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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벽력왕
작가 : 강호풍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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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빠른 천궁과 번개의 힘'을 얻은 차가운 사내 무영.
천하제일 미녀이며 강호의 십대후기지수이기도 한 왈가닥 빙령.
그들이 펼치는 호쾌한 강호진출기가 시작된다

 
13 화
작성일 : 16-07-20 13:41     조회 : 773     추천 : 0     분량 : 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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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태을리에서 월화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초입.

 모옥(茅屋)이 몇 채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위쪽에 위치한 모옥.

 두 칸의 방을 연결하는 마루와 제법 넓은 마당. 그 가운데 위치한 평상이 근처의 다른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방과 ㄱ자로 연결되는 부엌에서 대두가 툴툴거리며 밖으로 나오다가 평상에 누워 있는 무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 쌀이 다 떨어졌소. 이제 내일부터는 쫄쫄 굶어야 해요.”

 무영은 그 말에 기지개를 켜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점차 힘을 과시하며, 무영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하는 오전이었다.

 “그래? 그럼 쌀을 사야지. 그나저나 벽력군 할아버지는 왜 안 오는 거지? 벌써 엿새나 지났는데…….”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월화산에서의 치열한 격전이 있었던 다음 날, 무영은 홀로 그곳을 다시 찾았다.

 수없이 많은 복면인들의 시체들.

 그러나 어디에도 벽력군의 시신은 없었다.

 무영은 현장을 꼼꼼히 살펴보고는 환교도들이 결국 패해 도망갔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신없이 도망가다가 밟혀 죽은 것 같은 두 개의 시신이 그 증거였다. 죽어가면서도 공포의 기색이 역력한 얼굴들.

 대두와 빙령은 벽력군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가능한 먼 곳으로 몸을 피하자고 했지만 무영은 반대했다.

 오히려 바로 지척이야말로 안전한 곳이라는 주장을 폈고, 결국 자신의 집에 턱 하니 거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옳았다. 엿새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어쨌거나 지금 무영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벽력군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 노인의 엄청난 무위를 보면서 무영은 삶의 목표를 찾았던 것이다.

 강해지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사월회가 다시 세력을 회복해서 자신을 노리더라도 결코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웅심(雄心)이 똬리를 틀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 벽력군 역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건 아닐까?

 그러나 곧 고개를 젓는 무영이었다. 무공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무영 역시 싸움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었다.

 일곱 살짜리 아이들이 아무리 많아도 장정 하나를 당해 낼 수는 없는 법. 벽력군과 환교도들의 수준차이는 그 이상이었다.

 무영은 바로 그 점에 대해 며칠째 고심하고 있었다. 왜 벽력군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혹시 삐친 것일까?

 상체를 일으키며 대두의 걱정에 관심을 갖는 듯하더니, 이내 고민에 빠져 들어가는 무영이었다. 그 모습에 대두가 빽 소리를 질렀다.

 “형님! 참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당장 은자가 없어요. 방안에 있는 할머니 약값으로 얼마 남지 않은 것까지 다 썼다고요.”

 대두가 허기진다는 듯이 배를 움켜잡으며 말했다.

 그러자 안방의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고 빙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해. 계속 쫓기다 보니까, 신신 파파가 실수로 은자 주머니를 잃어버려서…….”

 수심에 찬 빙령이 말을 흐렸다.

 옆에서 신신 파파를 간호하느라 며칠 사이에 무척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외모만큼은 빛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청초한 아름다움이 은연중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두는 빙령의 등장에 당황하며 양손을 내밀어 저었다.

 “아, 아니 선녀님. 저는 그런 뜻이 아니고요. 무영 형님한테 말한 거예요.”

 “대두……. 저번에 읍내 나가서 전서구를 보냈으니까, 수일 내에 분명 본궁에서 날 찾는 사람들이 올 거야. 그때까지만 어떻게 해 봐. 몇 배로 꼭 갚아줄 테니까.”

 “아! 예……. 선녀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래 봬도 무영 형님이 능력은 있는 사람이에요. 맘만 먹으면 당분간 먹고 지낼 쌀 정도는 금방 구해올 거라고요. 사막 가운데 던져놔도 몇 년은 거뜬히 살 절대독종이거든요.”

 “그래? 그럼 왜 저렇게 굼벵이처럼 늘어져 있는 거지?”

 다정다감했던 그녀의 음성에서 갑자기 한겨울 삭풍이 느껴졌다. 무영은 평상 위에서 양반 다리로 고쳐 앉으며 그녀를 향했다.

 “안방까지 내줬더니 아예 집주인 행세를 하려는군.”

 “흥! 이왕 도와주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대두 좀 봐! 약도 달여 주고, 식사도 차려주고……. 넌 뭐니? 하는 짓도 없이 빈둥빈둥 놀기만 하고.”

 “빙령! 말이…… 너무 거칠군. 난 시끄러운 여자는 좋아하지 않아.”

 무영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더 기가 차는 빙령이었다.

 “누가 너한테 좋아해 달라고 했어? 가만히 보면 아주 은근히 웃겨! 내가 지 마누라처럼 말하는 게……. 어휴, 기가 막혀서.”

 빙령은 주먹을 허공에 대고 휘두르며 화를 쏟아냈다.

 당장이라도 한바탕 두들겨 패버리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무영은 생명의 은인이었다. 자신들을 도와준 벽력군은 무영 때문에 개입한 것이니까.

 무영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빙령은 더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 정도 얘기하면 움직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웃기는 녀석이네. 야! 당장 산에 가서 나무라도 해와. 그거라도 읍에 가서 팔라고! 내가 열 배, 아니 백배로 갚아주겠어.”

 빙령이 생각보다 거세게 몰아붙이는 모습에 오히려 대두가 불안해졌다.

 “저, 선녀님. 우리 형님이 고민이 있어서 그런 거지. 사실 게으른 사람은 아니에요. 어쨌거나 우리가 산 것도 형님 때문이고…….”

 대두는 너무나 아름다운 빙령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뒤통수를 긁었다. 그 광경에 빙령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미안해 할 사람은 태평한데, 엉뚱한 사람이 사과를 하고 있으니.

 빙령은 무영이 더욱 밉고 괘씸해졌다.

 조금만 더 도와주면 되는데……. 그러면 충분한 보상을 할 수 있는데. 그 순간,

 쨍그렁.

 무영의 소매 춤에서 뭔가가 빠져나와 평상 위에 떨어졌다. 그것은 줄로 엮은 은자 꾸러미였다.

 한눈에 보아도 상당한 양의 은자에 빙령과 대두가 눈을 치켜떴다.

 “어! 혀, 형님!”

 “뭐, 뭐야?”

 “이거면 몇 년은 먹고 살 걱정 안 해도 될 거니까, 잔소리 좀 그만들 하지. 원…… 마누라 바가지와 자식의 칭얼거림 같군. 벌써부터 이러면 정말이지 나중엔 어쩔지. 쯧쯧.”

 빙령과 대두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가 동시에 무영을 향해 말했다.

 “뭔 짓 한 거야?”

 “나쁜 짓 했소?”

 무영은 그들의 고함에 혀를 차며 평상을 내려섰다. 그가 사립문 쪽으로 방향을 잡자 대두가 급히 달려가 그 앞을 막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형님!”

 “뭐야?”

 “형님이 그랬잖수. 선량하고 약한 사람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지, 등 처먹는 대상이 아니라고.”

 “그랬지.”

 “그런데……. 왜?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이건 아니오.”

 대두의 얼굴엔 분노와 슬픔 그리고 배신감이 드러나 있었다. 무영의 굵은 검미가 일그러지는 순간, 빙령도 끼어들었다.

 “거칠게 살아왔어도, 그런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도둑질이나 강도질이라도 한 거야? 무영! 너 정말이지…… 이제 보니 안 되겠구나. 좀 맞아야 정신 차리겠니?”

 무영은 빙령의 얼굴을 보면서 찡그린 얼굴을 더욱 구겼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희한한 여자였다.

 세상에 화를 내는 모습도 저렇게 예쁠 수가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양쪽 볼에 살짝 들어가는 볼우물도 있었다.

 “보조개가 있었군. 왜 여태까지 그걸 못 봤지? 앙증 맞군……. 좋아. 마음에 들어.”

 “야! 내가 아무리 굶어 죽어도 더러운 돈은 쓰지 않아!”

 “형님! 저도요. 저도 손 씻었다고요.”

 대두는 자신이 모시는 형님이라, 빙령은 생명의 은인이라 차마 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벌써 사람 서넛은 죽이고도 남을 정도였다.

 “오해다.”

 무영은 짤막하게 말하고는 대두 옆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대두는 입술을 꽉 문 채로 다시 앞을 막아섰다.

 “형님! 돈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세요.”

 “그래, 맞아! 돌려줘! 이건 협객을 자처하는 나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행동이야!”

 “은자의 주인은 죽었어. 그러니 돌려줄 수가 없지.”

 무영이 낮고 싸늘하게 말했다. 그 말에 빙령과 대두의 안색이 백지처럼 변해갔다.

 “혀, 형님…….”

 “이이……, 나쁜 자식!”

 무영은 불끈 쥔 주먹을 서서히, 그것도 동시에 들어 올리는 둘을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지내온 오누이같이 보이지 않는가?

 “그 은자는 환교도들의 병장기를 판 거야.”

 “……!”

 빙령과 대두의 얼굴이 일순간에 멍청해졌다. 무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닷새 전에 나 혼자 그곳에 갔었던 건 기억하나? 그때 제법 비싸 보이는 검들을 수거해서 읍에다 내다 팔았지. 제법…… 쏠쏠했어.”

 무영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빙령과 대두는 기가 막혀 입을 쩍 벌렸다. 그런 생각은 전혀 못한 그들이었다.

 대두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함박웃음을 입가에 걸쳤다.

 “아! 역시 형님이십니다. 제가 그랬잖아요. 우리 형님은 사막 가운데 던져놔도 별장 짓고 사실 분이라고요. 히히히.”

 무영은 그런 대두의 머리를 쓱 쓰다듬으며 같이 웃었다. 그러면서 대두의 귓가로 접근하는 무영의 입.

 “대두……. 방금 너무 기어올랐다고 생각 안 해?”

 “아! 형님두. 제가 언제…….”

 “내 성질 알지?”

 “그, 그럼요. 열 받으면 폭발하죠. 더 열 받으면…….”

 “그만! 잊지 않고 있으니 됐다.”

 무영이 대두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며 웃었다.

 빙령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알면 알수록 더욱 정체가 모호한 자였다.

 무영이란 인간은…… 미우면서도 이상하게 끌리고, 그러면서도 더욱 얄미웠다.

 “무영! 흠흠……. 오해한 것은 미안해. 미리 말했으면 됐잖아.”

 “내 잘못이 아니라 너의 선입견이 문제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선…….”

 “됐다. 마누라의 바가지까지 가슴속에 담아 두진 않아.”

 “뭐! 너,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어디서 시집도 안 간 처녀한테 마누라라는…….”

 다시 치솟는 화를 쏟아내려던 빙령의 말문이 막혔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노인.

 벽력군이었다.

 그는 언제 나타났는지 사립문가에 서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조용한 미소를 입가에 담고.

 “벼, 벽력군 어르신!”

 빙령이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깊숙이 꺾었다.

 그건 단지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서기 보다는, 진정한 고수를 향한 대례(大禮)였다.

 “잘 있었느냐?”

 벽력군의 얼굴은 무척 피곤해보였다. 그러나 빙령의 외모를 보자 기분이 좋아지는 그였다.

 “예, 덕분에 목숨을 구함 받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

 빙령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평상시 그녀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놀라운 태도였다.

 벽력군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혜는 무슨……. 그래, 네 호법은 어떠하냐?”

 “아직 의식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의원 말로는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고 하옵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그리고 약속은 지켰겠지?”

 빙령은 웃으며 말하는 벽력군의 말에 흠칫 긴장했다. 왠지 말 속에 차가움이 담겨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예. 누구에게도 벽력군 어르신과 벽력문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빙령은 자신이 포위망을 뚫고 나올 때, 들려온 전음을 상기하며 공손히 대답했다.

 “후후후, 그래. 믿는다. 사람의 입은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이겠지.”

 무영은 둘의 대화를 묵묵히 들으면서 미간을 접었다. 아까 대두와 빙령이 서로 짝짜궁 할 때도 그렇더니, 지금도 기분이 불편해 지고 있었다. 아주 급속도로.

 “왜 이리 늦었습니까?”

 “준비할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네가 본문의 계승자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준비는…… 끝났습니까?”

 “후후후, 그렇다. 이제 넌 아주 짜릿한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클클클.”

 왠지 벽력군의 웃음소리가 기괴하게 들렸다. 벽력군은 잠시 동안 그렇게 웃다가 말을 이었다.

 “무영! 감히 네 멋대로 오십 년을 오 년이라고 했겠다. 어디 두고 보자꾸나.”

 제자가 아니라 마치 원수를 가둬두고, 당장이라도 괴롭히고 싶어 하는 듯한 변태 같은 모습에 대두와 빙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무영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어! 웃는 거냐? 어디 그 웃음이 얼마나 지속될 지 보자.”

 “현세에 지옥은 없습니다.”

 “그래. 어디 있는 지 없는 지 실제로 겪어보면 될 거 아니냐?”

 벽력군은 무영의 성격이나 근골이 너무 마음에 들면서도 얄미웠다. 사랑하기엔…… 싸가지가 너무 없었으니까.

 “지옥엔 희망이 없지요.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에겐 누구나 희망이 존재합니다.”

 “말장난 하자는 거냐?”

 “절 죽일 수야 있겠지만, 제 마음 속에 있는 희망까지 끌 수는 없는 겁니다.”

 무영의 담담한 말에 벽력군의 들창코가 벌렁거렸다. 마치 지가 스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훈계하는 제자라니!

 “그래? 그렇다면 네 희망이 무엇이냐?”

 “강해지는 것. 다시는 힘이 없어서 눈물을 삼키거나 도망가지 않을 겁니다. 제 소중한 사람이 위기에 빠지거나 고통스럽게 하지 않을 겁니다. 잘못된 폭력을 보며 세상 탓만 하지 않을 겁니다.”

 “…….”

 “당신이 절 필요로 하듯, 저 역시 당신이 필요한 겁니다. 방법이 없던 저에게 길을 제시했으니, 단단히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허…….”

 벽력군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성을 터트렸다. 오히려 자신을 보고 기대를 하라는 말이 아닌가? 어쨌거나 그런 근성이야 말로 절대 필요한 것이었다.

 “흐흐흐, 무영. 좋다. 그 결심이 부디 오십 년 동안 흔들리지 않기를 빈다.”

 “오십 년이 될 지, 오 년이 될지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녀석이 아직도 헛된 소리를!”

 잠시 기분이 좋아졌던 벽력군이 발끈했다. 그러나 무영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마음의 준비는 끝냈습니다. 그럼…… 바로 가지요.”

 무영이 벽력군의 앞으로 걸음을 떼었다. 그러자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있던 대두가 갑자기 소리치며 나섰다.

 “형님! 나도…… 나도 가겠소!”

 그러나 벽력군의 고개는 좌우로 흔들렸다.

 “본문의 계승자는 일인전승(一人傳承)을 원칙으로 한다. 그것은 본문의 율법.”

 “하, 하지만요. 저와 무영 형님은…… 피보다 더 진한 사이에요. 제가 맞아야 할 칼을 세 번이나 대신 맞아준 게, 우리 형님이라고요.”

 “……!”

 벽력군과 빙령의 눈동자가 동시에 흔들렸다.

 무영이?

 심장이 얼음장 같고, 행동은 전혀 예측이 불가하고, 성품은 오만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이 사내가?

 “형님! 형님이 그랬잖아요. 죽는 날까지 헤어지지 말자고. 외로운 세상에서 서로 든든하게 도와주며 살자고.”

 무영이 천천히 돌아섰다.

 대두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굵은 눈물에 무영의 입술이 순간적으로 떨렸다.

 “대두…….”

 “어차피 밥할 사람은 있어야 하잖아요. 겨울이 오면 땔감도 구해야 하고. 흐흐흑.”

 “일인전승이라 하는데 어떻게 하냐? 그건 내 몫이야.”

 “빨래도 하고, 사냥도 해서 고기도 준비하고……, 바느질도 배워서 옷도 만들게요. 형님! 나 버리지 말아요.”

 대두의 호소에 무영의 고개가 벽력군을 향했다. 그러나 벽력군은 고개를 저으며 뒤돌아섰다.

 무영이 한숨을 내쉬고 대두에게 다가가 그의 한쪽 어깨를 꽉 움켜 잡았다.

 “지난 며칠 동안 이게 가장 고민스러웠다. 너하고 어떻게 헤어지나하고.”

 “저는 그냥 멀리서만 있을게요. 그럼 되잖아요. 흑흑흑.”

 “대두! 이제 너도 너의 길을 찾아야 한다. 너는…… 멋진 녀석이야. 나한테 묻히면, 네 인생은 사라지는 거야.”

 무영은 흐느끼는 대두의 머리를 가슴으로 안으며 말을 이었다.

 “다시 널 찾아갈 거야. 그때는…… 너도 너 스스로의 힘으로 네 인생을 개척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남아의 인생인거야. 세상의 어느 누구도 네 삶을 대신 살아주진 않아. 이젠…… 네 두 발로 대지에 우뚝 서야한다. 아무리 바람이 거세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말고 네 길을 가야한다.”

 대두는 그 큰 머리를 들썩이며 소리 죽여 울었다. 무영의 눈도 어느새 충혈 되어 있었다.

 “모래성 보다 허무한 것이 믿음이고, 핏줄보다 더 강한 것이 믿음이다. 난…… 널 믿는다. 혼자서 일어서 봐야지. 그래야, 나중에 날 만났을 때도 네가 당당할 수 있는 거다. 당당하게 형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형니임.”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하면, 세월이 지남에 따라 결국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게 되는 거다. 대두! 넌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어선 안 된다. 도움을 요청하려고 해도…… 스스로에게 떳떳해야 그게 가능한 거야.”

 “형니임, 난 그런 거 몰라요. 으어어엉.”

 대두가 고개를 마구 저으며 폭풍눈물을 흘렸다. 무영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돌려 빙령을 보았다.

 “대두를 부탁한다.”

 “응? 아……! 그, 그래. 그 정도야.”

 빙령은 뜻밖의 이별에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지금 무영이 보여주는 낯선 모습까지 더해져서 그녀의 머릿속은 공황이 되었다.

 “빙령. 이 녀석, 충분한 자질이 있는 놈이야. 시답지 않은 시종 따위 일을 시킬 생각이라면 집어 치우고.”

 “아, 아냐. 내공을 익히기엔 나이가 좀 들었지만……. 너처럼 근성이 있는 거 같으니까……. 외공을 익히면 될 거야.”

 빙령은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심장의 박동이 귓가에 윙윙거렸다.

 왜지?

 왜 가슴이 뭔가 막힌 듯이 아픈 거지?

 빙령의 눈에 무영의 묘한 미소가 들어왔다.

 한없이 차가워 보이는 그 미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애잔함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무영은 대두를 천천히 떼어내고는 그의 등을 몇 번 토닥거렸다.

 “대두……, 나중에 네 늠름한 모습 기대하겠다. 어떠한 시련에도 꺾이지 마라. 난…… 널 믿는다.”

 대두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무리 잡아도 결국 무영이 떠날 것을 직감했다. 무영이 결심해서 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형님……. 꼭 살아서 돌아오시오.”

 “그래.”

 “설사 잘못해서 폐인이 되더라도…… 죽더라도 꼭 오시오. 꼭이요. 나 기다릴 거요. 형님 올 때까지 기다릴 거요. 오 년이 아니라 십 년이 걸려도, 백 년이 걸려도 나 기다릴 거요. 꼭 오시오. 꼭.”

 “그래.”

 무영은 입술을 살짝 떨면서 대꾸하고는 몇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빙령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빙령은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뒷짐을 지고는 태연한 척 하려고 애썼다.

 “너도…… 기다려라.”

 “뭐?”

 “네 입술을 책임진다는 말. 농담이 아니니까.”

 “그건…….”

 빙령이 기가 막혀 반문하려 했지만, 무영은 대꾸할 기회도 주지 않고 돌아섰다. 그리고 사립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무영…….”

 빙령은 환한 햇살사이로 점차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들었다.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데…… 이렇게 오해만 하고, 화만 내다가 보내야 해서 그런 것일까?

 “형님! 꼭! 꼭 돌아오셔야 해요! 으어어엉. 나 기다릴 거요. 나 형님 기다릴 거요. 어어엉.”

 대두가 산이 떠나가도록 크게 고함을 질렀다. 빙령은 그런 대두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도…… 기다려 볼게. 무영.”

 툭.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빙령의 큰 눈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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