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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마스커레이드
작가 : 블루벨
작품등록일 : 2017.6.29

전장의 여신, 무패의 기사라 불리는 아름다운 소녀 아라베스의 이야기

 
#1.
작성일 : 17-06-29 00:45     조회 : 455     추천 : 0     분량 : 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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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베스 리마 힐가르드.

 

  올해 고작 스무살이 된 최연소 소드마스터. 무패의 기사. 전장의 여신. 아만다라 전투의 영웅. 그녀의 이름 앞에는 이미 수많은 거창하고 화려한 수식어가 장식되어 있고, 심지어 늘어가고 있는 중이다. 전설처럼 회자되는 일화들과 그 이상으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외모로 아라베스 리마 힐가르드의 실물을 목도한 뭇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고 찬탄해 마지 않았다. 금과 다이아몬드를 함께 녹여 만든 듯한 반짝이는 금발 고수머리와 신비롭다는 감정마저 들게하는 자색의 눈동자. 나이에 걸맞은 앳되고 섬세한 얼굴. 덕분에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적어도 이 리다라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라베스는 우아하지만 가벼운 걸음으로 높은 기둥들이 죽 늘어서 있는 회랑을 걸었다. 평소보다 한결 간소화한 디자인의 경갑옷을 착용한 그녀의 허리 아래께로 늘어진 예복의 리본이 경쾌한 리듬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카랑 하고 허리에 찬 예장용 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녀의 뒤를 빠른 걸음으로 뒤쫓던 세이라가 한숨쉬듯 작게 그녀를 불렀다.

 

  "좀 더 천천히 걸으세요, 아가씨. 그렇게 걷다간 넘어지면 어쩌시려구요."

 

  그 말에 아라베스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푸후후 웃음소리를 냈다. 그녀의 눈과 입술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

 

  "설마, 세이라. 걷다가 균형 좀 잃는다고 넘어지겠어, 내가? 아니 그 전에 균형 잃을 일이 뭐가 있겠어?"

 

  "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

 

  세이라가 입술을 삐죽였다. 하긴 괜한 걱정이다. 아라베스의 신체 능력은 늘 가까이서 보고 듣는 그녀가 더 잘 안다. 아라베스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의 놀이상대이자 시동이었던 세이라가 기억하는 한 스물 세해 동안 아라베스가 앓거나 다친 일은 한손에 않았다. 그녀의 아가씨는 정말로 검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남다른 체력과 유연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지구력, 민첩성, 완력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신체 능력이 또래보다 월등했고 현재에도 웬만한 남자들과는 팔씨름을 해도 지지않을 정도다. 아라베스의 말마따나 균형을 잃는다 한들 공중제비를 돌면 그만이었다. 저렇게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치만 귀족 영애로서의 체통도 있지요. 그렇게 나풀거리면서 걷는 영애는 아가씨 밖에 없을거예요. 더군다나 오늘은 아카데미에 초청받아 온 강사인 거잖아요. 그렇게 가볍게 보여서야 학생들에게 어디 위엄이 서겠어요?"

 

  다다다 이어지는 세이라의 잔소리에 아라베스의 하얗고 둥근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가 듣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팔랑팔랑 저으며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그 바람에 거의 뛰다시피 그녀의 뒤를 따르게 된 세이라의 잔소리가 딱 그쳤다. 돌아보지 않아도 볼멘 그녀의 표정이 그려져서 아라베스의 입술에 씨익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힐가르드 경."

 

  갑자기 들린 낯선 목소리에 아라베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호기심어린 눈빛을 한 아라베스가 뒤를 돌아보자 단정한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다. 짙은 먹색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남자의 푸른 눈동자가 마주본 그녀가 눈가를 미세하게 좁혔다.

 

  아카데미 학생이라기엔 나이가 들어보이고, 교수라기엔 다소 젊다. 어느 쪽인가 하면 학생에 더 가까워보인다. 햇빛에 타지않은 하얀 피부와 갸름하지만 단단해보이는 얼굴에서는 뭔지모를 예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나잇대나 분위기 보다도 아라베스의 주의를 끈 것은 남자의 표정이었다. 대게 그 나이 또래의 남자들이 아라베스를 보면 보이는 반응들, 얼굴을 붉히거나 신경쓰지 않는 척 하면서 신경쓰는 표정 어느 쪽도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지 않았다. 오히려 서늘함마저 느껴져서 그녀는 꽤 한참동안 남자의 얼굴을 관찰했다.

 

  다소 길게 이어진 그녀의 침묵을 묵묵히 참아내던 남자가 먼저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었다.

 

  "유리 칼라스. 엘스라스 아카데미 조교수입니다."

 

  "아라베스예요. 베릴이라고 부르셔도 돼요."

 

  남자의 손을 맞잡으며 아라베스가 생긋 웃었다. 나름 필살기였는데 어째 남자의 표정은 눈썹 한올 변한 것이 없다. 이것 봐라? 아라베스가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그런 미묘한 공기 따위에 개의치 않고 그녀가 낯선 남자에게 애칭을 허락한 것에 놀란 세이라가 비명처럼 아가씨! 하며 속삭였다.

 

  "중앙홀은 이쪽입니다."

 

  방긋방긋 미소짓는 아라베스를 잠깐 응시하던 유리가 그녀의 손을 놓고 몸을 돌렸다. 끝까지 아무런 변화없는 그의 태도에 아라베스의 입매가 씰룩였다. 학자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사쪽인가? 굳은 살이 단단하게 박혀있던 손의 느낌을 생각하며 아라베스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누군가에게 흥미가 동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빠른 걸음으로 유리의 뒤를 쫓았다.

 

 

 

 

 

 * * *

 

 

 

 

  "우와아아아아!!"

 

  "힐가르드 경!"

 

  "여기 좀 봐주세요!"

 

  흡사 검투대회 결승에서나 느껴질 법한 열기에 유리는 기가 막힌 얼굴로 팔짱을 꼈다. 그 역시 그녀의 명성과 인기에 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였지만 이정도의 반응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시범을 보이는 아라베스의 검이 우아한 은빛 곡선을 그렸다. 그녀의 눈짓하나 손짓하나마다 온갖 환호와 울부짖음에 가까운 고성이 터져나온다. 개중에는 여학생들도 끼어있어서 몇몇 어린 학생들 중에는 곧 울음을 터뜨릴 듯 울먹거리는 얼굴도 보였다.

 

  "학생들이 거의 광신도가 됐군 그래. 말세야 말세."

 

  옆에서 쯧쯧 혀를 차는 노교수의 말에 유리가 곤란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힐가르드 경이야 말로 어린 학생들의 우상이니까요. 아카데미에서 어렵게 초청해왔는데 너무 못마땅해 하시면..."

 

  "그 우상이라는 게 말일세. 기사가 얼굴 뜯어먹는 직업이던가? 저 풀어헤친 머리하며... 무패의 기사니 최연소 소드마스터니 거창한 이름만 잔뜩이니 허명인지 진짜인지 알게 뭔가. 들려오는 소문도 다 믿기 힘든 것인데, 그 주인공이 고작 약관을 넘긴 여자라? 차라리 저 외모에 홀린 기사들이 자신의 공을 바쳤다는 것이 더 신빙성 있을 걸세."

 

  "...하지만 아만다라 전투에서 그녀가 공을 세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 않습니까."

 

  "뭐 그야 그렇네만... 그 전투는 누가 나갔어도 이겼을 걸세. 아만다라 요새가 난공불락이라는 이야기도 과거의 명성일 뿐이야. 사망한 귀네비어 영주도 뇌까지 근육으로 찬 멍청이였고 말이야."

 

  신랄한 어조로 고집스레 대답하는 노교수를 향해 유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말이 일견 일리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유리는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아라베스의 검끝을 눈으로 좇으며 노교수에게 '뇌까지 근육으로 찬 멍청이'라는 평가를 들은 알렉스 귀네비어 백작을 떠올렸다. 전사한 귀네비어 영주가 전술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인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해도 될만한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애초에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리다라움과 아즐란의 분쟁에서 군사적 요충지인 아만다라 요새의 성주였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백작은 괄목할만한 완력으로 배틀엑스를 휘두르는 거한이었으며, 잔인한 성정으로도 꽤 유명세를 떨쳤다. 아마 지휘관으로 등장한 상대가 소녀라고 말해도 어색함이 없는 어린 여기사였던데다 아름답다 칭송받는 그녀의 외모가 그의 방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한 몫을 했음이 분명했다. 뒤에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아만다라 본성을 놔두고 굳이 평지로 내려온 것만 봐도 그렇고, 후방에 있었어야 할 지휘관이 최전선에서 전투 중이었다는 사실 또한 백작의 호승심을 부추겼을 것이다.

 

  문제는 전장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라베스 리마 힐가르드의 실력이 거짓이 아니었다는데 있다. 유리는 깨끗한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그녀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한순간 그녀의 검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쏘듯이 내질러졌다.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중앙홀에 서있던 모든 이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아라베스의 앞에 세워져 있던 목각인형의 허리부분이 깔끔하게 사선 형태로 잘려져 나갔다.

 

  "와아아아--!!"

 

  지축을 뒤흔들 듯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검기. 유리의 곁에서 계속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노교수의 얼굴에 설핏 놀라움이 스쳤다. 그 또한 아라베스의 검이 목각인형에는 닿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노교수가 한숨처럼 '허'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내 팔짱을 끼고있던 유리가 스르륵 팔을 풀며 짧게 한발을 내딛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아라베스의 얼굴이 선명하게 맺혔다. 그녀의 공이 대부분 거짓이든 아니든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아라베스 리마 힐가르드가 소드마스터라는 사실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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