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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워스트셀러 - 외설작가 아가씨
작가 : 미르지기
작품등록일 : 2017.6.20

사릴 카리즈 공작 영애, 제국에 단 두 개 뿐인 위세 높은 공작가의 외동딸.

그런 그녀에겐 남들과 다른 비밀이 하나 있다. 그녀가 작가라는 것이었다.

사릴 카리즈는 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얼굴이 홧홧해질 정도로 달아오르는 문장과 전개. 그게 그녀의 자랑이자 특기였다.

 
2. 이 인간, 장난 아니다.
작성일 : 17-06-20 22:47     조회 : 327     추천 : 2     분량 : 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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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하십니까.”

 “방해.”

 

 사릴은 짐짓 눈을 치켜떴다. 안테아는 기도 안 찬다는 듯 삐딱하게 섰다.

 

 “그러신다고 제가 못 나갈 것 같습니까?”

 “그, 그래도! 설마 날 밀치고 나가진 않겠죠?”

 

 사릴은 필사적으로 문에 달라붙어 있었다. 안테아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사릴의 예상대로, 안테아는 방을 나가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이 방에 갇힌 것입니까?”

 “네!”

 

 그는 밖으로 나가는 대신 노트를 집어 들었다.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이 남자, 보통이 아니다! 사릴은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안테아는 그가 가진 고유의 무표정으로 그녀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제 1장. 접근 금지.”

 

 미친.

 

 “젊은 기사는 한숨을 쉬었다.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의 주인이 그를 부르지 않는 것이. 왜 그러시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뭐, 뭐하세요?”

 “보시다시피.”

 

 안테아는 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사릴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저 표정은 얼핏 무표정 같았지만, 그건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제하는 중이라는 걸. 당장이라도 폭발할 수도 있는 위험한 표정이라는 걸.

 

 “계속 읽겠습니다.”

 “잠깐.”

 

 사릴은 그의 낭독을 멈추었다. 안테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사릴을 바라보았다.

 

 “꼭 그래야만 하나요?”

 “꼭 이러셔야 했습니까?”

 

 아, 드디어 폭발하기 시작했다. 안테아는 그녀에게 노트를 들이밀었다. 그가 펼친 부분은 청년 기사와 그보다 한두 살 위의 젊은 공작이 서로를 원하는 장면이었다. 물론 두 인물은 성별이 같았다. 그러니까, 그녀의 소설은 동성애적 소설이었다.

 

 “계속 읽어드릴까요? 그래야 포기하시겠습니까? 아니 대체 이건, 무슨 생각으로 쓰신 겁니까. 동성애라니요!”

 “죄송합니다.”

 

 동성애는 사실 귀족 사회에서 딱히 꺼리는 일이 아니었다. 화제에 쉽게 오르는 일은 아니고 어느 정도 쉬쉬하는 분위기이긴 해도 대충 알고 있고 용인하는 거였다. 그러나 순수해야 할 공작가 아가씨가 그걸로 글을 쓰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이 이야기가 퍼지면 공작가의 명예 실추는 물론, 아직 정식으로 사교계에 오르지 못한 사릴 본인의 앞길도 막히게 된다.

 

 “그것도 문제지만 여기, 이 묘사! 이건 이 저택 안 누가 읽어도 뻔히 알 만한 인물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그래, 당연히 그렇지. 그 인물은 안테아, 당신을 본따 만든 인물이니까. 사릴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안테아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릴은 조용히 눈물이 흐르는 걸 깨달았다.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감정을 조절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눈물은 양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분함, 수치스러움, 두려움, 미안함, 앞으로의 자신의 삶에 대한 걱정. 이 모든 감정이 섞인 눈물이었다.

 

 “울지 마십시오.”

 “그치만......”

 

 재차 한숨소리가 들렸다. 눈앞이 흐려 잘 보이진 않지만, 안테아가 노트를 내려놓는 것 같았다. 사릴은 계속 훌쩍였다. 그 때, 무언가가 불쑥 다가왔다.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안테아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손수건으로 사릴의 눈물을 닦았다.

 

 “울지 마십시오. 어린 아이가 아니지 않으십니까.”

 

 어쩐 일인지, 그 냉정한 안테아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사릴은 그의 달래는 듯한 어조에 힘입어 서서히 눈물을 멈추었다. 어느 정도 시야가 돌아오자, 안테아는 그녀에게서 조금 멀어졌다.

 

 “말하지 않으실 거죠?”

 

 사릴이 울먹이며 물었다.

 

 “고민하는 중입니다.”

 “서, 설마 이걸로 무슨 협박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안테아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 흥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그였다. 대신 그는 어이없다는 듯 사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릴은 그런 안테아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역시, 너무 위험할 정도로 잘생겼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걸 남에게 보여주신 적은 없으시지요.”

 “없어요.”

 

 안테아는 속지 않았다.

 

 “솔직하게.”

 “있어요.”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 뛰쳐나갈 것 같았다. 사릴의 대답에 안테아는 머리를 쥐었다.

 

 “일단, 좀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사릴은 더 이상 그를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의 무기와 그녀의 무기, 파괴력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그녀는 단지 안테아의 결정에 운명을 걸어야 할 처지였다. 사릴이 문에서 비켜주자, 안테아는 살짝 목례하고는 방을 나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공작님께 말씀드린다면, 그 때는 아가씨께 알린 후에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기를. 안테아는 형식적인 안부를 남기고 사라졌다. 사릴은 몸이 굳은 듯 잠시 멈추었다가, 침대로 몸을 날렸다.

 

 “좋은 밤? 좋은 밤 같은 소리하네! 안테아! 이미 다 망쳐놓고 누굴 놀려, 잠도 제대로 못 잘 거야! 아악!”

 

 그래도, 사릴은 생각했다. 난 이제 며칠 후면 이 곳을 떠난다. 안테아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 학원에 들어가기만 하면 될 것이다. 안테아는 그녀에게 먼저 알린 후에야 아버지에게 보고한다고 했다. 그 말은 그녀가 소식을 받지 못하면 이 일이 아버지의 귀로 들어갈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었다. 사릴은 이 사실에 약간이나마 위안을 받으며 잠이 들었다.

 

 학원에만 들어가면 된다.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다. 이 얼마나 안일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었나. 사릴은 뼈저리게 느껴야했다.

 

 다음 날 아침, 밤늦게까지 걱정하다 겨우 잠이 든 사릴을 깨운 건 안테아의 노크였다. 평소처럼 시녀가 깨우러 온 줄 알았던 사릴은 안테아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허겁지겁 옷을 걸치고 문을 연 사릴은 안테아의 선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가 수행원입니다.”

 “뭐라구요?”

 “아가씨 학원에 제가 수행원으로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신이시여.

 

 --

 

 “안테아 경.”

 

 대체 그 여자, 아니 아가씨는 무슨 생각일까.

 

 “안테아 경!”

 

 어제 밤새 끙끙 앓았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안테아는 눈을 살짝 감았다. 잠이 들락 말락 할 때면 그녀의 소설 속에 나왔던 인물들이 머리를 휘저어 놓았다. 그 중에서도 그, 자신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 같은 인물이 공작에게 사랑의 구애를 하는 장면은 하루 종일 뇌리에 붙어 있었다. 덕분에 지금 안테아는 거의 반죽음 상태였다.

 

 “완전 얼이 빠졌네?”

 

 그 때 안테아는 눈을 떴다. 건틀릿을 낀 손이 그의 어깨를 막 잡으려던 참이었다. 고급스럽거나 의장용이 아닌, 보기만 해도 흉악함이 뚝뚝 떨어지는 건틀릿이었다. 살짝 어깨를 틀어 피한 안테아는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뭐하는 겁니까?”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인데, 기사님.”

 “벤 경.”

 

 벤은 안테아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곰 같은 기사였다. 카리즈 공작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남자, 기사 작위를 받기 전엔 제국 서부 제일이라 소문난 용병. 최연소로 일류에 들어선 조숙한 천재.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앞에 수식어가 붙었다. 안테아가 나타나기 전까지.

 

 안테아는 피곤해 짜증이 난 상태에서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반면 벤은 들이박을 기세였다.

 

 “경? 잘나신 안테아 경께서 미천한 이 몸에게 그런 칭호를 붙여줄 줄이야.”

 

 안테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자와 마주치기만 하면 일어나는 일이었다. 안테아와 벤의 관계는 만나기 전부터 파탄이 나 있었다. 벤은 자존심이 강한 인간이었다. 그런 그의 자부심을 모조리 밟는 업적을 쌓아온 것은 안테아였다. 첫 대면 당시부터 그랬다. 벤의 첫 말이 기억났다.

 

 ‘야 이거 봐라? 완전 여자애처럼 생겼네. 검은 들 줄 아니? 검 대신 찻잔 들면 좋을 것 같은데? 밤에 내 방으로 올래?’

 

 명백한 모욕이었지만 안테아는 그런 말들에 이골이 나 있었다. 그냥 참았을 것이었다. 우연히 공작만 지나가지 않았으면. 그 말을 공작이 듣지 않았다면. 공작은 안테아에게 명예 회복의 기회를 주었고 안테아는 대련에서 벤을 농락해버리면서 그 기대에 부응했다. 그 때부터였다. 카리즈 영지 내 기사들은 노골적으로 안테아를 적대하기 시작했다.

 

 “역시 잘나신 기사께서는 한가롭군.”

 

 벤이 이죽거렸다.

 

 벤 뒤에는 네 명의 기사들이 서 있었다. 하나같이 ‘나는 지금부터 널 비웃고 깔볼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벤이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하는 걸까. 안테아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흘렸다.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리즈 공작가에 들어오기 전부터, 안테아는 하나의 기술을 익혀야 했다. 어쩌면 무예보다 더 갈고 닦아야 하는 일이었다. 바로 면전에서 상대방의 비난을 한 귀로 흘려버리는 기술이었다. 만약 이러지 않았다면, 안테아는 정식 기사가 되기도 전에 폭행과 살인을 일삼는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다.

 

 안테아는 벤이 말을 하든 짖든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으로 사릴의 글을 떠올렸다.

 잠깐 읽었을 뿐이다. 그가 읽은 부분은 소설의 도입부였다. 그런데도 그 수위는 예상치를 아득히 뛰어넘어 안테아가 허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공작은 허리를, 쓰다듬었다. 기사의 등은 고된 훈련으로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그 뭉친 근육과 세월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공작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뭐, 오늘은 이만 하지. 바빠서 말이야.”

 

 벤의 말이 어렴풋이 들렸다. 안테아는 재빨리 현실로 돌아왔다. 벤과 기사들은 마땅치 않은 표정이었다. 안테아가 별 반응을 하지 않아 재미없다는 반응. 의외로 빨리 끝내는군. 안테아는 가볍게 목례하고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들, 공작과 기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날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리고 어떤 시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안테아는 그 이야기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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