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은 마법사야. 마법저항력이 높아야 해.’
민재의 마법저항력은 낮았다.
지금까지 구입한 아이템도 물리공격이나 방어위주였다.
민재는 신전으로 귀환해 마법저항력 아이템을 구입했다.
[이민재 레벨 16 체력 2042 골드 10]
주요 옵션으로는 이동속도 +45, 기본공격 적중 시 1.5초간 적의 이동속도 -40%, 마법 저항력 +55가 있었다.
민재는 정글을 거쳐 봇라인으로 다가갔다.
봇라인의 전선은 아군의 억제기 앞쪽에서 형성되어 있었다.
전령의 연락을 받은 원정대가 급히 아군의 억제기를 방어했고, 악마는 9명의 외계인들과 힘을 합쳐 포탑 앞을 맴돌고 있었다.
적이 10명이나 되었기에 민재 혼자서 악마를 잡는 것은 무리였다. 아군과 공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은 거리를 둔 채 서로 견제를 하고 있어 끼어들 시기가 아니었다.
민재는 정글에서 사냥을 하며 미니맵을 유심히 살폈다.
그때 사자를 비롯한 아군 몇이 본진에서 빠져나와 정글로 진입했다. 이동경로를 보니 악마를 뒤에서 덮칠 생각인 것 같았다.
채팅창을 보니 추측이 맞았다.
본진의 아군은 총 11. 정글로 간 우회조는 5명. 타이밍만 잘 맞는다면 교전에서 승리할 수도 있었다.
‘돕는 게 낫겠어.’
어시스트만 올려도 골드를 획득한다. 아직 아군들은 아이템을 사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으니, 아군을 도와 골드를 획득하는 것이 이득이라 판단했다.
민재는 사냥을 그만두고 사자에게 접근했다.
“적이다!”
우회조가 민재를 보더니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민재는 급히 그들에게 소리쳤다.
“같은 편입니다!”
“음? 말을 하는 군.”
아군이 공격을 멈추곤 민재를 살폈다. 그들 중 사자가 앞쪽으로 나왔다.
“자네군. 이곳에서 왜 서성이는가?”
“당신들을 돕겠습니다.”
“돕겠다? 생각이 바뀌었나?”
“네. 아군이 불리하더군요.”
“미안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임무 중이네. 자네가 자칫 실수라도 저지른다면 아군 모두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참가를 허락할 수 없네.”
‘아까 참가를 거절해서 신뢰를 잃은 것인가?’
민재는 그들에게서 물러선 후 생각을 해보았다.
‘아군은 수가 많고 기습의 효과도 있어. 하지만 아군에 비해 악마가 너무 강해. 전력은 비등하다.’
다수의 외계인이 죽어나갈 것이다. 민재는 어떻게든 그 사이에 끼어들어 이익을 챙겨야 했다.
민재는 사자보다 좀 더 앞쪽의 수풀에 몸을 숨기고 타이밍을 쟀다.
잠시 기다리니 본진에서 엘프가 화살을 쏘았다. 얼핏 보면 적을 맞추려다 빗나간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공격 신호인 것이다.
“적을 섬멸하라!”
거대한 야수를 선두로 아군이 적에게 달려들었다.
도합 11. 적에 비해 숫자가 하나 더 많았다. 적들은 갑작스럽게 돌진하는 아군을 보며 전열을 재정비했다. 악마는 뒤쪽에 서서 보호를 받으며 언제든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지팡이를 높게 들었다.
그 순간 아군과 적이 격돌했다.
파파팍!
무기와 마법, 스킬과 함성이 난무했다.
악마는 바닥에 검은 늪을 깔았다. 이동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지속적인 피해를 입혀 아군이 꺼리는 기술이었다.
늪 위에서 싸우는 것은 너무 불리했다. 하지만 워낙 늪이 교묘히 깔려있어 쉽게 몸을 빼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피해를 무릅쓰고 아군이 후퇴하기엔 손해가 막심했다.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이 달려들었다. 양측의 스킬이 서로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그때 악마가 마법을 사용했다.
지지직!
보라색 번개가 아군에게 쏘아져 피해를 입히더니 곧 인근의 아군에게 번개가 튀었다. 몇 차례나 그렇게 번개가 튀자 아군 전체의 체력이 급감했다.
[아군이 적에게 당했습니다.]
“돌격 앞으로!”
수풀에 숨어있던 우회조가 적의 후미를 급습했다.
전열 뒤에 있는 악마를 노리는 기습이었다.
“이샤쓰!”
악마가 소리치자 적들이 공격을 멈추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면서도 그들은 악마를 보호하려 했다.
우회조는 쉽게 적을 놓아주지 않았다. 우회조가 가진 스킬은 적의 발목을 묶거나 혼란에 빠뜨리거나 느리게 만드는 등, 적에게 상태이상을 거는 것들이었다.
때문에 적은 쉬이 도망을 치지도 못하고 아군에게 포위당할 수밖에 없었다.
적은 후퇴를 중단하고 아군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아군이 선전하고 있었지만 크게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악마의 스킬에 아군 다수가 큰 피해를 입은 후였기 때문이었다.
아군의 스킬은 악마에게 집중되었다. 적들 중 가장 강한 딜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들이 악마를 보호하려 애를 썼기에 악마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래도 원거리에서도 적중이 되는 스킬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으그라!”
흙정령의 손에 발이 잡힌 악마가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화가 단단히 난 것이다. 정령에게 잡혀있는 잠깐의 시간동안 악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악마를 죽여라!”
체력이 반 이상이나 닳은 상태이긴 했지만 아군은 수가 많았다. 모두가 합심해 적의 진형을 파회하며 돌격을 감행했다.
온갖 스킬이 난무하니, 악마가 비명을 지르며 양 팔을 벌렸다.
“로 파라트라 하!”
갑자기 악마의 몸에서 시커먼 연기가 끓는 증기처럼 뿜어지더니 적아를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쉬이이익!
“으아악!”
범위공격이라 인근에 있는 외계인 모두가 피해를 입었다.
피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었다. 계속해서 악마의 몸에서 증기가 뿜어지니, 아군은 물론이고 적군마저 공격을 멈추고 도망을 치려했다.
그 때 악마는 자신의 발밑에 늪을 깔았다. 악마를 보호하던 외계인들과 돌격을 감행했던 아군 대부분이 늪에 걸려들었다.
츄와악!
끈끈이처럼 발이 들러붙자 외계인들은 쉬이 도망치지도 못하고 검은 증기에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적이 처형되었습니다.]
[적은 전설입니다.]
[적이 처형되었습니다.]
[적 더블 킬.]
[적 트리플 킬!]
순식간에 아군 8명이 죽어 버렸다. 이로써 본진에서 출격한 11명의 외계인 모두가 사망한 것이다. 아군 우회조는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피가 간당간당했다.
반면 악마는 연속 8킬을 거둔 여파로 레벨이 상승해 체력이 일부 회복되었다. 이대로는 나머지 아군들마저 학살당할 것이다.
‘아군이 지겠군.’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악마가 더 크기 전에 제압해야 했다.
민재는 수풀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 순간에도 아군은 적들에게 죽어나갔다.
악마의 체력은 240.
몇 대만 때리면 잡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증기와 늪에 당해 체력이 간당간당하게 남은 적 외계인이 다섯.
녀석들은 모두 한 대였다.
악마에게 거의 다가갔을 때쯤, 아군은 이미 전멸해버린 후였다. 남은 녀석들은 이제야 민재를 발견하더니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시기가 너무 늦어 민재를 막지는 못했다.
민재는 한 녀석의 배에 정글도를 쑤셔 박았다.
푸욱.
“즈크으으···.”
[전설의 이민재님.]
외계인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나머지 녀석들이 민재를 공격했다.
츄왁!
날카로운 무기가 몸을 스치며 통증이 느껴졌다. 한둘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공격이 들어오니 이가 떨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 중 망치의 타격이 제일 강했다. 개를 닮은 녀석이 휘두른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자, 순간적으로 민재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게 서 있는 2초 동안, 민재는 다섯 외계인들에게 집중타격을 받고야 말았다.
“크윽!”
2초가 지나고 나서야 민재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미 체력이 간당간당했다. 적의 스킬을 홀로 맞아버리니 그 많던 체력이 단숨에 깎인 것이다.
‘한 대만 더 맞으면 죽는다!’
고통이 너무 심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민재는 그것을 인내하며 땅바닥에 있는 아이템을 훑었다.
슈르륵.
아이템이 빨려드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 순간, 시야에 망치가 보였다.
“간 타프라하!”
개 외계인이 두 손으로 망치를 들곤 풀 스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목적지는 민재의 얼굴.
저것이 줄 통증이 얼마나 클지, 생각만 해도 뼛속이 지려왔다.
‘조금만 더 빨리!’
얼굴에 직격당하기 직전, 아이템이 빨려들었다.
솨샥. 솨샥.
체력이 급속 회복됨과 동시에 망치가 얼굴을 가격했다.
퍼억!
‘악!’
엄청난 통증과 함께 허리가 뒤로 젖혀졌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적을 쳐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민재는 재빨리 한 발을 뒤로 디뎌 몸을 지탱하곤, 그대로 땅을 박찼다.
‘죽어!’
정글도를 개에게 찔러 넣는 도중에도 옆구리에 칼이 박혀들었다.
‘으윽!’
스치듯 지나가며 정글도로 개를 그었다.
스걱.
[더블 킬.]
개가 쓰러지는 것도 보지 않고, 민재는 팔을 옆으로 뻗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바로 옆에 해골 외계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터걱!
[트리플 킬!]
그 순간 적의 공격이 민재에게 엄습했다.
표범 외계인이 칼을 찔러왔다.
악마의 지팡이에서선 보랏빛이 튀었다. 번개 스킬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체력이 30도 남지 않은 지금, 하나라도 적중 당했다간 바로 사망이다.
민재는 급히 몸을 뒤로 젖혔다.
달려가던 속도가 있어 슬라이딩처럼 미끄러졌다.
휘익!
머리 위로 칼날이 스쳐지나가며 민재가 흘린 땀을 베었다.
살았다는 안도는 순간일 뿐.
번개가 작열했다.
엄청난 속도. 눈으로 재기 힘들 정도였다.
‘회복!’
민재는 이를 악물며 유저 스킬인 회복을 사용했다.
[체력 260회복.]
빠지직!
[데미지 272.]
“으악!”
번개가 몸을 강타하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생각하는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한 고통.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죽음은 피했다.
투다닥.
바닥을 뒹굴며 아이템을 빨아들였다.
쉬리릭.
체력이 급속회복됨과 동시에 민재는 공격을 감행했다.
한쪽 발을 뻗어 악마의 발을 치는 것이다.
땅을 구르는 상태로 공격을 해봐야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러나 이곳은 시스템이 지배하는 세상. 스치기만 해도 데미지가 들어간다.
발끝이 악마의 발에 닿기 직전, 민재는 스킬을 사용했다.
‘강탈!’
퍽!
[아이템을 강탈하셨습니다.]
[누마한의 지팡이. 마나 +150 주문력 +30]
‘성공했어.’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민재는 발을 땅에 딛고 자세를 잡았다.
“모토 프라하!”
고통으로 일그러진 낯으로, 악마가 지팡이를 내리찍었다.
하지만 놈의 주먹은 애꿎은 허공을 훑고 지나갔다.
손에 지팡이가 없는 것이다.
“마자로프?”
악마가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보는 그때, 민재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아이템을 더 휩쓸었다.
슈슈슉!
순식간에 10개가 넘는 아이템이 빨려들었다. 그 중에는 아군의 시체에서 나온 아이템도 있었다.
‘아군의 것까지 약탈되다니!’
순간적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그 감정은 잠시 뿐이었다.
체력이 절반 가까이 회복됨과 동시에 능력치가 상승했다.
남은 적은 셋.
민재가 일어설 때쯤, 표범과 문어가 달려들었다.
“로고랏타!”
칼과 작살이 민재의 배에 박혀들었다.
‘크윽!’
혀끝에 비릿한 맛을 느끼며 민재는 도를 날렸다.
“죽어!”
퍽! 서럭!
[쿼드라 킬!]
[펜타 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