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章 벽력왕(霹靂王)
- 앞으로 이자의 별호는 벽력왕(霹靂王)으로 한다.
1
“맙소사!”
환교 부교주는 이를 갈며 눈앞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비명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그 비명을 터트리는 이가 자신의 수하들이란 점이었다.
바람이 자신에게 불어와 역한 피비린내가 자신의 코를 찔렀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
부교주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놈의 몸속에서 천둥 같은 괴이한 소리가 울려나오더니, 완전히 변해버렸다.
손과 짧은 몽둥이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일렁이면, 어느샌가 자신의 수하 중 하나를 격중시키고 있었다.
그 속도란 것은 직접 보지 않았다면 결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극쾌(極快)!
이미 쾌의 수준을 넘어선 빠름이었다. 대체 어떤 수련을 거쳤기에 저 나이에 저 정도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
부교주는 손안에 잡혀 있는 쇠 구슬을 꽉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흥건한 땀이 축축하게 느껴졌다.
“……!”
부교주는 자신이 상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싸움이 시작된 지 불과 일각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수하들 중 절반 이상이 쓰러져서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젠장,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왔단 말인가? 기가 막히는군.”
부교주는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침부터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더니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가?
어쨌거나 벌어진 일이니 수습을 해야 했다.
저벅, 저벅, 저벅…….
부교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었다. 이 순간에도 수하들이 저 괴인에게 쓰러져가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저놈은 자신을 능가하는 실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수하를 다 쓰러트리고 일대일로 남기 전에, 힘을 더해야 했다.
치사한 방법이긴 했으나,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놈이 눈치 채지 못하게, 아주 은밀하게 말이다.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부교주의 앞으로 수하 하나가 날아들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부교주를 덮치던 수하의 몸에서 일었다. 어느새 부교주의 손을 떠난 쇠 구슬이 그의 등에 박혀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다.
“흐흐흐…….”
부교주의 입가에서 잔인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뜬 채 즉사한 수하를 밟으며 계속 앞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움직이는 그의 신형이 점점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무흔무영술(無痕無影術).
환교가 자랑하는 은신술(隱身術) 중 최고의 것이다.
신형은 물론이거니와 그림자와 기운까지 없앤다는 환술.
환교의 최고급 살수들이자, 대륙 최고의 살수이기도 한 혈령(血靈)이라 불리는 고수들만 익히고 있는 기술이 펼쳐지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그의 신형이 사람들의 눈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파라라락.
송학, 아니 한청연에게서 뺏어 입은 무영의 옷이 미친 듯이 펄럭거렸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들이 마치 옷 안에 잔뜩 공기가 주입되어서 먼저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바람처럼 쇅쇅 소리를 터트렸다.
슈가아악!
허공을 찢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환두대도가 무영에게 쏟아져 내렸다.
그 거침없는 기세가 마치 바위라도 두 동강 낼 것 같았다. 그러나 무영은 뒤로 움직이지 않고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르르릉.
그의 몸속에서 천둥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두 개로 갈라진 단전.
거침없이 그의 혈도를 따라 폭주하는 양기(陽氣)와 음기(陰氣)가 몸 내부에서 충돌을 일으키며 가공할 기운을 만들어냈고, 그 기운이 신형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지금 무영이 운용하고 있는 벽력신공(霹靂神功)의 단점은 내력의 소모가 크다는 점이었다. 아직 벽력문의 영약을 3할도 채 흡수하지 못한 무영으로서는 빠르게 승부를 내야 했다.
쇄애애액.
무영의 오른손에 쥐어진 금강저가 떨어지는 환두대도를 향해 호를 그리며 뻗어 나갔다.
퍼펑! 쨍, 짜아앙.
폭음과 함께 요란한 쇳소리가 사람들의 귀청을 뒤흔들었다.
“……!”
환교도들의 눈에 절망감이 어렸다.
너무 빠르다. 그리고…… 너무 강력하다.
처음엔 풋내기로만 보았던 저 청년이 자신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수임을 뼈저리게 느껴야만했다.
무영의 금강저는 두 개의 환두대도와 부딪치면서도 끝까지 방향을 잃지 않고 반원의 호를 그려냈다.
그러자 두 개의 도는 도신(刀身)이 동강 부러져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퍼퍽.
환두대도가 부러지면서 내상을 입어 주춤거리던 두 환교도의 얼굴에 무영의 주먹이 연달아 찍고 나왔다.
“커헉.”
“끄윽.”
짧고 간결한 타격이나 충격은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 못지않았다.
둘의 안면이 움푹 함몰되며 비명성과 함께 뒤로 나동그라졌다.
번쩍!
푸르스름하게 맺혀있던 금강저의 기운이 뒤로 뻗어 나갔다. 예리한 비수 모양의 기운이 수십 개로 갈라지며 휘황찬란한 장관을 연출했다.
마치 수많은 유성이 쏟아지는 모습에 무영의 뒤를 노렸던 이들이 숨을 들이켰다.
파파파아아앗.
오륙 명의 신형이 동시에 허물어졌다. 물론, 그 뒤에 있는 이들도 무사치 못했다.
샤아아아아앗.
한바탕 빛의 유성을 쏟아낸 뒤로 이어지는 기의 후폭풍. 보이지는 않으나 거대한 힘이 느껴지는 암류(暗流)가 쓰러진 자들의 뒤로 광풍이 되어 들이닥쳤다.
“으아아악.”
“막을 수가……. 커헉.”
“괴물이다!”
나름대로 일류급에 속한다는 정예무사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무영의 암류를 간신히 막아낸 고수들도 옷이 찢겨져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옷만 찢어진 것이 아니라 살갗까지 베어져 핏물들이 방울지며 흘러나왔다.
어느새 땅에 서 있는 환교도들의 숫자는 십여 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무영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을 때, 이런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영이 이렇게 강한 고수인 줄 진작 간파했다면 처음부터 이런 정면대결은 피했을 것이다.
아마도…… 환교의 장점인 환술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죽여라!”
환교의 총관이 발악하듯이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찰나 넋을 잃었던 환교도들도 땅을 박차고 무영에게 쏘아져 들어갔다.
되돌릴 수 없다면 남은 힘을 쥐어짜내서 싸워야했다. 그들이 아직까지 하나 믿는 것이 있다면, 저 청년의 공력이 거의 소진했을 것이라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분명 저 놈은 처음과는 달리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공을 회복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후우, 후우……. 좋아.”
무영이 거친 호흡을 다스리며 서늘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무영은 비록 짧은 시간의 실전이었으나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출도 후, 최초의 싸움.
그 싸움에 지나치게 흥분해서 벽력신공을 억제하지 못했다. 표현이 그렇긴 했지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쉴 새 없이 쓴 격이었다.
벽력신공의 특성상 내력 소모가 빠르기 때문에, 고수들이 아닌 자들에게는 내공을 최소화하는 공격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70여 명의 상대 중, 벽력신공을 상당히 끌어올려야 상대해야 할 자들은 겨우 서넛에 불과했으니까.
무영에게는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만약 교주가 총타의 정예를 데리고나간 상태가 아니었다면,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무영은 웃었다.
다수와 맞붙는 최초의 실전에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으므로.
상대를 파악하고 그 수준에 맞는 힘을 사용하는 것. 그것을 위해 늘 냉철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의 힘이란 건 무한한 것이 아니기에.
기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예전 암흑가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무턱대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냉정함을 잃지 않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될 공산이 훨씬 높았다. 실전 없이 오랜 기간 수련과 비무만 하다가 잠시 잊고 있던 것을 기억한 무영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지척까지 다다른 이들을 보았다.
쇄애애액.
모두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필사적인 기운 앞에서 무영은 심호흡을 하며 웃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평화로워졌다.
그 순간 무영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흐음……!”
기운을 숨기고 빠른 속도로 쇄도해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무영은 알아챘다. 포위한 채 공격을 뻗는 십여 명의 공격 사이로 그것은 아주 은밀하게 다가들고 있었다.
바로 부교주의 쇠 구슬이었다.
씨익.
무영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어디에나 꼭 이렇게 야비한 놈들이 있는 법이다. 그런 놈은 걸맞게 상대해주는 것이 바로 절대독종, 무영이었다.
무영은 지체 없이 구혈구궁보를 시전했다.
자연스럽게 발을 땅에 두고 툭툭 치는 그의 신형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아홉 번의 발짓으로 오 장 이내의 거리에서 네 방위를 모두 돌 수 있는 벽력문의 독문보법.
쇄애애액!
무영을 노렸던 환교 부교주의 쇠 구슬이 허망하게 애꿎은 허공만 가르며 날아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들이닥친 환교도들의 공격도 맥없이 무위로 끝났다.
“제왕혈권풍!”
무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환교도들은 숨을 꼴깍 삼켰다.
제왕혈권풍이란 무공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할 것이란 느낌이 확 들었다.
우르르릉.
또 다시 이는 천둥소리.
환교도들은 경기를 일으켰다.
저 천둥소리만 나면 동료들이 떼로 쓰러져갔다.
무영이 싸늘하게 웃는 가운데 시퍼런 강기를 머금은 주먹이 허공을 직진으로 돌파했다.
퍼퍼퍼퍼퍼어엉!
“으아아악!”
순식간에 여섯이 쓰러졌다. 그러나 무영은 멈추지 않고 잇달아 주먹을 내질렀다.
멈추지 않는 제왕혈권풍.
남은 네 환교도들은 치를 떨며 도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엉!
쇳소리가 일었다. 그러나 제왕혈권풍은 그들의 도검에 막힐 생각이 없다는 듯 무지막지한 힘으로 밀고 나가 환교도들을 삼켰다.
퍼어어엉!
폭음이 터졌다.
또 다시 이는 비명들.
그렇게 남은 넷도 쓰러졌다.
무영은 그 쓰러진 네 명의 뒤에서 멍한 눈으로 서 있는 부교주를 보았다.
그의 환술은 해체되어서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그런데 나타난 모습은 초췌하다 못해 엉망이었다. 머리는 산발한 듯 바람에 흩날렸고 옷은 갈가리 찢어져 있었다.
무영이 손을 들어 검지를 까닥거리며 오라고 했다. 그러나 부교주는 고개를 세차게 도리질치며 절대 불가하다는 뜻을 완강하게 표현했다.
“그래? 그럼 내가 가지.”
“너, 너는 대체 누구냐?”
“고무영.”
“젠장. 누가 듣도 보도 못한 그따위 이름을…… 끄아아악!”
그의 비명이 터졌다.
무영이 서슬 퍼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너 같은 놈들이 제일 싫다. 수하를 내세우고 뒤에서 암습이나 해?”
퍽퍽퍽!
“으아아악. 살려, 살려 줘!”
환교 부교주, 구환명의 구슬픈 비명이 한참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