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이 짧아진 그의 초우를 오른손으로 들자 다섯 관의 초우가 가볍게 들려졌다.
칠 척의 참마도일 때도 자루 끝을 잡고 휘두른 그였기에 이 정도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군문의 도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원래 군문의 무공은 일정한 틀이 없었다. 물론 투로나 초식 등은 비록 간결하나마 있지만 대문파의 그것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우스운 이름에 너무나도 간결했다.
하나 군문의 무공은 실전을 위주로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실전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 것인데 이러한 점은 여타 대문파의 목표와 다르지 않았다.
군문의 무공은 초식과 그 초식의 운용은 일정한 틀을 갖고 있지만 실전에서는 그렇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즉 항상 초식과 투로를 연습하며 숙달시키는 것이 곧 혼탁한 전장에서 유연하고 창의적인 운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것은 어떠한 군사 관계 서적에서도 항상 쓰여 있는 교과서적인 문구였다.
그러나 솔직히 그것은 말로는 쉬운 일이었으나 실전에서 가능한 자는 아마 군문을 통틀어 무정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무정이 연무하는 연무장의 한편에서 마 대인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무정의 무공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자신도 제독검십사세(提督劍十四勢)를 극성으로 익혀 강호 내에서는 일류의 반열에 겨우 출사할 정도지만 그것은 바탕에 자신의 가문에 내려온 무량심법에 의한 내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이제 오십을 넘긴 나이에 일류로 겨우 올라선 것인데 저기 보이는 무정은 이제 이십 대 중반에 거의 절정 수준에 올라 있었다. 그의 입가에 대견스럽다는 미소가 걸렸다.
무정의 전신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형(形)은 형일 뿐이다. 실전처럼 하기 위해선 상대가 필요했다.
문득 그는 찬바람이 그의 긴 머리를 감아올리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이제 막 피고 저물어가는 수많은 꽃잎들이 담을 넘어 날아들자 무정의 눈이 번뜩였다.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한 무정의 주위로 질식할 듯한 살기가 피어오르며 그의 양 미간 사이와 양 골반, 그리고 단전이라 불리는 곳과 양 어깨에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특히나 단전 부근의 느낌은 지난번 전투 이후에 새로 생겨 확연하게 느껴지는 증상이었다.
형식도 규칙도 없이 흩날리는 꽃잎들의 움직임이 그에게는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일순 신형이 움직이며 그의 애병 초우가 허공을 갈랐다.
마 대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흐릿한 검은 그림자가 장원 한가득 메워졌다. 알 수 없는 묵기가 수많은 꽃잎들을 감아올렸다. 그리고는 흐릿한 도광…….
수많은 꽃잎들이 바스러졌다. 십여 장의 연무장에 꽃가루처럼 반짝이는 바스러진 꽃잎들이 비단을 펼친 듯 펼쳐졌다.
“…….”
마 대인은 멍하니 서 있었다. 기척도 소리도 없다. 무정의 무공에 대해서는 부상 입은 낭인대원들의 증언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조차 그 기척을 알 수 없는 상대.
마 대인은 이미 그의 일검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윽고 무정의 신형이 나타났다. 처음 있던 자리 그대로……. 그가 움직였다는 것은 바닥에 보이는 수없이 많은 발자국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짝짝짝짝!
무정은 초우를 내렸다. 마 대인이 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목표를 정한 상태에서 그냥 있기가 어색해 그는 그대로 신형을 뽑아 발도한 것이었다. 그는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
“굉장하구나, 무정. 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 대인은 다가오며 말문을 열었다. 무정은 잘못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쑥스러워했다. 마 대인 앞에서는 언제나 어려운 그였다.
흡사 아버지 같은 존재. 그가 바로 마 대인이었다.
“…….”
“헛, 녀석. 그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초식 이름은 있느냐?”
“…….”
무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초식 이름이 있을 리 없었다. 그냥 움직이면서 연속 동작으로 이리 저리 베고 찌른 것이니. 마 대인의 눈에는 그게 초식처럼 보였나 보다.
“헛헛, 없는 모양이구나. 천천히 생각해 보거라. 이젠 군문의 무공을 넘어선 너의 무공이 된 듯하니…….”
“…그리하겠습니다.”
무정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그의 내심은 달랐다. 무언가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나의 무공이라……. 이제 자신의 것이 생긴 것을 인정해 주는 데서 약간의 흥분이 느껴졌다.
나만의 것. 그런 생각이 무정의 마음속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단체를 중하게 여기는 군문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가는 무정이나 정작 그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대청으로 오려무나. 차나 한잔 하자꾸나. 할 말도 있고 하니.”
“예, 대인.”
말과 함께 마 대인은 신형을 돌렸다. 무정도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땀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을 요량이었다.
여느 때처럼 대청은 정갈했다. 마 대인과 무정은 서로 마주 앉았다.
마 대인의 손이 탁상 위에서 조심스레 잔을 감싸 쥐었다. 마 대인은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변한 것 같은 무정을 바라보았다.
한 자루의 잘 벼른 칼이라고 해야 할지, 언제나 그런 긴장감이 느껴졌던 무정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져 있다. 비록 조금이긴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군문을 떠나겠다고 했었다.”
담담한 목소리가 울렸다. 마 대인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무정을 대했다. 무정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강호로 나가볼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