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세계를 플레이합시다!
“후, 하.”
나는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비비꼬았다가, 평소와 다른 느낌에 다시 시선을 주게 되었다.
이 ‘몸’의 머리카락은 새하얬다. 거울 속의 여자는 눈동자도 새파랬고, 예쁘고 가는 몸매에 백인에 가까운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살짝 서양인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정작 얼굴은 예쁜 동양인이었지만.
내가 옆으로 고개를 기울이면 거울 속 여자도 기울였고, 내가 눈을 깜빡이면 여자도 눈을 깜빡였다. 아무리 확인을 해도, 저 예쁜 여자는 ‘나’였다.
“적응 안 돼…….”
몸이 바뀌건 코스프레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나았다.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인척 연기하는 거야 누구든지 하지 않는가. 하지만…….
통통,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바짝 긴장을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척 얌전히 앉았다.
“엘리니아 씨?”
“…….”
엘리니아가 누구지? 순간 내 방문이 아니라 다른 방문을 두드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똑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니아 씨?”
“아, 네!”
‘내’ 이름이었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문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아까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왔던 것이 떠올라, 쉽사리 열지 못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세요?”
“아, 네…….”
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여자의 표정이 선하게 그려졌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떠오른 여자의 얼굴을 지웠다. 눈앞에 없는데도 보이는 것만 같은 게, 너무 이상했다.
“식사, 가져왔어요.”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은 열지 않았다. 여자는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한숨을 쉬는 듯한 표정이 보였다.), 작게 속삭였다.
“부담되시는 거면, 문 앞에 두고 갈 테니 꼭 드세요. 어제 저녁부터 굶으셨으니, 드셔야 해요.”
“…….”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이런 친절은 불편하기만 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내가 호의를 받는 건, 마치 없는 빚을 받는 느낌이었기에.
“맛있게 드세요.”
내가 대답을 하지도 않았지만, 여자는 그 말만 남기고 멀어졌다. 그리고 계속 떠오르던 여자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타닥이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어느 순간 뚝 끊겼다. 나는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무섭게 문을 열었다.
여자의 말대로 식사가 놓여 있었다. 버섯 스프와 마른 빵 두 조각. 간단하고 속에서도 부담이 되지 않을 음식이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호의를 거절하기도 뭐해서, 결국 쟁반을 들었다.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다시 본 복도는 온통 갈색이었다. 나무 바닥, 나무 벽, 나무 문. 걸쇠조차도 쇠가 아닌 나무로 되어 있었다. 방의 이불을 제외하고 전부 나무였다.
“적응이 안 돼…….”
문을 닫고 식사를 하자, 기계음이 섞인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회복 아이템 - 버섯 스프’를 섭취합니다. 배부름이 상승합니다. 목마름이 감소합니다.]
[‘회복 아이템 - 갈색 빵’을 섭취합니다. 배부름이 상승합니다. 목마름이 상승합니다.]
[‘회복 아이템 - 버섯 스프’ 섭취가 완료되었습니다. 체력과 마력이 회복 됩니다.]
[‘회복 아이템 - 갈색 빵’ 섭취가 완료되었습니다. 체력이 회복 됩니다.]
[‘업적 - 첫 식사’를 달성했습니다. 생존 경험치 10 증가합니다.]
[생존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총 레벨 1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능력치를 분배해주세요.]
목소리가 사라진 직후 내 눈 앞에는 반투명한 것이 떠올랐다. 흔한 게임의 스테이터스창 같은, 아니 정말로 스테이터스 창이었다. 레벨, 체력, 마력 등등이 표기되어 있고, 내 이름도 떡하니 ‘엘리니아 들로웬(Elinia Dlrowen)’라고 되어있었다.
그래, 여기는 이세계. 그러니까 게임 속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