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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무정지로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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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격류는 그 연무 방법이나 파훼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성하기 힘들다.
하나 분명히 전단격류는 세상에 존재한다. 이미 익힌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

전장에서 거두어지고 자라나, 전장의 사신으로 군림해 온 무정.
생사를 넘나드는 험난한 전장을 겪어온 그가 자유를 얻어 마침내
칼날 위 인생을 사는 무인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드는데...
무정의 거친 기지개에 무림은 거대한 요동을 시작하는데...... ."

 
3 화
작성일 : 16-07-20 16:35     조회 : 728     추천 : 0     분량 : 6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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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료라는 이름의 사람들

 

 

 

 석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소년의 부모님인 듯한 사람들이 보인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머리에서 허연 뇌수를 뿌리며 널브러져 있고 어머니로 짐작되는 여인은 옷이 모두 찢겨진 채 사지가 잘려져 흩뿌려져 있다.

 “화(花), 화야, 화야…….”

 조그만 입술이 벌어지면서 울먹이는 소년은 한 여아의 시신을 붙잡고 있었다.

 소년은 여아의 이름을 끝없이 되뇌이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시신은 목 윗부분이 없었기에…….

 “크… 크흑…….”

 신음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소년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옅은 달빛에 비친 소년의 얼굴은 처참했다.

 온유하고 부드럽던 소년의 인상은 오른 뺨에 남겨진 긴 검상으로 인해 흉측하게 변해 버렸다. 흘러내리는 붉은 피로 인해 더욱더 흉측해 보인다.

 흐르는 피의 양이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움직이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그런 소년의 눈에 뭔가 보였다. 저만치에 긴 머리가 땅에 흐트러져 있는 한 개의 수급이 그것이었다.

 “화야… 오, 오빠다… 연 오빠야… 화야… 화…….”

 안고 있던 차디찬 시신을 조심스레 내려놓은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소년은 중얼거리면서 천천히 수급을 들어 올렸다.

 태어나서 이토록 신중한 행동은 처음 해본다는 듯 일말의 엄숙함까지 느껴진다. 헌데 시간이 흘러 얼굴이 보이도록 돌려진 순간 소년의 얼굴은 석상처럼 굳어졌다.

 소년의 손 위에 조심스레 받쳐 올려진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흰 얼굴 가죽만 씌워 있을 뿐이었다.

 

 무정은 침상에 반쯤 걸터앉아 있었다. 잘 발달된 구릿빛 근육은 숨을 쉴 때마다 꿈틀대며 번들거렸다.

 몸에 있는 수많은 상처들은 땀투성이의 몸에서 길게 반짝이며 한껏 그 모양을 뽐내고 있었다.

 “후우!”

 긴 한숨과 함께 무정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오른쪽 얼굴의 긴 흉터가 흐르는 땀에 더욱더 깊게 파여 보였다.

 “꿈… 인가……?”

 오랜만에 꿔보는 가족의 꿈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한데 이젠 가족의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만큼 시간이 너무나 많이 흘러 버린 것이다. 아무도 기억을 못할 만큼…….

 무정은 몸을 움직여 방을 나섰다. 이상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차가운 우물물에 목욕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촤아악!

 시원한 물줄기가 오월의 아침 햇살을 갈랐다. 무정은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올린 후 몇 번을 더 붓고는 우물가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동안 오랜 시간이 흘렀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상현촌에서 구출된 때가 그의 나이 여섯 살쯤. 그리고 지금의 무정은 스물여섯이었다. 부모님 얼굴, 동생 얼굴도 이젠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의 복수? 그런 것은 예전에 잊었다.

 처음 출정한 열네 살 때만 해도 그의 모든 신경은 복수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온몸에 피 칠을 하고 돌아온 그날 그런 마음은 저기 마음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복수라는 것은 핑계였다. 죄책감을 느낄 수 없도록 자신에게 말하는 핑계였다.

 그리고 그때 처음 느꼈던 생각, 어쩌면 이렇게 전장에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엄습했고 이후에는 살기 위해 무공에 집착하며 몸을 만들었다.

 이제 복수 따윈 생각도 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그냥 베어 넘길 뿐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오 년 전부터는 달라졌다. 이젠 핑계조차도 필요 없었고 인간이라면 들어야 할 죄책감조차도 없었다.

 그냥 벨 뿐이다. 아니, 가장 빠른 시간에 최소의 힘으로 효과적인 살인을 하는 것, 그것을 목표로 삼았다.

 방법은 구분 짓지 않았다. 군문의 특성상 아군에게도 해가 될 수 있는 독만 빼고는 유엽도(柳葉刀)든 비표든, 심지어는 길가의 돌멩이라도 상황만 되면 무조건 사용했다.

 하나 그런 것은 현재 그에게는 그리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몸과 두 팔에 끼고 있는 묵빛 수갑, 다리의 각철과 스무 정의 투환침,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칠 척 이십 촌의 초우만 있으면 충분했다.

 무정은 감았던 눈을 떴다.

 이곳은 감숙성의 용현천호소였다. 낭인대의 대주가 된 그는 마 대인의 직속 부대로 배속되어 이곳으로 옮겨왔다.

 군막에서의 생활과는 달리 이곳은 인근 장가장(張家莊)을 징발해 사용하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사람 사는 곳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다지 크거나 훌륭한 시설은 아니었지만 예전의 군막에 비한다면 궁궐이나 마찬가지였다.

 장씨 세가는 대대로 교역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도지휘사사가 있는 섬서성으로 주 무대를 옮긴 관계로 이곳을 비우게 되어 팔려고 내놓았으나 워낙 전선이 가까워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군에 헌납하고 군과의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계획으로 천호소로 사용하라고 내놓은 것이다.

 교역상을 하는 그의 직업상 상당히 좋은 포석이라 할 수 있었는데 어쨌거나 무정이 생활했던 군막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생활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마 대인이 오 년 전 그가 거의 죽다시피 하여 돌아왔을 때 무슨 심정인지 『논어』나 『맹자』 등을 거의 강압적으로 읽으라고 해 괴로울 뿐이었는데 자꾸 그렇게 읽다 보니 조금은 재미있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무정은 그다지 힘들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새벽 여명이 어느새 완전히 사라졌다. 처마 밑의 거미줄에 아롱한 이슬이 점차 빛을 내며 타 들어가고 있었다.

 하루의 업무가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무정은 고개를 약간 내렸다.

 그 처마 아래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반백의 노 무인이 무정을 지그시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일찍 일어났구나, 정아.”

 “평안하셨습니까, 대인?”

 반백의 머리를 정갈히 뒤로 넘긴 무인. 서글한 눈매에 회색 수염이 제법 긴 이 인물은 이젠 육십을 바라보게 된 천호 마영령이었다.

 약 열 개의 백호소로 이루어진 천백여 명의 군졸을 거느린 무인이 바로 그였다. 마 대인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무정을 바라보았다. 새벽 댓바람에 물을 끼얹은 것을 보니 아마도 악몽을 꾸었으리라.

 그의 눈매에 측은함이 묻어났다.

 “악몽을 꾼 게로구나.”

 “…그렇습니다.”

 “오늘 임무에는 지장이 없겠느냐?”

 “염려 마십시오, 대인. 근심은 거두셔도 좋을 듯합니다.”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아침 공기를 갈랐다. 마영령은 그런 그를 보고 고개를 끄떡이며 뒤돌아섰다.

 “조심하거라.”

 “…….”

 무정은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허리를 펴고는 앞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마 대인을 바라보았다.

 오 년 전, 무정이 거의 죽을 뻔한 날부터 무정의 신상에 부쩍 신경 써주는 것을 느낀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허리를 펴고 신형을 돌려 자신의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

 

 “카아악, 퉤! 제에미, 날도 더운데 이것들은 대체 어디 박혀 있는 거야?”

 “히힛, 성님, 몸이 근질근질함갑네요?”

 “니미, 이 자식이 알면서 뭘 물어.”

 “에이, 상귀(上鬼) 성, 대장이 언제 틀린 것 봤수? 진득하니 기다려 보쇼.”

 “니미! 잘났다, 이 자식아!”

 더벅머리 두 사내가 지껄이는 대화에도 아랑곳 않고 무정은 묵묵히 앞만 보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형형색색의 인간들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병기도 창(槍), 검(劍), 도(刀), 단창(短槍), 쌍검(雙劍)에 궁(弓)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무기들을 각자 꿰차고 있었다.

 “쯧쯧… 저것들도 무공 좀 한다고 예까지 왔으니 원. 낭인대라 하기도 이젠 낯부끄러워서, 에잉~”

 “카악, 퉤! 어이, 영감! 댁이나 잘하쇼! 그 나이에 잘못하면 뼈 부러지겠소!”

 “이노무 자슥이, 넌 위아래도 없냐?”

 “위아래? 그건 계집질할 때나 찾으쇼, 영감! 아, 이런 이런! 이젠 서지도 않겠구먼! 어이, 미안해, 영감!”

 “이런 발칙한…….”

 딴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둘이서 킬킬대던 더벅머리 청년들은 이번에는 까치집 상투를 튼 노인과 입씨름 중이었다.

 걸쭉한 농이 왔다 가고 노인의 손에서 시퍼런 단창이 막 나올 때였다.

 “조용…….”

 굵지만 나직한 목소리가 중인들의 머리를 울렸다. 무정이었다.

 그는 지금 안력을 높이고 있었다. 이곳은 용현천호소에서도 오십 리 이상 떨어진 곳인데 오늘 낭인 부대는 척후 임무를 띠고 잠복 중이었다.

 마 대인은 며칠 전 조금 이상한 첩보를 접했다. 건주 여진족 중 우량하[兀良哈] 족의 진영에 방수(傍手)가 있어 보인다는 심상치 않은 정보였다.

 물론 그동안 양측 다 수십 년 동안 싸워온 이력은 있다. 대대적인 전투는 몇 번 없었어도 상당한 규모의 전투는 매일이다시피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껏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은 명군이었고 그 중심에는 무정을 필두로 한 낭인대가 있었다.

 그렇기에 우량하 족이 방수를 데려왔다는 것도 사실 일리는 있었지만 문제는 초원의 민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에 있었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기에 타 민족과의 연수는 사실 믿기지가 않았다.

 “반뇌(半腦), 비연(飛燕), 그리고 고죽(古竹) 노인!”

 이름이 불린 세 사람이 나란히 무정의 곁으로 움직였다.

 반뇌 우세중(旴世重)은 낭인대에서도 책사의 위치에 있는 이십 대 후반의 얼굴이 허연 청년이었고 고죽노인은 염소수염을 한 손으로 꼬며 주름살 깊은 얼굴에 까치 집 상투를 튼 머리를 하고 있었다.

 상귀(上鬼), 하귀(下鬼)와 투닥거리던 노인이 그였다.

 비연이라 불리는 사람은 화수련(華壽蓮)이란 이름을 가진 여인으로 상당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화산파(華山派)의 제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으나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강호에서 뭘 하고 들어왔는지 묻지 않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니까.

 “저기 저 앞에 홍의를 입은 자들이 보이나?”

 묵직한 무정의 말에 세 사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군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 기마병인 듯했는데 숫자는 약 삼십 기(騎) 정도? 그중 약 십 기 정도는 궁을 든 것으로 봐서 궁기병과 보기병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형태의 호위 대형이었다.

 그 중간에 붉은 천에 둘러싸인 사람들이 보였다.

 “음… 저들은 서장(西藏) 뇌음사(雷音寺) 사람들인 것 같군요. 고죽노인 생각은 어떠십니까?”

 “맞네. 저 검붉은 가사는 천축에서 흔히 쓰는 색깔이네. 라마라고 하던가? 다만 대뢰음사(大雷音寺)인지 소뢰음사(小雷音寺)인지는 모르겠네.”

 반뇌와 고죽노인이 서로의 의견을 확인했다. 그때 비연이 말문을 열었다.

 “소뢰음사에요”

 “…확실한가?”

 “그들의 목에 달린 하얀 것은 해골을 상징하는 염주일 겁니다. 대뢰음사는 그래도 정(正)에 속하는 문파라 알고 있습니다. 중원과 같은 묵빛 염주를 선호한다고 들었구요.”

 무정은 어차피 척후 임무이기에 사실을 확인한 지금 이대로 귀대하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마음에 걸렸다. 근 이십 년 이상을 전장에서 살아온 그의 육감에 뭔가 다른 것이 더 있을 것 같았다.

 천축의 승려라니……. 서장에서 신강(新疆)을 거쳐 몽고(蒙古)로 왔단 말인가? 그 먼 길을? 잠시 생각하던 무정이 결정을 내렸다.

 “매복한다. 제일 목표는 궁기병. 광검(狂劍)과 패도(覇刀)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후 보기병을 친다. 라마들은 건드리지 말도록.”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정은 잠시 광검과 패도를 돌아보았다.

 광검 남궁추(南宮推). 그는 남궁세가(南宮世家) 사람이고 검술도 상당하다. 나이는 삼십 대 초반 정도?

 단정히 묶는다고 자신은 주장하지만 거의 난발 수준이었고 때가 절은 무명옷은 이미 누렇게 변해 있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삼 척이 조금 넘는 검을 쓰며 항상 뭔가 귀찮아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패도 구서력(臼瑞力). 그는 엄청난 덩치를 자랑했다. 온통 울퉁불퉁한 근육 덩어리인 그는 힘에 관해선 단연 최고였다. 키도 무정보다 주먹 하나는 더 컸으며 그가 쓰는 도는 길이만 육 척에 이르는 거도(巨刀)였다.

 그들을 뒤로 돌리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광검은 일단 손을 쓰면 돌변하여 적아의 구분이 없었고 패도는 반경이 너무 커서 아군에게 해가 되었다.

 대기조인 이들이 투입되는 것은 주로 적의 군영을 단독으로 휘젓거나 최후의 순간일 때였다.

 무정은 말과 함께 신형을 돌렸다. 그와 같이 있는 사람들, 비록 여덟 명뿐이지만 그 누구보다 든든했다.

 오 년 전에는 근 백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 오 년이 지난 지금 살아남은 자는 겨우 이 여덟 명뿐이었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할 수 있는 그들이기에 믿고 뒤를 맡길 수 있었다.

 일행은 먼지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신속히 이동했다. 아무리 대단한 자들이라도 상관없었다. 무정은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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