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요, 장 여사. 어지간하면 자살 소동은 그만 두지 그래요? 이젠 잘 먹히지도 않는 거, 피 아깝고 헛고생 이잖아. 피차 피곤할 것을······. 부지런도 하지. 아니면 이런 것도 습관인 건가?”
어머니의 가늘고 지저분한 팔목을 소독하고 락스에 마모된 수건을 붕대 삼아 대충 둘둘 말아버렸다.
부모라는 사람이 잘하는 행동도 아니고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 정성스레 치료해주지 않는 것에 죄책감 따윈 느껴지지도 않는다.
단지 답답하고 끓어오르는 열기뿐.
위험하다. 이러다간 또다시 잠든 어머니를 붙잡고 어깨를 흔들어댈 판이다.
‘차라리 바람이나 쐴까?’
이렇게 못 견디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건 지겨울 정도로 익숙하고 잦은 일상이다.
이런 날이면 가게 되는 곳 또한 예상 가능한 범위의 공간이고, 보고 싶어 하는 장면과 만나게 되는 사람 또한 정해져 있다.
지하철과 지랄 맞은 성격의 소속 연예인. 그리고 우울과 괴로움으로 범벅이 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나도 참 꼬인 놈이지. 겨우 십 년 다르게 살았다고 그렇게 밝고 세상 편하게 살던 놈이 이젠 못 견디겠다고 타인의 생 라이브 우울 포르노를 지켜보며 감정을 억누르는 놈으로 변하다니.
못나도 이렇게 못날 수가 없고, 최악도 이렇게 최악일 수 없다.
밝고 편하게만 살아오다가 우울한 가면을 쓰고 우울하고 답답하게 살아가는 게 분해서 우울하고 답답한 게 일상인 사람들로 위안을 찾다니.
실망스러울 정도로 최악이다.
하나 남은 유일한 가족의 지치는 행태에 환멸을 느끼고 차라리 지랄 맞은 타인의 지치는 행태를 견디러 가는 인간이 정상적인 인간일 리 없다.
그러나 살아가기엔 어쩔 수 없는 나만의 방법이다.
못나고 잘못된 방법일지라도.
그런 자신이 못내 한심스러워져서 일산에 사는 소속 배우 진정규의 집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편의점에 들러 팩소주부터 따고 있다.
벌써 여덟 팩 째.
만성 우울증 주정뱅이를 어머니로 둬 놓고도 똑같은 짓을 저지른다.
어머니완 다르게 진짜로 속이 우울한 종자는 아니지만······.
스스로의 이런 행태가 못마땅하다.
여덟 팩이나 위에 들이부으면 알딸딸하게 취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취하는 것도 실패인가 보다.
소주 팩으로 엉성한 딱지를 만들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심하게 멀쩡한 몸으로 진정규의 집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싹수없고 글러먹은 만성 우울증 환자 진정규는 문을 열자마자 대본부터 면상에 던져버린다.
퍽!
“이, 짐승 새끼보다 글러먹은 놈이······.”
퍽!
“야!”
“그러게 누가 나 같은 새끼 주워서 데뷔시키래? 나 같은 새끼한테 이따위 대본 던져 주라냐고!”
‘또 대본이냐?’
아무리 내가 자초한 업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우울하고 까칠하게 생겨먹은 놈이라 마냥 그런 작품에만 캐스팅되는 게 내 탓이냐?
아니······. 그래. 그런 놈을 캐스팅해서 데뷔시킨 것이 내 잘못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 이후의 것까지 내 잘못이라는 건 이 놈이 너무 싹수없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그렇게 우울하고 싹수없는 캐릭터가 싫을 거였으면 노력해서 연기 색깔이라도 바꿔 보던가. 그도 안 되면 외모라도 바꿔 보던지.
이기적이고 고집도 대단하면서 번번이 이런 일로 강짜를 부린다.
“그건 네 연기가 그 모양이라······.”
“무슨 매니저가 좋은 말은 손톱만큼도 안 하냐? 내가 형한테 괜히 성질을 부리는 게 아냐. 매번 이렇게 속을 긁으니, 성질 안 부리고 배겨?”
다른 날 같으면 못 들은 척 의뭉이라도 떨 텐데, 오늘은 좀 마셨다고 조금 치받아 오른다.
“그것도 네 성격이 지랄 맞아서다. 비공식이 아니라 공식적인 네 성격이야. 남 탓하지 마라!”
퍽!
“이 새끼가 그래도······.”
“아, 됐고! 이거 싫으니까. 다른 작품으로 받아다 줘. 안 해, 이 작품은. 한두 번이 라야지. 이런 것만 하다가는 보기 좋게 질리는 배우 되겠어. 회사에도 비슷한 캐릭터 많잖아? 싫어. 남들이랑 똑같아 보이는 건.”
‘새끼······. 캐스팅받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지 아나.’
이 놈이 나름대로 유명한 배우이긴 해도 아직까지 자유자재로 무르익은 연기를 하는 수준은 아니다.
비슷한 연기도 급이 있다고······. 실제인 듯 자연스럽게 하는 연기가 아니라 저 자신을 답습하는 배우인 녀석에게 아직까지 사정해가며 캐스팅 청탁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강짜를 부리면 부리는 만큼 피곤해지는 건 사정을 해가며 확정된 캐스팅을 무르고 다른 작품을 받아와야 하는 나이다.
잘못 생각했다. 이왕 뒤치다꺼리를 하려면 이미 궤도에 오른 톱스타가 편한 거였다.
“지랄은 톱스타가 되고 나서 부려라. 아직 네가 고집부리기에 백 년은 이르다.”
결국 말이 또 퉁명스럽게 튀어나온다.
“나보고 싸가지라 하면서. 형이야말로 싸가지요. 뭐 하나 좋게 받아들여주는 맛이 없어.”
“그러니까. 내가 말하잖나. 지랄은 톱스타 되고 부리라고. 너랑 캐릭터 비슷한 다른 놈들처럼, 연기 무르익어서 같은 캐릭터라도 달라 보일 수준 된 다음에. 남들이 대본 싸들고 와서 사정, 사정할 입장되고 나서.”
“염병······. 어느 천 년에 톱스타 되겠어. 이렇게 뒷받침도 안 해주는 불성실한 인간이 매니저인데.”
“네 뒤치다꺼리하는 사람은 나다. 그러니 잔소리 나올 것 같거든 알아서 입 닫아라!”
“흥!”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 놈의 까탈을 받아주고서 놈이 챙겨 논 브랜디 몇 병을 들이부은 뒤에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조금 잦아들었다.
‘지랄 맞아도 술에는 박하지 않단 말이지.’
데뷔 전에 삼 년간 일해 온 bar의 여주인이 현재까지도 이 놈을 예뻐하는 탓에 항상 술만은 넉넉하게 얻어먹는다.
이왕 지랄을 받아줄 거라면 이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아까까지만 해도 톱스타의 지랄이 편할 것이라 불만을 토해내던 마음이 고새 말랑한 찰떡처럼 변한다.
마음이 다시 고요해지니 쓰던 술이 달게 느껴진다. 그리고 급격히 취기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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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질까 싶어서 오늘 짧게라도 올리는데....
다행히 빨리 올려지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