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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리버스 빌런
작가 : 건드리고고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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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충실히 살아왔을 뿐이라고.

호랑이보고 풀만 먹고 살라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하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달라지려고 노력했는데.

이놈의 사회가 가만히 두지를 않네.

얌전히 살려는 사람을 건드리면 빡쳐, 안 빡쳐?

이건 전적으로 너희 탓이다, 내 잘못 아냐!

 
1권-010화
작성일 : 16-07-12 15:23     조회 : 754     추천 : 0     분량 : 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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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승부의 마왕 (4)

 

 

 

 정우는 수업 시간에 원장실에 불려왔다.

 스윽!

 방 안을 둘러보았다. 사물인터넷(lot)이 보급되어 부피가 큰 가전제품을 들여 놓지 않아도 되건만, 방 안의 중심을 100인치 구형 OLED 텔레비전이 차지하고 있었다. 요즘은 접어서 종이처럼 들고 다니는 플렉서블 텔레비전도 구형이라고 핀잔을 받는데, 원장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사는 모양이다. 휴대폰도 20,000mah용량의 구형을 쓰고 계셨다. 그거 가지고 얼마나 쓴다고. 최소 100,000mah는 되어야 한 번 충전으로 보름은 사용한다.

 ‘충전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해야지.’

 태양전지판의 집적도를 극대화해, 태양열만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배터리가 나왔음에도, 에너지 시장의 고착화로 상용화가 막혀 있는 상태다.

 송 원장은 정우를 위해 따뜻한 음료를 손수 타서 과자와 함께 내놓았다. 수제 과자는 원장의 취미 생활 중에 하나다. 꼭 구형 오븐에 굽는다. 지금 나오는 오븐으로는 옛날 맛이 나오지 않는다나.

 “그렇게 게임을 잘한다며?”

 “조금요.”

 “소문이 자자하던데, 뭘.”

 “과장된 소문이죠.”

 송 원장은 잠시 의아해했다. 나 선생의 말을 들어보면 승부에 집착하고, 잘난 체가 심하다고 했는데. 직접 마주하니 겸손하고, 차분하며, 조리가 있었다. 나이에 비해서 성숙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보는 것과 다를 수도 있기에 대화를 좀 더 유도했다.

 “유치원 생활은 어때? 힘든 건 있니?”

 “힘들긴요. 다들 잘 대해주세요.”

 “우리 정우는 남자답고 씩씩하구나.”

 “감사합니다. 원장 선생님.”

 송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래보다 조숙해 보이기는 하는데, 그런 애들도 간혹 있었다. 성숙한 애들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들 그 나이에 맞게 살아갔다.

 ‘부모님도 괜찮고.’

 유치원을 운영하다 보면 별의별 애들이 다 있지만, 그런 애들보다 더 심한 건 부모다. 자기애가 조금만 잘하면 신동이네, 천재네 떠드는데 그런 건 오히려 애한테 해를 끼친다. 애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주변 분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럼 결국 탈이 난다. 지금은 나이 때에 맞게 생활하고, 관심 분야를 찾아주는 것이 현명하다.

 “바둑 둘 줄 아니?”

 “아니요.”

 “한번 배워 볼래?”

 “예.”

 송 원장은 바둑판과 바둑알을 가지고 왔다.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에 흑백의 돌을 번갈아 놓는 것을 바둑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을 설명해 주는 송 원장이었다.

 ‘기석은 배워두지 않았지.’

 정우는 금기서화(琴棋書畵)에는 능통하지 않았다. 사실 배울 필요성을 못 느꼈다. 전투에 특화되었고, 싸움을 위한 기술만을 배웠다. 전장에서 살아남는 법에 금기서화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시대는 평화로운 편이다. 바둑은 마음 수련을 위해서라도 배워둘 만한 기예였다.

 ‘진법과 비슷하네.’

 정우는 묵묵히 설명을 들었다. 바둑도 게임의 일종, 법칙을 알아야 응용이 가능하다. 기본을 읽어 초석을 세운 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복기 운용했다.

 “바둑에서 중요한 건 포석이야. 그 이유를 아니?”

 “왜 그런데요?”

 정우가 흥미를 보이자 송 원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요즘은 시대가 변하면서 바둑에 대한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빠르게 변하는 세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인 유물이 되었다. 인공지능이 발전해 인간을 넘어서 버린 점도 아쉬웠다. 1명이라도 더 바둑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송 원장은 만족했다.

 “바둑은 상대의 수를 읽는 것에서 시작해. 그리고 자신의 수를 들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수를 숨겨야 해.”

 “이 조그만 바둑판에 전략과 전술이 난무하네요.”

 “그렇지.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과 같아.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잘 짜는 것도 포석의 일종이야.”

 정우는 토를 달지 않았다. 대화의 기본은 추임새였다. 송 원장이 맘껏 얘기할 수 있도록 장단을 맞춰주었다.

 ‘배우는 바가 크다.’

 정우는 상대의 비위를 맞추며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무조건 내 말이 옳아야 했다. 토를 달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 주었다. 전생의 내가 그리 좋은 놈이 아님을 깨닫고 있었다. 살아가려면 남의 말을 듣고, 가려낼 줄 알아야 했다.

 “정우는 바둑에 딱 맞는 성격이야.”

 “그래요?”

 “그럼. 보통은 지루해하거든.”

 바둑은 가르친다고 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단계가 정해져 있다. 하나, 이는 프로의 경우다. 보통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다. 수를 놓고, 다음을 이어 나갈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작부터 지루함을 느껴, 바둑을 싫어할 공산이 크다.

 송 원장은 바둑의 규칙을 쉽고, 간단하게 풀이했다.

 ‘둘러싸면 끝나는군.’

 바둑은 자신이 쥐고 있는 바둑알로 상대방의 바둑알을 포위하면 이긴다. 방법 자체는 간단하지만 바둑판 안에 칸이 361개나 된다. 그 안에서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수가 공존한다.

 ‘상대의 수에 따른 공수의 조화가 중요하군.’

 바둑 수업은 꽤나 유익했다. 교실에서 아는 내용을 반복할 때보다 훨씬 도움이 되었다. 사고력을 증진시키고, 무공을 정리할 수 있었다. 가급적 송 원장과 많은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일단은.’

 

 바둑 수업을 받은 지 3일이 흘렀다.

 정우는 집에서도 바둑의 기초를 배우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했다. 기본적인 바둑의 공수(攻守)는 검색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프로의 정석을 살펴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기초를 마스터한 그때부터, 송 원장이 본색을 드러냈다.

 “시합을 해볼까?”

 “좋아요.”

 내기의 상품은 이하동문이었다. 정우는 승부를 서두르지 않았다. 송 원장과는 맞바둑이 아닌 접바둑을 했다. 5수를 먼저 두고 하기에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었다.

 “두고 나면 물리지 못하는 건 알지?”

 “물론이죠.”

 흑돌을 착수(着手)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하나둘 바둑돌이 쌓여가며 바둑판을 흑백으로 채워 나갔다.

 “잘하고 있어, 정우야.”

 “그런가요?”

 “다음 수를 잘 읽었어.”

 “고맙습니다.”

 송 원장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돌을 접어주고 있지만, 팽팽했다. 나름 바둑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3일 만에 곧잘 따라오고 있었다.

 15분이 흘렀다. 공식 대회처럼 시간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주르륵!

 송 원장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접어준 바둑을 따라가려고 하면, 한 끗 차이로 벗어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계속 벌어지다 보니 결국 악수(惡手)를 두고 말았다. 집을 계산해 보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불계(不計). 돌을 던져야 했다. 끝까지 가 봤자 승산이 없다.

 “졌어.”

 송 원장은 감탄과 더불어 허탈함이 교차했다. 접바둑이라고 해도 30년 바둑 인생이 단 3일 만에 추월당하고 말았다.

 “그럼 대세요.”

 “……?”

 

 정우는 원장실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수업보다 송 원장과 바둑을 두는 걸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승부는 계속되었고, 매번 정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접어주는 바둑돌의 수가 줄어들어 이젠 맞바둑을 두었다. 팽팽한 승부가 지속되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했던 송 원장이 돌변했다. 이기기 위한 최선의 수를 찾았다. 그러나 대마가 계속 잡힌다. 사방이 가로막힌 백돌은 잡아먹히기 일보 직전이다. 바둑의 명수 왕적신이 남긴 바둑의 자세, 위기십결(圍碁十訣)은 잊힌 지 오래다.

 주르륵!

 송 원장의 이마엔 땀이 샘물처럼 흘러내렸다.

 ‘묘수가 없어.’

 어디를 두어도 죽을 자리(死地)로 들어가는 격이다. 핀치에 몰려 사방이 가로막혔다. 활로를 트기 위한 맹렬한 두뇌 회전도 소용없었다.

 송 원장의 답답함은 정우의 시선 밖이었다. 본인의 바둑에만 집중했다. 바둑도 독고다이는 힘들다고 하는데, 정우는 예외였다.

 ‘바둑이란 것도 배워둘 만하네.’

 인생의 묘미가 곳곳에 담겨 있었다. 송 원장의 반응에 따라 착수하면서, 포석을 깔아놔 전체적인 구도를 장악했다. 바둑은 흐름의 미학이었다. 공수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했다. 찰나의 방심은 허를 찌르는 역린이 될 수 있었다.

 ‘수를 읽어내고, 변수를 줄여 판세를 이끌어 가면 되는구나.’

 정우의 바둑은 공격적이지 않았다. 전체적인 구도를 계산해 내고, 상대방의 수를 읽어내는데 중점을 두었다. 수비적으로 보여 언뜻 재미가 없을 수도 있으나, 판이 끝나고 나면 언제나 승부를 가져왔다. 신이 나서 공격했던 입장에선 화가 치미는 바둑이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 손오공 신세였다.

 “하아, 정말 대단하구나.”

 “감사합니다.”

 불계의 연속. 송 원장은 또다시 돌을 던져야 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떤 수를 써도 정우의 손바닥 안이었다. 수비적으로 가선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공격 일변도로 나갔고 흐름을 잡았다고 여기는 순간 판이 끝나 버렸다.

 “원장 선생님.”

 “어, 그래.”

 말투가 시원치 않다.

 그런다고 사정 봐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대세요.”

 송 원장의 이마도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나 선생이 왜 그렇게 승부에 집착했는지 뼈저리게 체감했다. 정우의 딱밤은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되었다. 이마를 관통해 뇌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정신적 트라우마를 새겼다.

 송 원장도 나 선생처럼 승부에 집착하고 말았다. 패배를 곱씹어 정우에게 도전했다. 결과는 패배.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벌어졌다.

 백전불패.

 승부의 마왕, 정우의 전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영혼의 프린스 세트.

 -하드 몬스터 스페셜 카드 10장.

 -바다의 왕국 홀로그램 영상.

 -나노봇 1호.

 -스마트 레인저 전투복 5종(레드, 블루, 블랙, 핑크, 옐로).

 -한정판 바람의 전설 10종.

 정우의 스마트 메모장에 적혀 있는 물품 목록이다. 반 아이들의 도전을 받아, 거둬들인 수확물이다. 목록에서 10개의 메인 품목은 어른들도 원하는 한정판과 희귀품이었다. 그중 절반이 강천의 것이기는 해도, 반 아이들의 눈이 돌아갈 만한 희소품은 분명했다.

 ‘애나 어른이나 인간은 똑같거든.’

 내기로는 이길 수 없음을 아이들도 안다. 그럼에도 도전하는 애들이 간간히 있었다. 승리의 전리품이 쌓일수록 배당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1번만 이겨도 정우는 가지고 있는 모든 물품을 주기로 했다. 쌓여가는 한정판에 대한 애들의 소유욕을 이용하고 있었다.

 ‘로또에 당첨되고 싶은 녀석들은 모여라. 크크크.’

 상품에 눈이 멀어 무모한 승부에 뛰어드는 애들이 꽤 있었다.

 정우는 불 속으로 뛰어드는 가련한 부나방임에도 말리지 않고 받아주었다. 애들이라고 무조건 무시하진 않았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어 오는 애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뿐. 기발해봤자 끝까지 이끌어 갈 기획력과 뚝심, 두뇌 회전이 부족하다. 정우의 상대가 되기에는 100년도 이르다. 기본을 알면 그 즉시 최선의 방법을 찾아 도전자에게 절망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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