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금강문 (4)
퍽!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공수공방이 눈 깜빡할 새에 정리되었다.
털썩!
강현의 무릎이 꺾이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의식을 부여잡기 어려운 현실 속에, 정우가 시야에 잡혔다.
“졌……어.”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겨우 말을 내뱉은 강현은 쓰러졌다.
우르르르!
대련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련장 안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0명의 건장한 사내들.
금강문에 소속된 무인들로 수련장에서 파생된 기운을 느끼고 부랴부랴 서두른 흔적이 보였다.
‘뭐지, 이 상황은?’
육중한 보디빌더들 사이에서도 강건한 육체를 자랑하는 자, 금강문의 제자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황우철이다. 그를 비롯한 모두는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다. 수련장에서 파생된 기파는 예사롭지 않았다. 내공이 깃든 충격이 공간을 흔들었다. 막상 들어와 보니 예상과는 달랐다. 침입자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상황이 애매하다. 문주의 세 아들 중 대공자는 기절, 남은 2명은 멍을 때리고 있었다.
“강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형이 졌어요.”
강우는 호흡을 가다듬고 본 그대로 밝혔다.
응?
잘못 들었나?
누가 누구한테 져?
강현의 실력은 제자들 사이에서 10번째 안에 든다. 제자들의 평균 연령이 30대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실력이었다. 어른도 함부로 승리를 재단하기 어려운 천재로 불린다. 그런 강현이 저 앞의 꼬마한테 졌단다. 이걸 듣고 믿으라는 건가? 여자 친구랑 손만 잡고 자겠다는 자신들의 각오보다 더 믿기 어려웠다.
“정말이니?”
끄덕였다. 정우는 회피하지 않았다.
헐!
황우철과 동료들은 눈만 껌뻑거렸다. 아직도 사태파악이 되지 않았다. 외공무문의 소속된 무인답게 이해를 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렸다.
황우철도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주먹 놔두고 일일이 설명해봤자, 입만 아프다. 금강문에 투신한 이유도 머리 굴려가며 무공을 익히고 싶지 않아서다. 와서 보니 다들 똑같은 놈들이라 마음도 잘 맞는 편이다.
휙휙!
황우철이 눈짓을 주었다.
하위 서열의 최상훈은 호응해야 했다. 금강문의 모든 권력은 주먹에서 나온다. 일단 주먹이 세면 편하다. 금강문의 문규(門規)가 ‘강한 놈이 장땡이다.’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꼬마야, 어른한테 거짓말하면 혼나는 거 알지?”
“당연하죠, 거짓말 아니에요.”
“자꾸 그러면 이 아저씨가 때찌하는 수가 있어.”
애 엄마한테 이르면 곤란하니, 최상훈도 살짝 위협했다. 생김새가 산 도적놈처럼 생겨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만 인상 쓰면 애들은 울기 일쑤다. 그래서 금강문이 편하고 좋다. 이 안에선 평균 외모는 된다. 계집애처럼 생긴 사람들이 없다. 다들 사내답게 훤칠하다.
“하는 수 없지, 혼나야겠다.”
“그냥은 안 돼요.”
“안 되면?”
“소원 들어주세요.”
최상훈은 어이가 없어서 너털웃음이 나왔다. 꼬마가 내기를 제안하고 있었다. 그 맹랑함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좋다, 뭐든지 들어주마.”
최상훈은 봤어야 했다.
허락하는 순간 정우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아저씨! 방심하면 안……!”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정우가 움직였다.
툭!
정우의 발이 최상훈의 정강이를 찼다.
애들의 발길질이 세 봤자, 얼마나 세겠는가.
최상훈은 허허롭게 받아주었다.
응?
아프네.
그냥 아픈 수준이 아니다. 나무 모서리에 정강이를 세게 받혔을 때, 아니면 발가락을 문틈에 찧었을 때보다 더 아프다.
크윽!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예상을 한 고통이라면 참고 견딜 수가 있을 텐데. 빗나간 추측이 불러온 결과는 처참했다.
퍽!
치기 딱 좋은 위치가 되었다.
정우는 기다리지 않고 라이트훅을 먹였다.
꽈당!
최상훈은 그걸로 KO당했다. 충격이 대뇌의 전두엽을 지나치게 괴롭히고 있었다.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수련장에서 순간 삭제당했다.
“우리가 본 게 뭐냐?”
“상훈이가 애한테 맞아 쓰러졌네.”
“그것도 2방으로.”
설명은 단순했다. 그러나 현실은 황우철을 비롯한 제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진풍경이었다. 저래도 되나 싶을 지경이다. 상훈이 비록 말단 서열이기는 하나, 금강문 내에서나 그렇지. 밖에 나가면 양민학살이 가능한 전투력을 지녔다. 그런 상훈이 라이트훅 1방에 훅! 가버렸다.
“너 대체 누구야?”
“강천이 엄마 친구 아들, 정우예요. 알죠?”
“엄……친아!”
천재중의 천재를 가리키는 무결점의 관용어.
금강문의 제자들이 단순무식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하나, 현실을 외면하며 살지는 않는다. 꼬마한테 농락당한 거다.
“이번엔 내가 상대해주마.”
“아저씨도 소원 들어주셔야 해요.”
정우는 받아들이고 난 후,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속전속결(速戰速決), 빠른 속도로 정면을 쇄도해 들어오는 금강문도의 발길질을 막아내며, 손바닥으로 툭! 쳤다.
일직선으로 내달리던 정명훈은 의도치 않게 허공을 날아 천장과 맞닿았다. 결혼도 안 하고 아저씨란 말까지 듣고 있는 와중, 불행한 사고가 연속으로 이어졌다.
쿵!
정명훈의 의식은 끊어졌다.
“말도 안 돼!”
황우철은 기가 차지도 않아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저 앞에서 천진하게 웃고 있는 꼬마는 인간이 아닌 요괴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상황이 백주대낮에 벌어질 순 없었다.
“요……괴를 퇴치하라!”
“그건 좀 오번데!”
“닥쳐, 지금 동료가 당했는데 그딴 말이 나와?”
“정당한 대결이잖아. 어른이 애를 상대로 다구리는 좀.”
“지금 넌 누구 편이야!”
황우철의 말에 일일이 대꾸해 주고 있는 자는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나윤성이다. 나름 논리적이기 위해 애를 쓰는 유형이기는 하나, 주변의 벽돌들과 같이 생활하다 보니 단순해지고 있는 중이다. 사고를 깊이 할수록 사회생활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금강문에서는 생각이 많으면, 항상 짱돌 굴리지 말라고 처맞는다.
“쳐랏!”
정우는 황우철의 발언이 심히 거슬렸다. 사람을 보고 요괴라니, 표현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그리 말하면 듣는 사람 열 받지.
‘적당히 만져주마.’
정우는 내력을 끌어 올렸다. 환골탈태를 한 후, 공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미진한 육체를 커버할 만큼의 내력이 완성되었다. 과거의 전력으로 따지면 6할에 육박한다. 거의 상대할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생에서도 십대고수를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전력하고는 거리가 멀었었다. 그 망할 놈은 예외였지만.
퍽!
치는 족족 날아가서 벽면에 박힌다. 정우는 전력을 감추지 않았다. 과거의 즐거움을 상기하듯, 웃으며 죽빵을 날렸다.
크억!
한 방 맞을 때마다 뇌리를 강타하는 강제적인 주마등이었다.
황우철이 인상을 구겼다.
“우리가 얌체공도 아니고, 어째서 튕기는 거야!”
“보면 몰라? 힘과 속도에서 상대가 되지 않잖아.”
설명충(說明蟲), 나윤성의 개입이 황우철의 속을 더욱 뒤집어놓았다. 오늘의 일이 문주의 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자신들은 죽었다고 복창해야 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문주에게 사내의 자존심은 무조건 힘이었다.
“누가 설명해 달래?! 어서 조져!”
“속성도 소용없네.”
속성을 개방한 문도가 바람을 이용했다가, 역풍을 맞고 풍 맞은 사람처럼 게거품을 물었다.
‘현천삼도 1식, 일보전광.’
현천의 무리로 완성된 도법, 일보전광(一步電光)이 처음으로 현세에 강림했다.
정우는 자신이 개발한 무공을 테스트하는데 여념이 없다. 전력을 실으면 죽을 수도 있기에 적당히 조절해야 했다. 전후좌우 종횡무진하며 금강문도를 두드려 주었다. 도식을 권식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협화음이 없었다. 실로 완벽한 권형을 그려주었다.
쿠아앙!
대가리를 처맞은 문도는 바닥에 얼굴을 찧고, 옆구리를 맞은 문도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인간이 되었다.
“흐허허헐!”
나윤성은 명치를 세게 처맞았다. 숨이 멎는 충격에 의식이 오락가락한다. 쓰러지는 가운데 황우철의 시선이 보였다.
“명치가 아파서 나…… 먼저 가네. 곧…… 따라올 테니…… 외롭지는 않겠지. 그리고 또……!”
갈 때 가더라도 설명을 잊지 않는 나윤성의 집념이었다.
정우는 그 놀라운 집념을 기리며 1방 더 선사해주었다. 진력이 실린 2격은 흔치 않으니, 찬사를 보낸다.
푹!
허공으로 뛰어오른 정우가 거칠게 회전하며 발차기를 시전했다. 주변으로 금강문도 3명의 머리통이 팩! 하고 돌아섰다. 이 안에 황우철도 포함이 되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와 가공할 파괴력이었다.
끄응!
충격을 받고 기절해 있었던 강현이 의식을 부여잡았다. 흐릿한 시선 속에 뭔가가 날아가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현실을 재차 확인했을 때.
“거……짓말!”
사방이 난리 법석이었다.
원인은 정우다.
처맞고 날아간 문도들이 열 받은 옥수수처럼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 황당한 장면을 보고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금강문의 무인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평판을 받는다. 그러나 동료가 자기 앞에서 게거품을 물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기 선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자기 위안과 함께 수련장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럼 안 되지.’
정우는 마지막 남은 문도까지도 기어이 쫓아가서 개 잡듯이 팼다.
“형, 나 무서워.”
강우는 덜덜 떨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나도 무섭다!’
강현은 기절해 있고 싶은 심정이었다. 황우철이 요괴라 소리 지른 것도 이해가 되었다. 웃는 얼굴로 금강문도를 패고 있는 정우가 인간처럼 보인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저게 대체 어떻게 7살짜리로 보인단 말인가. 천이와 동갑이라는 사실이 비현실을 부추겼다.
차라리 이계의 마물이 정우의 정신을 조종하고 있다는 추론이 훨씬 설득력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의심스럽다. 정신을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마물이라면 굳이 실력을 드러낼 이유가 없다. 방심을 유도하고 허를 찌르는 편히 훨씬 효과적이었다.
‘평범한 가정이잖아.’
8대 문파에 소속된 무인이라면 또 몰라. 정우의 아버지는 중소기업을 운영하셨다. 무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더욱이 정우 엄마는 엄마와 친하다.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어마어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