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는 은밀하게 황성의 움직임을 알아보는 부하들의 보고를 받고 새로운 지시를 내리느라 며칠째 집무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카타리나 후비와 다리우스 황자 그리고 그의 외삼촌인 알렉산더 듀칸의 뒷조사와 그날의 행적을 보고 받았다.
“그게 단가?”
“네, 죄송합니다. 백작님.”
“아니다. 그게 어떻게 자네 탓이겠나. 어쨌든 그들의 감시를 소홀히 하지 마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만 돌아가 봐라.”
“네, 그럼 이만.”
보고를 마친 허름한 복장의 남자가 생김새와는 다르게 절고 있는 모습으로 허리를 숙여 경례를 마친 남자는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 드디어 갔군요. 언제 봐도 적음이 안 돼요, 적응이.”
루카스의 옆에서 보고내용을 정리하던 주드는 낑낑거리듯 중얼거리며 보고서 작성을 마쳤다.
글링턴 백작이 백작이 소유하고 있는 기사단에는 고대 어로 유령, 귀신 등의 의미가 있는 라르바, 라는 이름의 부대가 있었다. 이 라르바 부대원들은 몸이 빠르고 메 몸을 은닉하는 능력이 뛰어나 주로 백작의 눈과 귀가 되어 각 지역에 흩어져 정보를 모으는 일을 했다. 워낙에 신출귀몰한 움직임으로 사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조금 전 집무실에 있던 남자도 이 사신 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건 좀 수상한데요?”
“우리도 눈치 채기 못하게 조심히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지.”
“에이 설마요, 귀족 중에 자기들이 사신에게 쫓기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요.”
“그거야 모르지. 마스터 급의 기사들이 주변에 있다면 누군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수도 있고, 우리가 조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으니 단순히 이쪽 감시망에 걸려 들기 전 일 수도 있지. 어쨌든 그들의 움직임은 조금 더 두고 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네.”
처리해야할 서류로 눈을 돌려 일을 하고 있던 주드와 루카스의 귀에 마틴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카스 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라는 루카스의 목소리에 집무실로 들어온 마틴이 일레인의 청을 전했다.
“그래? 정원 출입은 당장 오늘부터 허락한다고 전하고 정원사에게 전달해서 그녀가 특별히 원하는 식물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정원에 심으라고 전해. 그리고 성안에 있는 식물은 그 무엇이든 그녀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전하고.”
“외출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외출은 내일 오후 5시에 내가 진주 방으로 간다고 전해. 오랜만에 잠행을 나갈 테니 평범한 말을 준비시키고 시녀에게 미리 연락해서 내일 입을 평범하고 무난한 옷을 미리 준비시켜.”
여전히 서류에서 눈을 떼지는 않았지만, 지시를 내리는 동안 그는 오랜만에 그녀와 단둘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고대하며 입꼬리를 슬그머니 말아 올렸다.
루카스의 허락을 받은 일레인은 오전 치료를 끝내고 잠시 정원에 나왔다. 마틴이 미리 언질을 주어서인지 일레인이 정원으로 들어서가 정원사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일레인님 이십니까?”
“네, 정원에 있는 꽃을 좀 보고 싶어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정원사의 안내로 정원을 돌아다니며 서 일레인은 생각보다 삭막해 보이는 정원의 모습에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이곳은 치료사들이 약재를 재배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내어준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식물들이 미처 자라지기 전에 성에서 쫓겨나다시피 했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무책임한 전 치료사들의 만행으로 아름다워야 할 정원의 끝자락에는 그저 잡초만 무성한 땅이 펼쳐져 있었다.
“이 땅이 제가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땅인가요?”
“네, 약초를 심으셔도 되고 꽃을 심으셔도 됩니다. 무엇이든 치료사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정원사의 대답에 일레인은 미리 챙겨 놓은 접힌 종이를 꺼내 보았다.
“혹시 백동백, 문라이, 제이라 이 중에서 여기에 심을 수 있는 꽃들이 있나요?”
“문라이와 제이라은 바로 파종이 가능합니다. 백동백은 원하시면 상회에 연락해 구해 오면 됩니다.”
“그럼 그 세종을 여기나 골고루 심어주세요. 그리고 구하시는 김에 몇 개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일레인이 환하게 웃으며 물어보자 정원사가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박한 정원사 덕분에 질 좋은 장미 잎과 필요한 허브 과의 식물들이 적힌 리스트를 건네주고는 장미 잎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수확이 좋은걸?”
“어머 아가씨 이게 다 뭐에요?”
잠시 나갔다 들어온 사이 일레인이 방안 곳곳에 조금 전 땋아서 깨끗이 씻은 장미 잎사귀들을 테이블 위에 한 겹씩 올려놨다.
“장미 꽃 잎사귀. 이걸로 뇌물을 만들어 볼 생각이거든.”
“뇌물이요?”
“응. 뇌물.”
다른 곳도 마찬 가지일지 모르지만 하늘 궁정에 있을 때는 그녀에게도 종종 뇌물이 들어오곤 했다. 새로 들어온 신입 관원이 제 주변 사람들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는 차원에서 준비하는 작은 성의로 보통은 개인의 능력과 연관된 뇌물들이 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레인 역시 성에 새로 들어왔으니 잘 부탁 한다는 의미의 뇌물을 만들어 볼 생각 이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느라 그녀의 말을 들은 페니의 안색이 어두워 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페니는 조용히 일레인을 도와 잎사귀들을 정리하며 어떻게 설명해야 그녀의 기분을 상하지 않고 뇌물이 좋은 게 아니라는 뜻을 전달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