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엔 마음이 맞는 놈들끼리 팀을 짜서 모아놨지만 오늘 같은 비상시엔 가장 비슷한 수준의 천적인 놈들로 팀을 짜 놨던 터였다.

　스케줄이 있을 무렵엔 놈들의 기분을 최대한 상하지 않게 하면서 거슬리지 않게 할 정도의 팀으로 상호 보완을 해 왔지만 이번처럼 놈들 자신이 아닌 외부의 변수가 일어날만한 상황에서는 도리어 서로를 긁어서 제동을 걸어 줄 놈들이 필요했다.

　평상시 놈들의 패턴을 보자면 천적인 상대에게 틈을 안 보이기 위해서라도 능히 불쾌한 모든 순간을 눌러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놈들이 천적인 놈들에게 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성질을 참는 것 말고 다른 변수는 잊고 있었다.

　놈들에겐 제각각 성질을 폭발하게 만드는 스위치가 있었고, 그것을 외부에서 건드리게 된다면

　천적인 놈들끼리 더 똘똘 뭉쳐서 개판을 쳐 버린다는 것을.

　각 기획사 간부들과 투자자들 틈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어디선가 거친 쇳소리가 들리며 찰진 효과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퍽!

　“컥.”

　짝!

　퍼버벅.

　“으흑.”

　쿵.

　“헉!”

　그리고 이어진 놈들의 대화는 도저히 들어주지 못할 만큼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니 새끼들은 악마 종자들이라고. 하나같이 음침해가지고 개성이라곤 하나 없이 죽은 동태 눈깔 때려 받은 것처럼 게슴츠레~ 한 것이 똑같은 놈들이야.”

　“내가 이 새끼들이랑 똑같다고?!”

　커다란 목소리로 합창하듯 놈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다른 곳에서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 니 새끼들은 그 캐스팅 팀장이라는 인간이 비슷한 놈들만 따로 관리한다며?”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런 무개성에 찍어 붙인 것처럼 똑같은 연기력으로 용케 톱스타 반열에 올라 있다 싶어서 말이지.”

　상대방의 도발에 진정규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야 그렇다 치고, 니들은 뚜렷한 개성에 연기력도 출중한 인간들이 어째 우리들만큼도 못 기어오르고 있냐?”

　“그거야 우린 니 새끼들처럼 기획사 덕을 못 봐서······.”

　아픈 델 찔린 듯 동요하는 상대의 목소리에 조금 차분해진 진정규가 아까 전 상대방처럼 똑같이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아항~ 그래? 하지만 어쩌나. 잘난 기획사 덕을 보는 것도 실력인데. 더구나 그렇게 말하는 그쪽도 기획사 힘으로 치면 우리랑 비슷하지 않나?”

　“우린 기획사 덕을 안 보니······.”

　“비빌 언덕이 있는데 왜 못 비벼? 등신이냐?”

　“뭐? 너 이 새끼. 말 다 했어?”

　“말끝마다 새끼, 새끼, 터지는 말꼬라지 하고는······. 그렇게 품위 없고 개성 따져 대니까. 싸구려 냄새나고 안 팔리는 거야. 개성도 개성 나름이고 이용할 수 있는 걸 이용하는 것도 실력이야. 근데! 싸우자고 덤벼드는 네놈들은 아무것도 이용할 줄을 모르니까. 이날 이때껏 그 모양인 거야.”

　“이 음침하고 연기력 딸리는 새끼가?!”

　퍽!

　“욱-!”

　“연기력 딸리는 새끼가 일 년도 안 돼서 스타 될 동안, 주연 한 번 못 했으면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

　퍽!

　“크-ㄱ. 이 새끼야! 나도 네깟 놈들처럼 기획사 등에 업고 낯짝 반반했으면 진즉에 톱스타였어!”

　“그래? 그것 참 안 됐네. 왜 큰 기획사에서 안 밀어줬냐?”

　“네놈들처럼 기획사 믿고 날뛰지 않아서 그래. 새끼야!”

　퍽!

　“그건, 네 생각이고. 회사에선 밀어줄 놈들만 밀어줘. 여기 애들 다 합쳐도 톱스타 된 지, 20년이 못 되는데, 넌 뭐냐? 니들은 뭐냐?”

　“.........”

　“연기 실력 좋다면서 실력도 뭣도 없다 떠들어대는 우리들한테 까이기나 하는 주제에. 넌 무명 기간까지 합쳐서 이십 년 가까이 된다지, 아마?”

　“십오 년이야!”

　“이십 년이나 십오 년이나.”

　퍽!

　진정규를 비롯한 놈들은 빙글빙글 웃어가며 상대방 기획사 배우들을 조롱하며 걷어찼지만 놈들의 기세에 사람들은 섣불리 놈들을 말리지 못한 채 얼어있었다.

　‘내, 저 놈들이 저리 될 줄 알았어야 했는데.’

　머릿속이 순식간에 뒤죽박죽 되어갔다.

　“수습을 어쩌지? 죄송합니다. 잠시······.”

　“아, 그럼 다음에 봅시다!”

　투자자들이 모여 있던 그룹에 양해를 구하고 놈들에게 뛰어갔다.

　“정지!”

　“아~ 왜! 한참 재밌어지는데.”

　‘네놈들만 재밌지. 다른 사람들은 안 재밌다. 이 무식한 놈들아.’

　“니들은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린 줄 알고 쌈질이야. 어?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머리가 몇 번이나 땅에 닿을 때까지 허리를 굽실거리고 있자니 양 쪽에서 놈들과 각 회사의 배우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고, 자칫 싸움이 재개될 위험이 엿보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가자!”이곳에서 더 있다간 수습도 못하고 또다시 개판이 되지 싶었다.

　“실······.ㅇ”

　난다 긴다 하는 놈들이라 귀를 잡고 끌고 가는 것에 질색하긴 했지만 저들도 문제를 자각했는지 순순히 끌려 나왔다.

　‘일단 이 놈들이 어떤 스위치에 발동이 걸려 날뛴 건지 알아보고······. 사과를 해서 수습을 할지, 사과를 받을지 정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