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더 맑다. 정면만을 쳐다보느라 뻣뻣해진 고개를 들고 비명을 지르는 뒷덜미의 강력한 주장을 무시하며 광활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꼭 '마일과 모루' 특유의 비밀 소스 옥수수 구이와 닮은 구름이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둥둥 떠다니고 있는지라, 단지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입맛을 다시게 했다.
게다가 그 옆의 구름은 또 어떤가. 투박하게 깎여졌지만 그 안의 내용물은 단 한 방울도 흘려보내지 않는 마일과 모루의 고유한 나뭇잔 안에 가득 담긴 '트렌트 뿌리 증류수'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인지라, 안 그래도 구둑구둑한 목줄기를 더욱더 메마르게 만들었다.
새로운 홍보용 도구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번쩍일 정도로, 오늘은 유달리 마일과 모루를 닮은 구름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젠 한 몸처럼 익숙한, 그러나 다루는 것만큼은 결코 같은 근무에 들어선 유렌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두 개의 꼬챙이 같은 창두가 달린 창을 재차 고쳐 잡은 카일로스는, 벌써 이마 전체를 뒤덮어 버린 땀방울을 그나마 놀고 있는, 하지만 엊그제부터 지급되어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된 소형 핸드 가드Hand Guard가 장착된 팔로 약간 억지로나마 슥 닦아내곤,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내려 바람의 계곡을 통과하고자 자연스레 긴 줄을 형성한 수 백 명의 방문객들을 살짝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벌써 열흘이나 지났건만, 제대로 된 식사조차 못 하고 마치 간질 환자를 보는 것처럼 쉬도 때도 없이 덜덜 떨어대며 성문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자신의 친구, '전' 계곡지기 델리스를 착잡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뜬금없이 열흘 전부터 델리스는 저런 상태가 되었다. 딱히 특이한 전후 상황도, 그렇다고 특별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연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전설의 '마인드 브레이크Mind Brake' 마법에 적중당한 사람처럼 급작스레 폐인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혼자선 아무런 작업도 할 수 없는, 심지어 걷지도, 먹지도 못하는 상태로 갑자기 뒤바뀌어 버렸단 소리였음이다.
그리고 그날 하루의 검문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기에, 그 죄를 물어 명목상으론 '병가', 실질적으론 해고를 당한 채 델리스는 꼬박 열흘이 지나도록, 성문 밖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에 덜덜 떨고 있었다.
물론 처음엔 이러한 델리스를 치료하고자 간혹 지나가는 엘프들이나 마법사, 성직자와 요정들에게 치료를 부탁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했다. 정신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기에, 마법으론 치료를 할 수가 없다는 답변만 날아올 뿐이었다.
그렇다고 약초를 다루는 약초사나 기괴한 도구를 이용하는 의사들에게 부탁을 해 봐도, 그들이 내놓는 대답도 앞선 이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외적으로는 그 어떠한 이상도 없다. 직접적으로 머리를 쪼개고, 그 안의 뇌를 갈라내 살펴보지 않는 한, 다시 말해 그냥 죽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소리나 지껄이는 것으로 끝이었다.
가족들이 찾아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델리스는 꿈쩍도 하질 않았다. 그나마 겨울나기 신전의 사제인 카르디엠이 찾아오는 날이면 약간의 반응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건 절대 반갑다는 반응이 아니었다.
마치 철천지 원수徹天之怨讎를 눈 앞에 둔 것처럼,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박박 땅을 기어가 카르디엠의 다리를 죽일듯이 물어뜯는 행동은, 누가봐도 반가움의 표시는 아니었다. 까닭에 델리스의 정신을 파괴한 이로 카르디엠이 최종적인 범인이라 지목되어 지금은 슈르벤의 수도, 마할레스의 지하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것도 비록 명목상으론 '조사'였으나, 그 당시 찾아온 두 명의 신관들 중 푸른 숄이 덧씌워진 수단을 걸친 늙은 신관의 입가에 어린 뒤틀린 미소를 보았던 터라, 카일로스는 단지 '조사'라는 명목상의 체포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일개 경비병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무사하기만을 빌며, 델리스가 이렇게 된 실질적인 원인, 그러나 기약없는 증거가 찾아지는 것을 언제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