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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워스트셀러 - 외설작가 아가씨
작가 : 미르지기
작품등록일 : 2017.6.20

사릴 카리즈 공작 영애, 제국에 단 두 개 뿐인 위세 높은 공작가의 외동딸.

그런 그녀에겐 남들과 다른 비밀이 하나 있다. 그녀가 작가라는 것이었다.

사릴 카리즈는 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얼굴이 홧홧해질 정도로 달아오르는 문장과 전개. 그게 그녀의 자랑이자 특기였다.

 
7. 저는 당신의 애독자입니다 (4)
작성일 : 17-07-06 16:40     조회 : 332     추천 : 0     분량 : 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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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사릴은 일단 그들을 끌고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데려갔다. 이미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보는 눈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으나 더 이상 일을 벌릴 수도 없었다.

 

 로디니는 당장이라도 뭐라 말하려 하는 것 같았으나 그 때마다 제자에게 일일이 제지당했다. 자리에 앉자, 앤이 사릴의 눈치를 보면서 다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안테아는 사릴의 뒤에 시립해 섰고, 로디니와 여자 제자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안테아 경. 인생은 왜 이럴까요.”

 “제가 할 말입니다.”

 

 사릴이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말에 안테아가 받았다. 평소의 그였다면 절대로 받아주지 않을 농담 같은 푸념이었다. 사릴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안테아는 고개를 휙 돌렸다. 아까의 충돌 이후로 계속 저 상태였다. 그녀는 안테아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두 이 인간들 때문이다. 대마법사와 그의 제자, 느닷없이 들이닥쳐서는 사릴에게 ‘작가님’이라는 딱지를 붙여준 장본인들. 그 죄를 알긴 하는지, 여자 쪽은 다소곳하게 손을 모은 채 사죄를 하고 있었다.

 

 “민폐 끼치는 짓을 했습니다.”

 

 자신을 미네라고 소개한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사릴은 팔짱을 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미네의 사과가 아니었다. 그 옆에 태연하게, 빙글거리며 사릴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로디니의 사과를 원했다.

 

 딱 봐도 알 수 있는 역할 분담이었다. 천방지축에 자기 멋대로 하는 마스터-주인과, 그걸 수습하고 말리느라 마음고생 심한 제자-부하의 모습. 그러나 로디니는 사과할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어 보였다. 사릴은 결국 먼저 로디니에게 말했다.

 

 “알면 좀 나가주면 안 돼요?”

 “꺼져달란 뜻이죠?”

 

 그녀는 나름 공손하게 말했지만, 로디니의 대답은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고 날카롭게 직설적이었다. 옆에서 차를 따르던 앤이, 무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로디니를 쏘아볼 만큼. 안테아는 사릴의 뒤에 시립해 있어서 어떤 반응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미네가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가만 손을 들어 올리자, 로디니가 움찔 하고 몸을 빼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는 자비가 없었다. 사릴이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와 함께, 로디니가 이마를 움켜쥐고 끙끙대기 시작했다.

 

 저게 정말 그 유명한 로디니 엘판인가? 사릴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로디니는 이마를 문지르다가, 사릴의 시선에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 혹시 로디니 엘판의 사칭인가 해서요.”

 

 로디니는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기분이 좋아서 짓는 것보다는 과도한 자신감과, 사릴이 가지는 의심이 터무니없다는 듯한 비웃음이 약간 들어간 웃음이었다.

 

 “아닙니다. 증거를 한 번 보여......”

 “움직이지 마시죠.”

 

 사릴은 눈을 깜박였다. 그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다. 안테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깨닫고 몸을 움직이거나 입을 벌리기도 전에 그는 로디니에게 접근해 그의 팔을 잡고 있었다.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은 방 안, 사릴은 소리를 지를 타이밍을 놓쳐서 침묵했다. 그건 앤도 마찬가지인 듯, 차를 따르던 동작 그대로 굳어버렸다.

 

 안테아는 속도도 속도려니와, 정확하기까지 한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사릴의 뒤에서 그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로디니에게 향하기 위해서는 앤과 탁자를 넘어야 했는데, 그는 그 모든 걸 잘 피해 부딪히지 않고 접근한 거였다. 사릴은 그 노골적이고 충동적인 적개심의 대상인 로디니가 태연한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미네가 일어나며 안테아를 노려보았다.

 

 “해보겠다는 겁니까?”

 

 안테아는 아무 말도 없이 미네를 바라보았다. 그 때 분위기를 이완시키려는 듯 로디니가 안테아의 손을 툭툭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미네, 좀 더 점잖게 해드려. 다치는 것도 아니고.”

 “무례를 범한 건......”

 “이쪽이 먼저지. 조금 경솔했던 것도 사실이고.”

 

 저렇게 상식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안테아 경.”

 

 그 상식적인 발언에 대한 보답으로, 사릴은 안테아를 가만 불러 말렸다. 그러나 안테아는 서슬 퍼런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제 앞에서, 아가씨에게 마법은 쓸 수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로디니는 한쪽 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내보였다. 실없이 웃기만 하는데도 그 모습에 영문 모를 여유가 넘쳐나서, 오히려 안테아쪽이 몰리는 것처럼 보였다. 사릴은 두어 번 더 안테아를 불렀고, 그는 마지못해 로디니를 놔 주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분수 넘치게 대마법사 칭호를 받은 로디니 엘판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본업으로 인타넬을 통한 문학 발전에 힘쓰고 있습니다.”

 “부업이 아니라요?”

 

 미네의 말에 로디니는 옅게 웃으며 간단히 대꾸했다.

 

 “응, 본업.”

 

 미네는 인상을 찡그렸고 그건 사릴도 마찬가지였다. ‘인타넬’이란 단어가 나온 순간부터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괴로움의 시작이었다.

 

 “작가님. 제가 아주 잘 읽고 있습니다. 특히 전작에 비해 이번 것은, 조금 파격적인 소재라 더 흥미롭더군요. 그건 다른 독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 입을 꿰매버리고 싶다. 당장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면 뭐든 좋으니 하고 싶다. 사릴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로디니는 말하다가 살짝 사릴의 뒤쪽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기사님은 모르셨던 모양이네요. 이거 제가, 실례를 한 건가요?”

 

 몰라서 물어요?

 아마 안테아가 험악한 기세로 사릴을 째려보고 있겠지. 사릴은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로디니에게 따져 물었다.

 

 “비밀 절대 보장이라 하지 않았나요? 이렇게 오시면 곤란한 게 당연한 겁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쪽도 나름대로 사정이 급한지라......”

 “무슨 사정이시기에.”

 “그, 대마도서 내 구조는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공녀님.”

 

 사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글을 쓰고 인타넬이라는 대마도서에 올리려고 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녀는 공작가의 여식이기에 수익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았다.

 

 “여러 ‘독자’들의 후원에 의해 수익이 발생하고, 그것을 인타넬 관리자인 저희와 작가에게 배분되는 형식인데. 작가님 소설이 워낙에 인기가 많아서, 한동안 쓰시질 않으니 불만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베스트셀러인 카리즈 공녀의 글은 그 액수나 신분이나,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어서 제가 결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판을 키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취미였을 뿐인데. 다른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길 바래서 시작한 일인데. 사릴은 멍하니 로디니의 말을 흘려 들었다.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글을 쓰지 않으면 ‘후원자’란 독자층에 의해 로디니는 물론, 인타넬이란 구조가 공격을 받을 거란 소리였다.

 

 “사릴 카리즈 공녀님.”

 

 로디니가 차분하게 그녀를 불렀다. 사릴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디니는 이 방에 들어와서, 아니 사릴과 만난 이후로 가장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단순히 취미 본위로 할 정도가 아닙니다. 공녀께서는 이제 프로이십니다. 많은 애독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쯤 하시지요, 오늘은.”

 

 안테아가 그런 그를 막아섰다.

 

 “아가씨께서 피곤하신 것 같습니다.”

 

 왜 안 하던 짓을 해요, 오늘? 예뻐 보이게. 사릴은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안테아가 신기했다. 미네가 고개를 끄덕이고, 로디니도 이내 알겠다는 듯 손을 살짝 들었다.

 

 “앞으로 자주 뵐 수 있으니 오늘은 이만 해도 좋을 것 같군요.”

 “왜죠?”

 “제가 이 학원 선생으로 취직했거든요!”

 

 하.

 

 “작가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아까 예뻐 보이는 짓 했다고 했던 거, 취소.

 

 “아가씨.”

 

 로디니와 미네 일당이 나가고 난 뒤, 폭풍이 몰려오는 것 같은 고요 속의 방. 안테아가 그 폭풍을 몰고 오는 바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앤은 사릴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릴은 눈을 감았다.

 

 “인타넬은 뭡니까?”

 “거짓말을 한 건, 아니잖아요.”

 

 그녀 본인이 들어도 궁색한 변명이었다. 그러나 사실인 것도 맞았다. 처음 안테아에게 노트를 걸렸을 때, 그는 분명 ‘남한테 보여준 적이 있었냐’고 물었고 사릴은 긍정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는지, 그건 물어온 적도 없었고 따라서 거짓말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인타넬은 뭐고 저 마법사는 무슨 연관이 되어 있습니까?”

 

 사릴은 느릿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문학 시장의 발전을 이룩한 대마도서, 인타넬. 노트에 글을 써서 인타넬에 연결하면 다른 곳에 있는 마도서에도 글이 올라가는 마법이 깃든 책. 원하는 글을 찾는 검색 마법도 걸려 있어, 이 마도서 하나만 있으면 수많은 글들을 읽을 수 있는 책.

 

 사릴이 말을 마치자, 안테아는 느릿하게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말했다.

 

 “누구한테 보여준다고 해서, 시녀들이나 돌려 읽는 그런 정도로만 생각했던 제가 한심합니다.”

 

 그대로 방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사릴은 지켜보고만 있었다.

 --

 

 다음 날이었다. 사릴은 안테아를 부르려다가, 이내 앤만 호출하여 옷차림을 정돈하려고 했다. 아직 학기 시작 전이라 할 일은 그저 휴식을 취하는 것뿐이었다.

 

 앤은 벌써 일어나 있었다. 그리고 묘한 표정이었다. 사릴은 옷을 입다가, 그녀의 표정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앤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문 앞에 있었다던, 쪽지였다.

 

 ‘잘 읽고 있습니다. 작가님.’

 

 뭐야 진짜.

 

 나 좀 평범하게 다니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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