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을 들은 이안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 뭐예요? 어딜 갔다 오라는 건데요?”
“우리 왕국과 인접해 있는 바론 왕국에 다녀오너라.”
“갑자기 거긴 왜요?”
“바론 왕국의 국왕이 누군지는 알고 있느냐?”
“몰라요, 그딴 거.”
너무나 당당하게 모른다고 하는 이안의 태도에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루이 페스탈로치 세스타스 국왕이다. 세스타스 국왕에겐 아들과 딸이 한 명씩 있는데, 다음 달에 국왕의 딸인 메르나 페스탈로치 세스타스 공주가 생일을 맞는다고 하더구나. 그 만찬회에 다녀오너라.”
“싫어요.”
“거부는 용납할 수 없다. 이것은 어명이다.”
“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냥 놔둬요!”
“어리석은 놈!”
아버지는 눈을 크게 부라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 기개에 놀란 이안이 저도 모르게 잔뜩 움츠러들었다.
“네놈은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왕자다! 그런 놈이 이제껏 밖에 나가 제대로 된 사교 활동 한번 펼치지 못했으며, 나라의 정세를 파악하려 들기는커녕 당장 스스로의 고픈 배부터 채우려 들고 있으니 이 어찌 통탄스러운 노릇이 아니겠느냐! 나가라! 당장 바론 왕국으로 가서 적어도 다섯 이상의 사람이 네게 호의를 가지게끔 만들고 오너라!”
“아버지! 잠깐만요!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아버지!”
“저놈을 어서 끌어내라! 충분한 호위 기사와 여행에 필요한 물자를 갖춰주고, 바론 왕국의 행사가 끝날 때까지 성에 들이지 말도록 해라! 누구라도 이를 어기면 엄히 다스릴 것이다!”
아버지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6명의 기사가 이안의 사지를 포박한 채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안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단 한 번도 운동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약골이 기사들의 힘을 감내하기란 무리였다.
“아버지! 아버지! 잠깐만요! 아아아악! 이게 뭐야! 내가 왜 거길 갔다 와야 하는 건데! 놔! 이것 놔! 놓으라고!”
발버둥 치는 이안을 보는 아버지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
“젠장! 젠장!”
바론 왕국의 왕성에 도착한 이안 일행은 귀빈을 접대하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이안은 힘도 없는 약소국의 왕자이지만, 그래도 왕자 대접을 해주는 차원에서 귀빈실을 내어준 것이다.
국왕이나 그의 핏줄들은 아직 만나볼 수 없었다.
결국 만찬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안은 홀로 기다려야 했다.
정말이지 힘든 여정이었다.
이안은 여정을 떠나야 하는 그날까지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워댔다.
방에 틀어박혀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대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느라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런 것을 거의 반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해서 겨우 만찬회 날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귀빈실의 침대에 앉아 있는 이안은 이불로 온몸을 친친 감고서 사위를 살폈다.
뭔가 불안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럴 만한 것이, 한 번도 홀로 이토록 먼 나라까지 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람을 사귀는 것에도 대단히 미숙한 이안이었다.
성안에서는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지만, 막상 세상 밖으로 나오니 두려움에 가득 찬 이빨 빠진 늑대나 다름없었다.
6명의 호위 기사들은 이안이 앉아 있는 침대를 빙 둘러싸고 지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 정도가 흐르고 난 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들기더니 만찬회의 시작을 알려 주었다.
“이제 곧 국왕 폐하께서 자리하실 것입니다. 늦지 않도록 만찬회에 참석해주십시오.”
목소리를 듣자하니 아직 어린 감이 있는 게 하녀인 듯했다.
순간 나는 이안의 감정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설마… 설마 이 자식이!
이안은 눈을 번뜩이더니 후다닥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문 앞에서 참석을 요구하던 소녀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게 보였다.
소녀는 아름다운 금발 머리에 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는 열다섯에서 일곱 정도 되어 보였고, 조막만 한 얼굴에 하얀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단정하면서도 기품이 배어나오는 옷을 입은 것이… 하녀라고 하기엔 어쩐지 이상했다.
“너 하녀냐?”
내 생각을 대변하듯 이안이 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고개를 조금 비틀었다.
“네?”
“이리 와!”
“자, 잠깐만요!”
이안은 소녀의 손목을 낚아채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문을 닫은 뒤 호위 기사들에게 명했다.
“문 앞을 지켜!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
왕자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호위 기사들은 순순히 문 앞으로 가서 섰다.
이안은 소녀를 그대로 침대 위까지 끌고 올라갔다.
“자, 잠시만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시끄러워!”
“내가 누군지나 알고……!”
짜악!
이안의 손이 소녀의 뺨을 후려갈겼다.
깜짝 놀란 소녀의 눈에 대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이안의 눈을 통해 소녀를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이안의 눈은 소녀의 얼굴에서 곧장 가슴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의 가슴에 목걸이로 엮은 펜던트 하나가 놓여 있었다.
펜던트에는 사자의 문양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이안! 그만! 그만둬! 이 빌어먹을 자식!
아무리 외쳐도 이안은 멈추지 않았다.
녀석은 지금 자신의 두려움을 쾌락으로 풀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이안의 손이 소녀의 가슴을 음란하게 주물렀다.
“꺄아아아악!”
“조용히 하랬지!”
이안은 다른 손으로 소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나머지 손으로 소녀의 옷을 빠르게 벗겨 냈다.
아직 덜 여문 소녀의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안은 그 가슴을 마음대로 유린하다가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렸다.
“으읍! 읍!”
소녀는 이안이 바지를 벗는 것을 보며 몸을 심하게 비틀었다.
“곧 즐겁게 해줄게.”
비릿하게 웃으며 이안이 소녀를 겁탈하려는 그 순간!
콰앙!
거칠게 문이 열리며 10여 명의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침대 위에 있는 이안과 그 밑에 깔린 소녀를 보더니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10명의 기사 중 가장 선두에 있던 사람이 포효하듯 외쳤다.
“공주님!”
“뭐라고?”
공주님이라는 소리를 들은 이안은 넋을 잃어버렸다.
기사들은 당장이라도 이안에게 검을 휘두를 기세로 다가와 침대를 둘러쌌다.
젠장! 젠장! 다 틀려먹었다. 소녀의 가슴에 있는 펜던트를 봤을 때 이미 짐작했어야 한다.
그 펜던트에 각인된 사자 문양은 왕가의 표식이었다.
하지만 이 멍청한 이안 녀석은 그런 것도 모르고, 공주를 겁탈하려다 현장에서 걸려 버리고 말았다.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참수형감이다.
아무리 타국의 왕자라고 해도 용서되지 않을 일이었다.
겁에 질린 이안이 문 근처에 서 있는 호위 기사들에게 외쳤다.
“뭐 하는 거야! 나를 보호해!”
죽음의 위기를 느낀 것인지 필사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라고 외치는 이안.
하지만 호위 기사들도 이번만큼은 이안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모두 체념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활짝 열린 문으로 누군가가 들어서는 게 보였다.
“대체… 이게 무슨 광경인지 꼭 알고 넘어가야겠군.”
그는 바론 왕국의 국왕, 루이 페스탈로치 세스타스였다.
…맙소사!
세스타스 국왕은 최대한 화를 억누르며 얘기했다.
“공주의 옷을 입혀라.”
그러자 문 밖에 서 있던 하녀들이 나타나 얼른 메르나 공주의 옷을 입혀 주었다.
메르나 공주는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얼굴로 하녀들의 부축을 받아 방에서 나갔다.
세스타스 국왕이 분노에 찬 얼굴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클라드 왕국의 왕자, 이안 하르넬 지크프리트였지?”
이안은 잔뜩 겁에 질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못된 장난을 치다 부모에게 들켜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이안의 안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왕자의 신분으로 내 딸아이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온 자네에게만큼은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했네. 그래서 하녀가 아닌 공주에게 직접 가서 만찬회에 참석할 것을 전하라 했지. 그런데… 그런데…….”
세스타스 국왕은 잠시 말을 끊더니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터져 턱으로 흘러내렸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는 검을 뽑아들며 성난 야수처럼 소리쳤다.
“그런데 그에 대한 보답이 바로 이것이란 말이냐!”
“으아아아아악!”
깜짝 놀란 이안은 바지도 추켜올리지 않은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져 머리를 찧을 뿐이었다.
“으윽! 으으윽!”
머리를 부여잡고 눈물까지 주르륵 흘리는 이안에게 세스타스 국왕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안은 주저앉은 자세로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등에 벽이 닿자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망나니 왕자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감히… 감히 힘도 없는 약소국의 왕자인 주제에 내 딸을 겁탈하려 들어! 내 당장 이 자리에서 네놈의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세스타스 국왕이 검에 살기를 가득 담아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이를 본 이안의 몸이 급격히 차가워졌다.
그는 사방을 급하게 돌아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창문을 열어젖혔다.
이 미친 자식이 설마?
난 제발 아니길 빌었다.
하지만 내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으아! 으아아아아아악!”
“뭐 하는 짓이냐, 이놈!”
이안은 눈을 질끈 감고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정신이 나간 거지… 여기는 3층이란 말이다!
빠르게 몸이 땅으로 하강하는 게 느껴졌다.
이안이 눈을 감아버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퍼어억!
머리에서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고, 이안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런 정신 나간!”
세스타스 국왕의 고함을 들으며 나도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