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만나다, 반하다(3)>
교수님의 차는 청운관 바로 아래에 주차되어 있었다. 나는 자신의 차로 다가서는 교수님의 자태를 보고 또다시 감탄을 삭혔다.
그 차 모델을 하셔도 되겠어요. 또다시 넋을 놓은 뻔한 나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그의 차 조수석으로 다가섰다.
내가 직접 차 문을 열려던 순간, 교수님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손수 조수석 문을 열었다. 아, 당신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저는…음……."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삼겹살, 오겹살, 갈비, 닭갈비 전부 좋아한다. 하지만 고기를 좋아한다고 해맑게 얘기했다간 내 이미지가 깨질 것 같아서 말을 삼켰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교수님은 나를 위해 선지를 제시했다.
"회랑 갈비 중에 뭐가 좋아요?"
차라리 엄마랑 아빠 중에 누가 좋냐고 물어봐라. 나는 당당히 엄마가 좋다고 말할 터이니. 어떻게 회와 갈비 중에 고르라는 말인가.
나는 섣불리 답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구겨진 내 이마를 빤히 보던 교수님이 작게 소리 내 웃으면서 말했다.
"저녁에 갈비 먹으면 밤에 숙면 취하기 힘드니까, 회 먹으러 갈까요?“
"네!"
"내가 잘하는 데 알아요. 갑시다."
나아가는 완벽한 아우디와 완벽한 운전자의 조합. 나는 뚫어지게 쳐다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부담스러울까 봐 일부러 다른 곳을 바라보려 했지만, 내 눈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자꾸 시선이 그쪽으로 가는 걸 어떡해?
차 안에서 꽤 가까이 앉아 있다 보니 교수님에게서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강렬했다. 그 향기가 나를 둘러싸고 얽매고 있는 기분이었다.
교수님이 좋아하는 향수인 건지 아니면 스스로 내뿜는 페로몬인 건지 명확히 알 순 없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만의 향기가 서서히 나를 마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이 학생. 불편하라고 하는 얘기는 아닌데요."
"네."
"정종구 교수님이 담당 교수님이시죠?"
"네."
"그 교수님이 저한테 직접 오셔서 한결 학생을 굉장히 좋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왜요?"
"어려운 가정형편인데도 기죽지 않고 공부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하시면서요."
"아……."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화를 내야 하는 건지 갈피를 못 잡겠다. 물론 정종구 교수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나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다니는 게 내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가 없었다.
가난한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교수님들 사이에 굴러다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정교수님이 김은성 교수님에게 내 얘기를 잘해준 덕분에 이렇게 같이 밥 먹을 기회가 생겼다고 볼 수도 있었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그래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요."
"기분 안 나빠요……."
"그럼 다행이네요."
"……."
"자, 다 왔어요."
나는 무슨 중소기업 본사 건물에 온 줄 알았다. 이게 횟집이야? 으리으리한 건물 외부를 보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밥 한 끼 얻어먹는 거로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규모가 너무 커져 버렸다.
교수님은 입을 벌리고 놀란 티를 팍팍 내는 나를 보다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조수석으로 다가와 손수 문을 열어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무슨 걱정 하는지 아는데, 신경 쓰지 말고 들어와요."
다정한 그 말투와 내 속마음까지 헤아리는 명석함. 이 교수님의 단점을 찾아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돈을 걸고 내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 * *
"그냥 2인 코스로 주문할게요. 괜찮아요?"
안 괜찮다. 메뉴판에 나와 있는 2인 코스의 가격은 18만 9천 원 이었다. 차라리 이 돈을 그냥 내가 갖고 저녁 밥을 굶고 싶었다. 19만 원이면 내 한 달 식비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의 말에 동의했다.
종업원은 우리가 자리한 방에 들어와 무릎까지 꿇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동의를 얻은 교수님은 상냥한 말투로 종업원을 향해 주문했다.
종업원은 곧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하게 인사하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
한 공간에 교수님과 단둘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좋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비싼 걸 얻어먹어도 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눈치를 보던 교수님이 한마디 내뱉었다.
"괜찮아요. 나도 회 먹고 싶었는데 잘됐어요."
진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교수님의 말투는 너무나도 다정했다.
그리고 어쩜 말을 해도 저렇게 예쁘게 하는지, 가뜩이나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나를 더욱더 나사 빠지게 만들었다.
"조교 일은 사실 특별한 게 없어요."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가끔 학생들 과제 제출하면 그거 정리하고 성적 계산 해주면 되고……."
"아."
"보드마카 떨어지면 학생과 가서 새것 가져다주고. 그러면 돼요."
그때그때 말해줄게요. 다정한 교수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는 만약 교수란 직업을 갖지 않았다면, 성우를 했어도 좋을 만큼 완벽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교수님과 결혼하게 된다면 이 목소리를 매일 들을 수 있겠지.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행복이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교수님.
"네."
"결혼하셨나요?"
나이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결혼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가 결혼하지 않았을 거로 추측했던 이유는 결혼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용기 내서 물었다. 결혼하셨냐고.
"했었어요."
했었어요. 네 글자로 그의 상황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질문에 교수님은 약간 어두워진 낯빛이었다. 그의 얼굴을 어둡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물었어야 할 질문이었다.
나연이가 말하길 그는 여자관계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단 한 번도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따라서 답을 회피할 수 없는, 단둘이만 있는 이 시간이 절호의 기회였다.
"아직 이혼한 건 아니고, 소송 중이에요."
"죄송해요."
"죄송할 건 없어요. 한결 학생 잘못도 아닌데요."
어쩌면 하늘의 계시 아닐까. 나는 순간 상처를 한가득 안고 있는 교수님의 눈을 정확히 알아챘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 법.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를 교수님과 만나게 해준 건 믿지 않는 신이 주신 절호의 기회임이 분명했다.
"식사 나왔습니다."
과도하게 친절한 직원이 이제는 두 명이 되어 방문을 열고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아직 회는 나오지 않았지만, 엄청난 양의 스끼다시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입에 침샘이 터져버린 것 같았다.
"배 많이 고팠나 보네. 어서 먹어요."
식사는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교수님과 알아가는 것도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