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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수박
작가 : 강원산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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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고유의 무예 수박.
그 전설의 완성을 위해 뫼문의 제자 북수산이 중원에 발을 딛었다.

 
제 11 화
작성일 : 16-07-19 10:17     조회 : 667     추천 : 0     분량 : 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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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인께 죄송할 따름이오. 백산, 그 녀석은 저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구려. 심하다 생각될 정도로 강한 공격을 얻어맞고도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오. 또한 ‘갈’의 역사와 수박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했지만 녀석이 고집을 꺾지 않고 있소. 남은 건 한 가지뿐인 듯하오.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갈’의 전인들에게 녀석을 보내 보시구려. 북수산, 그 녀석도 감히 비무첩을 내밀지 못한 그들에게 말이오…(중략)…그럼 이만 줄이겠소. 언제나 평온함이 가득하기를…….

 -조봉인 배상]

 “휴우…….”

 조봉인의 서찰을 단숨에 읽어 내린 을지상인은 구들장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말았다.

 조봉인의 수박희에 철저히 박살이 나면 백산도 생각을 바꾸리라 여겼지만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이 씨 성을 가진 사람 고집이 고래힘줄처럼 끈질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을지상인은 백산의 그 고집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보았느냐?”

 “뭘요?”

 “이 서찰의 내용 말이다.”

 “그걸 제가 왜 봐요?”

 “예까지 오면서 봉해지지도 않은 서찰을 안 읽을 녀석이 아니지 않느냐?”

 을지상인은 백산을 떠보는 중이었다.

 봤다면 진정한 ‘갈’의 전인들이 무엇인지 설명해 줘야 했고, 보지 않았다면 얼렁뚱땅 백산을 ‘갈’의 전인들에게 보내 버릴 생각이었다.

 “안 봤습니다. 전 적어도 스승님처럼 거짓말은 안 해요.”

 을지상인의 방 안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백산은 토라진 듯 고개를 팩 돌렸다.

 “그럼 되었다. 헌데 스승 앞에서 그게 무슨 작태냐! 수산이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늘…….”

 백산의 태도에 발끈 화를 내는 을지상인. 하지만 재밌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왜 또 사형 이름이 나오는데요? 스승님은 제자를 가르치는 사람의 도리에 대해서도 모르십니까? 무릇 스승의 위치에 있는 자는 다른 제자와 비교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은 교육법이라는 말이 있… 에? 그 재밌어 하시는 표정은 뭐예요!”

 따지듯 말하던 백산이 뒤늦게 을지상인의 표정을 알아보며 소리쳤다.

 “표정이 뭐가? 흠흠! 어쨌든 알았으니 됐다 하지 않느냐!”

 “치! 불리하면 꼭 호통이나 치시고…….”

 작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는 백산의 말을 을지상인은 못 들은 척 넘어갔다.

 “보았느냐?”

 “또 뭘 봐요?”

 “조 노인의 수박희 말이다. 이번에 된통 당했다고 하던데… 어떻더냐? 네 잘난 발 기술이 잘 먹히더냐?”

 “이번엔 졌지만 다음엔 안 져요! 꼭 이길 거라고요!”

 “어허!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이지 뭘 그리 분해하느냐! 졌으니 더욱 분발할 생각은 안 하고 앙갚음하려고 이를 갈다니… 에잉!”

 “분발할 겁니다. 더욱 열심히 수련할 거라고요. 스승님이 제 수련을 방해하지만 않으면…….”

 백산은 을지상인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며 발 기술을 더욱 열심히 익힐 뜻을 비쳤다.

 “보았느냐?”

 그때 또다시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을지상인의 말에 백산은 입을 다물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

 “…….”

 백산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사내 녀석이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삐친 게냐?”

 “…….”

 이번에도 묵묵무답. 을지상인은 백산이 단단히 삐쳤음을 알고 더이상 장난치길 그만두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네 발 재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보고 느꼈을 것이다. 졌다고 의기소침하지 말고 더욱 무학에 정진하도록 하여라. 앞으로 너에게 삼 년의 시간을 주겠다.”

 “삼 년이라니요?”

 뜬금없이 삼 년의 시간을 준다는 소리에 백산이 침묵을 깨고 질문을 던졌다.

 “삼 년 동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발 기술을 익혀 보아라. 더도 말고 딱 삼 년이다. 그리고 삼 년 후에 널 세상에 내보내겠다. 우리 고려 땅에도 많은 무학이 존재하고 옛것의 전통을 꾸준히 이어 오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찾아가 네 발 기술을 시험해 보라는 말이다.”

 “비, 비무행인가요?”

 사형인 북수산이 열다섯 살의 나이로 고려를 떠돌며 비무행을 했던 걸 잘 아는 백산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찾아오자 놀람 반, 즐거움 반의 기분이 되었다.

 “좋아할 것 없다. 넌 수산이와 비교하여 너무나 자질이 달리는 관계로, 수제자가 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비무행을 하게 될 것이야.”

 “다른 방법이라면…….”

 “그건 그때 가서 말해 주마. 삼 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무예를 익히는 자로서 조금이라도 성과를 얻으려면 적어도 오 년은 필요하다. 하지만 네게 주어진 시간은 삼 년이니 한시가 부족할 터! 오늘부터 당장 수련을 시작하겠다.”

 을지상인이 당장 수련을 시작하겠다는 말에 백산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처음엔 마음껏 발 기술을 익혀 보라고 하더니 지금은 함께 수련을 하자는 앞 뒤 안 맞는 말에 실망한 것이다.

 “뭘 그리 실망하느냐? 네가 원하는 발 기술은 알아서 익히라는 것이니 오해하지 말거라. 기존의 수련은 그대로 하는 것이고 그 외의 시간에 마음대로 발 기술을 익히면 되지 않느냐? 내가 너의 수련을 막지 않겠다는 말이다. 알겠느냐?”

 “네! 스승님!”

 을지상인의 말에 다시 본래의 표정을 되찾은 백산이 힘차게 대답했다.

 

 

 

 제3장 떠나리, 떠나리랏다

 

 

 

 겨울의 찬바람은 봄의 풋풋함을 견디지 못하고 멀리 떠밀리고 말았다.

 온 산을 뒤덮던 눈도 씻은 듯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파란 새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백산의 하루 일과는 전과 다름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두운봉에 올라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 가부좌를 튼다. 그리고 수박의 이법인 내공법을 약 두 시진가량 운용한 뒤 간단히 몸을 푼다.

 몸을 풀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삼법의 이치에 따라 가볍게 움직이며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끊임없이 반복시킨다.

 태양이 중천에 머물 때쯤부터는 을지상인과 마주하여 쌈수박의 기초를 반 시진가량 익히며, 그 후 수박의 수련형인 육로(六路)와 십단금(十鍛金)을 익히고 기본형인 칠성형(七星形)을 수련하게 된다.

 육로는 두문, 중절, 포월, 양편, 살추, 충노의 여섯 단계로 구분되며 중원무공의 초식과 비슷하다 볼 수 있다.

 십단금은 일로에서 십로까지를 수련 정도에 따라 나뉜 것으로 기본 일로에서 시작하여 최종 십로까지 단숨에 펼칠 수 있다면 스승을 떠나 홀로 설 자격을 얻게 된다.

 칠성형은 팔괘와 오행의 방위를 중시하는, 권법에 가까운 무예로서 막기와 지르기로 이루어진 일곱 가지 동작을 말한다.

 이 모든 수련을 끝낸 이후부터가 바로 백산만의 개인 수련이 되는 것이다.

 수박희의 족기(足技) 기술을 기초로 한 ‘발 기술’수련은 백산이 가장 집중적으로 수련하는 항목이었다.

 상대의 턱을 차올리는 ‘앞 뻗어 올리기’, 가슴 아래의 몸통을 가격하는 ‘앞차넣기’, 자세를 흐트러트리는 ‘안에서 밖으로 차기’ 에서부터 양 발을 띄운 채 뒤돌려차는 ‘이단 뒤돌려차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박희의 족기를 응용했다.

 백산의 발 기술은 날이 가면 갈수록 예리해져 갔고 강력해졌다.

 발의 움직임을 쉽게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현란했으며 바람처럼 빠른 속도를 지니게 되었다.

 시간은 흘렀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으며 낙엽이 지는 가을이 가고 눈이 날리는 겨울이 찾아왔다.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이 바뀌자 백산은 어느새 열여덟 살의 나이가 되었다.

 백산은 같은 나이 또래의 평균적인 키였다.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딱 알맞은 체격에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상태였다.

 길게 자란 머리칼은 뒤쪽으로 모두 넘겨 두 줄로 꼬았다. 댕기머리를 한 백산의 얼굴은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 보였다.

 옷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누렇게 색이 바랜 무명옷이었다.

 백산은 오늘도 태양이 저물어 가는 시간까지 발 기술을 익히고 두운봉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백산은 북수백산을 떠나 자신이 지금껏 익힌 발기술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약간은 들뜬 마음이 되어 버린 백산. 그의 앳되어 보이는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북수백산은 여전히 백설로 뒤덮여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백산과 을지상인이 머무는 초가집도 두껍게 내려앉은 눈 더미에 파묻혀 곧 무너질 것 같았지만 벌써 몇십 년째 거뜬히 버텨 왔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던 백산은 초가집에서 약 삼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모여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고려의 병사들인 듯 갑옷과 무기를 들고 있는 그들은 가장 선두에서 말을 타고 있는 중년 사내를 호위하고 있었다.

 중년인은 분명 조정의 인물이었다.

 대장군가에서 팔 년간 살아오며 많은 사람을 봐 왔기에 복장만 보아도 어느 정도 위치의 인물인지 대충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였다.

 ‘복장을 보니 추밀부사(樞密副使)인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여길 온 거지?’

 추밀부사라면 추밀원(樞密院) 정삼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비밀리에 왕명을 수행하는 특수 집단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로 보아 누굴 잡아가거나 해칠 목적이 아닌 듯했기에 백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초가집을 향해 다가섰다.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백산의 접근을 발견한 한 병사가 장창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그만두어라. 이곳에 사는 사람 같구나.”

 말 위에 올라탄 중년 사내가 백산에게 달려들 듯 자세를 취한 병사를 만류했다.

 턱 아래로 길게 내려온 수염이 멋져 보이는 중년 사내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백산을 바라보았다.

 백산은 병사를 저지해 준 사내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초가집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스승님! 저 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어서 저녁 먹자꾸나.”

 방 안에서 을지상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을지상인은 조정의 인물이 찾아온 것을 모르는지 그에 대한 한 마디 말도 없었다.

 “그런데 스승님, 손님이 찾아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넌 네 할 일이나 하여라.”

 평소와는 사뭇 다른 을지상인의 말에 백산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을지상인에게 그 연유를 따져 볼 생각은 없었다.

 묻더라도 낯선 방문자가 떠난 이후에 해야 했다.

 백산은 궁금증을 참으며 부엌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뫼주 어르신, 꼭 전할 말이 있어 왔으니 방문을 허락해 주셨으면 하오.”

 백산의 등 뒤에서 조정의 인물이 말을 꺼냈다.

 “뫼문은 조정의 인물을 들이지 않네. 그러니 헛고생하지 마시고 돌아들 가시게.”

 방 안에서 흘러나온 을지상인의 목소리는 매우 엄중했다.

 과거 세속의 일에 너무 깊숙이 관여한 탓에 덧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했던 과오가 있기 때문에 뫼문은 세상과의 연을 거의 끊고 지내 왔다.

 이를 기억해 낸 백산은 을지상인이 왜 손님을 박대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중요한 일이 있다 하지 않았소? 조정의 일과는 아무 상관없으니 부디 허락을…….”

 “조정의 인물과 마주할 일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떤 일인지는 모르나 만날 생각이 없네!”

 조정의 인물과 을지상인의 신경전이 계속되는 동안 백산은 부엌 문 앞에 서서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후우… 할 수 없구려. 나는 칠보산에 계시는 분의 동생이외다. 지금은 그분의 동생 자격으로 뫼주 어르신을 찾아뵌 것이오.”

 “…….”

 방 안에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본래 서찰만 전하고 떠나려 했으나 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직접 왔소. 내 전할 말만 하고 바로 떠날 테니 다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오.”

 “조 노인의 아우라 했는가?”

 “그렇소.”

 “흠… 그럼 들어오시게. 허나 쓸데없는 말을 꺼낸다면 당장 내칠 것이니 그리 아시게나.”

 “허어… 그러지요.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라. 그리고 아무도 이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말거라!”

 을지상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조 노인의 동생이라 밝힌 중년 사내가 주변의 병사들에게 엄한 명령을 내렸다.

 “네!”

 병사들의 우렁찬 대답이 끝나고 중년 사내는 말에서 내려 조심스레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백산아… 냉수 좀 준비해 오거라.”

 “네, 스승님.”

 손님을 접대할 만한 게 없기 때문에 고작 냉수가 전부였다.

 하지만 백산은 자신이 북수백산의 깊은 산골에서 새벽마다 떠오는 약수가 몸에 좋다는 것을 알기에 냉수로 접대하는 걸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백산은 약수가 담긴 항아리를 보관하는 뒤뜰로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중년 사내는 을지상인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조정의 관리이신 분께 무례히 대한 것은 미안하나 그것이 본 뫼문의 전통이자 법도이니 이해를 바라네.”

 을지상인은 제법 예의를 차려 주었다.

 처음부터 내치지 못했을 바에야 굳이 조정을 적대시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괜찮소이다. 뫼문의 전통을 어기게 되어 오히려 송구스럽기만 하오.”

 중년 사내는 그나마 을지상인을 만날 기회를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럼, 어떤 연유로 이곳까지 찾아오셨는지 알려 주겠는가?”

 을지상인의 말에 중년 사내는 대답 대신 품에서 한 장의 서찰을 꺼내 전해 주었다.

 “형님께서 상인께 전해 달라는 서찰이오. 먼저 이걸 읽어 보시고 난 후에 자세한 설명을 드리겠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을지상인은 중년 사내가 내민 서찰을 받아 차분히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줄 한 줄 서찰을 읽어 내려가는 을지상인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그리고 서찰을 모두 읽은 이후에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되어 버렸다. 서찰을 쥔 손이 덜덜 떨렸고 눈에서는 뻘건 실핏줄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 이게 진정 사실이란 말인가! 수산이가… 수산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을지상인은 고개를 천장으로 들어 올렸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리라. 조정의 인물을 앞에 두고 뫼주가 어찌 눈물을 보일 수 있을까?

 을지상인은 고개를 든 채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스승님, 냉수를 가져왔습니다.”

 방문 밖에서 냉수를 들고 있는 백산이 을지상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백산의 목소리에 고개를 내린 을지상인, 그의 눈에는 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중년 사내는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시선을 내려트렸다.

 “냉수를 놓고 잠시 자리를 비켜 주겠느냐? 손님과 긴히 할 말이 있구나.”

 을지상인의 말에 백산은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바닥에 냉수를 내려놓았다.

 방 안의 분위기는 뭔가 상당히 어색해 보였다.

 스승인 을지상인은 눈을 감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얼굴이 붉어 보였다.

 중년 사내는 고개를 돌린 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산은 고개를 갸웃했다.

 스승이 자리를 비켜 달라는 말도 왠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에 조용히 방문을 닫고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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