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정우 (1)
고층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도심.
아파트로 둘러싸인 공간 속에 고즈넉한 풍경의 유치원이 자리했다. 친환경 소재의 돌을 쌓아 만든 프랑스풍의 붉은 담벼락이 인상적이다. 특이하게도 외장은 유럽의 비잔틴 양식을 따르면서도 내장은 한국의 기와로 마무리했다. 동서양의 조화가 오묘하게 어우러졌는데, 꽤나 잘 어울린다. 청송 유치원이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지정 문화재로 착각할 만한 정성이 깃들었다.
“나 잡아 봐.”
“잡히면 흙 먹는 거야.”
“지지야.”
“그럼 모래는 먹을 거지?”
유치원의 놀이터, 아이들이 활기차게 뛰어놀고 있었다. 유치원 선생은 행여나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까,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본능에 충실하기에 돌발변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놀이터엔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벤치가 있었다. 부조화의 아름다움을 역설한다는 원장의 지극히 주관적인 역작이다.
동동!
벤치엔 아이가 앉아 있었다. 발이 닫지 않아 바동거린다. 유난히 큰 벤치로 인해서 아이가 더 작아 보이는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셀카를 찍을 때 얼굴 크기를 줄일 수 있는 소품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꽤나 크고, 덩치가 산만한 원장이 벤치를 설치한 이유가 그건가.
까닥까닥.
아이는 손가락으로 벤치를 두드리며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벤치는 놀이터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장소로 은근히 유치원의 왕 역할을 한다.
아이는 귀엽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 작은 공간에서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데 말이야.’
아무 생각 없이 뛰어노는 것처럼 보여도, 아이들 간에 서열이 있었다. 힘의 논리를 제외해도 잘생기고, 예쁘게 생길수록 인기를 한 몸에 차지한다. 애들이 몰려 있는 공간만 봐도 어떤 아이가 인기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홀로 떨어져 있을수록 인기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외로워하기는커녕 자연스러웠다. 동떨어진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 이 시간을 즐겼다. 하루 중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포근한 햇살을 맞으며, 살아 있는 생생함을 즐겼다.
‘왜일까?’
아이의 이름은 하정우.
현재 나이 7세.
나이만 봐서는 눈빛에서 풍기는 깊은 연륜을 감당하기 어렵다. 감추고 있어서 이 정도지, 드러내고 다녔으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아이가 다 안다는 듯이 똑바로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느낌일 것 같나? 어덜트 베이비(Adult-baby)도 정도가 있다. 귀엽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거다.
‘무림이 아닌 건 둘째 치고, 너무 빠르잖아.’
정우는 전생을 기억한다. 그것도 5번이나 되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7세의 몸에 수백 년의 정신체가 들어앉아 있다고 봐야 했다.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거에도 전생을 기억하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어린 시절은 전생을 모른 채 살아갔었다. 20세에 각성을 하고 나서야, 전생과 융합할 수 있었다.
‘빨라서 좋다고 해야 하나?’
엄마의 배 안에서, 즉, 뇌가 형성되는 시기에 전생이 떠올랐다.
‘그땐 익사당하는 줄 알았지.’
태아로 몇 개월을 있어야 했다. 엄마가 주는 대로 영양분을 공급받아 살아갔다. 뇌가 완전히 자라지 않아 전생의 기억을 흡수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는 했다.
배에서 나와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온전한 기억을 찾았다.
기억을 되살렸다 해도 별달리 할 일은 없었다. 자라지 않은 골격과 근력으론 홀로 배를 뒤집지도 못했으니까. 한 번은 엎어 놓은 채 엄마가 요리에 정신이 팔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었다. 인고의 노력으로 뒤집었기에 망정이지, 허망한 개죽음으로 기억될 뻔했다.
기억이라도 못하면 모를까, 대혈풍의 주재자가 배를 뒤집지 못해 죽었다고 소문이 나 봐라. 얼굴 들고 다니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으니까.’
정우의 전생은 혹독한 훈련과 처절한 살육전의 연속이었다. 살기 위해 훈련해야 했고, 명령에 절대복종했다. 반항은 꿈도 꾸지 못할 치열한 삶을 살았다.
5번의 전생에서 유년 시절은 사람을 빨리 죽이는 법, 뒤통수치는 법, 암계를 쓰는 법을 배웠을 뿐, 인성 교육은 뒷전이었다. 인성을 가지면 오히려 죽는다. 살인마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훈육기관에 있었다고 보면 된다.
그리 살고도 살인마가 되지 않으면 그것도 참 용하다. 누가 뭐래도 나름 떳떳하게 살아왔다. 살인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제대로 된 인성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법이다.
살인마 집단에서 길러져서 살인마가 되었던 것뿐, 자격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과는 다른 개념이다.
‘낯간지러운데 싫진 않단 말이야.’
현생의 정우는 혹독했던 전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마, 아빠의 과도한 보살핌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따뜻한 침소, 맛있는 음식, 애정 어린 시선은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했다.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비뚤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때와 좀 다르지만.’
4년 전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과도한 애정은 일반적인 애정으로 바뀌고, 유치원에 등록되었다. 오히려 지금이 그때보다 자유로워 운신이 편했다. 깨지기 쉬운 도자기 같은 대접은 때론 숨을 막히게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정우는 천생 무인이다.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실 수밖에.
무공을 수련할 시간이 필요했다. 4살 때까진 엄마의 젖과 이유식으로 연명하며, 내공수련에만 매진했다. 결가부좌로 수련을 하면 좋겠지만, 영유아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으면 피가 안 통해 발육에 문제가 생긴다. 무엇보다 꼬고 있으면 엄마가 항상 풀어 놓는다.
엄마의 무던한 방해에도 내공수련은 꾸준히 했다. 굳이 가부좌를 취하지 않아도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 짬밥이 얼만데, 고작 결가부좌에만 얽매이겠는가.
나는 입공(立功), 좌공(座功), 동공(動功) 모두 다 할 수 있는 천재 중의 천재다.
쌓아 올린 내공은 현천공(玄天功)을 바탕으로 한다. 전생의 무공을 집대성해서 완성한 무공이다. 깨달음이 극의에 이를수록 마공과 정공의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의 무도(武道)를 이루게 되었다. 혼란이 가중된 혼돈 속에서 음양의 이치를 깨달아 근원을 완성했다. 극히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기에 호흡만으로도 내공을 쌓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3갑자는 될 줄 알았는데.’
정우의 투정을 여타 무인이 들었다면 열불이 터질 일이다. 평생을 매진해도 1갑자는커녕 반갑자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삼류 무인이 차고 넘친다.
3갑자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세수벌모를 통해 강화했다 해도 7세에 3갑자는 불가능하다. 설령 3갑자를 유지한다고 해도 정신과 육체가 감당하기 어렵다. 내공을 담는 그릇, 즉, 육체가 받쳐줘야 하며 이를 통제할 정신적 성숙도 필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3갑자의 공력은 유리잔에 독을 채워 넣은 것이나 진배없다.
정우는 현재 2갑자의 내공을 쌓았다.
본인 딴에는 미진한 듯하나, 완성도 면에서는 전생의 어느 때보다 완벽했다. 내공은 단순히 양이 많다고 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진 않는다. 허술한 토대에 엉성하게 쌓아진 내력은 모래 위에 지어진 성에 불과했다. 마공의 단점이 바로 그러하다. 속도는 빠르나, 받쳐줄 튼튼한 토대가 완성되지 못해 광인(狂人)이 되거나 폭주하게 되는 것이다.
‘근력도 나쁘진 않고.’
내력을 쌓으면서 전신 혈맥을 뚫고, 근력을 담금질했다. 육체 단련을 통한 근력수련과 기가 흐를 토대를 만드는 작업은 중요했다. 내공이 포환이라면 육체는 포대였다. 강력한 포환도 포대 없이는 발출할 수 없는 법이다.
유치원에 등록한 이후로 훈련할 시간이 꽤 있었다. 내공을 받쳐주기 위해서는 육체의 변환이 필수적이다. 곧 한계에 다다른 내공이 그릇을 완성하기 위해서 탈피를 하게 될 것이다.
‘그건 그거고.’
육체 변화, 즉 환골탈태는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전생에서도 환골탈태는 기본 옵션으로 따라왔었다. 그것도 못하면 절대고수라는 이름표 떼어 버리고 다녀야지. 게다가 나의 환골탈태는 일반적인 형태와는 다르다. 단순히 껍질을 벗고, 골격을 변환시키는 수준을 넘어서 전신의 기맥을 일기관천(一氣貫穿), 하단(下丹), 중단(中丹), 상단(上丹)을 개방할 수 있었다. 상중하를 개방하게 되면 육신통(六神通)의 최고 경지에 올라 원하는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전대에서도 공령지체(空靈之體)까지는 갔었지만, 최고의 경지에는 못 올랐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최강이었으니까.
다들 나보다 못했다.
당대의 no.1이란 자부심은 있다.
-현재 스펙.
-내공 ; 2갑자.
-육체 ; 환골탈태 준비 중.
전생보다 빠른 발전이었다. 혹독한 수련을 하지 않았음에도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전생에 이런 스펙을 가졌다면 그 녀석이 발악을 한들 당하지는 않았을 거다. 까놓고 말해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겠지.
내가 더 강했다는 사실은 불변이나,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일까?
다른 세상에 환생했는데.
‘번번이 당한 내가 등신이지.’
실력만 믿고 설친 꼴이다. 다섯 차례의 격돌에서 방심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순수 실력으론 위에 있으면서도 놈(?), 아! 이런. 그러고 보니 이름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진강백이 마지막이었으니까.
진강백으로 지칭하겠다.
‘나를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진강백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위치에서 나를 이길 방법을 찾고, 치밀한 전략을 짰다. 전생의 기억을 이용하고, 후대에 각성할 때를 대비했으니 말 다했지. 손자병법의 모공편,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지나치게 우직해서 답답함이 고구마 1억 개를 처먹은 기분이 들기는 해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진강백이 나보다 우위에 있었다. 난 사람을 도구, 아니면 치워버릴 방해물로만 봤으니까. 필요하면 쓰고 아니면 버리고. 지극히 간단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했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도 환생했을까?’
5번이나 만났으면, 또다시 만나지 말란 법도 없다. 한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아닐 수도 있었다. 역천무한진은 하늘이 정해 놓은 순리를 비틀어 놓은 결계다. 이것이 진천뇌력탄의 영향을 받아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진천뇌력탄은 사기지.’
무림이라고 해봤자 현재와 비교하면 문명의 수준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천뇌력탄은 산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파괴력을 지녔다. 그것도 화약만으로. 예를 들면 성냥 1개비로 함선 1척을 태워버린 꼴이 된다.
혹시 벽력자도 전생을 기억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진강백, 너는 과연 어떤 모습일라나?’
정우는 전생처럼 살지 않을 작정이다. 대륙정복을 위해 매진했던 세월을 돌이켜 보면 아까웠다. 적당히 하고 싶은 거 하고, 즐기면서 살아도 되었다. 설령 야욕을 가지더라도, 이후의 생활을 고민해 봤어야 했다. 욕망의 달성보다, 달성 후의 삶을 고민할 것이다.
만난다 해도 굳이 싸울 이유는 없다.
‘여긴 무림이 아니니까.’
시간의 차이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역사를 읽어 보면 무림은 존재하지 않았다. 비슷한 설정이라고 해 봤자 중세의 중국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나는 대륙인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5번의 전생 동안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태어났다.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았다. 나라가 무슨 상관이냐 내가 곧 중심인데, 라는 마인드로. 조국이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딱히 애착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이 훨씬 애착이 간다.
타다닥!
상념을 깨우는 요란한 발자국 소리.
스윽!
정우의 고개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