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MC 유자식의 말에 수혁이는 붉은 입술에 미소를 걸고 카메라를 쳐다봤다.
달빛에 반짝이는 밤 바다 같은 눈.
바다를 만나 부서지는 햇살 같은 미소.
같이 할 수 없는 어둠와 빛은 진주처럼 깨끗한 피부를 만나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두근거림을 선물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TV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무대에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술사 윤수혁.
시청자라는 단어보다 관객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수혁이는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마술을 하는 마술사였다. 마술을 좋아하는 매니아 층에게는 실력 있는 마술사로 유명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모델 같은 마술사, 연예인보다 더 잘생긴 마술사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돌아 다니는 수 많은 사진과 기사가 더 익숙한 그였다.
그런 수혁이가 처음으로 출현한 방송은 게스트 한 명과 MC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생방송 토크쇼였다.
할 줄 아는 건 마술 밖에 없다고 여기는 수혁이는 게스트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걸 몇 번이나 거부했지만 친구라는 틀에 죽일 놈이라는 아명을 붙인 호태가 자기 프로그램 좀 살려달라는 애원에 딱 한번이라는 확답을 받고는 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궁금하게 있는데요. 모든 싸인에는 11시11분 이렇게 적혀 있던데요. 시청자 분들도 이게 제일 궁금했는지 생방송 내내 문자로 물어보시고 계세요. 그렇게 쓰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유자식의 질문에 미소만 보이던 수혁이의 얼굴에는 잠시 슬픔이 스쳤지만 관객과 마주하는 직업은 둔 빠른 표정관리로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이유가 없진 않겠죠? 하지만 비밀로 하겠습니다. 마술사는 비밀이 많아야 매력적이니까요"
"1시간 넘게 저를 오징어로 만들어 놓고 더 매력적이길 바라시는 거예요? 하하하"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뜻에 수정이 필요한 듯 몇 번이고 마지막이라는 말이 반복되어서야 기나긴 생방송 끝났고 수혁이도 뜨겁게 내리 쬐던 조명이 서서히 빛을 잃어 가자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며 대기실 향했다
평소 하는 마술공연 시간보다 짧았지만 관객과 같이 호흡하며 즐기던 공연과 달라서 피곤한 수혁이는 문을 연 순간 부터 대기실 가득 울리는 스마트폰 진동 소리도 무시하고 소파에 기대 앉아 눈을 감고는 또 하나의 조각상을 만들고 있었다.
도착할 때 부터 울리던 폰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고 빠르게 자신을 봐달라고 외쳤지만 수혁이는 클래식을 듣는 듯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지이잉~ 지이잉'
여태 테이블을 두드리며 울리던 소리와 다른 묵직한 진동이 블랙슈트 안 쪽 주머니에서 느껴지자 방금 전 까지 피곤해 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빠른 속도로 주머니에서 폴더 폰을 꺼냈다.
[아직도 이번호를 쓰진 않겠지만 오늘 멋있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너무 멋졌어]
짧은 문장을 읽으며 통화 버튼을 눌렸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냉정했다,
'이번호는 없는 번호이거나...'
몇 번을 더 확인했지만 원치 않는 낯선 여자의 음성에 전화대신 회신을 눌러 정성이라도 넣으면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한자 한자 천천히 쓰고는 전송을 눌렀다.
[아영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