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케이브 (3)
“하아, 좋다.”
“담배 좀 그만 펴.”
“너야말로 왜 그래. 담배를 펴야 나라의 세금이 충당이 되지. 애국하고 있는데 방해 좀 하지 마.”
“지랄도 풍년이다.”
담배는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국가의 소중한 세금 창고다. 격변의 시대가 오면서 금연 인구보다 흡연가가 좀 더 늘었다. 지구가 멸망하는 줄 알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는 자들이었다. 애석하게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끊었다가 피면 원래 더 많이 피게 되어 있었다. 실상 정부에선 니코틴 세정제를 만들어 놓고도 시중에 팔지 않았다. 그걸 파는 순간 담배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제로가 된다.
“한 갑에 3만 원은 너무 비싸.”
순차적으로 담배 가격을 올리더니, 기어이 3만 원이 되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월급은 오르지 않고 물가만 치솟았다.
“인생 뭐 있냐, 피고 싶을 때 펴야지.”
안일권, 강민성, 채만호는 결계사다.
케이브 4등급 이상은 웬만해서는 나오지 않는데, 인력이 부족해서 나왔다. 어느 바닥이나 마찬가지로 특급 속성을 지니면 결계사도 편한 직업 중에 하나다. 일단 결계만 쳐 놓으면, 만사 땡이니까. 마물 처리는 전투요원인 유니크가 하는 일이고. 결계사는 비전투요원에 속한다. 그래서 같은 현장인데도 불구하고 페이(Pay)가 적다. 불공평한 페이는 결국 인력부족으로 나오고, 등급이 맞지 않아도 나올 수밖에 없다.
다다다다!
안일권이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뭔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설마.”
“아니지?”
결계사의 전투력은 제로에 가깝다. 일반인과 싸워도 처맞는 허약체질이다. 마물과 1대 1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렵다. 마물이 튀어나오면 죽는다고 봐야 했다.
“젠장!”
초록색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인간이 초록색일 리는 없고, 마물이다. 결계를 단단히 쳤다면 막을 수도 있겠지만, 인력이 부족했다. 촘촘한 결계를 치기에는 능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헐거워서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있었다.
“도망쳐!”
“그러다가 사고 나면?”
“알게 뭐야!”
직업에 대한 사명감, 그딴 게 있을 리 없다. 죽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깃덩어리 신세가 된다. 게다가 마물이 편히 죽여준다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죽더라도 사체는 온전히 보존하고 싶었다.
찌잉!
마물이 결계와 마주할 때 파동이 발생했다. 안일권은 마물이 속성을 발휘했음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마물의 속성은 공간굴절인 듯하다. 이는 좋지 않았다. 결계의 파장과 공간굴절이 마주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하아, 다행이다.”
공격하는 줄 알고 오금이 저려 왔었다. 담배 피다 오줌 쌀 뻔했다. 현실을 대변해 주는 결계사의 행동이었다. 우선 자신들이 살고 봐야 했다. 남을 위해 희생해도 잠깐 유명해질 뿐, 현실적인 대안은 하나도 없다.
맑게 갠 하늘, 잔파동이 물결처럼 번져 나갔다. 일정한 공간을 흔들어 놓는 파동이 극에 도달하자 좌우로 벌어졌다. 햇살에 반사된 검은 그림자가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스윽!
그림자는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추웅!
지구는 중력이 작용한다. 날개가 있거나, 공중비행 속성이 없으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린골은 허공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계의 파장과 공간굴절이 부딪치면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기 때문이다.
꽈아앙!
10m의 높이, 그린골은 건물의 지붕을 강타했다. 옥상으로 되어 있는 구조였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사선으로 비스듬히 빗물을 받는 구조였다.
쿠다당!
지붕의 경사를 따라 굴렀다. 그린골의 머리가 삐죽이 튀어나온 돌기를 두드렸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대가리가 터져 피칠갑을 할 테지만, 단단한 육체가 혈액부족을 극복했다. 그러나 지붕의 끝에서 바닥까지 15m나 되었다.
쿠아아앙!
추락한 그린골이 지면에 분화구를 선사했다.
바르르!
대가리부터 떨어진 충격으로 지면이 움푹 파였다. 바닥이 단단한 대리석이 아니라 목이 꺾이는 괴랄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총합(허공+건물) 30m에서 떨어지고도 살아 있는 그린골의 생명력은 대단했다. 사람이었다면 대가리가 뭉개져서 선혈과 뒤섞인 뇌수가 주변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을 텐데, 그로테스크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애들이 봐선 안 되는 혐오감은 그린골의 면상만으로 충분하다.
두두두두!
지붕을 강타한 충격이 건물 전체로 퍼졌다. 처음에는 북에서 포격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진동이 컸다. 충돌의 여파는 모두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부랴부랴, 사태파악을 위해 어른들이 움직였다. 애들에겐 교실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원장실에서 착수를 하던 정우도 진동을 느꼈다.
‘결계가 풀릴 때와 파동이 비슷한데.’
허공에서 잔파동이 물결처럼 번지기 전부터 정우의 감각에 잡혔다. 오감을 뛰어넘은 육감이 사태의 진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무미건조했던 일상에 흥미로움을 선사해주리란 기대가 크다.
“나가 볼 테니, 너희는 여기 있어.”
송 원장이 서둘러 원장실을 나갔다.
부르르!
하라는 느끼고 있었다. 파동이 번져 나가자 정신 충격이 왔다. 이제껏 겪어 보지 못했던 기운일 테니.
‘신안이 발동했군.’
신안은 공간에 주어진 의지를 읽어낸다. 결계가 깨지면서 파생된 파동의 의지를 감지한 것이다. 완전한 각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공간감지가 가능하다는 점에도 하라의 잠재 등급을 알려준다.
“위험해!”
“알아.”
무참한 살의(殺意)가 하라의 뇌리를 흔들었다. 이럴 땐 가급적 건물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었다. 문을 여는 즉시 살육의 장이 펼쳐질 것이다.
‘감질나네.’
하라의 다급함에도 정우는 대수롭지 않아 했다. 무질서한 살의가 번져 나오고는 있지만, 과거의 자신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정돈되지 않은 살의는 빈틈을 드러내지.’
냉철한 살의야말로 진정한 살인자의 포스다. 한창 잘나갈 때는 살의를 극대화해 무형격살(無形擊殺)이 가능했다. 이걸로 재미 좀 봤다. 건방진 놈들 혼내줄 때 이보다 더 훌륭한 수법은 보지 못했다. 내가 만들었음에도, 제법 괜찮은 살인기예(殺人技藝)였다. 건방 떨던 놈들이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나뒹굴 때의 쾌감이 나쁘지 않았다. 특히 정파의 애송이들이 협객이랍시고, 깝죽거릴 때 안성맞춤이었다.
하라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명백한 살의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이럴 때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어서 선생님들 말리지 않고 뭐해?”
정우의 관념은 자기 위주의 효율성이었다. 본인이 나서면 보다 효과적일 테지만, 귀찮음을 감수할 의지가 박약하다.
부르르!
하라는 생애 처음으로 울화가 치밀었다. 맘 같아서는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보법을 익혔네.’
배움의 단계가 미진해 완벽하진 않아도, 기본은 튼튼한 편이었다. 저 나이 때 저 정도 실력을 보유한 애는 과거에도 흔치 않았다. 천재의 부류에 속한 자만이 가능한 재능이다. 신안도 그렇고, 선천적인 템빨이 상당하다.
그러나 남 말 할 처지는 아니다. 정우는 하늘이 내린 재앙, 천재(天災)다. 다들 잘났다고 뻐기는 놈들마저 삼류 쩌리로 만들어 버린 무쌍의 재능을 소유했다.
‘신안을 완전히 개방하면 속 좀 썩겠는데.’
신안은 단순히 생각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극대화된 신안은 만상의 흐름마저 읽어내고, 통제할 수 있는 권능을 지닌다. 후일 그녀의 발아래 잠식될 불쌍한 중생들이 회귀된다. 얼굴이 귀엽고 예쁘다고 해서 인기가 있는 게 아니다. 잠재되어 있는 신안은 주변을 끌어들이는 훌륭한 매개체다. 하라에게 빠져드는 건, 어쩌면 생명체가 가지는 본능에 가깝다.
‘그럼 마물은?’
마물은 본능에 충실하다고 알려졌다. 인간은 사회규범에 의거해서 행동제재가 가능하나, 마물은 인류의 규범과 동떨어진 짐승에 가깝다.
안일한 판단이었다. 마물이 등장하기는 했어도, 건물에만 있으면 별다른 위협은 없을 거라 봤다. 하지만 하라가 있다면 판단을 달리 해야 한다.
‘이런.’
딱히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별로 없지만, 방치하면 전생과 다르지 않은 삶이 되어 버린다. 새로 태어난 이상 인식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했다. 노력이야말로 삶을 변화시키는 미학이다.
‘궁금하기도 하고.’
정우는 하라에 대한 걱정보다는 마물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전생에서도 마물은 본 적이 없다. 맘 같아서는 케이브에 들어가 보고 싶기는 한데, 부모님이 걱정할 것 같아서 미루어 놓고 있었다. 완전하지 않은 육체도 걸리고.
‘어쩐다?’
전생의 경지에만 도달했어도, 무형인(無形人)으로 상대가 가능한데 마물의 전투력을 직접 겪어 보지 못해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이 상태로 나가면 이상하게 볼 가능성이 컸다. 세상의 주목은 아직 원하지 않았다. 과거의 전력을 찾는다면 모를까. 어떤 시대든 실력의 7할은 숨겨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뒤통수 맞지 않고, 후려칠 수 있다.
‘아!’
빛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역시 나는 천재.’
머리를 안 써서 그렇지, 일단 쓰면 번뜩이는 아이디어 뱅크였다.
후다다다!
정우는 원장실을 나가 개인 로커(Locker)로 달려갔다. 다들 교실에 있기는 한데, 곳곳에 CCTV가 있어 신경이 쓰였다.
띠링!
로커에 도착한 정우는 지문을 찍었다. 요즘은 지문인식이 널리 보편화되어 대부분의 기기에 사용한다. 지문인식 데이터는 개인 공용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킹의 위험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띠릭!
문이 열리자 정우의 소장품이 드러났다. 개인적으로 산 건 없고, 모두 친구들이 소장했던 것들이다. 승부로 얻어낸 정당한 대가였기에 부담은 갖지 않는다. 억울하면 승부에 이기면 된다. 이기면 모두를 얻을 수 있다.
‘어디 있더라.’
깊숙이 들어가 있는 단색의 옷과 가면이 손에 잡혔다.
스륵!
옷의 탄력을 살펴봤다.
‘이만하면 됐고.’
“마물이 어떻게?”
유리창 밖을 내다본 송 원장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10년 전 케이브가 열린 이후로 마물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충격을 받아 허우적거리고 있다 해도, 마물은 위험한 생명체였다. 속성을 단련한 유니크라면 모를까, 일반 사람에게는 재앙이었다.
송 원장과 선생들도 속성을 가지고만 있을 뿐이었다. 송 원장은 입체형상을 구현할 수 있었지만 가능한 크기는 손톱만 했다. 그걸 가지고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문은 다 잠겼지?”
“확인했어요.”
유치원의 경비 시스템은 최신식이다. 침입자가 발생하는 즉시 건물의 외부와 연결된 문은 잠금장치가 발동한다. 자동으로 경찰에 연락이 되어 곧 유니크가 출동할 것이다. 그때까지 마물이 얌전히 있기를 기도했다.
다다다!
하라가 달려왔다. 송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은 걸 보고 안심했다.
송 원장이 하라를 보고 인상을 썼다.
“안에 있으라니까.”
“걱정돼서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괜찮으니까. 어서 들어가.”
그때였다.
휙!
의식을 회복한 그린골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건물을 향해 돌아섰다. 킁킁! 냄새를 맡던 그린골이 느닷없이 창문으로 돌진했다.
쿠웅!
강화유리로 설계되어 일반적인 충격으론 부서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마물이다. 그린골이 재차 창문을 두드리자 박살나며 내부가 드러났다.
크르렁!
그린골의 갑작스러운 돌진과 난입에 송 원장과 선생들은 굳어 버리고 말았다. 도망쳐야 한다는 다급함마저 공포에 지워졌다. 그린골의 살의가 공간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제와 도망치기도 어렵다. 그린골의 스피드는 일반인이 감당할 수준을 벗어났다. 하물며 송 원장과 선생들은 여자였다.
스흡!
진물이 흘러내리는 흉측한 얼굴에 긴 혀를 내밀어 입맛을 다시는 그린골의 괴기스러움에 공황 상태가 되었다.
덜덜덜!
그린골의 살의에 노출된 선생들은 두려움에 잠식되어 혼이 반쯤 나가 있었다. 마물이 나타났을 때의 대처요령을 익히고는 있지만, 실제는 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