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새벽 여명이 동녘을 물들이고 있었다. 창문 틈 사이로 덜 익은 햇살이 넘어 들어와 무정의 눈을 간질이기 시작하자 무정의 눈이 꿈틀거렸다.
“음…….”
침음성과 함께 무정은 일어났다. 어느새 아침인 듯한데 몸이 날아갈 듯이 가뿐한 느낌에 무정은 문득 자신의 왼팔을 보았다. 수투도, 갑주도, 철각반도 없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자 작은 방 안에 탁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거기에 그의 무장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제야 그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침상에서 일어난 그는 찌뿌드드한 신형을 돌렸다. 몸 여기저기서 우득우둑 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무장과 초우를 잡아 들고 문을 열어 방문을 나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객잔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뒤쪽의 우물가로 나갔다.
좌악! 좍!
정신이 번쩍 드는 시원한 물이었다. 간만에 군에서 하던 짓을 해본 무정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뇌리에 어제저녁 무렵의 악전고투가 생각났다.
확실한 그의 패배였다. 논할 여지조차 없는. 무정은 두레박을 우물에 담그려다 고소를 머금었다. 자신이 박살 낸 우물이다. 겨우 물만 뜰 수 있게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놓았다.
그는 두레박을 던지고는 갑주를 입었다. 묵직한 느낌이 이제야 본 모습을 찾은 것 같다. 문득 무정은 머리 뒤쪽으로 손을 올렸다. 그의 손에 단단히 매어진 매듭이 만져지자 무정은 까닭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홋홋, 이제 살 만한가 보지?”
무정의 뒤쪽에서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백염주선 홍관주였다.
막 초우를 챙긴 무정이 파풍의를 걸치며 돌아서자 홍안의 노인이 벙글거리며 서 있었다.
“삼 일을 푹 쉬더니만 힘이 넘치냐? 홋홋, 한 판 더 할까? 응?”
장난기 넘치는 노인의 말에 실소를 흘리던 그는 흠칫했다. 삼 일이라니? 고작 하루라 생각했거늘…….
“홋홋, 녀석아, 일단 좀 앉자. 뭔 놈의 키가 그리 크단 말이냐? 에잉, 목이야.”
목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홍관주는 우물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무정은 초우를 꺼내 손에 들고 그 옆에 앉았다.
그냥 앉기에는 그의 도가 너무 컸다. 홍관주는 잠시 그의 도를 바라보다 시선을 거두었다.
“너, 아미의 미 낭자 하곤 무슨 관계냐?”
순간 무정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홍관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홋홋, 젊은 게 좋긴 좋구나. 네가 넋 놓는 동안 아예 사색이 되더라. 그리고는 어제 아침까지 밤낮으로 간호하더라. 눈물까지 찔끔찔끔 흘리면서.”
홍관주의 말에 무정은 뭔가 이상했다. 오늘은 없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갔다.”
묵묵히 대답을 듣던 무정의 가슴에서 무언가 빠져나갔다. 갑갑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문득 그녀의 내음이 생각났다.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웠던……. 갑자기 무정은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메마른 웃음이 그의 입에 걸렸다.
“홋홋홋홋, 젊은 놈이 의기소침하기는……. 아미파에서 사람이 와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그리고 그곳에 꼭 한번 들러 달라더구나.”
무정의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표정을 있는 그대로 홍관주에게 읽힌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홋, 요놈아, 그래도 기분은 좋지? 응? 응?”
얼굴을 바짝 대고 홍관주가 약을 올렸다. 무공은 안 그런데 왠지 하는 짓은 완전히 어린애인 것 같아 무정은 고소를 지었다.
“노인장, 이른 새벽부터 그 말 하러 나온 거요?”
정색을 하고 묻는 무정을 보며 홍관주는 참으로 만나기 힘든 순진한 놈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장난은 접어야 했기에 이번엔 홍관주도 정색을 했다.
“물어볼 게 있다.”
“…….”
“네 무공, 누가 가르쳐 준 거냐?”
무정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느새 사라져 가는 새벽 여명 위로 수많은 사람이 떠올랐다.
마 대인, 상귀, 하귀, 고죽노인 등 가까웠던 사람부터 단 한 번 만나고 싸늘한 주검으로 다시 만난 이름 모를 청년까지. 무정은 고개를 흔들었다.
“없소.”
홍관주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상승의 무공은 반드시 그 길을 닦아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굳이 있다면… 교두들한테 배웠소.”
“……?”
홍관주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교두들이 이 정도의 인물을 키울 실력이 된다면 지금 명군은 천하를 쓸고 다닐 것이다. 한데 여진에게도 힘겨워하는 명군이다.
홍관주는 막 발작하려다 멈추었다. 그렇다고 무정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질문 방향을 바꾸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럼 질문을 바꾸자. 여태껏 살아온 이야기 좀 해봐라.”
무정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홍관주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몇 년 동안의 이야기를 하라는 것인지……. 그런 무정의 시선을 느꼈는지 홍관주는 씨익 웃었다.
“괜찮다, 아이야. 내가 옛날부터 시간이 좀 많은 사람이다. 홋홋홋.”
반 억지에 가까운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무정은 화가 나질 않았다. 희한한 일이다. 왠지 이 노인에게는 무엇이든 말해도 될 것 같은 느낌에 결국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아마 내가 한 여섯 살쯤 되었을 때일 거요.”
무정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명각은 여느 때처럼 일찍 일어났다. 그는 우연히 창문 밖을 보다가 무정이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비록 불자라고는 하지만 그는 무림인이었다. 강한 상대를 보면 호승심(好勝心)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미타불……. 진정하시지요, 사형.”
명경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리자 명각은 주먹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는 뒤로 돌며 빙그레 웃었다.
“헛헛. 일찍 일어났구나, 명경.”
명경은 한순간에 변한 사형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명각은 그런 사람이었다. 한없이 대은 대덕하고 호방한 사람. 하나 누구보다 질투도 많고 호승심도 강한 사람이었다.
“무 시주가 깨어났나 봅니다.”
창문 밖으로 무정의 모습이 보였다. 홍관주와 이야기 중이었다.
“음, 굉장한 회복력이야. 완전 탈진 상태에서 삼 일 만에 일어나다니…….”
“어쨌거나 정말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이젠 혼란 그 자체입니다.”
머리를 흔들며 탁자로 다가서는 명경을 보며 명각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하나 그 마음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삭이면 삭일수록 마음의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되살아났다.
정말 전단격류일까? 불패의 무공이라는 전단격류가 다시 한 번 현세한 것인가? 십 년 전에 있었던 그 가슴 떨리는 광경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것인가?
“사제.”
“예, 명각 사형.”
명각의 말이 들려오자 명경은 그를 바라보았다. 명각은 시선을 창밖의 무정에게 고정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십 년 전… 그때 전무림을 상대로 혼자 싸우다시피 한 그자… 그자 이름 혹 생각나나?”
“…….”
명경의 눈이 조금 커졌다. 명각은 아직 그와 무정과의 관계에 대해 의구심이 있는 듯했다.
하긴 그도 삼 일 전의 비무 때 혹시나 하는 심정이 들 정도였으니 명각은 어땠겠는가? 아마 모르긴 해도 계속 그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장규연(張規沿)……. 이검필승인(二劍必勝人) 장규연이라 했습니다.”
“이검필승인… 장규연…….”
명각은 그 이름을 되뇌이며 아릿한 눈빛으로 하늘을 보았다. 장규연. 왠지 명각의 눈앞에서 잊히지 않는 그의 모습과 무정의 모습이 서서히 겹쳐지고 있었다.
“…그게 전부요.”
무정의 긴 이야기가 끝이 났다. 어느새 활기찬 아침이 시작되어 여기저기 분주한 움직임이 보였다.
“참 네놈도 정말 궁상맞은 인생이다. 에잉.”
홍관주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이놈이 주로 말하는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일어나 밥 먹고, 쌈질하고, 사람 죽이고 돌아와 밥 먹고, 무술 연습하고, 또 일어나 사람 죽이고……. 그게 다였다.
홍관주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무언가 있었다. 군의 어이없는 무공이 이런 괴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초식은 그렇다 쳐도 내공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그였다.
‘몸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내공을 쌓는다? 이게 말이 되나?’
스스로 내린 어이없는 결론에 홍관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초식의 무서움이나 침착함, 엄청난 살기 등은 설명이 된다.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은 홍관주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내공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 당세극이 있었지. 우선 거기서 말을 들어봐야겠군.’
내심 환한 웃음으로 결론지은 그는 옆에서 어이없게도 웃고 있는 무정을 바라보았다.
“너, 지금 비웃냐?”
딴에는 인상을 잔뜩 쓴 얼굴로 한쪽 눈썹만 까딱이며 홍관주가 말했다.
무정은 까닭 없이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붉으락푸르락 혼자 다양한 표정을 보이다 그가 뱉은 말이 이것이었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노인이었다.
“핫핫핫핫!”
낭랑한 무정의 웃음소리가 이른 아침 공기를 울렸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유쾌하게 웃어본 것은. 무정은 점차 변하고 있었다. 그 자신만 모를 뿐이었다.
홍관주는 무정이 웃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꽤나 잘생긴 얼굴이었다. 보아하니 웃는 게 손에 꼽을 정도인 놈이다. 어쨌든 참으로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쳇, 싱거운 놈!”
툴툴거리며 홍관주는 손가락으로 귀를 파는 시늉을 했다. 그때였다.
“허허허, 홍 어르신께서는 일찍도 일어나셨군요?”
앞쪽에서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에 무정은 고개를 돌렸다. 짙은 남색의 장포를 입은 사십 대 후반 가량 됨 직한 청수한 인상의 장년인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에 당패성과 당혜, 당소국이 보였다. 홍관주는 마침 그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반색하며 말했다.
“홋홋홋! 그래, 당 문주께서도 잘 주무셨는가? 홋홋! 아, 무정아, 인사드리거라. 현 당가의 가주 천밀무격(天密武擊) 당세극(唐世極)이시니라. 네가 정신을 잃었을 때 봐주신 분이란다. 홋홋홋.”
영락없는 영감 흉내였다. 둘이 있을 때는 이 말 저 말 잘도 하더니 사람들이 있으면 이상하게 변한다.
게다가 이젠 손자 취급하는 홍관주를 보며 무정은 고개를 흔들었다.
“무정이라 합니다.”
엉성하게나마 무정은 포권을 지어 보였다. 사실 당세극은 삼 일 전 홍관주와 무정의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당소국이 다쳤다는 전갈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은혜와 원수는 철저하게 갚는 것이 당문의 규정이기에, 또한 지금 사천 무림의 핵이 된 무정이란 자도 직접 보고 싶기도 했다.
“아닐세. 오히려 요위굉에게서 아이들을 지켜주어 고맙네. 당세극이라 하네.”
정광이 가득한 당세극의 시선이 무정을 훑었다. 한눈에 그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각고의 노력을 한 듯 전신의 근육은 팽팽히 불어나 있었고 그 위에 얹힌 수많은 상처들은 얼마나 험한 인생을 살아왔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헛헛, 젊은 사람이 대단허이. 후, 우리 아이들도 좀 본받았으면 좋으련만…….”
나직한 한숨과 함께 당세극이 옆에 시립해 있는 당패성을 흘깃 보자 당패성은 얼굴이 벌게진 채 땅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홋홋홋, 재능은 언제든 노력만 하면 꽃 피우게 되는 법. 자자, 이럴 게 아니라 그만 들어가서 조주(朝酒)라도 하면서 얘기하지. 홋홋. 무정아, 가자꾸나.”
“먼저 들어가시지요. 난 방에서 정리할 게 좀 있소.”
무정은 초우를 쓰다듬으며 일행에게 말했다. 그동안 초우를 거의 다듬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미안했는데 홍관주와의 비무 때 너무 혹사시킨 것 같았다.
“오, 홋홋홋. 그래? 그럼 천천히 오려무나. 홋홋.”
늦게 간다는데 뭐가 그리도 좋은지 홍관주는 실실거리며 당세극의 등을 떠밀었다.
당세극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문 안쪽으로 밀려들어 갔다. 그래도 일문의 가주이자 사십이 넘은 장년인데……. 그러나 상대는 이미 세수 백이십이 넘은 사람이었으니 별 도리가 없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객잔으로 향했다.
무정은 사람들이 사라져 가자 그제야 움직였다. 아무래도 오늘 오전은 초우 하나만 다듬는 데 다 써야 할 판이었다.
조용히 도면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을 느껴서인가? 기분 좋은 듯 살포시 떠는 초우의 광택을 보며 무정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흐음, 그럼 당가주도 잘 모른단 말인가?”
“예, 어르신. 조금 이상한 점이 있기는 해도 그것이 무공과 연관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군요.”
“호오,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나?”
무정을 뒷마당에 세워놓고 들이닥치다시피 객잔의 이 층으로 올라온 홍관주는 당세극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무정을 진맥했으니 어느 정도 당가주가 감을 잡았으리라는 생각에서였는데 아까 당세극을 보며 반색한 이유가 증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독과 인체를 연구하는 당가주가 더 잘 알 거라는 계산이었다.
“음, 우선 그는 단전이 없더군요. 아니, 너무 작아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엥?”
홍관주는 눈을 크게 떴다. 단전이 작다니? 그럴 리가 없었다.
적어도 저 정도의 힘을 내려면 자신과 비슷한 크기거나 중단전 정도는 열려야 되는 것이 정상이었다. 당세극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단전이 사용되었던 흔적은 분명히 있습니다. 한데 그것이 하복부 중에서도 아주 미미한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진맥할 때는 그나마 위치나 크기가 급속도로 줄어들 때였습니다.”
“…….”
당패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도무지 알면 알수록 무정이란 자는 알 수가 없었다.
무림인들이 연공을 하면 단전은 커진다. 사용하면 할수록 조금씩 커지는데 사용 중인 단전은 평상시보다 약간 커진다.
물론 아주 미세한 차이인데 그 차이를 당세극은 감지해 낸 것이다.
“거참!”
혀를 차며 홍관주는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괴물, 괴물의 괴사였다. 그렇다면 무정은 일반인들의 단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다.
“한데…….”
나직한 당세극의 목소리에 홍관주는 눈길을 던졌다. 그리곤 당세극의 말에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단전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몸의 이곳저곳에 있더이다…….”
당세극도 믿기지가 않는지 말끝을 흐렸다. 그의 양 골반과 어깨, 그리고 미간 사이에 분명히 그 흔적이 보였다.
종합하자면 무정은 여섯 개의 단전과 같은 것을 사용한다. 그렇기에 홍관주와 동등한 무공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억지로라도 이해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처음 일반인과 같은 단전 크기를 가진 자가 어떻게 힘을 낼 수가 있는가? 요는 시작점이 없는 것에 있었다.
무림인은 연공을 하며 축기(蓄氣)를 한다. 그렇게 생성된 공력은 필요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고 축기한 만큼만 사용할 수 있다.
혹자는 차기미기니 이력타력이니 하면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배 이상의 공력을 사용한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공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될 때나 가능한 일이다.
공력이 없는 자가 그런 것을 시도한다면 아마도 길바닥에 패대기쳐진 개구리 꼴이 될 것이다.
“거참, 볼수록 묘한 놈일세. 무공도 인간 됨됨이도…….”
홍관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글자 그대로 상식이 안 통하는 인간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당세극도 홍관주도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무정이란 인간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저…….”
비죽거리는 당패성의 목소리에 그들이 고개를 들었다. 당패성은 얼굴이 따가웠다.
“혹시 무 대협의 무공이…….”
무공이란 소리에 홍관주의 몸이 바짝 다가섰다. 당패성은 주저하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 전설의… 전단격류의 무공이… 아닐는지요?”
“…….”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들 역시 함부로 판단하기 곤란한 말이었다. 당세극의 고개가 서서히 끄덕여졌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전단격류라…….”
당세극도 그리 잘 알지는 못했다.
하긴 알 턱이 없었다. 기록에도 그 이름조차 표기된 적이 거의 없으니. 하나 그는 십 년 전의 한 사건을 기억했다.
그 사건으로 전단격류는 문서에서 현실로 나왔었다. 하지만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그는 눈을 들어 홍관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홍관주의 생각을 묻고 있었는데 홍관주는 그 눈길의 의미를 이해한 듯 그의 신형이 의자 등받이에 붙여졌다. 갑자기 목이 타는지 새벽 댓바람부터 화주를 들이켰다.
“카아! 끅! 음, 혹 자네들은 무림 공적의 첫째 조건이 뭔지 아나?”
트림 소리에 미간을 좁히던 당혜는 눈을 반짝였다. 슬쩍 말을 돌리는 것으로 봐서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현 무림의 최고 배분이니 아무래도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확률이 컸기에 그녀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거야 부녀자를 간살… 한다든지 아니면 살인을 밥 먹듯이 하면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요?”
‘간살’이라는 단어에서 그녀는 요위굉이 생각났는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죽였다. 비록 무림인이지만 그전에 여인이었던 것이다.
“틀렸다.”
“……?”
담담한 홍관주의 음성이 들렸다. 당패성은 머리를 굴렸다. 대체 홍관주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그때 홍관주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무공이 높아야 한다. 그것도 상당히.”
말을 마치고 홍관주는 다시 화주를 들이켰다. 당패성의 눈에 당세극이 얼굴을 굳히며 작게 고개를 끄떡이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가주는 뭔가 그 의미를 알고 있는 듯했다.
“강호인이란 말이지…….”
홍관주의 말은 계속되었다.
“자신의 힘이 안 되면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들이며 같이 싸우자고 부추기는 인간들이지.”
당패성의 뇌리에 뭔가 알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의 위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홍관주의 눈빛이 변했다. 투명한 눈이 심유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무공을 익힌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패성은 눈을 감았다. 이젠 그도 확실히 알 것 같았다.
“특별한 괴이 편벽함이 있다면 사공이니 마공이니 하며 우르르 몰려들지.”
당혜의 눈이 탁자로 향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느낌이다. 그녀 자신도 그렇게 행동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런 것조차 없다면?”
“……!”
어린 당소국도 이해가 갔다. 결국 그런 이야기였다.
“전단격류? 웃기는 개 방구 같은 말이지. 그럴싸한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어떻게든 저건 우리 부류가 아니라고 한번 우겨나 보는 게지.”
말을 마친 홍관주는 화주 병을 입에 박았다. 그리고는 쉼 없이 목울대를 까닥거렸다.
당패성은 눈을 떴다. 결국 전단격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나약한 강호인이 지어낸 야비한 술책과 같은 것이다.
즉 전단격류는 무공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홍관주의 말을 빌리자면 말이다.
“홋홋홋, 무정이 왔구나. 어서 앉거라. 배고프지? 홋홋홋.”
뜬금없는 홍관주의 말에 이번엔 무정을 제외한 이들이 아연해졌다. 확실히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당세극도 그런 그의 행동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무정을 진맥할 때 그는 아주 약한 기를 손목에 흘렸었다.
그런데 되려 온몸을 감아오듯이 충격이 왔다. 내공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려야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
무언가가 무정의 몸 안에서 작은 힘을 수십 배나 강한 힘으로 만들어 튕겨낸 것이다.
그는 말할 수 없었다. 아니, 말할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옳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의 당문을 강호제일문으로 만들 수 있는 비밀이었기에…….
그의 머릿속에서 황금색 편액이 걸린 당가의 정문이 보였다.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이라는 글씨가 새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