다.

 

 “……발데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날 다시 뿌리치려면 충분히 뿌리칠 수 있었음에도 그녀는 내 손에 붙잡힌 채로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 * *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우리는 가로등마저 제대로 켜지지 않는 어두운 골목의 막다른 길까지 들어왔고, 하늘에는 어느새 헬기까지 동원되어 우리를 찾고 있었다.

 

 “굳이 이러는 이유가 뭐냐. 인간 따위 몇 명 죽더라도 기억을 조작하면 네겐 아무런 일도 없게 된다. 원한다면 네놈의 기억까지 지워줄 수도 있다.”

 

 ……뭐? 인간 ‘따위’라고? 말이 너무 심하잖아!

 

 “그래, 드래곤인 너한텐 하찮은 인간일 지라도 저들한테는 각자 소중한 가족이 있어! 터무니없이 강하다고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란 말이야!”

 

 무슨 생각으로 드래곤에게 잔뜩 설교를 늘어놓는 걸까, 나는.

 인간이 벌레를 바라보듯이, 드래곤에게 평범한 인간은 그저 벌레 정도의 존재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른다.

 

 “………….”

 

 화난 걸까? 그녀는 작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있다가 내 시선을 피하며 안쓰러운 표정과 함께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순간, 지근거리에 있던 그녀의 도덕성마저 무시하는 듯한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서, 나는 심장이 멎을 듯이 두근거렸다.

 ―그녀에게 소리친 것이 후회된다.

 

 “인간들과 어울려주는 건 이쯤에서 그만 둬야겠구나. 그래도 아까 약속한 보답은 마저 해야겠지.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 보거라. 돈, 권력, 명예를 이룰 힘? 아니면, 너의 작은 키라도 이참에 키워보는 건 어떻겠느냐?”

 

 ―에……? 소원……?

 난데없이 등장한 소원 얘기에, 나는 벙쪄버리고 말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소원이라고……?

 지금, 이, 상황.

 

 “키―”

 “역시 키가 커지고 싶은 거냐?”

 

 내가 변태인지 아닌지를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정정당당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어떤 남자라도 이 거리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키스.”

 “……!”

 

 그녀가 자색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놀란 고양이처럼 떴다.

 그리고는 이내 속 시원하게 비웃는다.

 

 “풋, 하하하……!”

 

 ―그렇겠지. 마치 대단한 논리라도 되는 양 변명을 했지만 그런 건 다 핑계다.

 

 “역시 안 되겠―, 읍!?”

 

 ―그녀의 달콤하고 맛있는 입술이, 내 입을 포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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