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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질풍마검사
작가 : 인기영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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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목전에 두고 체인지 소울을 발동시킨 팔라칸.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 그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
질풍 마검사 이안으로 거듭났다.
하얀 매를 등지고 싸우는 그의 무위가 눈부시게 펼쳐진다.

 
제 25 화
작성일 : 16-07-21 13:15     조회 : 639     추천 : 0     분량 : 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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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나는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팔라칸으로 지내던 시절, 클라드 왕국에서 제법 유명한 마법사 몇몇의 얼굴은 익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서른일곱의 나이로 6서클을 달성한 마법사 페리아스 블렌드였다.

 이후로 20년 가까이 흘렀으니 지금 그의 나이는 쉰일곱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7서클의 벽은 허물지 못했을 것이 뻔했다.

 페리아스 역시 심장 부근에 마나를 모은 터라 그 이상을 바라보기란 힘든 마법사였다.

 이안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후로 그와 첫 대면을 하게 된 것이다.

 한데, 그가 왜 날 찾아온 것일까?

 “안녕하십니까, 왕자님. 저는 한평생을 마법에 바친 보잘것없는 마법사 페리아스 블렌드라고 합니다.”

 나는 그를 처음 보는 척 연기하며 말했다.

 “반갑네. 내가 누군지 알고 왔으니 굳이 통성명은 필요 없을 테지. 한데, 보잘것없다는 수식어는 좀 어울리지 않는군. 육 서클의 마법사가 흔한 것도 아닌지라 소문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데 말이야.”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겸양을 내비치는 페리아스를 보며 그렌드는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에 내 방에는 둘만 남게 되었고, 난 그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날 보자고 했는가?”

 “아,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왕자님께서 검술은 물론 마법에도 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혹여 제가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없을까 해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뭔가 석연찮은데.

 “그런가? 뭔가 다른 연유가 있을 듯한데.”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페리아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헛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자,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묻지. 왜 날 찾아왔는가?”

 페리아스는 잠시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감춰놨던 의중을 드러냈다.

 “왕자님께서는 특별히 지도해주는 마법사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이네.”

 “한데도 이미 삼 서클의 경지에 올랐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사실이지.”

 “마법이라는 것은 참으로 복잡한 학문이라 독학으로 그 정도의 경지까지 오르기란 매우 힘이 듭니다.”

 “나 역시 마법의 오묘함에 대해선 몸소 느꼈네.”

 “해서 묻고 싶습니다. 왕자님께선 어찌 마법을 공부하신 겁니까?”

 본론은 그거였군.

 “그게 그리도 궁금한가?”

 “이미 태양의 탑에서는 왕자님에 대한 얘기가 대단한 화젯거리입니다.”

 태양의 탑이라 하면 마법사들이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곳이다.

 나 역시 처음 마법을 배울 땐 태양의 탑에서 지냈었다.

 그곳에는 현재 50여 명가량의 마법사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결국 페리아스는 태양의 탑에 살고 있는 모든 마법사들을 대표해서 날 찾아온 것이다.

 내가 대체 어떻게 마법을 익혔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페리아스는 내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얘기했다.

 “왕자님께서는 대마검사 팔라칸의 유물이 어디 감춰져 있는지 알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이제야 확실히 알겠군.

 태양의 탑에 기거하는 마법사들은 결국 대마검사 팔라칸의 유물을 탐내는 것이다.

 이미 내가 팔라칸으로 살던 시절 남겨 뒀던 유물들을 커다란 사건에서 몇 번씩 사용했기에 소문은 널리 퍼졌을 게 분명했다.

 당연히 태양의 탑에도 이 소문은 들어갔을 것이다.

 마법에 대한 욕심이 끝도 없는 그들이 가만히 있는다는 건 말도 안 될 얘기였다.

 나는 페리아스를 보며 넌지시 물었다.

 “말인즉… 팔라칸의 유물을 공유했으면 한다는 건가?”

 페리아스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그것은… 우리 마법사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선사할 것이며, 곧 클라드 왕국의 국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조금 우습게 들리는 소리였다.

 나는 마법사들을 잘 안다. 내가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절대로 발 벗고 나서는 일이 없었다.

 간혹 무궁무진한 애국심을 간직한 마법사 몇몇은 나라에 충성하겠다며 궁전 마법사로 머무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오로지 개인주의에 파묻혀 지낼 뿐이었다.

 마법사라고 하면 모든 국가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존재였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 나라를 빼앗겨도 마법사들은 귀화를 하면 보석까지 쥐여 주며 받아들이는 판국이다.

 나는 페리아스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어째 신용이 가진 않는군.”

 “…그렇습니까?”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하지.”

 자, 어떻게 나올 거냐?

 나는 페리아스가 더더욱 매달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알겠습니다. 왕자님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요.”

 응? 저 인간이 왜 이렇게 쉽게 떠나지?

 의아해하는 날 보며 자리에서 일어난 페리아스는 갑자기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아, 한데 왕자님께서는 내무 대신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들리더군요. 이 년 전 두 명의 여인에게 독단적으로 작위를 내리셨다고 하던데, 그게 화근이었나 보군요.”

 내무 대신인 칼롭스 헥터 백작과는 요즘에도 회의실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부딪치곤 한다.

 그와 내가 웃는 낯으로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별로 부정할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대답해야 할 의무도 없었다.

 나는 가만히 페리아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페리아스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열고 고개를 조아린 뒤 모습을 감췄다.

 뭘 꾸미고 있는 걸까?

 끈덕지게 달라붙어 어떻게든 팔라칸의 유물을 얻어낼 것이란 예상과 달리 페리아스는 너무 일찍 물러났다.

 페리아스는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어내는 인간이었다.

 아부를 떨든, 아첨을 하든, 계략을 쓰든 간에 말이다.

 그런 간교한 성격 덕에 내가 팔라칸으로 지내던 시절에도 텔레포트 스크롤을 5장이나 녀석에게 넘겨줬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탐내며 한 달 내내 날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했고, 결국 내가 못 이기는 척 넘겨줘 버린 것이다.

 그만큼 팔라칸의 시절 내가 알던 페리아스는 욕심이 강한 자였다.

 마법에 대한 욕심도 그렇지만,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은 특히 엄청났다.

 물론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만큼 그가 변했을 수도 있다.

 하나, 오늘 본 그의 눈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눈빛이었다.

 뭔가… 다른 게 있었다.

 내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누구지?”

 “그렌드입니다.”

 “아, 어서 들어오게.”

 무슨 일인지 그렌드가 내 방을 다시 찾아왔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페리아스와 어떤 얘기를 나누셨습니까?”

 “뭐… 그다지. 근데 안색이 왜 그래?”

 그렌드의 얼굴은 대단히 경직되어 있었다.

 그는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자님, 마네비올라 가문이 언제부터 세를 넓혀 갔는지 알고 계십니까?”

 “글쎄.”

 안이한 내 대답에 그렌드는 한숨을 쉬었다.

 “왕자님은 그간 귀족들의 정세에 너무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여겨보셔야 합니다.”

 그렌드는 내게 뭔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주려 하고 있었다.

 “말해봐, 그렌드. 내 무지를 자네가 일깨워줬으면 해.”

 “마네비올라 가문이 세를 넓히기 시작한 것은 바로 페리아스가 마네비올라 가문에 귀속되면서부터였습니다. 벌써 십 년 전의 일이지요.”

 “페리아스가… 마네비올라 가문에 귀속되었다고?”

 “그렇습니다. 그는 더 이상 태양의 탑에 머무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원체부터 야망이 컸던 페리아스는 마네비올라 공작 가문을 이용해 자신의 힘을 불리려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봐.”

 “본래 마네비올라 공작 가문은 여타의 공작 가문들보다 현저히 세가 달렸습니다. 하지만 페리아스가 들어오고 나서 주변 귀족들의 부정 비리를 폭로해 몰락시키며 세를 불렸습니다. 한데, 이상한 것은… 마네비올라 가문에서 짓밟은 귀족들은 여태껏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럼… 청렴결백한 줄로만 알았던 그 귀족들이 실은 뒤로 여러 가지 부정을 저질렀었단 말이야? 페리아스가 마네비올라 공작 가문에 들어와 힘을 얻어 그 부정을 밝혀 낸 거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없던 부정 비리를 페리아스가 조작한 게 아닐까 합니다.”

 “섣부른 추론 아닌가?”

 “마네비올라 공작 가문에게 짓밟힌 귀족 가문들은 부정이 발각되기 전 항상 페리아스가 방문했다 합니다. 그는 육 서클의 마법사입니다. 마법의 힘을 이용하면 여러 가지 부정들을 조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요.”

 말인즉… 페리아스가 날 찾아왔으니, 나 역시도 조심히 처신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렌드.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겠어.”

 “부디 신중하시고,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렌드는 천천히 문밖으로 나갔다.

 확실히 페리아스의 행태는 어색했다.

 팔라칸의 유물을 얻으러 왔다는 자가 너무나 쉽게 물러났다.

 분명히 다른 목적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당분간 더욱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게 되었다.

 

 ***

 

 서늘한 새벽녘.

 갑자기 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강대한 마나에 번뜩 눈을 떴다.

 달빛이 아스라이 비추는 방 안을 둘러보던 내 시야에 검은 인영 하나가 들어왔다.

 “누구냐.”

 나는 침대 옆에 세워둔 검을 집어 들며 물었다.

 그러자 검은 인영은 달빛이 비추는 곳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

 놀랍게도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바로 나였다.

 난 또 다른 나에게서 마나를 감지했다.

 내 수준으로 도저히 감지가 안 되는 마나. 혹시…

 “페리아스, 무슨 장난질이지?”

 “후훗! 눈치가 빠르시군요. 하녀와 근위대들은 모르던데.”

 역시나 페리아스였다.

 그는 5서클의 마법인 폴리모프(Polymorph)를 시전한 것이다.

 폴리모프는 변하고 싶은 대상의 모습으로 외모를 변형시켜 주는 마법이었다.

 지금 시간이면 야간 근무를 서는 근위대와 그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돌아다니는 하녀 몇이 있을 것이다.

 페리아스는 내 모습으로 성을 돌아다녔다는 얘기다.

 무엇 때문에?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냐.”

 “이제부터 알게 될 것입니다.”

 말을 하며 페리아스는 품에서 마법 스크롤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에 난 얼른 검을 뽑아 녀석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페리아스는 여유 있게 마법 스크롤을 풀더니 내 검에 가져다 댔다.

 슈각!

 내 검은 마법 스크롤을 두 동강 냈다. 그러자 뭔지 모를 마법이 시전되기 시작했다.

 스크롤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의 기운이 나와 페리아스의 몸을 휘감았다.

 온몸에서 웅웅대는 마나들을 느끼던 나는 그것이 무슨 마법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텔레포트였다.

 화악! 하고 한순간 시야가 온통 빛으로 물들었다가 사라졌다.

 나는 눈을 비비며 사위를 둘러봤다. 텔레포트 마법으로 인해 내가 옮겨진 곳은 내무 대신의 서재였다.

 페리아스는 내 옆에 멀찍이 서서 웃는 낯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나는 불길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빌어먹을!”

 내 시야가 닿는 곳에는 책상 위에 앉아 피를 흘리며 엎어진 내무 대신이 있었다. 그는 뒷목에서 척추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검상을 입고 있었다.

 내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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