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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마산북부서 순경 조준혁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시작합니다"
대회의실에 상석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징계위원회의 개회를 알렸다.
징계위원장인 김규식의 말에 회의실 내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적막한 분위기 속에 준혁이 앉아 있는 자리를 힐끔 쳐다본 김규식이 말을 잇는다.
"아시다시피... 조준혁 순경은 일전에 수사대상자인 오철식을 실신할 정도로 폭행하여 언론에 보도된 사실이 있습니다. 물론, 오철식이 칼을 들고 있었다고 하나 전후과정을 모두 지켜본 주변인들의 진술에 의하면 조준혁 순경의 언행과 행동이 누구라도 폭행을 유발할만한 사항이었다고 합니다"
징계위원회에 참석한 위원들이 여기까지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에 조준혁 순경이 충분히 자숙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고, 오철식 사건이 모두 끝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었지만..."
뒷말을 흐린 김규식이 다시 한번 준혁을 바라본다.
"바로 어제 조준혁 순경이 피의자신문 조사를 마친 오철식을 또 다시 폭행하였고, 사안이 중한만큼 급하게 오늘 징계위원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김규식의 말이 끝나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제지하지 않고 잠시 침묵한 채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던 김규식이 잠시 후 말을 잇는다.
"현재 오철식은 이 폭행으로 치아탈구(tooth luxation, 齒牙 脫臼) 등의 피해를 입어 4주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진단서를 제출하였고, 변호사까지 선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 본 김규식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서류 중 1장을 들어 올린다.
"선임된 변호사는 곧바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준혁 순경의 독직폭행에 대해 고발한 상태입니다"
웅성, 웅성
주변이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자 준혁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박영우가 급히 손을 들었다.
"형사2팀장님. 말씀하세요"
징계위원회 위원장 김규식의 말에 영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사2팀장 박영우입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영우의 말에 순간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 본 영우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말을 잇는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 여러분. 이번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의 사안이 얼마나 중대한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도"
잠시 준혁을 바라본 영우가 계속 말한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금 거론되는 오철식이는 십 수년 전 있었던 통칭 'L'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입니다"
영우의 말에 회의실 내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영우의 말이 사실이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주변사람들을 돌아보는 사람.
이 때문에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영우가 말을 잇는다.
"경찰생활을 20년이상 한 저조차도 그런 큰 사건의 범인을 눈 앞에 두면 평소보다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게 현실입니다"
"그건 그렇지..."
옆에 앉아 있던 한 위원의 중얼거림에 그 쪽을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숙인 영우가 계속 말한다.
"조준혁 순경은 입직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임경찰관으로서 그 열정과 패기가 누구보다 남 다를 때 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 계신 위원님들도 겪어왔던 과정이기 때문에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영우의 외침에 주변의 시선들이 일제히 영우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번 일은. 팀장으로서 팀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이 사단이 나게 만든 제 책임입니다. 이번 일은 모두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영우의 말이 끝나자 김규식이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이미 소명자료를 통해 형사2팀장님이 십 수년 전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인 오철식을 특정하는데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 혼자 일처리를 하셨다죠?"
김규식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준혁이 움찔 몸을 떨었다.
"물론 팀의 지휘권을 가진 팀장으로서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어느 정도 있겠지만... 조준혁 순경의 징계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영우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가 순식간에 표정을 지우고 고개를 들었다.
마치 누가봐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라는 표정을 지은 채로...
그 모습을 애써 무시한 김규식이 준혁을 바라본다.
"조준혁 순경"
"...예"
"이번 일에 대해 해명할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김규식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준혁이 짧게 대답한다.
"없습니다"
준혁의 대답에 일부 위원들이 눈쌀을 찌푸렸다.
최소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정도의 형식적인 대답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규식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조준혁 순경은 법을 공정하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원리원칙대로 수사를 진행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피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불법체포의 여지가 있는 언행과 행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그 때문에 충분히 자숙할 시간을 주었음에도 바로 어제, 다시 한번 조사를 마친 피의자를 폭행하여 앞니가 탈구될 정도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에 본 위원장은..."
주변에 앉은 위원들을 둘러 본 김규식이 말을 잇는다.
"조준혁 순경을 '해임' 하고자 합니다. 이 처분은 여기 계신 위원들 중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찬성하시는 좌측에 있는 파란색 표지를, 반대하시는 분은 우측에 있는 빨간색 표지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친 규식이 잠시 후 표지 수를 헤아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9명 중 총 7명의 찬성으로 조준혁 순경을 '해임' 합니다. 조준혁 순경은 징계결과에 이의가 있을 시 소청심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상 이번 징계 위원회를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김규식이 징계위원회를 파하자 자리에 앉아 있던 위원들이 하나, 둘 회의실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김규식을 마지막으로 회의실 내부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가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준혁을 영우가 바라본다.
"그러게 뭐랬어?"
"..."
"깝치고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영우가 준혁의 어깨를 툭, 툭 치며 말한다.
"짧은 시간동안 고생했다. 꼴통"
말을 마친 영우마저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준혁이 그 자세 그대로 몸만 부르르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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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님!"
경찰서 밖을 빠져 나오는 준혁을 누군가 불러 세웠다.
고개를 돌린 준혁이 자신을 부른 사람을 확인한 순간 이를 으득 갈았다.
오철식을 다시 본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손에 칼이 있다면 순식간에 찔러 죽여버릴 정도로...
병재와 희연의 감시 하에 담배를 피고 있던 오철식이 준혁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
"잠깐 괜찮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런데"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준혁을 바라보던 희연이 오철식의 물음에 고개를 돌렸다.
"안..."
"얘기하고 와"
희연의 말을 병재가 중간에서 끊더니 말했다.
씁쓸한 얼굴로 준혁을 바라보던 병재가 다시 철식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한다.
"혹시라도... 허튼 짓 할 생각은 하지마라. 쟤한테 또 맞기 싫으면..."
병재의 말에 비어 있는 앞니로 피식 웃은 오철식이 고개를 끄덕인다.
"분부대로 합죠"
병재, 희연과 10m 거리를 두고 준혁에게 다가온 오철식이 씨익 웃는다.
"분위기가 저 때문에 벌 받으신 것 같은데 어떡해요? 이제 영영 못 보는 건 아니죠?"
"니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준혁이 별일도 아니라는 투로 말한다.
"하나만 묻자"
"예?"
"어제 나한테 맞기 전에 했던 말... 무슨 의미냐?"
"아~ 그 때 제가 한 말이 분명..."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표정을 짓던 오철식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말을 잇는다.
"맛있었는데... 였나요?"
"이 개새....!"
순식간에 발작하려는 준혁을 보며 오철식이 급히 손사레를 쳤다.
"워~워~ 진정하세요. 형사님한테만 특별히 초특급 정보를 주려고 하는데 또 때리실거에요?"
"뭐?"
움찔하는 준혁을 보며 가까이 다가온 오철식이 준혁의 귀에 무어라 속삭이기 시작한다.
약 5분 뒤, 말을 마친 오철식이 준혁의 눈을 마주보더니 씨익 웃으며 준혁에게서 멀어져 간다.
준혁은 혼이 빠져나간 것 마냥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