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오빠!”
여느 때와 같이 영지에서 땀 흘리며 훈련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다. 에스델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면서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완전 대박! 이것 봐봐.”
에스델이 가져온 것은 어느 무술대회의 홍보지였다.
“천하제일 무술대회? 뭔 이름이 이래?”
천하제일 무술대회는 현실이 아니라 디멘션 월드 내의 무술 대회였다. 판타지 대륙에서 매년 열리는 꽤 이름 있는 대회였는데, 우승하면 많은 상금과 보상 그리고 명성을 가져다주었기에 많은 플레이어들의 관심이 쏠렸다.
“여기~ 여기에 있는 상품을 봐야지.”
“응?”
매년 상품이 달라지는 데 이번 연도에 나온 상품이 천유강의 두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엘릭…서!”
“이거 오빠가 찾던 거 맞지?”
“맞아. 고마워 이거 어디서 찾은 거야?”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찾은 거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천유강은 벌떡 일어나서 그 종이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종이에 쓰인 것은 대회의 예선 날짜와 본선 일정과 참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에스델,”
“응?”
“혹시 작년에 이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어……, 글쎄. 잠시만 있어 봐.”
에스델은 가지고 있던 스마트 폰으로 한참을 검색해서 작년 우승자를 알아냈다.
“여기. 벨프치친이라는 러시아 플레이어야.”
“레벨이 몇이나 되는데?”
“어~ 작년 기준으로 745라고 나와 있어. 근데, 이 사람 랭커야. 그것도 78위나 되는데?”
매달 레벨과 그간의 활약을 바탕으로 300명의 순위를 매긴다. 가상현실의 랭킹이라서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과 달리 디멘션 월드에서는 활동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전투원인 것을 생각하면 현실의 것보다 더 들어가기 힘든 랭킹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호락호락한 대회가 아닌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포인트는 충분하니 엘릭서를 얻으면 바로 각인할 수 있다.
부모님 중의 한 명을 살릴 절호의 찬스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회에서 우승해서 꼭 손에 넣어야 한다.
“일주일 후네.”
고작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라도 레벨을 키우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아직 600 초반의 레벨이라서 3차 승급은 무리다.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 다른 방법이 존재할 거다.
“켈타스!”
급히 켈타스를 부르자 그가 어디에선가 후다닥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앞으로 며칠 동안은 수련에만 온 정신을 쏟을 예정이야. 그러니 성의 병력들은 네가 관리해줬으면 좋겠어.”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인님 없이도 잘 이끌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 본 결과 이른 시일 내에 강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업 레벨을 올리는 거다.
스페셜 직업인 ‘엑셀러레이터’에서 얻은 ‘가속’이라는 스킬은 적과 아군 그리고 건물에도 쓸 수 있는 만능 스킬이다. 이런 스킬을 더 얻으면 플레이어와 싸우는 데 큰 힘이 될 거다.
‘퀘스트가 필요해.’
사냥만 하기보다는 퀘스트 보상까지 얻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다. 이건 신지후의 데이브레이커 길드가 도와줄 수 있다.
그 즉시 지크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퀘스트가 필요하다는 말인가요, 유강 군?」
“네. 어려워도 상관없습니다.”
「잠깐만요.」
수화기 너머로 뒤적거리며 자료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에 다시 지크가 입을 열었다.
「마침 좋은 퀘스트가 있습니다. 내일 모래 시작인데 괜찮나요?」
“네. 좋죠.”
「그래요. 그럼 자세한 내용은 저녁에 전달하겠습니다. 대략 말해주자면`……, 예전 크라켄과 싸웠던 일 생각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죠. 그때 고생을 많이 했었죠.”
「그 후속 퀘스트입니다. 마침 유강 군은 물속에서도 숨을 쉬는 엠블럼이 있으니 길드에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유강 군이 참여하면 저희가 더 고맙죠.」
그렇게 이틀이 지나서 천유강이 데이브레이커 길드에 참여했다. 약속한 장소에는 이미 길드원 30명이 모여 있었다.
“왁!!! 이놈!!”
가장 먼저 반기는 건 항상 신비로운 그녀, 유하연이었다.
“너 이 자식! 왜 요즘 안 보여!”
유하연이 천유강의 목을 잡고 흔들자,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기 시작했다.
“컥!”
체력이 반이 넘게 줄어들고서야 목을 놓았는데 아직도 씩씩거리는 것이 분이 안 풀린 모양이다.
“그동안 뭐 했어?”
“……제 영지에서 있었습니다.”
천유강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겨우 말을 했다.
“영지? 그렇지 너도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였다고 했지.”
“네.”
“그게 중앙 대륙 어디에 박혀 있는 건데? 나도 가고 싶어!”
유하연이 어린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떼를 쓰자 천유강이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정확한 위치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제 성에서 오시면 간편합니다.”
그 말에 유하연이 약간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했다.
“성? 그니까……, 그 현실에서 말이지?”
“네. 원하시면 숙식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천유강의 말에 갑자기 얌전해진 유하연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 나는 사정이 있어서 그곳엔 못 가.”
“그렇습니까?”
천유강은 아직도 그녀가 러시아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한국까지 오기 힘들다는 말을 해도 그러려니 했다.
“혹시 한국에 오시면 꼭 연락해 주세요. 잘 모시겠습니다.”
가끔 엉뚱한 행동으로 해도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따뜻한 유하연이다.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만큼 보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하연은 어정쩡한 표정을 했다.
“어……, 그래.”
그때 지크가 앞으로 나섰다.
“이제 퀘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간략하게 내용을 말씀해 드리면 우리는 마녀에게 홀린 왕자를 구출해야 합니다.”
그 말에 누가 손을 번쩍 물었다.
“이거 동화 인어공주가 모티브인 퀘스트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마녀가 혹시 동화 속의 그 마녀입니까?”
“맞습니다. 원작에서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빼앗았던 그 마녀입니다. 다만 동화와는 조금 다르죠.”
디즈니 버전과는 다르게 원작에서는 마녀가 뭍으로 나와서 왕자를 현혹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어공주도 목소리를 빼앗기지 않았고 이제는 공주가 아니라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동화 속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지우십시오. 괜한 편견을 가졌다가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 싸움에만 집중하세요.”
그 밖의 주의사항을 더 알려주고 조그만 알약을 나누어 주었다. 예전에 먹었던 인어의 약이다. 이것만 있으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
“우리는 바다를 통해서 왕궁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바닷속에는 마녀의 군대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지크가 데려간 곳도 예전에 뛰어들었던 그 절벽이었다.
“오랜만이네. 여기서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싸웠지?”
예전 크라켄과 싸울 때 유하연과 배 씨 남매들이 힘을 합쳐서 크라켄을 물리쳤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그러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요.”
“그동안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볼까? 내기할래?”
“그……, 중요한 퀘스트 같은데 장난치시면 안 돼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응? 내기하지.”
유하연이 팔짱을 끼며 조르자 천유강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이렇게 천진난만한 것을 넘어서 말괄량이 같은 그녀다. 하지만 그 행동이 밉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천유강과 유하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볼륨감이 넘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유하연이 애교를 부리며 천유강에게 달라붙자 모두 부러운 시선을 보내며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천유강이 오기 전부터 눈길을 끌었던 그녀지만, 감히 말 걸 엄두가 안 나는 초 글래머 금발 미녀다. 결정적으로 상대가 뇌호인 것을 안 남성들은 쓸쓸히 고개를 돌렸다.
“좋겠다.”
무심코 흘러나온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모두 출발합니다.”
지크의 신호에 다들 망설이지 않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풍덩!
물속에는 이미 아군 머메이드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메머이드와 동맹을 얻어서 고용할 수 있었던 머메이드다. 그동안 열심히 키워서 주력 병력이 되었다.
“최대한 전투를 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면 미리 말해준 대로 진영을 갖춰 주세요.
육지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진영을 갖춰서 움직이는 것을 강조했는데 천유강과 유하연은 따로 뭉치지 않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라고 전달받았다.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 천유강과 유하연이 적의 진영을 무너트리는 것이 좋다고 지크가 판단한 거다.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적과 마주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옥토데블》
(LV 600)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커다란 문어 몬스터였다. 흐느적거리는 다리에는 커다란 빨판이 달려 있었는데 저기에 휩싸이면 빠져나가기 힘들어 보였다.
“모두! 전투 준비!”
물 안이기 때문에 원거리 공격은 위력이 반감한다. 인원 대부분이 근접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래서 진영이 더 중요했다.
“돌격!”
아군 플레이어들과 머메이드가 힘을 합쳐 문어 괴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천유강과 유하연은 그들을 지나쳐 뒤에서 먹물을 쏴대는 몬스터에게 다가갔다.
“누가 많이 잡나, 내기다.”
“무슨 내기요?”
“진 사람이 이긴 사람한테 뽀뽀하기.”
“어……, 그건 좀.”
천유강이 난감한 표정을 했지만 유하연은 듣지 못한 것처럼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럼 내기한 거야.”
유하연이 성창이 휘둘러지자 한 번에 문어들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나 참~ 할 수 없군.”
뽀뽀하느냐 뽀뽀 당하느냐의 내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