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할 정도로 싱숭생숭했다. 백초령의 실종에 대해서 처음 들었을 때는 화가 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초조해졌다.
그새 신마궁 놈들이 또 나타난 건가? 설추교, 그 늙은이가 신마궁으로 가지 않고 돌아온 건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설마 백초령의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겠지?’
실종되었다면 납치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걱정이 되었다. 많이 다치진 않았어야 하는데······.
얄미운 짓을 가끔 하긴 하지만, 나름 귀여운 면도 있었다.
대문파의 딸답지 않게 털털한 옷차림도 그렇고, 말투나 하는 행동도 그렇고, 모든 것이 백서령과는 정반대면서도 밉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더구나 자신이 설추교를 쫓아갔다 돌아왔을 때는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여동생이 하나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은데······.
‘헛, 내가 무슨 그런 끔찍한 생각을!’
풍천은 후다닥 고개를 털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있어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2.
선가장에선 백초령이 실종되었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모든 무사들들 풀어서 인근 백 리 일대를 수소문했다.
만 하루가 지나도록 그녀의 모습을 봤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선가장은 백초령을 찾기 위해서 황금 오십 냥의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심지어 발견하기만 해도 황금 열 냥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신양 일대는 물론, 인근 수백 리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백초령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렇게 백초령의 실종으로 신양 일대가 뒤집어진 다음 날 사시 초. 풍천 일행은 경천산장 무사들과 함께 선가장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선가장에는 이미 신검문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다.
모두 오십여 명쯤 되었는데 일급 사건을 조사하는 추검당의 무사들이었다.
풍천이 일행과 함께 장원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 중 한 사람이 다가왔다.
추검당의 일조장인 유벽호였다.
그는 쓱 훑어보고 풍천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이자가 풍천이군. 소문대로 얼굴은 그럭저럭 생겼는데 눈이 영······.’
새삼 소문이 정확하다는 걸 확인한 그가 풍천에게 물었다.
“비검당의 풍 조장이시오?”
“그렇습니다만.”
“당주님께서 오시는 대로 모셔오라 하셨소. 따라오시오.”
추검당주 임철이 직접 왔다는 말.
하긴 백초령이 실종되었으니 백무천이 직접 왔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풍천은 곽인청을 바라보았다.
“같이 가시죠?”
풍천은 유벽호의 안내를 받으며 곽인청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침중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모두 일곱이었는데, 그중에는 구양종과 화영쌍검도 있었다.
‘아직도 안 갔군.’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지 못했을 것이다.
풍천은 곽인청과 함께 그들에게 다가갔다.
구양종의 옆에는 선가장의 장주인 선위경과 그의 동생인 선위종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편에는 추검당주 임철과 신검문의 장로 조일산이 앉아 있었다.
“비검당 사조장 풍천입니다.”
풍천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자, 곽인청이 뒤따라서 인사했다.
“경천산장의 경혼대주 곽인청입니다. 아버님의 명을 받고 이번 일을 돕기 위해서 왔습니다.”
임철이 그의 인사를 받으며 입을 열었다.
“고맙소. 나는 추검당의 임철이라 하오.”
뒤이어 구양종과 화영쌍검, 선위경과 선위종, 조일산이 곽인청과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대충 마치고 풍천과 곽인청이 자리에 앉자, 조일산이 물었다.
“풍 조장.”
“예, 장로.”
“여기 구양 공자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긴 했네만,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자 하네. 선가장에 오기 전 회하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고?”
“그렇습니다.”
“그놈들이 누군지 아는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밝히면 전에는 왜 말하지 않았냐고 추궁할 터, 귀찮은 일만 생긴다.
“천혈궁 놈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혈궁이라······.”
“경천산장도 천혈궁의 공격을 받고 향산분타가 무너졌지 뭡니까.”
풍천은 자신의 말에 힘을 싣기 위해서 슬쩍 경천산장의 일을 끼워 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곽인청을 바라보았다.
곽인청이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그 바람에 비상이 걸려 있습니다.”
“으음, 그럼 둘째 아가씨의 실종에도 놈들이 관련되어 있을지 모르겠군. 일이 복잡해지겠어.”
조일산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풍천은 잠시 이야기가 끊긴 틈을 타서 넌지시 물었다.
“저기, 선가장 안에 있던 둘째 아가씨가 어떻게 실종된 겁니까?”
그러고는 구양종을 노려보았다.
백초령의 실종이 모두 그의 책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자식이!’
구양종은 기분이 나빴지만, 그의 책임도 없지 않았으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바람을 쐬기 위해서 말을 타고 나갔네. 그런데 둘째 아가씨가 갑자기 빨리 달리지 뭔가. 나는 곧 속도를 줄일 거라 생각하고 천천히 뒤따라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네.”
“그러니까, 함께 나갔는데 둘째 아가씨만 사라진 거군요.”
“그렇다네.”
“어떻게 실종이라고 확신을 한 거죠?”
“반 시진을 기다린 후 본각의 제자들과 선가장 무사들이 일대를 뒤져보았네. 그리고 둘째 아가씨가 타고 간 백마를 찾아냈는데, 누군가가 목을 베었더군.”
백마가 죽었다고?
‘노마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 슬퍼하겠군.’
하지만 지금은 노마의 슬픔을 걱정해 줄 때가 아니었다.
“그곳에 몇 사람이나 갔습니까?”
“백 명 이상 동원했지.”
“백마가 있는 곳 부근은 얼마나 살펴봤습니까?”
“머리카락 하나라도 발견하기 위해서 철저히 뒤졌지. 자네는 내가 그 정도 생각도 없는 줄 아나?”
구양종은 자신만만한 투로 다그치듯 말했다.
풍천은 한숨이 나왔다.
‘후우, 빌어먹을. 그럼 가봐야 소용도 없겠는데?’
멍청한 구양종은 자신이 잘한 줄 안다.
물론 백초령이 실종되었으니 주변을 철저히 조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진행 상황은 칭찬해 줄 수가 없었다.
납치되었다는 판단이 섰다면, 백마가 죽은 곳에서 직경 이삼십 장 이내는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그대로 놔두었어야 했다. 그리고 전문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왜? 사람의 신법이 아무리 뛰어나도 삼십 장을 벗어나려면 세 번의 도약을 해야 하니까. 완벽한 사람이 아닌 이상 세 번을 도약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흔적을 남기게 되니까.
더구나 납치범은 백초령마저 있으니 서너 번의 도약으로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안을 철저히 뒤졌다고? 백 명도 넘게 동원해서?
‘철저히 뭉개졌겠군.’
짜증이 난 풍천은 구양종을 째려보았다.
‘혹시 당신이 범인 아냐?’ 꼭 그런 눈빛으로.
구양종은 화를 내지도 못하고 턱에 힘을 주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나?”
“그래서 발견한 거라도 있습니까?”
“범인이 워낙 철저해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네.”
그럼 그렇지.
“에혀, 차라리 그냥 놔두기나 하지······.”
풍천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자 구양종의 얼굴이 벌게졌다.
다행히 임철이 그를 구해 주었다.
“구양 공자께 무례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둘째 아가씨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즉시 현장으로 가서 조사를 할 것인 즉, 그대들도 이제부터는 장로님의 명령에 따르도록 해라.”
3.
백마의 사체는 선가장에서 이십 리가량 떨어진 숲속에 있었다. 발견 당시부터 선가장 무사 셋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기에 피가 굳은 것을 제외하면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뭐든 이상하다 싶으면, 임의대로 판단하지 말고 보고하라.”
조사단의 책임자인 조일산이 주의를 주었다.
조사단은 티끌만 한 증거라도 찾기 위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추검당과 경천산장의 경혼대는 추적의 전문가들답게 숲 안으로 들어가며 바닥과 나무에 난 흔적을 세세히 살폈다.
하지만 풍천은 다른 사람들처럼 숲으로 들어가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백마 주위를 살펴보았다.
평소와 완전히 달라진 그의 모습에 비검당 조원들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발버둥 한번 쳐보지 못하고 죽었군.’
서 있던 자세에서 그대로 무너졌다. 즉사했다는 말. 아마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두꺼운 말의 목을 뼈까지 자르며 즉사시키다니.
냉정한 판단에 실력도 뛰어난 자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무너지듯 쓰러진 백마 옆에 다른 흔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초령이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어.’
전날 비가 왔다. 만약 백초령이 말에서 떨어졌다면, 파인 흔적이든 구른 흔적이든 뭐라도 남아야 했다. 그런데 그 비슷한 흔적도 없었다.
‘휴우, 떨어졌으면 어디 부러졌을지 모르는데, 그나마 다행이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납치된 거야 어쩔 수 없는 일, 그나마 다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 말썽꾸러기는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알아주기는커녕 납치되어서 무서워 죽겠는데 뭐가 다행이냐며 욕할지도 몰랐다.
‘킁, 그것도 성질만 조금 고치면 그럭저럭 봐줄 만한데······.’
그는 착잡한 마음으로 백마 주위를 뱅뱅 돌았다.
백마에서 가장 가까운 숲까지는 거리가 삼 장 정도고, 반대편은 오 장 정도다.
납치범은 백초령이 눈치 챌 틈도 없이 단숨에 날아들어서, 말을 죽이고, 백초령을 낚아챈 후 반대편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과정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보통 놈이 아니야. 상황을 봐서는 혼자 같은데······.’
그래서 더 골치 아팠다. 납치범이 그만큼 강하고 철저하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는 납치범이 내려섰을 거라 예상되는 북쪽 숲으로 걸어갔다.
기종탁이 뒤따라가며 물었다.
“뭐라도 발견했습니까?”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이미 하루가 지났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조사한답시고 뒤적거려놓은 상태였다. 백초령을 납치한 자가 스스로 단서를 남겨놓지 않은 이상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숲과 공터의 경계 지점에 도착한 풍천은 사람들을 앞서가지 못하게 하고 바닥을 살펴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이미 많은 발자국이 나 있었다.
바깥쪽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안쪽도 어수선했다.
이 상태에서 납치범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장강의 모래 속에서 바늘 하나 찾는 거와 같았다.
‘제길, 발자국에 이름이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후우······.”
풍천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쳐들었다.
놈들이 노리는 게 유령적이라면 분명 연락을 해올 것이다. 백무천의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갈 즈음.
내일? 모레?
아니지, 어쩌면 오늘 올지도 모른다. 놈들도 유령적을 애타게 원하고 있지 않던가.
‘마도 놈들은 성질이 급하니까 바로 연락을 취할지 몰라.’
풍천은 단서 찾는 걸 포기하고 몸을 돌렸다.
‘응?’
반쯤 몸을 돌리던 그는 고개를 모로 비틀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 장 높이에 팔뚝 굵기의 소나무가지가 옆으로 늘어져 있었는데, 위쪽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마른 황토잖아?’
황토는 옆으로 조금만 가도 솔잎에 가려져서 그가 서 있는 쪽에서만 보였다. 밑에서는 더욱 보이지 않았고.
즉시 허공으로 떠오른 그는 그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다.
생각대로 누렇게 변색된 것은 황토 때문이었다.
나뭇가지 위에 황토가 묻을 일이 뭐가 있을까.
풍천은 그 황토의 크기와 쓸린 모양 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황토가 묻은 자국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한쪽은 제법 두껍게 쌓였고 한쪽은 스치듯 묻어 있었다.
그는 그것만 보고도 몇 가지 결론을 얻어냈다.
황토는 새나 다른 짐승이 묻힌 것이 아니다. 쓸린 자국으로 봐서 사람의 것이다.
바람에 날리거나 비에 씻겨 내리지 않았다는 건 비가 온 후에 묻었다는 말.
방향은 공터 쪽에서 날아와 바깥쪽으로 향했고, 이게 만약 납치범의 것이라면, 납치범은 북쪽으로 향했다.
왜? 다른 쪽으로 갈 놈이 수고스럽게 북쪽으로 날아갔을 리는 없잖은가 말이다.
물론 최종 목적지는 북쪽이 아닐 수도 있지만.
풍천은 북쪽을 잠시 바라보고는 나뭇가지에서 내려왔다.
“조장님, 왜 거기에 올라간 겁니까?”
기종탁이 물었다. 사조원들도 어미새를 바라보는 새끼새처럼 풍천을 바라보았다.
그때 뒤쪽에서 조일산이 다가오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