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그대여. 그대 이름은 대체 뭘까요.”
남자는 커다랗고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연극하듯 말을 뱉고 있었다.
방엔 그와 여성 한 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넓은 방에 놓인 것은 의자, 남자와 여자. 세 개 뿐이었다. 여자는 가녀려 보이는 미인이었지만 지금은 그 가녀림이 싹 날아간, 흉흉한 모습이었다.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로디니 님.”
“농담이 아니야, 미네. 난 정말로 이 작가가 누군지 궁금하다고.”
로디니라 불린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손에 들린 책을 흔들었다. 책은 기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미네는 눈을 찌푸렸다. 그녀의 주인은 지나치게 가볍다. 항상 보고 있었고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유독 거슬렸다.
“그렇게 흔들어대시면......!”
미네는 말을 하다가 흠칫했다. 로디니가 책을 휙 던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책은 미네를 지나쳐 순식간에 방 한 쪽으로 날아갔다. 미네는 당황했지만 허둥대진 않았다. 그녀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책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로디니는 입을 삐죽였다.
“흥, 재미없어.”
“재미를 찾을 입장이 아니지 않을까요?”
참자, 미네. 아무리 어린 애 같고 빈둥대도 마스터다. 저건 네 마스터야. 대마법사 칭호를 받은 일곱 명 중에서도 최연소이자 최강이라는, 존경 받아 마땅한 마스터.
“으음. 우리 미네 양은 글을 볼때 재미보단 야한 걸 추구하시나?”
성희롱이지 이거?
“하긴, 이 작가님이 아주 그냥, 끝내주게 잘 쓰긴 하지. 내가 여태껏 이런 글은 본 적이 없어. 보통 야한 것에 대한 환상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기 마련인데 이 분은 그 두 쪽을 모두 아우르는, 뭐랄까. 신 같은 포용력이라고 할까?”
로디니는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작가는, 정말이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불을 당긴다는 말이야.”
미네는 그 밝은 표정을 구겨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지적이고 냉정해 보이는 외견과 달리, 무척이나 충동적인 성격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그게 미네가 생각하는 장수의 비결이었다.
“저기, 미네 양?”
미네의 손에서 불길이 솟았다. 다른 이가 봤다면 놀라 눈이 튀어나올 모습이었다. 비록 작은 불덩이고 간단한 마법이라고 하더라도 무영창, 즉 주문을 읊지 않고 마법을 쓰는 것이다. 그녀가 흔히 볼 수 있는 마법사는 아니라는 증거였다.
“아하하. 좀 참아......”
로디니의 뒷말은 목구멍으로 사라졌다. 불덩이가 로디니가 앉아 있는 의자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로디니는 여유가 있었다. 그에게 이 정도 마법을 막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은 기본이라고 알려주신 건 누구죠?”
결론적으로 미네의 기지였고 로디니의 실수였다. 로디니는 불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첫째, 불이 로디니의 코앞에서 여러 조각으로 쪼개졌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그녀가 로디니 대신 앉아 있는 의자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삽시간에 불이 의자에 옮겨 붙었다. 로디니는 당황해 얼른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쳇.”
“쳇? 아쉬워? 아니, 아니!”
미네는 혀를 찼다. 마치 로디니가 불에 타길 바랐다는 듯이. 로디니는 급하게 화를 내려다가 의자를 집어 삼키는 불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고작 의자 하나에 무슨 추태십니까.”
“고작 의자라니! 이게 얼마짜리인줄 알아, 미네!”
미네는 싸늘하게 로디니를 노려보았다. 로디니는 어쩐 일인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녀가 화내면 끙끙거리는 강아지마냥 도망치던 그였다.
“후, 후후.”
드디어 미친 겁니까? 미네는 속으로 생각했다.
로디니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안광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미네. 너는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 감히 잠자는 용의 잠자리를 건드렸겠다."
얼핏 듣기에는 심하게 오글거리는 허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네가 정말 안타까운 이유는, 로디니가 저런 말을 담아도 될 만큼 위대한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최연소 대마법사. 그 특유의 유연한 사고로 마법과 문학을 연결해 하나의 사업으로 성장시킨 인물. 작가와 독자를 이어주는 대마도서, 인타넬의 주인. 그게 바로 로디니 엘판이었다.
그리고 미네는 지금 수식어 하나를 덧붙이고 싶었다. 의자 수집가이자 귀찮음의 신봉자.
“경망스러워.”
"그게 마스터한테 할 말이야?"
못할 것은 또 뭔가. 지금 그의 모습은 차라리 어린 아이가 낫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아무든, 큰일입니다. 이대로 가다 보면......"
“알아, 알아. 요새 글 안 올리시지?”
미네의 말을 로디니가 잘랐다.
그들이 말하는 건 한 명의 작가였다. 그, 혹은 그녀는 공공연한 자리에서 결코 읽을 수 없는 은밀한 분야의 글을 잘 뽑아내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사람이 돌연 절필하고 사라진 거였다.
문제는, 이 작가가 로디니의 가장 큰 수익원이라는 점이었다.
"비밀 엄수는 우리 철칙이지. 하지만 생계가 걸려 있으니까."
로디니의 말에 미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스터가 이제 좀 제정신이 돌아왔다는 안도와 함께.
"누군지 한 번 알아볼까?"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뭐,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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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작가, 사릴은 얼이 빠져 있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제발, 그렇게 침착하고 당당하게 말하지 말아줘. 세계가 붕괴되는 것 같아.
안테아는 지금 초월적인 경지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러니까, 부끄러워하는 단계를 벗어나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었다.
아까까지는 분명 당황한 태도였는데. 이제는 반대로 사릴이 말을 더듬었다.
“그, 그건 왜 물어봐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뭐가 당연해.
“좋아하니까요.”
말은 언제나 위험한 것이다. 서로가 말을 아끼는 스타일과 말을 잘 오해하는 성격이라면 더더욱. 안타깝게도 안테아와 사릴은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한 쌍이었다.
"네?"
"좋아한다 말했습니다."
누가, 뭐를? 아니, 누구를?
저 안테아 경이, 나를?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본 순간부터......”
아니 아니, 잠깐.
“처음 본 순간부터, 계속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이런 감정은 처음입니다.”
나도 처음이에요, 안테아 경!
그제야 사릴은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머릿속에 떠돌던 조각들이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