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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안녕 내 사랑
작가 : 네칠
작품등록일 : 2017.6.26

잊지 못하는 사랑. 다시 만난 사랑.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다시 만난 그녀와 나(2)
작성일 : 17-06-30 19:58     조회 : 258     추천 : 0     분량 : 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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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를 치는 재하는 빛이 난다. 유나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연주를 하는 옆모습은 언제 봐도 대단했다. 아니 ‘대단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재하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어떻게 저 자리까지 갈 수 있었을까? 재하의 손을 바라보았다. 섬세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은 몇 번을 봐도 감탄이 새어 나왔다. 그것만 봐도 셀 수 없이 노력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피아노를 왜 연주하는 거예요?”

 하지만 유나는 몰랐다.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별 거 아닌 이유로 움직이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의 꿈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도구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가령 재하가 그런 경우였다.

 “글쎄……”

 재하는 그간 피아니스트로서 동경을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름이 알려지고 명예가 쌓여도 그러려니 싶었다. 사람들의 관심, 각종 상, 그 무엇 하나도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연주하던 손을 내려놓고 멍하니 머리를 굴려보았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유?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것이다. 문득 옛날에 했던 인터뷰가 떠올랐다. 꿈이 무어냐는 말에 없다고 답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 그냥 누가 연주하는 걸 따라한 거였지.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고 그 사람을 따라가고 싶었던 거야. 단지 그것뿐이야.”

 대단한 꿈도, 막연한 희망도 없었다. 그저 당연했을 뿐이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피아노를 연주할 뿐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피아노를 바라보는 재하의 표정은 줄곧 무심했다.

 반면에 유나의 두 눈은 반짝거렸다. 어느새 재하에게 점점 다가왔다. 호기심 가득 찬 두 눈이 재하에게 달려들었다.

 “진짜요? 낭만적이네요! 그러면 그 사람 만났어요?”

 유나가 재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재하의 얼굴이 확 바뀌었다. 표정이 없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만났어.”

 “정말요? 누구에요 그 사람?”

 재하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피아노 너머 소파에 앉아 있는 소라가 보였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와 버렸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동안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유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하의 시선을 따라가자 가슴 한 구석이 저려왔다. 어째서일까? 재하는 유난히 소라를 볼 때면 얼굴이 달라졌다. 아니 얼굴이 아니었다. 사람이 달라졌다. 세상만사에 관심 없다가도 소라만 보면 사람이 확 바뀌었다.

 가슴을 움켜쥐고 소라와 재하를 번갈아 보았다. 또 어째서일까? 재하의 저 표정을 볼 때 면 유나는 이상하리만큼 눈살이 찌푸려졌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너는?”

 유나는 고개를 젓고 피아노를 보았다. 쓸데없는 생각 말자. 건반 위에 손가락을 살짝 얹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저도 비슷해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름다웠어요.”

 “아름다워?”

 “네. 어렸을 때 연주회를 간 적이 있어요. 그때였어요.”

 어렸을 때 유나는 유난히 떼를 많이 쓰는 아이였다. 어리광이 많은 탓에 소라의 품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무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참을 소라 품에서 칭얼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 싫었는지 아니면 어두운 연주회가 무서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유나가 그날 기억하는 것은 단 하나다. 무대 위의 피아니스트였다. 모든 것이 단 한순간에 바뀌었다. 무대에 불이 들어오고 소리가 울리자 유나의 시선은 오직 무대를 향했다. 조명 아래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빛났다.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모습이 유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 속으로 풍덩 빠져버렸다.

 “그때 연주회에서 봤던 피아니스트가 부러웠어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 들었던 노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요. 그날 집에 가서 엄마한테 알려달라고 난리를 쳤거든요.”

 유나가 천천히 피아노 건반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슬며시 눈을 감고 연주를 시작했다. 그 순간 재하는 유나가 자신과 다름을 느꼈다.

 “너라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야.”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간 피아노를 연주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 중에 유나 같은 사람은 없었다. 이토록 순수하게 피아노를 향하는 사람이 있을까? 피아노를 바라보는 눈빛부터 다른 사람과 달랐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아이야말로 진짜라고 생각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어요.”

 연주를 끝내고 유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이었다. 당연히 좋아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유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금씩 떨리는 모습이 위태로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는데?”

 “그게 사실 전 무대가 무서워요.”

 유나가 건반을 두드리자 무거운 음색이 짙게 내려앉았다. ‘무대’라는 말이 나오자 유나의 표정이 급속도록 어두워졌다. 항상 미소를 짓던 얼굴에는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다.

 “예전에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했던 적이 있어요. 사실 연주회라고 할 건 없었죠. 많아봐야 수십 명 정도였으니까요. 연주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하지만 어린 저에게는 그렇지 않았나봐요.”

 “실수를 했구나.”

 유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무대라는 것이 마냥 빛나는 것은 아니다. 그 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은 기본이고 무대가 주는 압박감을 이겨내야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쉽게 착각을 한다. 무대로 가는 사람이라면 쉽게 그 공포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니까.

 무대는 언제나 새롭고 무서운 곳이다. 매번 다른 사람들이 있고 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 손가락에 집중한다. 작은 실수는 냉혹한 비평이 돌아온다. 그렇기에 프로들도 실수를 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에게는 어떨까? 물론 어린아이에게 나무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냉혹한 비평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굳이 생가하지 않아도 답은 쉽게 나온다.

 “맞아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울고 있다 내려오고 말았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는 괜찮다고 말했어요.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 뒤로 계속 무서웠어요.”

 유나가 몸을 틀어 재하를 보았다. 투명한 눈동자. 깊은 눈동자는 소라를 닮았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부탁드린거에요. 선생님께서 항상 편하게 연주하시니까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요.”

 “항상? 저번이 처음 아니었어?”

 “선생님 연주회는 좋아서 매번 갔어요.”

 유나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내려앉은 그림자가 서서히 물러갔다. 동시에 유나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살짝 붉게 물들었다. 재하는 이때가 좋았다. 유나의 아이 같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수줍어하는 모습도, 밝게 웃는 모습도 좋았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재하는 절로 미소를 지었다. 재하가 몰랐던 소라를 만나는 것 같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쓰윽. 손을 내밀었다. 유나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유나는 커다란 손에 움찔했다. 어색한 손놀림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서툰 만큼 유나에게 더욱 깊게 다가왔다. 천천히 어루만지는 그 손길에 머리를 맡겼다.

 “이제 몇 달 있으면 연주회가 있어요. 작년에는 긴장한 탓에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올해는 잘 할 수 있겠죠?”

 재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이 모습. 마치 어린 소라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소라도 어렸을 때 이랬을까?

 유나가 재하를 바라보았다. 온화한 표정, 해맑은 미소. 아까 소라를 바라볼 때와 마찬가지였다. 다만 지금은 소라가 아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나는 재하의 눈을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는 바다 같았다. 보면 볼수록 그 속으로 풍덩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밝은 미소는 유나의 마음을 쓰다듬어주었다.

 “괜찮아. 잘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어느새 저도 모르게 넋이 나가버렸다. 부드럽게 흘러들어오는 재하의 목소리에 황홀한 기분까지 들었다. 유나가 귀를 쫑긋 세웠다. 천천히 재하의 목소리가 유나의 몸속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 모습이 재하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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