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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질풍마검사
작가 : 인기영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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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목전에 두고 체인지 소울을 발동시킨 팔라칸.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 그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
질풍 마검사 이안으로 거듭났다.
하얀 매를 등지고 싸우는 그의 무위가 눈부시게 펼쳐진다.

 
제 8 화
작성일 : 16-07-21 11:44     조회 : 711     추천 : 0     분량 : 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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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내가 몰래 훔쳐 먹었던 폐하의 술을 자네가 먹었다고 덮어씌웠었지. 정말 미안했었어.”

 그때의 일은 이안과 제인트, 그리고 지크프리트 국왕 셋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그제야 제인트는 이안이 가짜가 아님을 믿게 되었다.

 “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왕자님께서 어떻게 이런 실력을 가지고 계시는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법이야.”

 이안의 말을 들은 제인트는 대단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생각해보니 그는 항상 겉으로 드러나는 이안의 모습만을 봐왔고, 그것으로 모든 걸 평가했다.

 단 한 번도 왕자라는 사람의 내면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불충한 기사란 말인가?

 주군의 모든 것을 알고 지켜 줄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기사라 할 수 있는 법이다.

 한데… 이 얼마나 하찮고 막돼먹은 기사도란 말인가.

 제인트는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스스로의 아둔한 기사도에 커다란 실망이 밀려왔다.

 그의 손에서 힘없이 검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는 이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죽여주십시오.”

 “왜 내가 너를 죽여야 하지? 네가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나?”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저는 왕자님께서 폐하의 자리를 잇지 않길 바랐습니다. 나라의 어두운 미래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자님의 말대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왕자님께서는 무언가 뜻이 있어 스스로를 감추고 계셨음을 몰랐습니다. 하나, 우둔한 저는 그런 왕자님께 검을 겨누었습니다. 이미 백번 죽어 마땅한 몸입니다. 바라건대, 저를 죽여주십시오. 하나, 마지막 청이 있습니다.”

 이안은 제인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청이 뭐지?”

 “부디 아반과 브람스는 살려 주십시오. 그들은 제 주도하에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때 비로소 정신이 든 아반과 브람스가 같이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저희들 역시 자의로 행한 만행이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죽여주십시오, 왕자님!”

 이안은 아무 말없이 무릎을 꿇은 세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을 회수한 뒤 등을 돌렸다.

 그에 의아함으로 가득 찬 제인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자님……?”

 “제인트 막스, 앞으로 너에게 내 등을 맡기겠다.”

 “왕자님!”

 “등을 맡기겠다는 것은 언제든지 날 벨 수 있다는 얘기다. 나라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까지 버리려는 네 충성심, 잘 알겠다.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생각되면 여지없이 날 베어라.”

 “왕자님, 그럴 수는…….”

 “명령이다! 이후로 어떤 말도 듣지 않겠다. 너희들은 그저 내 명에 따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이미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없다. 이후로 누구도 없었던 일을 언급하는 실수는 하지 않길 바란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왕자님.”

 제인트의 목소리에 짙은 물기가 묻어났다.

 아반과 브람스도 흐느끼고 있었다.

 이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묵묵히 말에 올랐다.

 그러자 3명의 기사도 눈물을 흘리며 말에 올랐다.

 “지름길이라더니 시간이 더 걸리는군. 다음부터는 더 확실히 알아보고 길을 안내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제인트는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이안의 앞에서 조용히 말을 몰았다.

 

 ***

 

 긴장되는 순간이군.

 나는 그렌드의 저택 앞에 당도해 있었다.

 똑똑!

 문을 두들기자 안에서 반가운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제인트가 먼저 나섰다.

 “왕자님께서 시종장님을 뵙기 위해 친히 나셨습니다. 어서 나와 예를 올리십시오.”

 제인트의 목소리엔 나를 향한 충성심이 가득 실려 있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곧 문이 열리며 그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조금 못마땅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소인이 왕자님을 뵙습니다.”

 “그렌드, 그만 일어나.”

 나는 최대한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에 그렌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잘 말려 올라간 콧수염은 언제 봐도 반가웠다.

 하지만 그렌드는 영 반가운 눈치가 아니었다.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셨나이까?”

 그가 조금 가시 돋친 억양으로 묻자 제인트의 눈꼬리가 대번에 치켜 올라갔다.

 나는 그런 제인트를 진정시킨 뒤 그렌드에게 말했다.

 “휴가가 끝났으니 왕궁으로 다시 복귀하라는 폐하의 말을 전하러 왔어.”

 “폐하께서 말입니까?”

 “그래.”

 필경 그렌드는 내가 다시 복귀하라고 해봤자 극구 거절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거짓말을 한 것이다.

 예상대로 잠시 고민하던 그렌드는 내게 안으로 들어오길 권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서 기다릴 테니 어서 떠날 채비를 하고 나오도록 해.”

 “…그럼.”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 그렌드는 10여 분 정도가 흐르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등에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있었다.

 “자, 그럼 가볼까? 제인트.”

 “네, 왕자님.”

 “그렌드와 함께 말을 타고 오도록.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모셔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믿음직스럽게 대답한 제인트는 그렌드를 가뿐히 말에 올렸다.

 그리고 그 앞에 자신이 타고서 천천히 말을 몰아갔다.

 나와 2명의 호위 기사는 그런 제인트의 뒤를 따라 말을 몰았다.

 그렌드는 내게 과분한 충성심을 보이는 3명의 기사를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았다.

 

 ***

 

 왕궁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는 그렌드를 눈물로 맞이했다.

 “이 사람! 이 사람아! 아무리 그렇다고 인사 한번 없이 무정하게 떠나나?”

 “죄송합니다, 폐하.”

 아버지는 그렌드를 품에 꽉 안았다.

 그렌드도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됐네, 됐어! 돌아왔으니 그걸로 다 됐네.”

 “폐하의 부름이 아니었다면 다시는 왕궁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응? 자네 지금…….”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버지에게 난 얼른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얼른 눈치 채고는 황급히 말을 바꿨다.

 “아아, 그래. 내 자네가 그리워서 부르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네. 이제부터 다시 본분에 충실하면 되는 거야. 알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그렌드는 급기야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는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것으로 내가 지은 죗값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

 

 ***

 

 똑똑.

 상쾌한 아침.

 노크 소리와 함께 유모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자님, 기침하실 시간입니다.”

 “이미 일어나 있으니 들어와도 돼.”

 말이 끝나자 약간의 여유를 두고 조심스레 유모가 들어섰다. 난 그런 유모를 보며 활짝 미소 지어주었다.

 “잘 잤어, 마들렌?”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나 기뻐서 잠도 아주 잘 온답니다.”

 시종장 그렌드가 왕궁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은 유모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렌드를 데려온 것이 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왕궁이라는 곳이 참 좁아서 어떤 사건 하나만 터지면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곤 했다.

 그 덕에 유모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유모와 시종장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지만, 사실 누구보다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는 사이다.

 유모가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난 감격스러움에 눈가를 훔치는 유모를 보며 말했다.

 “마들렌, 잠깐 이리 와보겠어?”

 내가 손짓하자 유모는 푸근한 미소로 화답하며 걸어왔다.

 여전히 쩔뚝거리는 다리는 내 마음을 너무나도 아프게 만들었다.

 “의자에 앉아봐.”

 “네.”

 내 말이라면 무엇이든 의심 없이 들어주는 유모였다.

 그래서 과거의 이안에게 짓궂은 장난을 당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데도 유모는 끝까지 내 부탁이라면 의심 없이 들어주곤 했다.

 유모가 의자에 앉자 난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에 유모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내가 만류했다.

 “그대로 있어.”

 “하지만 왕자님…….”

 유모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 사이 나는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단전에 모아놓은 마나를 다리 속으로 흘려 넣었다.

 정갈한 대자연의 기운인 마나는 대번에 그녀가 상처 입은 곳이 어딘지 찾아냈다.

 내가 사람 몸속을 투시하는 게 아니라, 어디가 어찌 다쳤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나들이 유독 머물기 힘들어하는 곳이 바로 다친 부위였다.

 내 머리를 치료할 때도 그랬지만, 상처가 있는 곳은 불순한 기운이 많기에 정갈한 마나가 자꾸 피해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난 그곳에다 집중적으로 마나를 쏟아 부었다.

 그러자 3일간 모아놨던 마나들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나는 마나 심법을 시전했다.

 그동안은 여러 가지 일들로 바빠서 마나 심법으로 마나를 모으기가 힘들었다.

 아예 유모의 다리를 치료해주면서 마나도 함께 모으기로 작정했다.

 다른 마법사들은 마나를 모을 땐 어떤 행동도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한다.

 이유는 마나를 모으는 것이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마나로 몸의 불순한 기운을 세척하지 않았을 때의 얘기다.

 이미 온몸이 마나로 세척된 나는 마나의 기운을 쉽게 느낄 수 있었으며, 모으는 것도 더 쉬웠다. 나의 단전에 마나들이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난 그 속도를 느끼며 유모의 다리로 보내는 마나의 양을 조절했다. 내보내는 것보다 모이는 마나가 많도록 말이다.

 이미 내 단전에는 꾸준히 마나를 모아온 덕에 1서클에 거의 근접한 마나가 모여 있었다.

 근 한 달 동안 빈사 상태로 누워 있으면서 머리를 치료하는 데 마나를 모두 쓴 것이 아니다.

 항상 조금씩 마나를 남겨 모아왔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된 후로는 마나를 모으는 것이 더 빨라졌다.

 나는 쉬지 않고 유모의 다리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처음에는 내가 대체 무엇을 하는 건지 의아한 듯 바라보던 유모도 나중에는 아무 소리 없이 날 지켜보았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유모의 다리에서 느껴지던 탁한 기운이 거의 다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 보니 창밖으로는 노을이 지고 있었으며, 내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방문 너머로 부모님과 시종장 그렌드가 날 지켜보고 있는 게 보였다. 언제부터 보고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오로지 유모의 다리에만 신경을 집중했기에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제 조금만 더…….’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우우우웅!

 단전에서 뭔가가 심하게 회전하며 힘을 폭출시켰다.

 그 기운은 내 전신을 훑었다가 다시 단전으로 모여들어 단단하게 자리 잡았고, 지쳐 있던 몸의 피로는 씻은 듯이 날아갔으며, 머리가 맑고 상쾌해졌다.

 마치 굽어 치는 폭포처럼 격렬한 기운이 휩쓸고 간 다음에는 잔잔한 호수와 같은 평온함이 가득 찼다.

 “왕자님… 눈에서 푸른 안광이…….”

 내 눈을 보던 유모가 놀란 듯 말했다.

 그리고 난 알 수 있었다.

 ‘일 서클의 마나를 모았다.’

 드디어 1서클에 진입한 것이다.

 한 번 서클을 이룬 마나는 애써 모으려 하지 않아도 고갈되면 절로 차오른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인 나는 지금까지와 달리 많은 양의 마나를 모두 쏟아 부어 유모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러자 잠시 후…

 “됐어.”

 유모의 다리에서는 더 이상 탁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옆으로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그 모습에 놀란 유모가 벌떡 일어서더니 내 몸을 잡고 부축했다. 그리고는 침대까지 날 데려가 눕혔다.

 “왕자님, 괜찮으세요?”

 걱정스레 묻는 유모를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렌드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들렌! 자, 자네… 다리를 절지 않잖아?”

 그는 국왕 폐하와 왕비가 곁에 있다는 사실도 망각한 듯했다.

 하지만 부모님도 그의 무례를 딱히 집고 넘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그렌드보다 더 놀란 얼굴로 유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나? 그, 그러고 보니…….”

 유모는 몇 걸음을 걷더니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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