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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무정지로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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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격류는 그 연무 방법이나 파훼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성하기 힘들다.
하나 분명히 전단격류는 세상에 존재한다. 이미 익힌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

전장에서 거두어지고 자라나, 전장의 사신으로 군림해 온 무정.
생사를 넘나드는 험난한 전장을 겪어온 그가 자유를 얻어 마침내
칼날 위 인생을 사는 무인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드는데...
무정의 거친 기지개에 무림은 거대한 요동을 시작하는데...... ."

 
11 화
작성일 : 16-07-20 16:43     조회 : 602     추천 : 0     분량 : 7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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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전장을 떠나다

 

 

 

 쪼로롱! 쪼롱!

 귓가로 새들의 울림이 느껴졌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차츰 의식이 가닥을 잡아가는 듯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겨우 눈을 뜬 무정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희뿌연 눈앞의 풍경이 조금은 생소해 보였고 이곳이 자신의 숙소인지, 혹은 다른 곳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누워 있는 채로 꽤 시일이 지났을 것 같은데… 좀 더 눈을 밝은 곳에 적응시키기 위해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

 이윽고 완전히 눈을 뜨자 주위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눈이 조금 아팠지만 상관없었다.

 천장에 보이는 서까래가 낯익게 느껴졌다. 작은 대나무 탁자와 의자 두 개, 그 위에 자신의 무구와 유등 하나가 있었고 그 옆에 한눈에 보이는 초우(初友).

 그것은 지금 탁자 옆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있었다.

 자신의 방이다. 적이 안정이 된 그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우… 욱!”

 온몸의 근육이 아우성쳤다. 무정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마 대인의 얼굴뿐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일단은 일어나야 했다. 온몸이 축 처지는 게 아무래도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던 것 같았다. 무정은 인상을 쓰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우두두둑!

 근육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파육음(破肉音)과 함께 무정은 침상에서 일어나 걸터앉았다.

 창가에 비추는 햇살로 보아 아마도 아침 같았다. 조그만 이름 모를 새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이 그런 생각을 더욱 확실하게 해주었다.

 무정은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거의 온몸이 면포(綿佈)로 감겨 있었고 성한 곳은 목 윗부분뿐이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오른 뺨 위로 가져갔다.

 늘 그랬듯이 손끝으로 구불구불한 상처가 만져지자 갑자기 그는 웃음이 나왔다.

 즐거워 웃는 웃음이 아닌 조금은 허탈한 소리 없는 웃음이 방 안을 맴돌았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방 안에 감도는 고요가 그를 뒤돌아보게 했다. 손가락 끝의 징그러운 감각이 소름 끼칠 정도로 섬세하게 느껴졌다.

 이 상처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 상처를 준 사람을 베기 위해 도(刀)를 들었다.

 이 상처를 잊기 위해 무공을 배웠고 이 상처 때문에 놀림받지 않기 위해 글도 배웠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와 함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금은 상처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다.

 도? 도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무조건 베기 위해 쓴다. 무공? 전장에서 살기 위해 수련한다. 글?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내용이야 어찌 되었던 『대학』까지 읽던 중이다. 갑자기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번 전투가 그를 뒤흔든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상당한 변화가 왔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수많은 전장을 누비고 살아남았어도 그렇게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죽인 적은 없었다.

 하귀 때문에 이성을 잃었다. 하귀의 부상에 그는 화가 났었고 그 분노는 초우에게 피를 함박 머금게 해주었다.

 하나 그러고 나서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지 무정은 알 수 없었다.

 귓가에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 머리에 선명히 떠오르는 붉은 피, 그리고 가슴 안쪽의 저 멀리서 울리는 이질적인 감각, 모멸감(侮蔑感)……. 단 한 번도 무정이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다.

 무정은 멍한 눈으로 눈앞의 문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걸어갔다.

 바깥 날씨는 따스했다. 오월의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는 우물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온몸을 감싼 면포를 풀어헤쳤다.

 촤아아아!

 차가운 지하수가 정신을 일깨우자 그는 눈앞이 확연하게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찬물을 뒤집어쓰기에는 아직 좀 싸늘하게 느껴지는 날씨지만 하늘만은 높고 푸르게 보였다.

 그런 하늘 아래 한 인물이 보였다. 오 장 너머의 사립문에 팔짱을 끼고 기대고 있는 인물. 비루한 남삼을 입고 영웅건 사이로 까치 머리를 한 청년은 광검 남궁추였다.

 “정신이 들면 이거라도 걸치지 그래? 비연이 있었으면 정말 좋은 장면인데… 클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무정의 아랫도리에 시선을 주던 광검은 손에 쥔 검은 천을 내밀었다.

 무정은 몇 번 물을 더 뿌린 후 천을 받았다. 허리 아래 둘둘 두르고 무정은 언제나 습관처럼 우물가에 걸터앉았다.

 헐떡이는 그의 크고 넓은 가슴이 번들거렸다. 광검은 그런 무정을 잠시 바라보다가 무정의 옆에 걸터앉았다.

 “보름 동안 누워 있었수. 우리가 마 대인에게 구출된 후부터.”

 “…….”

 짐작은 했지만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무정은 메마른 어투로 물었다.

 “다른 조원들은… 떠났나?”

 “후, 대장이 없는 낭인대가 무슨 힘이 있겠나? 해체되었네. 그리고 이젠 전장도 진정이 된 듯하고. 일도 없을 것 같고 해서 다들 떠났네. 하나같이 안부 전해 달라더군.”

 “…….”

 고개를 끄덕이던 무정은 괜스레 가슴 한쪽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감정이다.

 비록 싫든 좋든 그들은 동료였고 사선을 함께 넘었지만 이곳은 전장. 그런 감정은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동료를 잃었을 때 느끼는 슬픔과 허전함을 조금이나마 적게 해준다. 그저 친하지 않으니 슬플 것도 없다는 식의 자기 위안이었다.

 무정 역시 수많은 전장에서 그러한 점을 깨닫고 있었고 자신도 그렇게 해왔다.

 한 부대가 손실되면 또 다른 부대로 편승되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그렇기에 무정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모멸감에 이어 허전함이란 감정이 들다니…….

 “나는 그 말을 전하기 위해 남아 있었네. 오늘 대장을 봤으니… 나도 떠나겠어. 사실… 아들놈 본 적도 오래되었고…….”

 “결혼… 했나?”

 “핫핫, 했지. 그것도 꽤 빨리 했지. 아들놈이 이제 일곱 살이니…….”

 무정이 출정하기 전 군문을 나서겠다는 말은 받아들여졌다. 일행이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마 대인은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낭인대를 해체했다. 사정을 짐작한 무정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 이상한 표정은 짓지 말게. 비록 광검이라 불리기는 해도 기실 나도 보통 사람일 뿐이니…….”

 무정은 남궁추가 결혼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낭인대 중 그가 가장 모르는 인물이 있다면 남궁추와 고죽노인이었다.

 담담한 광검의 말에 무정도 담담히 고개를 끄떡였다. 광검은 잠시 무정의 얼굴을 보다 일어섰다. 그리고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안휘성(安徽省) 남궁세가(南宮世家)의 셋째라네. 이제 세가로 돌아가니 언제 한번 들르게나.”

 광검의 몸이 사라지면서 그의 음성도 사라졌다. 무정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철 지난 꽃들이 잔바람에 공중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그것들의 움직임이 왠지 무정의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

 

 “후욱!”

 연무장의 중앙에서 무정의 지친 호흡이 들려왔다. 어느덧 그가 일어난 지도 근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정은 요즘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 자신도 더 이상 전장에 나서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이 의욕이 일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더 이상 싸울 이유도 없었고.

 우량하 족의 야달목차는 오이랏트의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그의 부하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본진 삼천 대(對) 천오백의 주력 부대 싸움은 마 대인이 어림군(御臨軍)의 화포와 화포수를 구해왔을 때부터 명군의 승리였다.

 마 대인은 이후 무정에게 달려갔고 오이랏트는 이를 정예 어림군의 공격으로 오해를 해 본진에 알려 회군하여 돌아갔다.

 오이랏트야 감숙에서도 한참 위쪽인 고원 근처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었고 국경 근처에서 도발해 왔던 우량하 족이 지리멸렬하게 되니 사실상 휴전(休戰)이 된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났다.

 위진천과 타마륵이 살아난 것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각자 몇 발의 화살을 맞았지만 천운(天運)이었는지 둘은 목숨을 건졌다.

 어차피 소강상태(小康常態)의 국면에 접어든 전장이기에 타마륵을 죽여 소뢰음사를 적대시할 필요는 없었다.

 마 대인은 그렇게 타마륵을 치료하고 놓아주었다.

 타마륵은 마라불의 시신을 화장해 유골(遺骨)을 만들어 가지고 돌아갔다.

 위진천은 멍한 상태에서 구조되었는데 심적 고통이 큰 듯 아직도 부상이 낫지 않았다며 군문의 복귀를 거부하고 있었다.

 무정도 이젠 군의 일보다는 무공에 매달렸다. 그가 아는 무공은 군에서 배운 무공 외에는 없었다. 그는 오로지 그것만을 갈고닦았다.

 그렇게 무정은 자신의 무공을 하나하나 돌아보기 시작했다.

 문득 무정의 시선이 초우로 향했다. 지금 초우는 칠 척 이십 촌의 크기가 아니었다.

 약 사 척 이십 촌 정도의 묵직한 도가 되어 있었는데 뒤의 창대 부분이 돌려 조립하는 용도로 만들어져 있었다. 문득 그는 섬서 영중의 목 노야가 생각났다.

 

 목 노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의 흰 수염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무정, 자넨 이 참마도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 줄 알고 하는 소리인가?”

 “…….”

 소리 없이 무정의 고개가 끄떡여졌다. 정말 잘 알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비록 기물이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친구로서 잘 안다는 뜻이었다. 목 노야는 그런 무정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사람이 자루를 잘라 달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노인은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무정은 단호했다.

 그것은 마 대인의 권유였다. 강호에서는 참마도를 잘 쓰지 않는다.

 혹여 쓰더라도 말이나 베는 하류로 취급하기 일쑤였고 그런 선입관은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같이 뭉뚱그려 생각되었다. 무정이 눈을 뜨자 마 대인이 제일 먼저 권유한 것이 그것이었다.

 목 노야는 갑자기 두 손으로 참마도를 힘겹게 들었다. 그리고는 옆에 놓인 산수(酸水) 통에 집어넣었다. 잘 안 되는 듯 놀랍다는 표정으로 통을 지켜보다 사람을 시켜 산수를 더 붓게 하고는 눈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뭔가 된 듯 고개를 끄떡이며 통에 담가진 초우를 보다가 목 노야는 초우를 들어 올려 무정의 눈앞에 내려놓았다.

 터덩!

 “…….”

 무정의 눈이 커졌다. 탁자 위에 올려진 사 척 길이에 육 촌 너비의 초우는 그 도신에 엄청난 수의 산수화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은은한 묵광이 나는 백철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 문양은 자신이 차고 있는 무구류에도 있는 문양이지만 무늬의 간격이 자신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이 참마도는 일반적인 명검, 명도와는 비교가 안 되네. 이 문양을 보게. 그리고 그 간격을. 이건 최소한 금속을 오만 번 이상 접고 두드려야 하네. 그러면서도 절대 깨지거나 눌어붙어서도 안 되고. 난 지금껏 이런 도를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이네. 물론 이 같은 재질의 자루도 마찬가지일세. 그런데 잘라 달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목에 핏대를 세운 목 노야는 거의 애원 수준이었다. 금속을 오만 번 이상 접고 두드릴라치면 최소한 십 년 이상 걸린다.

 게다가 이런 매끈한 표면을 가지려면 족히 사오 년 이상은 숫돌에 갈아야 한다.

 그래야 강도와 표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게 중심이 정확히 맞는 도가 되는 것이다.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참마도는 한 장인(匠人)의 일평생이 담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목 노야의 말에 무정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러나 갈등하는 듯 잠시 시간을 두고 아무 말 없더니 곧 다시 예전의 눈빛을 찾았다. 흔들리지 않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휴, 알았네, 알았어. 삼 주 후에나 다시 오게.”

 눈치를 살피다 무정의 의도를 짐작하고 목 노야는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며 손을 흔들었다.

 제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야 하는 일이었다. 육십을 바라보는 그 혼자는 무리였고 당분간 다른 일에는 손을 떼야 할 것이다.

 무정은 작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리곤 몸을 돌렸다.

 

 삼 주 후 그가 왔을 때 목 노야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수석제자(首席弟子) 관산(寬뻬)이 그를 맞았다. 목 노야는 무리를 해 쉬고 있고 자신이 모든 것을 일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눈을 돌려 탁상 위에 올려진 초우를 보았다. 사 척 이십 촌의 길이에 손잡이 끝에 주먹보다 조금 작은 구슬이 달려 있었다.

 외견상으로 보이는 것은 그 정도가 다였다. 그 외에 날이 예리하게 서 있다는 정도? 무정이 초우를 잡았다.

 “…….”

 무정의 눈에 감탄의 빛이 일었다. 마치 예전 장창 길이의 초우를 쓸 때처럼 무게 중심이 정확하게 맞았다.

 자루를 잘라내 어느 정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전혀 그런 감은 없었고 마치 처음부터 이 정도의 길이인 듯했다.

 과연 섬서제일장(陝西第一匠)으로 불리는 목 노야의 솜씨였다.

 “그 구슬은 보통 구슬이 아닙니다. 일 촌 정도의 두께에 안쪽에는 연납이 들어 있습니다. 그 연의 무게를 가감하여 중심을 맞춘 것입니다. 사부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관산의 입이 조용히 열렸다. 그 말에 무정은 손잡이 끝의 구슬을 자세히 보았는데 조그마한 틈도 없었다.

 정말 대단한 솜씨였다. 그때 관산의 손이 무언가 내밀었다. 초우의 잘려진 자루였다.

 “사부님께서는 자루 자체의 질도 상당히 좋아 버리기는 아깝다고 하시면서 이것도 만드셨습니다. 여기 이 부분을 참마도에 끼워보십시오.”

 관산의 말에 무정은 자루를 받아 나선형의 강선이 있는 곳을 초우의 손잡이에 대고 돌렸다.

 끼릭끼릭.

 금속의 마찰음이 들리며 다시 칠 척 이십 촌의 초우로 변했다. 자루 끝에는 또 하나의 구슬이 붙어 있었다. 그 구슬의 길이 때문에 육 촌 정도가 더 길어지기는 했지만 역시 무게 중심을 맞춘 듯했다.

 전체 무게는 세 근쯤 더 무거워진 것 같았지만 무정에게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새로워진 초우의 모습에 무정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품속을 더듬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작정이었다. 무기 이전에 친구이기에.

 한데 관산의 손이 올라가더니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 돈은 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저 당신이 손을 대셨다는 것만 기억해 달라 하시더이다.”

 관산은 손을 흔들며 말을 마치고는 곧장 안채로 들어갔다. 최고의 것에 손을 대어 다시 최고의 것으로 돌려놓는 것. 장인들에게는 꿈의 경지였다.

 창작(創作)보다도 더욱 힘든 것이 바로 이러한 보수(補修)였던 것이다.

 문득 무정의 뇌리에 만족스러워하는 목 노야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품속에서 손을 뺐다. 그리고는 초우를 들어 자세를 잡더니 옆에 있는 집채만 한 바위를 긁었다.

 쩌엉!

 엄청난 소리와 함께 단단한 화강암이 두 치 두께의 홈을 만들었다. 그는 왼쪽으로 일 보를 옮겼다.

 그리고 이번엔 초우의 자루를 빼내어 옆에 내려놓고는 자세를 취해 다시 내리그었다.

 쩌엉!

 또다시 화강암에 홈이 파였다. 동일한 자세, 동일한 힘으로 내려친 일격에 무정은 잠시 그 흔적을 바라보다 초우를 도갑에 넣고 자루를 챙겼다.

 그의 고개가 내원 쪽으로 깊숙이 숙여졌다가 일어섰다. 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목 노야는 눈에 뿌연 안개가 서린 듯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뻗어 각기 한 줄씩 손가락을 대고 밑으로 훑었다.

 같았다. 마치 그림을 그린 듯 그의 손끝에서 동일한 도의 잔떨림이 느껴졌다. 완벽하게 무게 중심이 맞춰진 것이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형언할 수 없는 환희의 눈물이었다.

 무정은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니라 보여주고 남겨준 셈이었다. 이 흔적은 당신의 업적을 세상에 알려주겠다는 무언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고맙… 네, 무정.”

 목 노야는 목이 메었다. 그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어느새 안채에서 그의 제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장인을 꿈꾸는 그들은 무정의 칼질이 남긴 의미를 알고는 조용히 허리를 숙이기 시작했다.

 섬서제일장(陝西第一匠)에서 천하제일장(天下第一匠)으로 불리게 될 자신들의 사부에 대한 무한한 공경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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