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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리버스 빌런
작가 : 건드리고고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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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충실히 살아왔을 뿐이라고.

호랑이보고 풀만 먹고 살라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하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달라지려고 노력했는데.

이놈의 사회가 가만히 두지를 않네.

얌전히 살려는 사람을 건드리면 빡쳐, 안 빡쳐?

이건 전적으로 너희 탓이다, 내 잘못 아냐!

 
1권-002화
작성일 : 16-07-12 15:14     조회 : 690     추천 : 0     분량 : 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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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악연 (2)

 

 

 

 -5차 대혈풍.

 인간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곤 했다. 흥망성세는 자연의 지극히 당연한 섭리이기 때문이다. 썩은 세상을 부수기 위해선 피를 흘려야 하며, 새로운 세상은 시간이 흘러 고인 물이 된다. 역사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각오도 부질없다. 지나간 역사가 이를 증명해준다.

 혈교의 교주, 혈신(血神) 잔사인.

 변황을 군림하는 4개의 하늘을 제압했다. 무력은 초월경에 도달해 있었다.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최강의 마인이다. 그는 무력을 숨기지 않았다. 막을 테면 막아보라는 식으로 대륙을 공격했다. 그가 이끄는 5백의 혈풍단(血風團)은 천하무적이었다. 당대의 대방파인 대응방(大鷹房)을 반 시진 만에 초토화시켰다.

 잔사인은 거침없이 진격했다. 현 대륙의 십대고수(十代高手)를 10초식 만에 부수어 버리고, 혈교 천하를 이루기 직전이다.

 “이때쯤 나올 줄 알았다. 안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잔사인은 기다리고 있었다. 등장하지 않았으면 심심해질 뻔했다.

 하늘을 대신해 악을 처단할 대륙의 구원자.

 신검성(神劍城)의 성주, 검성(劍聖) 진강백.

 쇠락한 무림의 정의를 되살리고, 무너진 세력을 규합, 정의맹(正義盟)을 결성했다. 그는 맹주가 되어 혈교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무인이 전장에서 희생되었다. 강호 무림의 역사를 장식할 최악의 혈전이다.

 혈교와 정의맹은 장장 3년에 걸쳐 쉬지 않고 치고받았다.

 마침내.

 잔사인과 진강백이 천목산(天目山)에서 최후의 결전을 펼치게 되었다. 생사대적에 어울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결이었다. 둘 다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하여 천목산 일대를 부셔놓았다. 혈신과 검성의 목숨을 건 사투였다.

 상당한 진력을 소모하고 난 후, 숨을 고르는 소강상태가 되었을 때.

 하아아!

 깊은 한숨에 잔사인의 본심이 흘러나왔다.

 “이쯤 하자.”

 “그대야말로.”

 “너 자꾸 왜 이러냐? 그 정도 했으면 됐잖아.”

 “그대가 멈추어야 끝나는 일이다.”

 둘의 대화가 예상과는 달랐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부글부글!

 잔사인은 짜증과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저 벽창호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초지일관, 일관성 하나는 알아주어야 했다. 꽉 막혀서 숨 막히게 만든다. 사람이 말을 하면 타협점을 찾거나, 노력이라도 해야지.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정말 보자기로 보이는 건가. 아량을 발휘해서 좋게 말하면 좀 들어라.

 “꼭 다 된 밥에 재를 뿌려야 속이 시원하냐? 너 그것도 병이야.”

 “멈추면 그만이거늘, 악의 씨는 변하지를 않는구나.”

 세상이 안다면 까무러칠 대화가 이어졌다. 한두 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과거의 기록들이 회귀한다.

 “적당히 해, 새끼야.”

 “내가 아니면 누가 마굴에 가겠는가.”

 “마굴 좋아하시네. 그럼 이 세상은 아름답기만 했냐. 내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참혹했어. 넌 꼭 나만 건드리고 있잖아.”

 “그대야말로 악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잔사인의 전생은 독왕(毒王)이었고, 혈영(血影)이었으며, 전대에는 수라(修羅), 그 이전에는 천마(天魔)였다. 대륙의 혈풍을 주도한 악의 화신이 그의 진면목이다.

 그때마다 진강백이 나타났다. 이전에는 화령신수(火靈神手), 그 이전에는 천강(天强), 그 이전에는 검절(劍絶), 그 이전에는 신룡(神龍)으로.

 신분이 다르고, 얼굴 가죽이 바뀌었어도 두 사람의 영혼은 같았다. 전생의 악연이 이어지며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하늘의 농간이 아니고서야 1번도 아니고 5번이나.

 잔사인은 분노보다 짜증과 허망함이 자리했다. 대륙을 손에 넣기 위해 4번이나 도전을 했음에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다 이룰 찰나에 번번이 진강백이 등장해 초를 쳤다. 초 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못해 대가의 반열에 들었다.

 그건 인정해 준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수많은 무인을 도륙하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그럼 우리 적당히 나누어 먹을래? 라고 말로 타협하라는 거냐. 그런다고 양보해 줄 무림인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당연하게 하고 있었다. 인간은 자기 것을 나누는 생명체가 절대 아니다.

 “무인은 칼에 살고, 칼에 죽는다고 했어.”

 “궤변으로 행위를 정당화하지 마라.”

 잔사인은 과거를 돌이켜 봤다. 각성한 시기는 20살이었다. 그전까지는 전생을 모른 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갔다. 그 환경이 문제다. 마교, 혈천신교, 수라교, 독왕교, 해동혈교로 점철되었다. 살아온 바탕이 악마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도록 안배되었다.

 ‘환경이 다르면 나도 저렇게 됐을까?’

 잔사인의 고민은 자라온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필생의 대적자인 진강백은 매번 백도의 구세주를 자처하고 있었다. 환경적으로 백도의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면 그 반대가 되면 어떨까? 내가 놈의 환경에서 자라고, 놈이 나의 환경에서 자란다면.

 이제와 그런 생각을 한들 부질없기는 하다.

 ‘하늘의 뜻이라고! 그렇다면 이번엔 확실하게 끊어주마.’

 전생의 반복은 하늘의 농간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반복될 리 없다. 지긋지긋한 운명의 사슬을 잘라낼 때가 왔다.

 “나를 죽이면 그걸로 족하냐. 목숨까지 희생해 가면서. 그런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칭송해 줄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사람이란 족속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악의 씨앗을 처단하지 않고선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 수 없지 않는가.”

 “까놓고 말해보자. 내가 만든 세상이 왜 암울할 거라고만 생각하냐? 난 지금의 체계와 법칙이 만인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아. 일부의 기득권만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정상이라고 보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 해서 수많은 사람의 피를 요구할 자격은 네게 없다. 네가 무엇이라고 그들을 죽이고, 살리겠다는 것이냐!”

 잔사인은 피로함을 느꼈다. 무림의 법칙은 피로 이루어졌다. 법칙을 바꾸기 위해서는 당연히 피를 흘려야 한다. 오랜 세월 굳어져 버린 법칙이 말 몇 마디로 바뀌진 않는다. 그건 참으로 오만한 발상이다. 하지만 놈의 신념도 맞다. 기존의 체계에 맞물려 있는 자들도 살기 위해 발악하기 마련이니.

 ‘더럽게 귀찮네.’

 세상을 바꾸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말은 좋다. 하지만 다 개소리다. 나는 나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살아왔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맘대로 좌지우지할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이타적인 것도 정도가 있는 거야, 넌 즐기지도 못했잖아.”

 “인생은 즐기라고 있는 게 아니다. 희생의 숭고함을 그대는 알 리 없겠지.”

 “사람이 오욕칠정이 아닌 숭고함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너도 참 불쌍하다.”

 “그것이 나의 정의다. 모욕하지 마라.”

 잔사인의 대륙정벌은 오랜 시간과 공을 들였다. 하루아침에 ‘오늘부터 대륙’이라는 기치를 내세우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짬짬이 인생을 즐기기도 했다. 한편 진강백은 오롯이 정의구현을 위해 제 한목숨을 걸고 있었다. 삶의 굴곡 없이 정의만을 위해 매진한 인간이다.

 “네 인생이니 두말하지 않으마. 그러니 이젠 그만 가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났어. 선천지기까지 쏟아낸 주제에 어떻게 날 이기겠다는 거야.”

 “그대는 확실히 무공에 관해서는 천재다. 하지만 정의는 무너지지 않는다.”

 “동귀어진이 또 통할 것 같아?”

 잔사인은 오늘을 벼르고 또 별렀다. 일전에 당했던 개수작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독에 대한 면역력 증가를 위한 만독불침과 금강불괴를 이루어 그 어떤 독도 통하지 않는다.

 “네놈과의 질긴 악연을 끊어내기 위해 준비한 게 있지.”

 진강백의 표정이 바뀌었다.

 주변의 흐름이 달라졌음을 확인했다.

 “무슨 짓을?”

 “네놈만 꼼수를 부릴 줄 안다면, 착각이야.”

 잔사인은 몇 차례의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진강백과는 정면대결을 고수했다. 까놓고 말하면 일종의 오기였다. 실력으로는 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암수에 걸려 동귀어진을 당하고 나니 짜증이 치밀어 오를 수밖에. 이번엔 진강백이 꼼수를 쓰기 전에 선수를 쳤다.

 “역천무한진이다. 네놈과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어 주마.”

 역천무한진(逆天無限陣)은 4차례의 전투를 분석하여 완성한 잔사인의 역작이다. 하늘의 뜻이 진정 그렇다면 고리를 끊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운명이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늘의 농간에 장단 맞춰주기 싫다.

 우웅!

 발동된 진은 거대한 감옥이었다.

 “그 전에 승부를 내야겠지.”

 “승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진강백은 깨달아야 했다. 선천진기를 운용하고 있음에도 잔사인과의 싸움은 힘에 부쳤다. 전생의 경험으로 끊임없이 강해졌지만, 차이는 벌어지기만 했다. 천부적인 능력에서 잔사인이 위에 있었다. 그가 정면대결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동귀어진도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보고 우직하다고 하지만, 그도 만만치 않았다.

 퍼퍼펑!

 권과 검이 부딪치며 천둥과 벼락을 형성했다. 그러나 곧 검의 궤적이 권의 흐름에 잡아먹혔다. 잔사인이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푸앗!

 거침없이 내지른 주먹이 진강백의 심장을 꿰뚫었다. 진강백도 금강불괴를 이루었다 하나, 잔사인의 권경은 극강의 전사경(회전권경)을 내포했다. 안으로 파고들어가 진강백의 근원을 갈가리 부셔버렸다. 이번에야말로 질긴 운명과 전생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었다.

 “역시 강하군.”

 “그만 포기하고 편히 가.”

 보내 줄 때 좀 가라. 약한 놈 괴롭히는 걸 즐기는 변태도 아니고.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다.”

 “뭐라는 거야?”

 “타는 냄새 나지 않나?”

 진강백이 남은 진력을 모조리 다 폭발시키며 잔사인을 끌어안았다.

 와락!

 이 새끼가 마지막에 와서 돌았나. 왜 끌어안고 지랄이야. 그러나 그런 의도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제야 무언가가 타들어 가고 있음을 파악했다.

 “진천뇌력탄이다.”

 1발로도 성을 날려버릴 악마의 병기, 벽력자(霹靂者)의 역작이다. 진천뇌력탄(震天雷力炭)을 1발도 아니고, 수백 발을 천목산에 매장했다.

 “대체 언제?”

 “3차 혈전을 치를 때 준비를 해놨었다.”

 진강백의 치밀함과 준비성에 잔사인은 치를 떨었다. 이 인간은 절대 만만히 봐선 안 되었다. 방심하면 허를 찌르기 일쑤다.

 “그런다고 내가 못 빠져나갈 것 같아!”

 “생문이 사라졌을 텐데.”

 역천무한진엔 유일한 생문이 존재한다. 그건 결계를 구성하는 잔사인에 한해서다. 중심축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었다. 당연히 원하면 생문이 열리게 된다. 그런데 지금 생문이 닫혔다.

 “설마?”

 “천목산은 처음 그대와 마주했을 때부터 구상했던 장소다.”

 “진짜 준비성 하나는 철저하네.”

 완벽한 준비를 했다고 여겼건만, 진강백의 노림수는 천년대계를 그려놓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이 우직함에 역전의 빌미를 제공한 꼴이다. 거북이의 우직함이 날랜 토끼의 발목을 잡아챈 격이다.

 “넌 그렇게도 내가 밉냐?”

 “밉진 않다.”

 “차라리 욕을 할 것이지.”

 무지하게 얄밉다.

 죽어가면서도 저리 태평해도 되는 거냐.

 “그대와 나의 운명, 받아들이면 편안하다.”

 “개소리하지 마!”

 가공할 폭발력이 한 점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며, 흡수되었다. 잔사인은 진강백이 폭발의 중심축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화령의 정수를 이어받은 계승자다. 자신 스스로 불의 근원, 즉 기름이 되어 불타오르고 있었다.

 ‘제기랄!’

 역천무한진이 진천뇌력탄과 합류하면서 잔사인과 진강백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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