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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질풍마검사
작가 : 인기영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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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목전에 두고 체인지 소울을 발동시킨 팔라칸.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 그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
질풍 마검사 이안으로 거듭났다.
하얀 매를 등지고 싸우는 그의 무위가 눈부시게 펼쳐진다.

 
제 26 화
작성일 : 16-07-21 13:16     조회 : 657     추천 : 0     분량 : 6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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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대번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며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루페이…….”

 그러자 루페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검에는 내무 대신의 피가 묻어 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지?”

 “왜일 것 같습니까?”

 “그날… 내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었나.”

 “물론 받아들였습니다.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지요. 왕자님은 진정으로 후회하고 계시는구나. 정말 스스로의 과오를 반성하고 계시는구나.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면 전 이 억울함을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합니까? 왕자님께서 잘못을 뉘우쳤다는 것은 좋습니다. 그래서 왕자님이 안고 있던 죄의 무게가 가벼워졌다고 한다면! 내 증오의 무게는 대체 어디에다 풀어야 한다는 겁니까?”

 “루페이… 너…….”

 “만찬회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다고 말씀드렸지요? 결론은… 왕자님을 다시 악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페리아스를 돌아보았다. 그는 내 시선을 받더니 웃으며 폴리모프를 해제했다.

 으득!

 이가 갈렸다.

 나는 천천히 검을 들어 루페이를 겨눴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대화 따윈 필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 실력으로 페리아스와 루페이를 동시에 상대하긴 힘들었다.

 근위대를 불러야 했다.

 쾅!

 나는 힘껏 발을 굴렀다.

 그 소리로 인해 근위대가 당장 달려올 것이다. 그러자 위급함을 느꼈는지 루페이가 나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너무나 허술한 공격이었다.

 허초였다.

 루페이는 위협만 가하고 옆으로 물러났다.

 순간, 내 눈에 바닥에 흥건한 내무 대신의 피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그것은 갑자기 내게로 덮쳐들었다.

 철썩!

 내무 대신의 피가 내 옷이며 얼굴, 검을 물들였다.

 루페이는 그새 페리아스의 곁으로 도망가 있었다.

 페리아스는 한 손을 들어 날 가리키고 있었다.

 그가 마법으로 피를 들어올린 것이다.

 “다시 악인이 되어주세요. 나를 위해서.”

 루페이가 말하자 페리아스가 품에서 마법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그러자 둘의 몸이 빛에 휩싸였고, 다음 순간 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텔레포트 마법 스크롤이었다.

 그때 마침 서재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콰앙!

 “무슨 일이십니까!”

 근위대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피에 젖은 내 모습을 보고 놀라서 검을 꺼내들었다가 자세히 날 살피기 시작했다.

 5명의 근위대 기사 중 1명이 날 보며 말했다.

 “왕자님……?”

 그러자 다른 기사가 내게 말했다.

 “내무 대신의 서재에 볼일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한데, 무슨 일이…….”

 말을 하던 기사의 눈이 책상에 엎어져 죽어 있는 내무 대신에게 향했다.

 그리고 급하게 날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기사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입을 달싹였다.

 완전히 당해버렸다. 무슨 말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페리아스와 루페이가 들어왔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히 텔레포트 스크롤로 침입했을 테니까.

 결국 낮에 페리아스가 날 찾아왔던 건…

 내 얼굴을 익히기 위함이었다.

 폴리모프를 하려면 상대방의 얼굴을 알아야 했으니까.

 그들의 계획은 완벽했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근위대의 날카로운 시선을 온몸에 받고 있었다.

 페리아스는 과거에 내게서 얻어갔던 텔레포트 스크롤로 날 진창에 몰아넣었다.

 

 ***

 재판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당장 폐위시켜야 합니다!”

 왕실 법정에 참석한 대부분의 관료 대신과 귀족들은 같은 소리를 냈다.

 물론 이안을 옹호하는 이들도 몇몇은 있었다.

 “하나, 왕자님께서 이 년간 쌓아올린 공적을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왕자님은 이 년 동안 수많은 일을 해내셨고, 스스로 변했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사건은 무엇입니까! 왕자님께서는 평소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내무 대신을 직접 베어 죽이셨습니다. 목격자도, 증거도 모든 것이 완벽히 갖춰져 있는 상황입니다! 왕자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변하지 않고서 어찌 지난 이 년의 행보를 보이실 수 있단 말이오!”

 “그 이 년이 오늘의 사건과 지금까지 왕자님께서 보이신 모든 만행을 덮어줄 수는 없습니다! 선을 행했다면 상을 주는 것이 마땅하나, 악을 행했다면 벌을 내려야 하는 게 도리입니다! 하지만 왕자님께서는 지금껏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갔습니다. 더 이상은… 저희들로서도 방관만 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언제고 다시 관료 대신 중 누군가가 왕자님의 검에 죽어나가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왕자님께 이해를 베푼다면 모든 관료 대신들은 더 이상 궁에 남아 있지 못할 것입니다.”

 관료 대신 및 귀족들의 시끄럽게 떠드는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은 왕실 법정의 위원인 바이엘 레나르도였다.

 그는 손으로 테이블을 탕탕 두들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성한 법정입니다. 소란은 그 정도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왕실 법정의 위원들은 평소와 달리 재판이 시작되면 절대의 권력을 부여받는다.

 왕실 법정은 왕의 핏줄이나 국왕의 죗값을 판단할 때, 나라와 국민들 대신 그 중책을 이행해야 하는 사람들로 형성된 집단이다.

 하지만 그것은 백성을 안심시키기 위한 명목상의 일일 뿐, 국왕을 상대로 왕실 법정이 일어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왕의 핏줄들을 벌해야 할 때 왕실 법정은 항상 그 위력을 발휘했다.

 사실 왕실 법정은 어좌를 노리는 왕자들이 상대방을 음해할 때 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오로지 이안이 스스로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질러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바이엘은 왕실 법정의 최고 권위자인 대법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일곱 명의 왕실 법정 위원들은 심사숙고 끝에 이안 하르넬 지크프리트 왕자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였습니다.”

 이안은 두 손을 포박당한 채 법정 한가운데 놓여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바이엘의 손에 들린 판결문으로 향했다.

 참관인석 중에서도 가장 상석에는 아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아야 할 지크프리트 국왕과 엘리자베스 왕비가 앉아 있었다.

 바이엘은 대법원장에게 판결문을 넘겨주었다.

 만약 판결문을 읽은 대법원장이 적당치 않다 여기면 그대로 무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재판을 이어가게 된다.

 반대로 합당하다 여기면 인장을 찍는다.

 그것으로 재판은 끝이다.

 판결문의 결과는…

 꽈앙!

 세차게 인장이 찍혔다.

 대법원장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왕실 법정은 이안 하르넬 지크프리트 왕자가 지금껏 자행해온 수많은 악행 및 왕실 법도에 어긋나는 행실은 물론, 이치와 도리에 맞지 않는 작태에 더불어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이념을 무시한 왕가의 핏줄답지 못한 행태에 폐위를 결정한다. 또한 죄 없는 내무 대신 칼롭스 헥터를 평소의 악감정으로 살해한 것에 기해 삼 년간 유배를 내린다. 이상!”

 여기저기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자베스 왕비는 기절할 지경이 돼서 품위를 잃은 채 소리 내어 울었다.

 지크프리트 국왕은 착잡한 눈으로 그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정작 이 상황 속에서 가장 침착한 것은 이안이었다.

 확실히 힘들고 어려운 난관이다.

 폐위가 확정된 이상, 그 결과가 번복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일방통행은 없다.

 팔라칸의 시절, 이안은 더욱 힘든 길을 헤쳐 왔다.

 그리고 대마검사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안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재판이 마무리되자 참관인들과 위원들이 하나 둘 일어나 자리를 파하고 있었다.

 그때, 무겁게 침묵을 지키던 국왕이 대법원장에게 물었다.

 “유배지가 어딘지는 결정을 내렸는가?”

 “그것은 추후 상의를 거쳐 결정할 사항입니다.”

 “지금 정하게.”

 “그렇게 제 멋대로는…….”

 “아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다 만족할 만한 유배지로 정해주겠네. 그리어드 섬으로 유배를 보내게!”

 순간, 자리를 떠나려던 모든 이들이 커진 눈으로 국왕을 바라보았다.

 그리어드 섬은 다크니안의 남쪽 해변가에 존재하는 키메라들의 섬이었다.

 이미 이러한 사실은 이 나라의 귀족과 왕실의 대소사를 담당하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그리어드 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이안이었다.

 미치광이 마법사 베르함이 키메라 연구를 거듭했던 섬.

 국왕은 자신의 아들을 그곳으로 보내라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완전히 자신의 핏줄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법원장은 7명의 위원과 참관해 있는 관료 대신 및 귀족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손을 포박하고 있던 밧줄은 힘없이 끊어져 버렸다.

 모든 이가 놀란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은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대법원장에게 말했다.

 “내가 지은 죗값이고,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형벌이라면 결정하기 쉽게 만들어드리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 절대, 절대 도망가지 않는단 말이다!”

 그리 외치는 이안은 웃고 있었다.

 지크프리트 국왕은 자신의 아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왜 국왕이 자신을 그리어드 섬으로 보내라 했는지 이안은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

 대법원장은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마음을 정한 듯 입을 열었다.

 “그리어드 섬으로 이안 하르넬 지크프리트 왕자를 삼 년간 유배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땅땅땅!

 재판이 끝났다.

 

 ***

 

 유배지로 인도되어지는 마차 안에서 나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이안, 너는 모르겠지만 이미 이 나라는 속에서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힘을 가진 귀족들이 호시탐탐 어좌를 노리고 있으며, 나를 종이호랑이로 전락시키려 갖은 술수를 부리고 있단다. 이 아비는 그동안 나라의 안팎으로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와중에 얻게 된 보물이 바로 너다. 왕실 법정의 위원들 역시 귀족들의 입김이 닿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필시 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수 있는 곳으로 유배시키려 할 것이 분명해. 차라리 그럴 바에는 어느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곳으로 가거라.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조금이라도 살 수 있는 방편을 택해야 한다.’

 

 그 말에 나는 귀족들의 어떤 농락에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존중한 것뿐이라고 대답했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셨다.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을 보거라. 마음만 먹으면 왕자도 폐위시키는 인간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유배되었다간 죽음을 면할 수 없다. 나는… 조금이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널 보내려는 게다. 키메라들의 섬이라고는 하나, 네겐 마법과 검이 있잖느냐. 더불어 팔라칸의 유물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도 너뿐이다. 마법 스크롤을 모두 챙겨 가거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아니, 살아남을 수 있다. 넌… 내 아들이잖느냐.’

 

 마지막 말을 전하는 아버지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하지만 끝내 눈물을 흘리진 않으셨다.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던 강인한 아버지셨다.

 덜컹! 덜컹!

 마차가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유배지로 가는 동안 글루번과 제인트가 나와 동행하기로 했다. 그들은 혹시라도 마차 안에서 불의의 습격을 당할 것이 염려되어 극구 따라나서기를 자청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다크니안의 남쪽 해안에 도착할 때까지 누군가의 습격을 받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동행도 거기까지였다.

 이제부터는 나 홀로 섬에 도달해야 한다.

 글루번과 제인트의 충혈된 눈을 바라보며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그 후, 작은 배의 노를 저어 그리어드 섬을 향해 나아갔다.

 3년.

 그 전에는 다시 클라드 왕국의 땅을 밟을 수는 없다.

 여기저기에서 나를 음해하려는 무리의 시퍼런 칼날이 번뜩이고 있을 테니.

 그러나 그리어드 섬에서 호락호락 죽어줄 생각도 없었다.

 절망을 기회로 삼을 것이다. 귀족들은 썩어빠졌지만, 성스러운 하얀 매는 아직도 배고프다.

 저 멀리 그리어드 섬이 보였다.

 내 손은 계속해서 노를 저었다.

 문득 나와 작별하던 리네와 프리실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리네는 계속 펑펑 울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소리쳤고, 프리실라는 아무 말없이 미간만 찌푸렸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서야 ‘쉽게 죽어버리면 매력 없는 남자’라며 그녀다운 작별 인사를 건넸다.

 시종장 그렌드와 유모 마들렌 역시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어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울다가 끝내 혼절하셨다.

 과거의 상념에 젖어 있는 사이, 배는 그리어드 섬의 해변가에 닿았다. 내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해변가를 어슬렁대던 2마리의 키메라가 날 노려보았다.

 나는 짐 보따리를 배에서 내려 바닥에 놓고 검을 뽑아들었다.

 “와라! 와라! 와라! 끝까지 살아남아 주마!”

 키메라는 역겨운 울음소리와 함께 달려들었고, 내 검은 하늘을 갈랐다.

 그것이… 대마검사 이안으로서의 첫 번째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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