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금강문 (1)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옥.
단조로운 형태의 가구와 그림이 전부인 삭막하고 넓은 거실이 인상적이다. 이러면 집이 휑해 보이기 마련인데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로 인해 오히려 좁아 보이기까지 하다.
단출하게 입은 티셔츠가 비명을 지를 만큼 근육량이 상당했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차돌처럼 단단한 근육에 2m가 넘는 거구였다. 평범한 얼굴이라 그나마 위압감이 덜할 뿐이지, 숨 막히는 머슬의 존재감이다.
거한을 마주하고 앉은 중년인이 툴툴거렸다.
“우리 나이에 그딴 몸은 반칙이야.”
“사내의 자존심은 근육이지.”
“웃기고 있네, 비대한 근육은 요즘 인기 없어.”
“허약한 녀석들의 자기 위안일 뿐이야. 멸치 대가리 여러 개 모아봤자 고래 1마리만 못한 걸 모르나.”
비유를 해도 꼭 저런 식으로 한다.
일 끝나고 술이나 한잔하고 집에 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만나면 화병 나는 친구라 보고 싶지 않았지만, 여전히 볼 때마다 취향 참 독특하다고 느끼는 박상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8개의 문파, 금강문의 문주다운 무식함이었다.
“몸만 단련할 것이지, 머리까지 근육으로 가득 찼나.”
“어허, 단단한 근육 아래 굳건한 정신이 새겨지는 법이네.”
대체 누가 그딴 말을 하고 다니는 거야? 앞에 있는 놈밖에 없다는 걸 박상원은 잘 알고 있다. 쌍팔년도에도 이토록 무식한 교육은 없을 거다.
“그렇다고 아동학대는 심하지 않나.”
“아동학대라니, 나도 그 나이일 때 다 경험한 일이야.”
8대 문파 내에서도 꼴통으로 유명한 불패금강(不敗金剛), 이호극다운 발언이었다. 머릿속까지 알토란 같은 근육으로 들어차 있어,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런 자와 박상원은 불알친구다. 아버님끼리 알고 있는 사이라, 어쩔 수 없이 친구가 되었다.
이호극은 말술로도 유명하다. 손수 담근 술이 집 안 창고를 가득 채웠다. 술병도 일반적인 1.8L보다 3배는 더 크다.
“적당히 마셔, 그러다 한방에 훅 간다.”
“모름지기 술을 마실 줄 알아야 사내지.”
“말을 말자. 언제는 내 말 들었냐.”
박상원에게 이호극은 상종 못 할 친구이기는 한데,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한 번 믿음을 주면 절대 배신하지 않을 의리의 사나이다.
‘그놈의 의리 때문에 가산을 날리기는 했지만.’
워낙 부자여서 이만큼이나 유지를 하고 있는 거지, 보통 가정이었으면 재산 탕진하고 거리로 나앉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만만히 봤다가 큰코다친다. 단순 무식하기는 해도 일문의 문주다. 사람을 보는 눈은 가지고 있었다. 아무나 신뢰하지는 않는다.
‘하긴, 이놈한테 사기 칠 간 큰 인간이 많지는 않지.’
이호극의 위압감을 무시하고 사기를 칠 수 있으면, 그 인간도 보통은 넘는다는 소리가 된다. 게다가 이호극의 유니크 등급은 7급으로 인천지부의 지점장과 동급이었다. 전투력만 놓고 보면 8급에 해당이 된다.
“왜 똥 씹은 얼굴이냐, 무슨 일 있어?”
“알면 해결해 줄 거냐?”
“할 수 있으면 하고, 못 하면 마는 거지.”
“부자라서 그런지 속 편한 소리하고 자빠졌네. 지금 염장 지르는 거냐!”
박상원은 투덜거리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했다. 숨길 사이도 아니고, 기밀 등급도 낮은 편이었다. 이호극의 아들이 청송 유치원에 다닌다고 하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만약 붉은 쫄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유치원 내에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허어, 그놈 참 대견한 놈일세.”
“대견하긴 개뿔. 미친놈이라니까.”
“고마운 미친놈이구먼, 허허허!”
한국에서 강자가 등장했다면 나쁘지 않았다. 설령 미친놈이라고 해도 유니크 등급이 높으면 된다. 애국심만 있으면 국력이 1단계 이상 상승한다.
“웃지 마, 정드니까. 그놈 찾아오라고 채 과장이 난리, 난리, 생난리를 치고 있다고!”
“정 싫으면 시원하게 갈기고 때려치워. 내가 책임질게.”
“되지도 않는 소리 좀 하지 마!”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이제까지 일한 시간이 아까웠다. 조금 더 일하면 평생 연금이 나온다. 돈 걱정하지 않고 해외여행이나 다니면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 밑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욕해도 하는 수 없다.
“천이는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다행이네.”
“다행이긴! 아쉽게 됐지. 한 번쯤 생사의 고비도 넘겨봐야 성장하는데 말이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좀 하지 마. 천이는 고작 7살이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이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자기가 할 수 있으면 남도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의 제자들이 피곤한 이유를 알 것도 같지 않은가.
“내가 그 나이 땐 맨손으로 절벽을 오르곤 했어.”
“너 때문에 나까지 절벽에 오르다가 떨어진 걸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참사는 절벽이 멋지지 않냐, 라는 호기에서 시작되었다. 호극의 성화에 못 이겨, 절벽을 기어오르다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죽을 뻔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때 나이 12살이다. 무슨 7살에 절벽을 올라. 이 자식은 나이가 들수록 뻥도 늘고 있었다.
“친구 좋다는 게 뭐야.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해.”
“넌 나서지 마, 그게 도와주는 거야.”
“자식이 섭섭한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일은 일이고, 오늘은 마시고 죽자!”
호극이 술병을 들어 올렸다. 손이 커서 술병이 작아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날 뿐이지, 언급했다시피 1.8L를 가뿐히 넘어선다.
“내일 출근해야 한다니까!”
“나도 출근해!”
“시부랄 놈이, 자택 근무면서!”
금강문은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에 조상들이 남겨준 재산, 즉 부동산을 관리해서 이만큼 먹고사는 문파다. 그에 반해 박상원은 평범했다.
“막내라, 오냐오냐 대했더니 약해빠졌어.”
“7살에 그 정도면 센 거다.”
천이는 강한 축에 속한다. 애들이라고 만만히 봐선 안 된다. 어른도 잘못 맞으면 아파서 쩔쩔맨다.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지만, 이 망할 놈의 집구석으로 자식을 데려오지 않는다. 호극은 꼭 자식을 데려오면 대련을 시킨다. 그 나이 땐 싸우면서 정이 든다나. 웃기는 개소리다. 매번 처맞는데 정이 들긴 뭐가 들어. 아들이 집에 가서 질질 짜면, 마누라한테 들들 볶인다.
“신경을 안 쓴 사이 유치원에서 만날 지고 다니더라고.”
“호오, 천이를 이기는 녀석이 있어?”
“내가 얼굴 팔려서 말하기도 부끄럽다.”
이호극이 겉으로는 무식해 보이는 모습이나, 자식의 일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아내의 친구 아들에게 만날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나서기에는 모양새가 나지 않았다.
“그건 그거고, 적당히 굽히면서 살아. 다른 길드나 문파에서 좋게 안 본다고.”
“흥, 본문이 언제부터 남을 신경 썼다고 그래. 이건 우리 문파의 자존심이야.”
“대가 세면 부러지기 마련이야.”
“날 부러뜨릴 수 있으면 해보라지 뭐.”
박상원이 걱정할 만도 했다. 금강문은 다른 문파와 사이가 좋다고 하기 어렵다.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8대 문파는 길드는 아니나, 길드와 같은 기능을 한다. 각 유니크 길드와 8대 문파의 유착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환골탈태를 끝낸 정우의 신체는 하루만에 10cm나 컸다. 골격이 커지면서 7살로는 보이지 않았다. 옷을 입고 있어서 그렇지 근육질이 되어 있었다. 우락부락하지 않고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은 체격이다.
일주일은 빨리 지나갔다. 유치원이 정상 운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 방학을 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라서 졸업이나 마찬가지다.
‘조용해서 좋네.’
승부를 걸어오는 대상은 강천을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았다. 강천은 부지런히 도전해 애장품 개수를 늘려 주었다. 가지고 있는 게 떨어질 만도 한데, 끈질기게 도전해 왔다. 승부에 대한 집착과 근면성실함은 알아주어야 했다.
‘외공을 익히고 있는 모양인데, 무식하군.’
정우는 강천이 익힌 무공 계열을 알고 있었다. 무식한 육체수련을 통해 외공을 극대화한 무공이었다. 완성되었을 시 단단한 육체는 외부의 모든 공격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이를 외공의 극의, 금강불괴로 통칭했다. 대가리가 잘리지 않으면 절대 죽지 않은 강시와 비슷한 육체였다.
그럴 바에는 대가리가 잘려도 사는 무공을 익힐 것이지. 왜 대가리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냐고.
환마불사신공(幻魔不死神功)이라는 환마의 비기를 극한으로 익히면 어지간해선 죽지 않는다. 갈가리 찢기고, 가루가 되어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된다. 다만, 환마 본인도 극한으로 익히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내 손에 갈가리 찢겨 죽어 버렸지. 분쇄시킨 후 재생해 보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긴 외공 계열에 꼴통이 많지.’
내공을 수련하는 입장에서는 외공이 하찮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같은 힘을 사용했을 때 내공의 파괴력은 외공과 비교하기 어려우니까. 구대문파를 비롯한 대문파의 경우 내공을 쌓는 탁월한 심법을 바탕으로 하기에 외공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그에 반해 내공을 쌓기 어려운 자들은 육체를 극도로 단련하는 경우가 많다.
‘까다로운 상대이기도 하고.’
외공도 수련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각 문파마다 자기만의 수련법을 전승하고, 발전시켰다. 특히 외공이 극에 달한 자는 내공을 무력화하는 능력이 있어, 상대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외공이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수련이 까다롭고, 대가의 반열에 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불쌍하네.’
강천의 승부욕이 만용인 건 애들도 안다. 그럼에도 도전하는 건 꼴통 유전자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덩치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우도 큰 편에 속하는데, 강천은 그보다 더 컸다. 이대로만 성장하면 2m는 가뿐히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요즘 성인의 평균 키가 180cm라고 해도 2m가 넘는 거구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천의 훈련은 강도를 더해갈 테고. 머리도 점점 근육으로 가득 차서 결국에는 사고력이 단순해질 것이다.
그게 외공 수련자의 말로다. 예로부터 외공의 대가치고, 머리 좋은 놈은 본 적이 없다. 머리가 좋은 지재(至才)는 외공을 수련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하라는 왜 안 와?”
“드라마에 영화에 바쁘단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연말 시상식도 있는데, 유치원에 오겠냐.”
강천은 하라에게 꽂혀 있었다. 매일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연락을 하면 답장은 해 준다.
“아 참, 형이 오라고 했어.”
강천의 형이 보자고 했음에도 정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환골탈태를 위한 준비를 하기도 바빴다. 딱히 기억에 담아둘 만한 일도 아니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강천이 말해주지 않았으면 또다시 어물쩍 넘어갔을 것이다.
‘포기할 유전자는 아니니.’
이번 기회에 한번 만나주기로 했다.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알고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