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09년 4월 1일
십 년.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세월 동안 내게 남은 것은 무표정에 가까운, 우울한 얼굴과 따분하고 쳇바퀴 돌 듯 평범한 생활뿐이다.
그리고 내게 남은 지독하리만큼 반복적인 트라우마.
4월 1일만 되면 거짓말처럼 몸이 아프고 괴로워지곤 한다.
마치 어머니가 친척들에게 두들겨 맞던 그날처럼. 밝은 감정을 죽이기로 결심한 그때처럼. 한없이 어두운 감정 속으로 침잠해 간다.
아무리 아닌 척 애써 보아도 그날만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다. 세월이 흘러서 무뎌졌다곤 해도 믿었던 아버지가 자살하신 날이고, 쉴 새 없이 자살 시도를 하는 어머니를 견뎌내야 했던 십 년의 시작점이었으니까.
십 년의 세월은 그냥저냥 살아내는 시간일 뿐이었다. 운 좋게 지인의 소개로 하게 된 매니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남들보다 스타가 될 가능성이 보이는 지망생들을 잘 가려낸다는 이유로 8년 가까이 한 기획사의 캐스팅 매니저를 하게 된 것이 그간의 삶 전부이다.
딱히 즐겁거나 천직이라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십 년 전의 내가 어딘가에 얽매여 일을 하는 것을 지독히 싫어하는 한량이었듯이, 지금도 여전히 즐겁게 별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 외에는 행복 비슷한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제는 표현을 하지 않을 뿐.
매니저로서의 일은 지독히 성가시고 피곤한 일의 연속이지만 10년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려 왔기에 잠을 못 자고 고된 것에는 별 괴로움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일을 하면서 집에 자주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에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내가 지망생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방법은 단 하나.
눈에 깊은 그늘이 져 있는 아이들을 찾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독기에 차올라 있는 사람.
우울하고 우울해서 도무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사람.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끌려오듯 오디션 장에 발을 내디딘 사람.
캐스팅된 이들은 하나같이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우며 어두운 분위기를 풍긴다.
내가 의식적으로 그런 이들만을 캐스팅하는 탓도 있겠지만, 유난히 그들의 분위기는 사람을 끄는 매력을 갖고 있어서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늘이 져 있는 이들은 뽑아 놓으면 분명히 스타가 되어서 회사에 큰 이득을 가져다주지만 그만큼 어떤 연예인들보다 관리가 까다롭다.
일 년 중 반년 이상은 이들의 어두운 감정을 제어하고 달래 줘야만 하기에 매 순간 긴장한 채 살아간다.
뽑아 놓은 인간들이 그런 인간들뿐이라 스스로 고생문을 자처한 것일 터였다.
다른 매니저들보다 몇 배는 더 움직이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다지 고되지는 않았다.
나는 언제나 반복적으로 학습되어 왔고, 이미 그런 사람에 인이 박혀 있을 만큼 익숙하다.
바로 내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었고, 사는 내내 죽기 위해 수없는 시도를 하던 어머니를 지탱해 왔으니까. 누구보다 그런 이들을 잘 찾아내고 쉽게 관리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반면에 인생은 따분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두운 인간들을 관리하며 별다른 재미를 볼 일 없이 통장 잔고를 부풀려가느라 일로 만나는 사람들 외에 친구라 부를만한 이들이나 연인은 존재하지 않는 삶으로 굳어졌다.
삭막한 인간이 삭막하고 밋밋한 강남 한복판을 무의미하게 오고 가는 일상.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의 내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치 않았다.
······장님. 이 팀장님?
아득히 먼 곳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다 이마에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아, 차가워!”
“이 팀장님. 어디 아프신가요?”
사장실 비서는 차가운 커피를 내 볼에 비비듯 건네며 살뜰히 물어왔다.
사실 그녀가 하는 말이 반쯤은 들리지 않았다. 이명처럼 멀리서 ‘웅웅’ 울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식은땀을 흘리시는데······. 감기라도 걸리신 건 아니신지. 힘드시면 잠깐이라도 쉬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글······세요. 제가 쉴 만큼 그리 한가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지 않습니까.”
“걱정돼서 그래요. 그렇게 만날 일만 하시다가 몸 축나실까 봐!”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이, 정말. 남자들은 이게 문제라니까요. 챙겨 줄 여자가 없으면 이런저런 일로 무리를 해 버리니까. 연애라도 하시는 게 어때요?”
“······제가 알아서······.”
“남자는요. 여자 말을 잘 들어야 뭐라도 좋은 게 더 생기는 거거든요.”
“······.”
“어머, 제가 너무 주절거렸나요? 민망해라.”
‘알면 입 좀 닫지.’
“팀장님은 심하다 싶은 워커홀릭이라 직장 동료로서 심히 걱정이 되네요.”
비서는 단지 직장 동료라기엔 과할 정도로 내게 친절한 걱정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직장 동료라고 말해도 그 의도는 너무나 뻔하다.
‘호감인 거겠지.’
그러나 그 마음에 응해 줄 수는 없기에 잠시 그녀를 응시하며 차갑게 말했다.
“정 비서는 바쁘지 않습니까? 얼른 일 하러 가시죠.”
“예? 아, 예······.”
여자의 얼굴에서 당황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나는 애초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재미없는 일상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에너지 고갈이라 시시한 연애 놀음 따위에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 따윈 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잠시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는 바쁜 듯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아······. 오늘은 좀 열이 나고 오한이 드는 것 같다.
다른 날과 달리 오늘은 좀 한가한 것 같으니 평소보다 이른 퇴근을 준비해 볼까?
물론 집에 가도 직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우울한 양반의 수발을 들어줘야 할 테지만.
‘이거 봐, 이거.’
방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소주병과 슬쩍 긋다 만 팔목에 혈흔이 굳어서 초파리가 달라붙어 있다.
구석엔 며칠째 방치된 건지 산처럼 쌓아진 인스턴트식품의 껍질과 컵라면, 피자 부스러기 등이 잡다하게 늘어져 나를 반긴다.
“지겹군, 정말.”
십 년쯤 시달리니 이젠 어머니의 자살시도도 초연하게 바라볼 만큼 무덤덤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시로 심장이 ‘뚝’ 떨어질 정도로 놀라곤 했지만, 이젠 스스로가 괴물로 여겨질 만큼 아무렇지 않다.
어머니가 자살 시도를 한다고 해서 돌아가실 일은 없다는 것을 십 년간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기분이 산뜻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넌더리가 날 정도로 싫다.
어머닌 어째서 제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일까. 적어도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엔 억지로라도 억척스럽게 돈이라도 벌며 삶을 꾸렸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만으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삶을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고, 여태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방 안에 난잡하게 어질러진 것들을 조용히 쓰레기통에 집어넣고는 신경질적으로 밖에 내버렸다.
“젠장!”
집에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