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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워스트셀러 - 외설작가 아가씨
작가 : 미르지기
작품등록일 : 2017.6.20

사릴 카리즈 공작 영애, 제국에 단 두 개 뿐인 위세 높은 공작가의 외동딸.

그런 그녀에겐 남들과 다른 비밀이 하나 있다. 그녀가 작가라는 것이었다.

사릴 카리즈는 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얼굴이 홧홧해질 정도로 달아오르는 문장과 전개. 그게 그녀의 자랑이자 특기였다.

 
6. 벤 경 (3)
작성일 : 17-06-29 13:55     조회 : 344     추천 : 0     분량 : 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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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날씨.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벤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사릴의 미소를, 놀리는 것 같은 손짓을 볼 때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완전히 낚였다는 것.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벤이 일평생 전장에서만 굴러온 무식의 표본이라고 해도 멍청한 건 아니었으니. 다만 그가 읽어야 했던 외설이 생각보다 더 음란하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거기다 앤과 안테아라는, 하나의 화살로 두 마리 새를 꿰뚫는 즐거움이 벤을 주체하지 못하게 했다. 그의 손은 신나게 어느 부분이 굉장히 야하고 음란하고 품위를 깎아내리는지 체크하느라 바빴다.

 

 아차, 했던 것은 기사 하나가 그를 부르러 왔을 때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물어보자, 이미 사람들은 다 모여 있고 공작이 굉장히 화가 난 것 같다고 기사는 말했다.

 

 어쩔 수 없다고 벤은 생각했다. 늦은 건 확실히 제 잘못이지만 공작께서 ‘직접’ 시킨 업무 도중이었으니 이해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공작의 표정을 보았을 때 그것이 순진한 착각이라는 걸 알았다.

 

 불 같이 독설을 퍼붓던 공작은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골랐다. 벤은 사릴을 한 번 더 노려보려다가, 공작과 자신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깝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그만두었다. 만약 공작이 그 꼴을 본다면 더욱 화를 낼 거라는 것쯤은 벤도 알 수 있었다.

 

 “오늘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니, 다들 들어가서 쉬도록. 아무래도 그 동안 너무 풀어주었던 것 같네. 앞으로는 기강 확립에 신경 쓰도록 할 테니 그리 알도록 해라.”

 

 공작의 선언에 기사들의 눈총이 일제히 벤에게로 쏟아졌다. 벤은 어이가 없어졌다. 나만 그랬냐고, 너희들 중에 상당수가 나랑 똑같이 놀지 않았냐고 묻고 싶었다. 내가 재수없게 이상한 일에 걸려서 불거진 일인데. 벤은 정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거나 속삭이는 소리들을 들었다. 그는 그 목소리들을 알고 있었다.

 

 공작의 인도에 따라 몇 명의 사람들이 불려갔다. 맨 앞에는 성난 공작이 걷고, 그 뒤를 사릴 카리즈와 시녀 앤, 안테아가 따랐다. 벤은 그 맨 뒤에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마냥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러면서 그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건, 주도면밀히 계획된 함정이었다. 아마 계획 입안자는 사릴 카리즈겠지. 앤이 자기 시녀이니까, 감히 건드렸다는 죄목 하에. 그들은 이내 공작의 집무실에 다다랐다. 방문을 열어주는 건 아까 들어갔던 공작부인이었다. 그들은 차례차례 방으로 들어섰다. 벤은 그 공간이 꼭, 들어가기 꺼름칙한 공기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공, 공작님.”

 “솔직히 인정하면 어느 정도 봐 준다고 약속하지.”

 

 뭘 인정하라고? 벤은 억울하고 답답했다. 아까 공작이 화를 내며 말했던 게 생각났다.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자신의 과오를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새끼라고 했던가. 그건 다름 아닌 저 세 연놈들이 아닌가. 왜 공작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 그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공작이 인상을 썼다.

 

 “할 말이 없어?”

 “아니, 아닙니다.”

 “그러면 빨리 말하도록 해라. 남들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일단, 오늘 아침에 사릴 카리즈 공작 영애가 절 찾아왔습니다.”

 “하시는 말이, 공작님께서 그 외설을 읽고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정리하면, 그걸 토대로 안테아 경과 저 시녀를 벌하시겠다고......”

 “그만.”

 

 아니, 왜! 내가 말하는 건 안 믿는 겁니까!

 

 “증거는 있나?”

 “예?”

 

 벤은 멍하니 공작을, 그리고 사릴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사릴은 이상한 추문에 휩쓸린 귀부인처럼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증거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그냥 당연히 믿었다. 공작의 딸이었으니까. 설마 공작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속이리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없겠지.”

 “하지만 공작님!”

 “오히려 다른 쪽에서 증거가 나왔는데.”

 

 공작은 가볍게 손을 들었다. 공작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문을 열었다. 벤은 고개를 돌려 누가 들어오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굳어버렸다.

 

 “이름은?”

 “센데라고 합니다, 공작님.”

 “에인입니다.”

 

 분명 잘 아는 얼굴들이었다. 이름은 낯설지만. 벤이 부려 먹던 기사들이었다. 그 둘은 고개를 깊이 숙이고는 공작에게 다가갔다. 벤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말하라.”

 

 공작의 말에 둘은 번갈아 가며 입을 열었다.

 

 “그 소설은 출처를 모릅니다.”

 “다만 안테아 경의 뒷조사를 시킨 것과 안 좋은 평판을 퍼뜨리라고 했습니다.”

 “저 시녀와 안테아 경, 모두 떨어뜨릴 수 있다고 즐거워했습니다.”

 

 벤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살의를 숨길 수 없었다. 두 기사는 몸을 살짝 움츠렸다. 무의식적으로 벤의 분위기를 읽은 것이었다. 공작은 그들이 말을 마치자, 손짓을 해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말했다.

 

 “자, 그렇다면 어떤 결론이 나오지? 앤이라는 시녀에게서 외설이 나왔다. 안테아 경은 그것을 자신이 준 거라고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군. 안테아가 무슨 연유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라고 보는데. 벤.”

 “공작님.”

 

 목소리가 심하게 잠겼다.

 

 “자네 콜렉션 중 하나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네만.”

 

 공작은 말과 동시에 무언가를 툭 던졌다. 책이었다. 벤은 떨리는 손으로 그걸 주웠다. 자신의 방에 있던 춘화집이었다. 공작이 이것과 같은 종류로서 그 외설을 분류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

 

 사릴은 안테아를 마주보고 섰다. 그는 그녀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이걸로 세 번째인가. 안테아가 그녀의 방에 서 있는 것이. 안테아는 그녀를 발견하고 다짜고짜 말했다.

 

 “무모합니다.”

 “알아요.”

 

 사릴은 옅게 웃었다.

 

 “그보다 안테아 경, 생각보다 눈치가 좋으시네요?”

 “저 정도까지 일을 벌렸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겁니다.”

 “어머, 아버지께서는 모르셨는데요?”

 

 그녀는 그에게 웃어주었다. 억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안테아는 미간을 약간 움찔했다. 사릴의 말이 곧, 몰랐던 그녀의 아버지, 공작이 미련하다 말하는 거냐는 질책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테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공작님께선 알면서도 속아주신 걸 겁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말하면서도 그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기사들에 한해서 방임주의를 선택한 아버지였지만, 벤의 경우는 그 선마저 넘어설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이번 사건은 그 계기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릴은 안테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비켜달라고 말하려 했다.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안테아는 물러서지도, 비켜서지도 않았다. 오히려 진지하게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귀족답지 않은 방식이었습니다.”

 “귀족다운 방식은 뭔데요?”

 

 안테아의 물음에 사릴이 되물었다. 그가 대답이 곤궁한 것처럼 가만히 서 있자 사릴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만 둬요. 마음에 안 드는 방식이란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전 제 무기들을 충분히 활용한 것뿐이에요.”

 

 공작의 신임과, 공작부인이라는 조력자. 벤이라는 인간의 평판. 안테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벤 경은 굉장히 치사하고 더럽고 음탕한 인간이지만. 실력만은 확실합니다. 공작가 안에 두 명을 빼고 그를 이길 무인은 없습니다.”

 “두 명이요?”

 “저와, 카리즈 공작님.”

 

 확고한 신념이 담긴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게 아니었다. 저건 ‘사람이 숨을 못 쉬면 죽는다.’ 같은 세계의 법칙을 말하는 담담함이었다. 사릴은 무뚝뚝한 그의 자부심에 내심 미소를 지었다.

 

 “혹시 악감정이라도 품으면 어쩌시려고 합니까?”

 

 사릴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때는 안테아 경이 절 지켜주시면 되잖아요?”

 

 말했다. 말했다고! 사릴 카리즈, 대견하다. 물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걸 잊지는 않았다. 아직 당신의 고백을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하지만, 호의는 있다고 알려주는 태도. 사릴은 얼굴이 붉어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낯부끄러운 말을 해놓고 감히 그를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침묵이 퀴퀴하게 고였다. 뭐지? 사릴은 아주 살짝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황했다. 그의 표정은, 내가 왜, 라고 말하는 표정이었다.

 

 뭐야, 왜 저딴 표정을 짓는데? 사릴은 화악 짜증이 일었다. 그녀는 분명히 얼굴이 빨개졌다고 짐작하고 얼른 고개를 도로 숙였다. 그리고 짜증을 담아 말했다.

 

 “아무튼 비켜주시죠, 안테아 경. 피곤해요.”

 “깜박한 것, 있지 않습니까?”

 

 내가 뭘? 안테아는 가만히 있었고 덕분에 그녀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그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해냈다.

 

 아, 맞다. 앤이 일일이 정성들여서 필사한 내 소설. 그것을 회수하는 걸 깜박했다. 사릴은 당황했다. 그 때 안테아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안테아의 손에 들린 책을 볼 수 있었다. 와, 정말. 이 남자는 대단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고마운 마음이 일어났다. 사릴은 손을 뻗어 그걸 집으려 했다. 그러니까, 집지는 못했다.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안테아는 그녀의 손이 닿지 않도록 책을 뒤로 빼내었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안 드립니다.”

 

 진짜, 뭐하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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