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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무정지로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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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격류는 그 연무 방법이나 파훼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성하기 힘들다.
하나 분명히 전단격류는 세상에 존재한다. 이미 익힌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

전장에서 거두어지고 자라나, 전장의 사신으로 군림해 온 무정.
생사를 넘나드는 험난한 전장을 겪어온 그가 자유를 얻어 마침내
칼날 위 인생을 사는 무인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드는데...
무정의 거친 기지개에 무림은 거대한 요동을 시작하는데...... ."

 
15 화
작성일 : 16-07-20 16:59     조회 : 606     추천 : 0     분량 : 5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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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핏빛 강호

 

 

 

 째잭! 짹!

 밝아오는 여명을 맞이하는 새소리에 무정은 눈을 떴다. 아니, 그는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눈을 떴으나 이미 해는 중천 가까이 떠 있었다.

 아무래도 술 때문인 듯했다. 조절한다고 하면서 마신 술이었는데도 상당히 마신 것 같았다. 무정은 몽롱한 기분을 추스르기 위해 기억을 더듬었다.

 그들이 이곳에 함께 있었던 것은 색마 요위굉 때문이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남(河南)과 호북(湖北)에서 악명을 떨치던 자인데 화산, 무당, 소림까지 가세하자 어느새 이곳 사천까지 흘러온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요위굉은 불공을 드리는 각처의 사찰에 침입해 간살(奸殺)하는 것을 즐기며 무공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정확한 수위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때는 일급 이상의 실력도 보였는데 특히 방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대금강(四大金剛)의 손에서 오백여 초를 버티고 사라질 때는 정말 대단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젠 공적으로 몰려 있지만 단단한 청강석(靑剛石)을 두부 썰듯 날리는 그의 귀견수(鬼見手)는 상당한 조예로 평가되고 있었고 당패성 일행은 그가 이곳에서 감숙으로 이동한다는 소문에 지금 길목을 지키는 중이었다.

 일수십격(一手十擊) 당패성은 어제 자신과 싸울 뻔했던 사람들에 관해서도 말했다.

 청성과 점창파 사람들이라 했는데 그중 청성파는 별다른 해를 본 것이 없기에 잠잠할 수도 있겠지만 점창은 가기연이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무정이 손을 대었기에 조심하라고 했다.

 

 ‘점창은 지독합니다. 무 형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어쩌면 지금 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심해야 할 겁니다.’

 

 당패성의 말이 여운처럼 머리에 맴돌았지만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부딪치면 그뿐이었고 만일 싸운다면 전력을 다할 뿐이다.

 아직 무정의 사고방식은 군인이었기에 간결하게 생각하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시간이 지나니 확실히 많이 진정되었다. 그는 탁자에 몸을 기대며 탁자의 주전자를 들어 물을 마셨다. 미적지근하지만 갈증은 풀 수 있었다.

 “하~아~”

 목에서부터 뱃속까지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는 다시금 어제 일을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과 이렇게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술을 마시다니 그들이 만일 자신을 죽이려 했으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실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음 졸이며 살고 싶지 않았다. 긴장은 전장에서로 족하다고 생각하며 지금 이곳은 전장이 아닌 강호이기에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했다.

 문득 그는 어제의 기이한 느낌도 생각해 냈다. 당혜의 눈앞에서 일어났던 그 동작들. 그는 일어나 자세를 취하며 최대한 빠르게 손을 뻗었다.

 파앗!

 공기를 밀며 그의 우수가 쭉 뻗었다. 이게 아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어깨에 힘을 준 뒤 휘둘렀다.

 “후웃!”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아니다. 빨리듯이 나간 느낌,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무정은 눈빛을 굳히고 온몸을 늘어뜨린 자세에서 다시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상상 속에서 임의의 점이 눈앞에 나타났다.

 “친다. 빠르게… 최대한 빠르게…….”

 중얼거리며 집중하자 양 미간에 따스한 기운이 서렸다. 그와 함께 그의 몸에서 묵빛 기류가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애애애애앵!

 열린 창문으로 이름 모를 벌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흡사 춤을 추듯 공중을 빙빙 돌더니 우연히도 무정이 정한 임의의 지점 근처를 배회하였다.

 순식간에 점이 이동했다. 움직이는 벌레의 궤적에 맞추어 자신도 모르게 타점이 형성되자 무정의 주먹이 반사적으로 나갔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곳은 전장이었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적이었다.

 스팡!

 “……!”

 벌레가 사라졌다. 아니, 무정의 권에 의하여 가루가 되었다.

 바로 이 느낌, 이 속도였다. 평소의 무정보다도 반 배 이상 빨라진 것 같았다. 어젯밤 느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몇 번을 더 시전해 보았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무정은 조금은 괴이한 현상을 느꼈다. 자신의 권이 일직선으로 나가는데도 그 주위에는 떨리는 주먹의 잔상이 맺히고 있다.

 자신의 주먹이 전후좌우로 조금씩 흔들리며 잔상을 일으키는 듯 보였다.

 “…….”

 자세를 취하고 조용히 눈을 감자 어느새 무정의 주위에는 수많은 상상 속의 적이 있었다.

 한꺼번에 덤비는 그들을 향해 무정이 권을 날리기 시작하자 차근차근 한 명씩 그의 권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반 시진 가까이 연공이 계속되자 그의 몸이 땀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휴우~”

 긴 한숨과 함께 무정이 손을 내렸다. 구릿빛으로 빛나는 몸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무정은 수투를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상하게 의식을 하면 잘 되지 않았다. 한 시진 동안이나 권력을 단련했으나 제대로 된 것은 처음의 몇 번에 불과했다.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차라리 느낌만이라도 기억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어느 정도 정리된 처음의 느낌을 기억했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부드러운 손이 공기를 찢는다. 그의 권이 수많은 잔상을 남기며 뻗어나갔다. 그것이었다.

 부드럽게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공기의 결을 파듯이 훑고 간 손놀림, 자신이 목표한 곳에서 들리는 파공음(破空音)……. 한데 위력이 없었다.

 그의 권이라면 이미 호신강기도 뒤흔드는 위력이다. 물론 묵빛 강기가 빚어낸 결과지만 그 매개체가 권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 그것에 비한다면 이것은 공기만 찢을 뿐 아무 위력도 없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속도가 기존에 비해 거의 반 배 이상 빨라진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그는 고소를 머금으며 피풍의를 걸쳤다. 모든 물건을 갈무리하고 문을 나섰다.

 하지만 무정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군의 무공은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는 빠름을 추구한다.

 그런 빠름에 정교함, 그리고 순간적으로 가해지는 힘이 주류를 이룬다. 무정의 무공도 그런 유형이었다.

 방패를 들어 몸을 막아보라. 절대로 팔 힘만으로는 성공 못한다.

 팔과 어깨, 다리와 허리, 목 등 신체의 여러 부분이 함께 움직인다. 자신이 이를 인식하지 못할 뿐 몸은 이미 인식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정의 묵기도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반응했지만 지금은 실전이 아니기에 몸이 눈에 뜨일 만한 반응을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이미 공기를 찢는 무정의 권은 그의 몸에 충분히 각인되었고 그 위력도 마찬가지였다. 성공한 단 몇 번의 권은 지금 그 증거를 보이고 있었다.

 쩌적! 쩍!

 온 방 안의 벽들이 둥글게 으스러지며 금이 갔다.

 무정의 신체는 그 만큼의 힘을 내보낸 것이며 보이지 않는 권의 위력은 벽을 타격했고 무정이 방문을 닫는 순간 서서히 바스러져 갔다.

 그렇게 무정이 나간 후 점소이 소량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젯밤 비록 별 사태는 없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 식은땀이 절로 났다. 그는 한 고비 넘긴 것에 대해 천지신명께 감사했다.

 바로 그때 달갑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쩌적! 와지끈!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소량은 눈을 크게 떴다. 방금 그자가 묵었던 방이 허물어져 버렸다.

 양 옆방의 흙벽과 앞뒤의 흙벽이 기둥만 남기고 바스러져 내리고 있었고 무너져 내린 커다란 구멍 사이로 정오의 태양 빛이 세차게 흘러 들어왔다.

 “…….”

 소량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차피 그의 책임은 아니니 주인이 돈을 내어 고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보고는 자신이 해야겠기에 아마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다.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소금이나 왕창 뿌려야겠다.”

 액운(厄運)부터 털고 보자는 소량이었다.

 

 ***

 

 무정은 말을 타고 천천히 갔다. 점소이는 당패성 일행이 먼저 떠났다고 했다.

 오늘 아침 강거(姜据)란 곳의 진 노대 딸이 변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어와서 바로 떠났다는 것인데 어차피 같이 다닐 생각이 없었기에 무정은 고개를 끄떡이며 그곳을 떠났다.

 물론 방이 부서진 것은 모르는 채로…….

 사천성도까지는 아직도 며칠 남았다. 엄원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한갓진 좁은 관도로 서서히 말을 몰았다.

 무엇보다 급할 것이 없었고 보이는 온전한 산과 들을 모두 눈에 담고 싶었다.

 불에 탄 관솔과 황무지에 익숙한 그에게는 아직 너무도 생소한 풍경이었다.

 문득 무정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자신은 이런 것에 생소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습관적으로 오른 뺨의 상처에 손을 대보았다.

 정말 이 상처 때문이었을까? 이젠 기억도 안 나는 그 시절에 얻은 이 상처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만일 그렇다 해도 자신은 언제든지 군을 떠날 수 있었다.

 한데 왜 안 떠났을까? 마 대인 때문이었을까? 물론 마 대인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 커서도 계속 기대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 무정은 한없는 상념을 계속했다.

 “…….”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며 말고삐를 쥐고 있는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묵빛 수투. 이 수투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수도 없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취했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러면서 죄책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저 그가 벤 것은 적일 뿐이었고 모두 죽여야 할 대상으로 명확하게 인식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주루에서 하마터면 그들을 죽일 뻔했다.

 그들은 적이 아니었고 그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의 양민일 뿐이었다.

 물론 잘못이야 그들이 먼저 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양민인 것을 생각하자 무정은 머리가 복잡해 옴을 느꼈다.

 “이게 강호란 곳인가?”

 옳고 그름의 문제, 가릴 수 없는 시비. 무정은 머리를 흔들었다. 내지 못할 결론을 생각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우선 그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 서창의 마가장에 도착하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힐끔 하늘을 보니 어느새 저녁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그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느꼈다. 아까 마을에서 듣기로는 다음 마을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고 했기에 오늘은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오른쪽에 꽤 큰 산으로 향하는 작은 소로가 보이자 그는 고삐를 틀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하루 이틀 해본 일도 아니었기에 오히려 이 편이 더 편했다.

 꽤 깊은 곳으로 들어온 무정은 말에서 내렸다. 멀리 관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그는 건초(乾草) 자루를 말 위에서 끄집어내 한 움큼의 건초를 집어 말 앞에 내려놓고 자신은 품에서 육포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잘 자리를 봐야 하지만 그건 조금 있다가 해도 괜찮았다.

 무정은 육포를 우물거리며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순간,

 “…아아…악.”

 “…….”

 무정의 신형이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아주 조그만 소리였지만 분명 사람의 소리였다.

 입속의 육포를 뱉은 후 그는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크 …이… 아하하…….”

 또다시 작은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득의에 찬 남자의 웃음소리 같은데 좁은 산길의 소로 끝에서 소리가 나기에 그쪽으로 빠르게 신형을 움직여 달려갔다.

 한참을 달린 무정의 눈에 토지묘가 보였다.

 아마 이 소로는 토지묘로 가는 길을 닦아놓은 것 같았는데 원형의 공터에 다 쓰러져 가는 작은 토지묘가 있었고 그 앞에 몇 사람의 신형이 보였다.

 무정은 옆의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수투와 철갑에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최대한 신속하게 우거진 관목 사이를 빠져나갔다.

 군에서 수천 번을 해오던 일이라 무정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빠른 속도로 헤쳐 나갔다. 이윽고 그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

 무정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저 눈앞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어젯밤에 만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신형을 낮추고는 눈을 빛내며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서서히 오감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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