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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무정지로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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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격류는 그 연무 방법이나 파훼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성하기 힘들다.
하나 분명히 전단격류는 세상에 존재한다. 이미 익힌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

전장에서 거두어지고 자라나, 전장의 사신으로 군림해 온 무정.
생사를 넘나드는 험난한 전장을 겪어온 그가 자유를 얻어 마침내
칼날 위 인생을 사는 무인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드는데...
무정의 거친 기지개에 무림은 거대한 요동을 시작하는데...... ."

 
13 화
작성일 : 16-07-20 16:58     조회 : 618     추천 : 0     분량 : 6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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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어색한 강호행

 

 

 

 처음 무정이 느낀 감정은 난감함과 어색함이었다.

 군문을 벗어난 무정은 조금은 새로운 마음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자그마한 촌락도, 이름 모를 야산도, 그리고 그 산의 나무들조차 새롭게 보일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정을 보는 사람들의 눈초리는 그렇지 않았다. 무정이 나타날 때마다 그리 좋은 눈길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그가 객잔에 들어서면 그 안의 사람들이 나가 버리는 사태가 며칠 동안 반복되었는데 무정은 그때마다 난감했다.

 사실 무정은 모르겠지만 그에게서는 은연중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늘 긴장하며 전장에서 살다 보니 살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검은 피풍의로 온몸을 감싸듯이 두르고 있다지만 육 척이 넘는 산만한 덩치에 기다란 흑발, 등 뒤에 비죽이 나온 초우의 손잡이를 보면 사람들의 그러한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정은 아예 객잔에 들어가지 않았다. 차라리 노숙을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했다. 그는 감숙성을 벗어날 때까지 그렇게 움직였다.

 그러나 감숙을 넘어 사천성으로 들어오자 무언가 조금 색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사람의 얼굴이었다. 감숙보다 국경이 멀기에 이곳은 전쟁이란 것을 아예 모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힘든 일을 한 듯 지친 얼굴도 있었지만 삶의 터전을 잃어본 그런 부서진 얼굴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위하여, 그 사람을 위하여 힘든 일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생기있는 얼굴이었다.

 사람들이 그렇다 보니 마을도 생기가 넘쳐났다. 감숙을 바로 벗어나 보니 비로소 마을다운 마을에 올 수 있었다.

 엄원(儼元)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가구 수가 상당한 듯싶었고 그래서 사람들도 꽤 많았다. 제각기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정은 고개를 들었다.

 왠지 이곳의 사람들은 감숙성의 사람들과 다를 것 같아 객잔을 찾아본 것이다. 그러자 저 멀리 원일(元一)객잔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몇 개 다른 곳들이 보이긴 하지만 간판이 마음에 드는 것은 오직 그곳뿐이었다. 무정은 생각을 굳히며 말고삐를 고쳐 잡았다.

 

 “어서옵……!”

 점소이 소량은 팔 년의 경력을 자랑한다. 그 말인 즉슨 보는 순간 어디로 모셔야 할지 감이 온다는 뜻이다.

 어떤 손님이든지 척 보기만 하면 일 층 손님인지 이 층 손님인지, 혹은 숙박할 손님인지를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에게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일단 육 척이 훨씬 넘어 보이는 키에 뒤의 문이 안 보일 정도로 산만한 덩치를 가졌다. 일단 그 덩치에서 위압감이 발생한다.

 파풍의로 감싸고 있어 몸 자체를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언뜻 보이는 팽팽히 퍼진 옷 주름은 상당한 근육이 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이미 분류는 된 상태다.

  사내의 등 뒤에 비죽이 나와 있는 저것은 틀림없이 검이나 도, 그것도 무식하게 큰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일단 흙 파먹고 사는 농민은 절대 아니다.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다리에 찬 철각반과 긴 머리칼 사이로 언뜻 보이는 얼굴의 상처는 칼밥 좀 먹어봤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문제는 무림이냐 아님 어디 도적패냐 일 뿐이었다.

 “자리 있나?”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흐르자 소량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찌 되었든 비위를 맞추는 게 순서였다.

 “아, 이런. 헤헤, 손님, 이쪽으로!”

 힘찬 대답과 함께 소량은 손을 내밀며 그를 이 층으로 안내했다. 일 층에 다른 사람과 같이 합석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 이 층 객잔에는 제법 손님이 있었는데 무정은 단연 그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약간 어색한 감정을 느끼며 점소이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이 층의 구석진 자리였다. 점소이는 사람들 눈에 최대한 띄지 않는 자리를 준 것이지만 무정으로선 오히려 반길 일이었다.

 아직은 사람들이 낯설기도 했거니와 습관상 누가 뒤에 있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까진 전혀 기분 나쁜 것이 없었다.

 그는 내친김에 점소이에게 간단한 요기와 잠자리를 부탁했다. 주문받은 점소이는 내심 산적은 아닌 듯싶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쪼르르 내려갔다.

 잠시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무정의 손이 허리춤의 작은 전낭으로 향했다.

 그간 모은 무정의 녹봉은 상당했는데 약 오백 냥의 은자에 마 대인이 백 냥을 더 주었다.

 총 육백 냥의 거금이지만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여 이십 냥 정도만 찾고 나머지는 전장에 그냥 맡겨둔 상태였다.

 그런데 그나마 이십 냥도 들고 다녀본 적이 없는지라 영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마 대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한 마음을 느끼며 그렇게 무정이 잠시 상념에 젖어 있을 때였다.

 “참, 요즘은 개나 소나 무공한답시고 설치니… 이거야 원…….”

 “이르다 뿐입니까? 곰 같은 덩치에 큰 칼만 있으면 다 고수인 줄 아니……. 아, 얼굴에 상처만 있으면 금상첨화지요.”

 “하하하! 문 형의 말씀이 정말 옳습니다! 하하하하!”

 무정은 상념을 접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맞은편 탁자를 보자 웬 청년들과 여인들, 그리고 한 명의 사태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 다섯에 여자 셋. 깨끗한 옷차림에 정갈한 눈을 보니 소위 말하는 명문의 제자들 같았다.

 “어허, 초면에 이 무슨 실례들입니까? 외양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시다니…….”

 “…….”

 점잖은 질책 소리에 몇몇을 제외한 일행의 눈이 가늘어졌다. 특히 맨 처음 시작한 문사건을 쓴 살팍한 인상의 소유자는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냈다.

 “려군아, 아무래도 네가 다녀와야겠구나. 정중히 이쪽으로 모시거라. 아무래도 사과드려야 할 것 같구나. 아미타불…….”

 “네, 사부님.”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려군이라는 낭자가 일어서더니 가볍지만 부드러운 걸음걸이로 무정에게 다가갔다.

 “무사님,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합석해도 될는지요? 사부님께서 저희 자리로…….”

 자리를 권하던 려군이라는 소녀는 그의 눈길이 자신의 얼굴에 머무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이렇게 대놓고 뚫어지게 볼 줄은 몰랐는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난감해하는 와중에도 무정의 시선은 소녀의 얼굴에서 떠나질 않았는데 그건 그녀가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왠지 모를 감정들이 마음속에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낯익었다.

 무언가 낯익은 감정이 그의 마음에서 일고 있는데 그것을 쉽게 끄집어내지 못했다.

 그리 못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절세미인도 아닌 여인이다. 평범한 몸매에 평범한 얼굴이라 할 수 있을 터였다. 눈길을 끌 만한 여인이 아니었다.

 외모가 아니었다. 나올 듯 말 듯한 느낌에 무정은 표정을 조금 굳혔다. 려군은 그런 무정이 부담스러운지 아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흥, 소인배 놈들은 여자면 그저 치마만 두르면 그만이지. 아니지. 려군 정도에 호감을 느낀다면… 혹시 저자, 색마 아냐?”

 “호호호, 가 언니 말씀처럼 색마일지도 모르겠네요. 색마는 음침한 얼굴이 특징이니……. 제가 한번 저자의 긴 머리칼을 밀어볼까요?”

 “아, 그 참 좋은 생각이구나, 혜 동생. 뭐하면 언니가 아예 목을 쳐 줄 테니 정갈히 살펴보렴!”

 “훗, 언니두. 저렇게 지저분한 목이 뭐가 필요해요? 한 푼어치도 안 되는 것을.”

 왠지 시비가 일 것 같은 분위기에 객잔 안은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두 여인의 교성이 주루를 울리자 무정의 얼굴이 그들을 향했다.

 한 여인은 한여름의 매화처럼 고고했고 또 한 여인은 막 피어나는 봉숭아처럼 화사했지만 하는 말들은 시궁창의 오물이나 다름없었다.

 “당혜(唐彗)야, 대체 그게 무슨 망발이냐? 입 다물지 못할까!”

 갑자기 한 남자가 일어섰다. 청색 의복에 문사건을 단정하게 쓴 이십 대 초반의 영기가 돋보이는 청년은 사천당문(四川唐門)의 둘째 공자 당패성(唐覇惺)이었다.

 그는 지금 후회막급이었다.

 사천성의 네 거파, 즉 아미(峨嵋), 청성(靑城), 점창(點蒼), 당문(唐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실 이 모임도 지금 사천성에 색마(色魔) 요위굉(了偉宏)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로 모인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나왔건만 분위기가 영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색마의 그림자도 못 본 데다가 같이 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너무도 마음에 안 들었다.

 아미파야 원래 자신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면 일체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의 불문(佛門)이니 문제가 없었지만 청성의 교검(巧劍) 문세음(文勢音), 사제인 무변검(武變劍) 종음(倧吟)은 너무 나서는 경향이 있었다.

 거기에 점창의 대제자인 점창신수(點蒼信手) 고주석(固主晳), 그의 사매 화검지점(花劍之點) 가기연(可奇娟)은 안하무인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간들이다. 정말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자들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웬만하면 거리를 두고 싶은데 사매인 당혜는 그들이 좋은지 같이 물들어 버렸다. 이러다 막내인 당소국(唐蘇鞠)까지 물들까 봐 겁이 날 지경이었다.

 “어찌 처음 뵙는 사람에게 이리 무도하더냐? 당장 사과하거라! 어서!”

 당패성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그들 모두 눈썹이 역팔자로 휘어 있었는데 아미파의 조일(朝日)사태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신의 사매에게 말했으나 사실 자신들에게 한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살팍한 인상의 문사건을 쓴 점창의 고주석은 바로 발끈했다.

 “아니, 당 소제! 이게 지금 누구를 겨냥하고 말……?”

 울컥하는 마음에 고주석은 입을 열었지만 그는 채 말을 맺을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엄청난 살기가 자신에게 폭사되었던 것이다.

 몸조차 가누기 힘든 살기를 떨치며 그는 애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한데 살기를 느낀 것은 그만이 아닌 듯 했다.

 모두 질식할 듯한 살기에 부르르 떨며 분분히 무기에 손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살기의 진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짐작되는 곳은 별달리 없었다. 굳이 상황이 바뀐 것을 찾는다면 단 하나, 저 삼류 곰 같은 놈이 일어나 있었다. 갑자기 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 정도의 살기라면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무정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무정은 까닭 모를 분노를 느꼈다. 그는 자신이 대응하지 않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철저히 무시할 생각이었다.

 한데 눈앞에 있는 려군이라는 여인을 본 순간 무엇인가 자신을 잡아끄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한 여자가 눈앞의 여인을 헐뜯는 소리가 들렸다.

 꽤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하나 무정에겐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무정은 그 여인과 일행이 갑자기 죽이고 싶도록 보기 싫어졌기에 그는 일어섰다.

 그러자 탁자를 둘러싼 남녀들이 분분히 놀란 표정으로 무기를 쥐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무정이 뿜어내는 살기에 반응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저들이 병기를 잡았다는 데 있었다. 그것을 본 무정의 마음에 당장 살의가 피어올랐던 것이다.

 “…….”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이 있는 다탁을 향해 무정이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이 층 주루에 있던 다른 손님들은 사라졌다.

 혹시라도 시비에 말릴까 그런 것이겠지만 무정에게는 오히려 고마운 상황이었다.

 혹시라도 싸우게 되면 말려들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죄 없는 사람에게 손을 써서 기분 나쁠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지 않았다. 일단 그들의 앞에 가서 결정할 참이었는데 그때였다.

 “아미타불… 시주, 잠시만 걸음을 멈추시지요.”

 낭랑한 불호와 함께 비구니 하나가 시우의 앞에 나타났다. 얼굴로 봐서는 꽤 나이가 있어 보였다.

 “아미파의 조일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 어린 친구들과 같이 하게 되었군요.”

 쉽게 말해 그녀가 제일 연장자고 우두머리란 뜻이었다. 상대의 수장이 이렇게 나오자 무정은 조일에게 눈길을 던졌다. 전장에서 익힌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시주에게 행한 결례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직 어린 친구들이라 그런 것이니 한번 너그러이 용서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왠지 청량감이 확 드는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무슨 무공이 들어간 듯싶었는데 그리 싫은 느낌은 아니었다.

 잠시 조일의 뒤쪽으로 눈길을 던지던 무정은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전장도 아닌 곳에서 싸우는 것은 원치 않았다.

 좋지 않은 기분을 꽉 억누르며 무정은 신형을 돌리려 했다. 그제야 주변에 숨 막히던 살기들이 서서히 걷혀졌다.

 수순으로 따지자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데 일이 엉뚱하게 전개되었다.

 “이, 이런……!”

 시우에게 시비를 걸던 여인의 입술이 열렸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그녀는 자신이 겁먹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그 정도면 별 일은 아니었다. 헌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녀의 눈이 역팔자로 휘기 시작하며 독기 서린 말투가 튀어나왔다.

 “흥! 꼴에 사내새끼라고 발끈하기는…….”

 그녀가 내뱉은 말이었다. 뒤돌아서려던 무정의 신형이 굳어지더니 눈이 다시 침잠해졌다.

 노기가 짙은 눈을 하면서 아까보다도 훨씬 강한 살기가 폭사되었다.

 대관절 이 여인이 왜 이토록 자신에게 무례한지 모르겠지만 그만큼이나 그 여인을 향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서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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