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환골탈태 (1)
청송 유치원에서 벌어진 마물 습격은 이슈가 되지 않았다.
케이브를 관리 감독하는 유니크 연합이 정보를 통제했다. 이번 일이 외부로 번지면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하고, 유니크 연합에 대한 불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니크 연합의 독단적 행보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다.
-유니크 연합, 인천지점.
2m가 넘는 육중한 체격의 거인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워낙 험악하게 생겨서 조금만 찡그려도 살인마는 애교가 된다. 인천의 유니크를 관할하는 지점장, 오장훈이다.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지만 일에 관해서는 깐깐한 성격으로. 덩치에 맞지 않게 소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을 대체 어떻게 처리했기에 이런 사고가 터집니까?”
“시흥에서 급히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결계사가 부족했습니다.”
“변명하지 마세요. 일은 결과예요. 만일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면 당신이 그 책임을 질 겁니까?”
“시정하겠습니다.”
현장 소장을 관리하는 채남호는 잔뜩 얼어붙었다. 존대를 하는 오장훈이지만, 앞에 서면 오그라들 수밖에 없는 위압감이 발생했다. 7급의 오장훈과 달리 그는 행정 쪽으로 인정을 받은 인물이었다. 속성 등급만 따지면 2급에 불과했다. 2급은 속성 능력자로 취급도 해 주지 않는다.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오줌 싸겠네.’
적응이 돼서 이 정도지, 처음에는 입이 달라붙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게다가 얼마나 깐깐한지, 조금만 잘못해도 달달 볶인다.
‘내가 콩도 아니고.’
그나마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사전에 언론매체를 차단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옷 벗을 각오를 했어야 한다. 오장훈이야 국내에 몇 없는 7급의 유니크이니 잘려도 길드에서 데려가겠지만, 채남호는 달랐다.
“인력관리 똑바로 하세요.”
“예, 지점장님!”
채남호는 지점장실을 나와 전투조의 박상원과 윤길준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군대나 사회나 내리사랑은 관행이었다. 혼자만 갈굼 받고, 얌전히 끝내는 인성 괜찮은 인간은 몇 없다.
채남호도 보통 사람이었다.
“지점장님한테 얼마나 깨진 줄 알아!”
박상원과 윤길준은 한숨이 나왔다. 이 인간은 잔소리를 시작하면 멈출 줄은 몰랐다. 방에 들어와서 30분 내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목 관리를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 고성을 질러도 쉬지를 않는다.
“그 표정 뭐야? 내가 등급이 낮아서 무시하는 거야, 지금!”
“누가 그렇답니까?”
계급장 떼고 한 판 붙고 싶기는 하다. 박상원은 진짜 살벌하게 팰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직급이 깡패였다.
“아니면 일을 똑바로 해야 할 거 아냐!”
“우리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인력이 부족해서 발생한 일을 가지고 저희만 뭐라 하는 건 과한 처삽니다!”
“현장 짬밥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런 변수조차 예측하지 못해?! 나랏밥이 공짜로 나오는 거라고 보는 거야? 이게 다 세금이라고!”
박상원과 윤길준은 이가 갈렸다. 이 인간하고 말싸움을 해 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 말을 안 하면 자신을 무시하는 거 아니냐고 들들 볶고, 말을 하면 개긴다고 까이고.
맘 같아서는 시원하게 갈겨 버리고 싶은데, 이 인간 오장훈에게 까이기는 해도, 연줄 있는 낙하산이다. 그럼 능력이라도 없어야 하는데, 행정 쪽으로는 유능한 편이다. 아주 짜증나는 인간 유형 중에 하나다.
‘지점장한테는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설설 기면서.’
박상원과 윤길준은 시말서를 작성할 걸 생각하면 골이 지끈거렸다. 이 인간 시말서를 잘 써도 한 번에 받아주지 않는다. 꼭 빠꾸를 먹인다. 10번 빠꾸를 먹이면, 4대 성인도 화딱지 나서 복장이 터질 수밖에 없다. 학교 다닐 때도 안 써 본 반성문을 오지게도 쓰고 있다.
“됐고, 그린골을 처리한 놈은 찾아봤어?”
“행적이 불분명합니다.”
찾는다고 다 찾으면 세상에 해결 못 한 미제사건이 있겠냐. 그리고 자신들이 사람 찾는 탐정 사무소 직원인가. 엄연히 유니크 소속의 전투원이었다.
“그런 것도 알아보지 못하고 뭘 한 거야?”
“영상만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관심법으로 상대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궁예도 아니고. 얼굴을 가린 인간을 어떻게 찾아?
박상원과 윤길준은 정령을 풀어 그린골을 추격해 청송 유치원에 도착했었다. 그 즉시 주변을 차단하고, 유치원과 인근에 있는 촬영된 영상을 모두 수거했다. 그린골이 죽은 연유를 영상으로 확인했더니.
‘똘아이도 아니고.’
애들 코 뭍은 돈을 강탈하는 스마트 레인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박상원이 스마트 레인저를 어떻게 아냐고? 당연히 안다. 마누라와 나를 빼닮은 공주님이 스마튼지, 카시튼지 핑크를 사 달라고 몇 날 며칠 졸랐었다. 결국 막내딸의 칭얼거림에 굴복해 사 주고 말았다. 실은 술 왕창 먹고 카드 긁었다가, 마누라한테 달달 볶였었다.
‘20만 원은 너무하잖아.’
플라스틱으로 대충 만든 가면하고 쫄쫄이까지 다해서 35만 원이란다. 그 말을 듣고 어찌나 혈압이 치솟았는지. 아들 녀석이 사태 파악 못 하고 용돈 달라고 칭얼거리기에 죽으로 만든 빵을 선물로 주기는 했다.
어쨌든 어른이 착용할 만한 의상이 아니다. 영웅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어느 미친 능력자의 괴행으로 치부해야 했다. 간혹 자신의 능력을 하찮은 일에 소모하는 오덕, 오타쿠들이 꽤 있었다. 그런 놈들은 상식적으로 이해를 해선 안 된다. 해 봤자 속만 터진다.
‘솜씨는 놀라웠지.’
그린골이 하급 마물에 속하기는 해도, 일반인이 상대하기는 어렵다. 속성 능력자도 신중히 상대를 해야 할 마물이다.
“찾으면 반드시 우리 지점으로 데리고 와.”
“예, 그러지요.”
채남호의 채근에서 벗어난 박상원과 윤길준은 사태 수습에 매달려야 했다. 이런 와중에 케이브가 또 열리면 야근은 각오해야 한다.
윤길준이 전투과로 돌아가는 중 걸음을 멈췄다.
“왜?”
“채 과장 말대로 찾으면 데려올 거야?”
“미쳤냐!”
“그렇지.”
미친놈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데려오지 않는다. 그런 놈 옆에 있으면 엄한 놈들만 피해를 본다. 찾아도 다른 과로 보내버려야 한다.
정우는 일주일 동안 유치원에 가지 않았다. 청송 유치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내 공사 중이니 일주일 쉰다고 알렸다. 소란의 중심에 있었던 유치원이지만, 자세한 사안은 원장과 선생, 하라만이 안다. 애들의 말이라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있고, 통제가 이루어졌기에 소문은 번지지 않았다. 하라도 이번 일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않기로 약속했다.
김 여사는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얼씨구나 받아들였다. 방학이 왜 이렇게 짧으냐고, 엄마 중에 유일하게 투정부리시는 분다웠다.
‘아침이 귀찮으셨구나.’
아침을 먹어 본 적이 드물었다는 정우의 직언(直言)은 엄마의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대신 점심과 저녁은 훌륭한 성찬(盛饌)을 차리신다.
7일의 시간을 번 정우는 수련의 강도를 높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환골탈태할 수 있을 것이다.
‘방구석 환골탈태는 약간 위험하고, 어쩐다?’
문을 잠그면 그게 더 이상하다. 반대로 잠그지 않아 엄마가 들어오면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되도록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가 필요했다.
‘동굴이 딱인데.’
명상과 육체수련을 몰입하다 보니 오후 1시가 되었다. 엄마는 10시쯤에 일어나서 드라마를 본 후, 12시부터 식사를 차렸다. 어제 저녁에 장을 봐서 손질해놓은 재료를 듬뿍듬뿍 냄비에 털어 넣었다.
‘라면이 맛은 있지만, 몸엔 별로지.’
정우는 되도록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손대지 않았다. 육체의 성장을 위한 최적화된 요리만을 먹었다. 그리고 요리 레시피보다는 재료가 더 중요했다. 필수영양소 위주로,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택했다.
딩동!
초인종 소리에 정우는 현관으로 갔다. 감각에 익숙한 기운이 잡혔다. 굳이 화면으로 보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파는 지문보다 정확했다.
띠릭!
문을 열어 주자 하라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라는 엄마와 같이 우리 집을 찾았다. 뜻하지 않은 방문이지만, 외면할 수 없어 인사를 했다. 집에 혼자 있었으면 열어주지 않았을 가능성 35%다.
“반가워, 정우야. 들어가도 될까?”
“들어오세요.”
모녀를 안으로 들인 후 엄마에게 소개했다. 보통은 뜻하지 않은 방문에 놀라는 척이라는 하기 마련인데, 엄마는 역시 보통이 넘었다.
하라의 어머니, 반효숙 여사는 엄마와 나잇대가 비슷했다. 젊은 시절 미모가 그대로인 굉장한 동안이었다. 엄마도 나름 관리를 해 동안이지만, 유전자의 우월성은 따르기 어렵다.
“식사 안 했으면, 차린 건 별로 없지만 같이 해요.”
“고마워요.”
김 여사께서는 하라와 나를 번갈아 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요즘은 애나 어른이나 속도가 빨랐다.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예쁜 여자 친구를 사귀었을까. 날 닮아서 능력이 좋네.”
“같은 유치원 다니는 친구예요.”
“하라는 국민 여동생인데 아무나 만나겠니.”
정우와 김 여사의 거리낌 없는 대화를 하라와 반 여사는 지켜봤다. 농담하는 엄마나, 받아주는 아들이나. 유쾌해 보였다.
“수연이 깨울게요.”
정우는 수연을 깨워 식사를 하게 했다. 평소에도 수면에 취해 사는 수연이지만, 식사는 거르지 않는 편이다.
“오빠.”
수연은 언제나 정우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앙탈을 부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정우는 추궁과혈을 통해 적당히 재운다. 이 나잇대에는 열심히 자고, 싸기만 해도 건강하게 자란다. 추궁과혈로 노폐물을 세척해 주었기에 잠이 보약이다.
식사를 마치고 하라를 방으로 데려왔다. 하라는 방을 둘러보며 뭐가 있나 살펴봤다.
‘책밖에 없네.’
애들 방은 어지럽다. 그건 여자아이도 마찬가지다. 방 청소는 대부분이 엄마의 몫으로 남는다.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었다. 반면에 정우의 방은 무미건조할 만큼 반듯했다.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하며, 책상에는 책과 컴퓨터가 전부였다.
“국민 여동생께서 어쩐 일로 왕림해주셨을까?”
“이 근처를 지나다가 네가 생각나서.”
“스케줄 바쁘지 않아?”
“며칠 쉰다고 했어.”
국민 여동생이라 해도 아역에 불과하다. 쉬고 싶다고 해서 쉴 수 있는 아역배우가 얼마나 될까? 스스럼없이 말을 하는 중에 하라의 배경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했다.
‘말이 통해서 좋기는 하네.’
어른들과 대화가 많은 아역 대부분이 성숙한 편이다. 게다가 하라는 신안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어른스러웠다. 그렇다 해도 7살의 하라에게 많은 걸 바라진 않았다.
“사고가 날 때 어디 있었어?”
“원장실에 있었지.”
태연한 거짓말에 하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도 귀엽고 예쁘다. 뭘 해도 그림이 나왔다. 일단 예쁘고 볼 일이다.
“원장실에 없었잖아.”
“영상 확인했냐? 경찰이 수거해 갔던데.”
“그전에 확인했어.”
하라는 신안을 발동하고 있었다. 그린골을 만난 이후로 신안의 다음 단계로 각성되었다.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되는 범위 내에서 공간의 기억이 읽혔다.
‘그럼 곤란하지.’
정우는 하라가 의심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신안을 가지고 있는 천재소녀답게 감각이 예민하다. 보통은 체격 차이를 감안해서라도 의심조차 하기 어려운데.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하라를 마주한 것이 탈이었다.
‘공간을 읽게 놔둘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