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승부의 마왕 (2)
퉁!
탄력을 받은 지우개가 날쌘 제비처럼 날아올랐다, 착지한 후 데굴데굴 굴렀다. 회전이 교묘하게 실려 있어서 대각선으로 큰 포물선을 그리며 팽그르! 돌았다.
차작!
포갰다.
요즘엔 가정에서 김장을 담그지 않기에 포개는 경우가 거의 없건만, 지우개가 김장 김치처럼 절묘하게 탑을 쌓았다. 포개는 면적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분란이 당연시되겠지만, 틈이 없이 완벽했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탑을 쌓을 수 있을까? 대충 만든 탑임에도 견고했다.
빠직!
강천의 사슴처럼 맑은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없든 말든 승부 끝.”
“다……시 해!”
“구질구질하게 할 거야?”
황당함, 분노, 억울함이 뒤섞여 저도 모르게 주먹을 들어 올렸던 강천은 끝내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야 했다. 그 처연함에 동정심이 생길 만도 하건만, 정우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어디서 감성을 팔아.’
애들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과 같다. 슬퍼서 운다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본능이 크게 작용한다. 어른은 애들의 눈물에 속아선 안 된다. 그리고 정우도 어린애다. 영혼의 나이는 현실에서 쳐 주지 않는다. 지금 내가 수백 살이라고 해도 그걸 믿고 예의를 갖춰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게 현실이다.
“정우야, 좀 져 줘도 되잖아.”
“버릇 나빠져요.”
굳이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는 격언은 꺼내지 않았다. 이 정도만 해도 나 선생의 입을 봉하기에는 충분했다.
‘이…… 썅!’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은 나유란이다. 예전에 비하면 성질 많이 죽었다. 대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물불을 가리지 않았었는데. 무엇보다 정우하고 다툼을 벌여봤자 주변에서 좋게 보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봐도 정우에게 잘못은 없었다. 그리고 바른말을 지껄여 주시고 있었다.
“친구끼리 그러는 거 아냐.”
“친구니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매번 이기면 강천이 속상할 거 아냐.”
“모르시는 말씀.”
정우는 돌아서는 강천을 불렀다.
“야, 이리 와 봐.”
“왜?”
강천은 돌아서기도 싫었다. 부른다고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돌아섰고,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호랑이가 등 뒤에서 떡하니 노려보고 있는 기분과 얼추 비슷하다. 순간적으로 아버지보다 무서운 느낌이었다.
“일부러 져 주면 좋아?”
“아니!”
“가 봐.”
“알……았어.”
교실에서 나온 강천은 기분이 더 나빠졌다.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면. 이건 말 잘 듣는 개 취급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들어가기 싫었다. 분루(憤淚)를 삼키고 돌아서야 했다.
“봤죠?”
“……!”
나유란은 절실하게 깨달아야 했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듯하나, 확실한 확인사살이었다. 악마와 친구를 해도 부족하지 않을 사악함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나쁘다고 질책하기 어려운, 지극히 합리적이다. 애들은 좀 애들답게 놀아야 하는데, 이 녀석은 승부에 들어서면 얄짤없다. 상대방의 감정과는 무관한 냉철함이 지배했다.
‘얠, 어떡하지?’
최선을 다하는 승부는 좋다 이거야. 그러나 정도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버릇을 고쳐줘야 했다. 이러다간 사회생활을 못 하게 된다.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 방법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는 법도 배울 필요가 있다. 매번 이기기만 하니, 애가 모든 일에 단호박이 되어 버렸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리.’
나유란의 굳은 각오였다.
각오가 읽혔음일까? 정우는 이상하게 기분이 더 나빴다.
‘표정이 마치 그놈 같네.’
5번의 전생에서 매번 진강백에게 굴욕을 당했던 정우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했건만, 그놈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배웠지.’
변명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청송 유치원 내에 게임 열풍이 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모바일 게임이 유행을 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청송 유치원은 아날로그 게임이 주도했다.
열풍의 장본인은 정우다. 아날로그 게임을 선호하는 이유로 스마트폰 게임은 눈이 나빠진다는 정론은 뺐다. 요즘은 시력 보호를 위한 필름이 향상되어 눈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 눈 대신 사용할 반영구적 렌즈도 개발되었다.
‘변수의 개입은 승부를 망치는 지름길이지.’
모바일 게임은 제작사가 만들어 놓은 운용프로그램, AI(인공지능) 의해서 작동된다. 가령 고스톱을 친다 해도 각각 가지고 있는 패를 제외하고, 깔아 놓은 패는 게임 내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임의적으로 선택한다. 따라서 타짜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승부는 모른다.
‘운이 작용하면 곤란하지.’
승부의 박진감과 묘미는 변수의 제거에 있었다. 변수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진정한 실력을 가릴 수 있다. 공정한 승부를 위한 정우만의 법칙이다.
실상 절대 공정하지 않지만, 반박할 수 없기에 공정한 승부가 되었다.
정우에게 양보는 없다. 걸어오는 승부를 마다하지 않고, 승수를 챙겼다. 또한 승리의 대가는 많든 적든 챙겼다. 게임에 대가가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 흑설탕 빠진 호떡이었다. 고구마 10개를 먹고 찐 밤 100개를 더 먹고 싶으면 나몰라라 해도 된다.
“넌 포기를 모르는구나.”
“오늘은 이겨.”
“그 말도 벌써 10번째다.”
“9번째거든!”
“아, 그랬나.”
강천이 또다시 승부를 걸어왔다. 애답지 않게 아주 끈질겼다. 그러나 승부에 건 상품이 수상했다. 고가의 시계를 가져왔다. 딱 봐도 스위스의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완성한 브랜드가 분명하다. 간결한 디자인과 몽환적인 백광이 인상적이었다. 혼수용으로 적합한 듯해, 가격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스마트워치가 지배하는 세상임에도 시계는 여전히 고전적이었다. 가격도 훨씬 비싸고.
정우는 시계를 훑고, 강천을 물끄러미 보았다.
“엄마한테 혼날 텐데?”
애들이 차는 시계도 아닐 뿐더러, 여성용이다. 견적은 보자마자 딱 나왔다. 이기고 싶은 간절함은 알지만, 매를 버는 짓이다.
“이거 내 거야.”
“그러셔.”
내기에 걸 물품이 떨어지자, 집에 있는 엄마의 애장품을 가져온 것이다. 브랜드이기는 하나, 평소엔 차고 다니지 않는 모양이다. 강천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의외로 머리를 쓸 줄은 알았다. 당장은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대결의 종목은 알까기.
바둑알 10개를 올려놓고, 상대편 바둑알을 바둑판에서 떨어뜨리면 끝이 난다. 승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선을 잡은 정우는 흑석을 잡았다. 각을 잰 후, 흑석에 스핀을 주었다.
퓨웅!
빠르게 치고 나간 흑석이 백석의 가장자리를 교묘하게 치고 나가 주변으로 퍼졌다. 1개의 흑석이 백석을 차지하며, 2개를 쳐 냈다. 1타 2피가 완성되었다.
타닥!
강천이 마음을 다잡고 공격을 했지만 1타 1피에 불과했다. 정우는 궤적을 잰 후, 2번 만에 강천의 바둑돌을 바둑판에서 몰아냈다.
털썩!
강천은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오만하게 앉아 있는 정우가 인상적이다.
‘가질 수는 없고, 엄마를 통해서 돌려줘야겠다.’
강천에게 직접 주진 않는다. 그럼 다음에도 엄마 시계를 가져와 승부에 거는 무모한 짓을 하게 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손버릇은 초장에 고쳐주어야 했다. 아마 집에 들어가면 강천의 엄마가 가만있진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엄마를 보면 그 친구가 보인다고 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오랜 시간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면 만만치 않은 성정을 지니고 계실 것이다. 강천의 불행이 기대가 되어, 기분이 참 좋았다. 대가는 심적인 위로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야말로 깔끔한 승부의 종지부였다.
두둥!
자기 시간도 아니면서 쉬는 시간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 선생이 독기를 품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또요?”
“겁나니?”
지는 것도 배워야 한다며 설득하던 나 선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기고 말겠다는 결의가 강력한 아우라를 형성했다. 알고 봤더니 나 선생의 속성이 오러였다. 내공을 수련하지 않아도 육체에 내공이 저절로 쌓인다. 다만, 전문적인 가르침이 없어 속성 등급 1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배움이 있다 해도 속성을 받쳐 줄 잠재 등급이 높진 않았다.
“괜찮겠어요?”
“괜찮거든!”
성격 나오려다 겨우 가라앉힌 나 선생이다. 정우에게 패배의 쓴맛을 가르쳐 주려고 했던 원래의 계획은 잊혀졌다. 10차례의 승부, 패배의 연속이었다.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채 망신만 톡톡히 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 증거로 나 선생의 이마가 톡 튀어나와 있었다.
‘무슨 애가?’
애들하고 대가성 내기를 할 수는 없었다. 지는 사람이 딱밤을 맞는 걸로 합의를 봤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가위바위보로 했다. 어릴 때부터 가위바위보에선 져 본 적이 없었기에 정우 정도는 얼마든지 해치워 버릴 수 있다고 자신했건만.
웬걸!
10번을 했는데 전패했다. 딱밤 10대를 고스란히 내주고 말았다. 애들이 때리는 거라고 만만히 봤다가 불벼락을 맞았다
“전 한 우물만 팝니다.”
정우가 내던진 말에 나 선생은 움찔했다. 그 말이 하나에만 몰두한다는, 순수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우는 같은 데만 골라 때렸다. 붉어진 이마, 정중앙을 계속 노렸다. 10번을 같은 데만 맞으니, 아픔이 배가 되어 뇌를 흔들었다. 엄마가 이마를 보고, 관음보살이냐고 했을 때 정우에 대한 분노는 극대화되었다. 불난 데 부채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는 내 앞에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절을 올리셨다.
“이번엔 젠가로 해.”
“그러죠.”
젠가는 가로 12cm, 세로 2cm 직육면체로 된 나무토막을 탑처럼 쌓아서 하나씩 빼내는 테이블 게임으로 먼저 쓰러지는 사람이 진다.
나 선생이 젠가를 가져왔다.
응?
정우의 눈을 의심케 하는 젠가의 크기다. 젠가도 사이즈에 따라서 대중소(大中小)가 나뉘기는 하나, 이건 특대를 넘어선다. 높이 1m에 가로세로가 50cm나 되었다. 나무가 아니라 우레탄 소재를 써서 가볍기는 하나, 용품점에서 살 수 없는 젠가다.
“이걸 어디서?”
“자체 제작했지.”
나유란은 젠가를 주문하느라, 월급의 3분의 1을 투자했다. 학창 시절 젠가의 여신으로 불린 그녀였다. 이번에야말로 진가를 보여주기 위한 투자이며, 승리를 위한 방정식이었다. 정우는 승부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녀석이다. 일반 젠가로 해서는 승부를 점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우는 나 선생의 집념을 느꼈다.
“만만치 않으신 분이네요. 선생님.”
“전력을 다해야 할 거야.”
나 선생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분노 게이지가 가파르게 상승해 극에 도달했다.
“승부에 연연하지 말라면서요?”
“시끄럽고, 시작하자.”
나 선생도 승부에 집착하는 한국인의 종족 특성을 물려받았다. 지는 것이 이기는 거라는 개소리는 이 자리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말로는 할 수 있을지언정, 막상 당해보면 생각은 생각일 뿐임을 체감하게 된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나 선생은 젠가를 담은 통을 들어 올리면서 비틀었다. 젠가를 직육면체로 곧추세워 놓으면 빼야 할 위치가 정해져서 쉽게 간파가 된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비틀고, 들어 올리자 형태가 뒤틀렸다. 그뿐이 아니다. 젠가를 구성하는 스틱의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왜 비싼지 알겠네.’
월급의 3분의 1을 소모한 이유를 발견했다. 젠가가 크면 클수록 쌓는 무게가 있다. 빼는데 힘이 들 수밖에 없다. 크기를 다양한 형태로 제작해 계산하기 어렵게 변수를 창출해 낸 것이다. 나 선생의 집요함과 승부욕을 체감하게 해 준다.
“가위바위보 말고 동전의 앞뒤로 해.”
“그러죠.”
치밀한 전략이었다. 동전을 던지는 것도 정우가 아닌 다른 애한테 시켰다.
‘허공섭물로 동전의 각도를 조절할까?’
수를 쓸까, 고민을 하다가 멈췄다. 상대가 먼저 속성을 사용했다면 모를까, 정당한 승부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