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현대물
사랑할 수 없는 우리
작가 : 현서
작품등록일 : 2016.10.4

39살의 인아. 실패한 유학 생활의 업적으로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아직도 소박한 사랑을 꿈꾸고 있지만 얼마 전 실연까지 당했다.
그런 가운데 친구 선영의 결혼과 태라의 승진 소식은 인아를 더욱 움추려들게 만든다.
그런 인아에게 명문대생 훈남의 수현이 다가와 한없는 친절을 베푼다.
인아는 수현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잃어버린 청춘을 생각하며 슬프기도 하다.
수현은 왜 인아에게 다가온 것일까?

 
같은 공간, 다른 세상
작성일 : 16-10-11 11:42     조회 : 568     추천 : 0     분량 : 472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림은 한 장뿐이라는 게 조금 아쉽다. 어제 그려진 그림은 한 장은 복사해서 수현이 가지고 원본은 내가 가지고 왔다. 우리의 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예비 화가는 나를 젊게 그림으로써 마치 잘 어울리는 연인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걸 걸어두어야 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여진다. 못을 박기도 어려워 그냥 책상 한쪽에 세워 두었다.

 

  그림속의 여자처럼 내가 젊어서 녀석과 잘 어울려 상큼하고 아기자기한 연애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면...

  나에겐 왜 그 젊음에 그런 추억거리가 될 만한 연애 사건도 없었던 걸까. 내 젊은 날의 한숨을 하루 종일 날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분주했던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내 버렸다. 녀석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그렇다고 전화를 해 사과하기도 어색한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영주에게 전화가 온다. 근처에 와 있는데 집에 들르겠다고 한다. 가끔씩 친구들이 예고 없이 찾아 올 때는 쉽게 말하지 못할 고민거리를 안고 온다.

 

  영주는 장보따리를 두 개 들고 들어온다. 하나는 영주 꺼 하나는 내 것이다.

 

  “그냥 오지 이런 건 뭐 하러 사와.”

 

  “먹으라고 사오지. 먹을 건데.”

 

  장을 보러 나왔다가 문득 부아가 치밀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젯밤의 일을 얘기하러 왔단다.

 

  “커피 줄까?”

 

  “싫어 난 물.”

 

  영주에게 물 잔을 건네고, 커피를 내리며 영주의 이야기를 듣는다.

 

  “며칠 전에 보니 그 인간 차 안에 S화장품 쇼핑백이 있는 거야. 난 당연히 내 건 줄 알았지. 이 인간이 이제 철드나보다. 이제야 내 소중함을 알아가는구나. 어제가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벌써 선물을 준비해 놓다니 대견하기도 하고...”

 

  화장품의 주인은 영주가 아니었나보다. ‘설마 또?’냐는 방정맞은 생각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하며, 커피 잔을 들고 와 영주 옆에 앉았다.

  영주는 물 잔을 단숨에 다 비우고도 속이 타는지 한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어제 회식이 있다며 늦는다는 거야. 그래도 참았어. 선물은 있으니까... 근데, 밤 늦게 술이 떡이 돼서 왔더라. 그래도 참았어. 술 취한 사람한테 선물 달라고 하겠니?”

 

  영주는 계속해서 자신의 참을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침에 늦었다고 헐레벌떡 뛰어나가는데 주차장까지 따라 나갔다. 근데, 그 쇼핑백 없는 거야.”

 

  역시 그거였구나.

 

  “온갖 불길한 상상을 다 하다가 도저히 부아가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만약에 또 바람난 거라면 나 정말 안 살려구. 나 물 한 잔만 더 줘.”

 

  영주의 말에 난 벌떡 일어나 물을 대령했다. 잔뜩 화가 나 있는 영주에게 압도된 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나, 너 차에 쇼핑백 봤다. 그거 뭐냐 물었지. 내 꺼 아니래. 상사 승진 선물이래. 결혼기념일은 생각도 안하고 있더라. 참.”

 

  “그 말을 못 믿는 거야?”

 

  “아니. 그런 거 같아. 그 상사라는 여자 우리보다 어리대. 여자 상관 밑에서 굽신거려야 하는 자기 심정이 어떤 줄 아냐고 되레 큰소리더라구.”

 

  “그런데, 뭐가 문제야?”

 

  “도대체 얼마나 잘 난 년이길래. 나, S화장품 한 번도 써 본 적 없다. 그게 좀 비싸니?”

 

  외도의 상대이든 아니든, 남편이 선물을 하는 여자는 일단 ‘년’이 된다. 영주의 말을 듣고 보니, 영주가 속에 불이 난 이유도 이해가 된다. 게다가 우리 중에서 제일 똑똑했던, 아니 고교 시절 영주의 성적은 전교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었고, 명문대 법학과에 당당히 입학. 사법고시 1차 시험도 한 번에 패스했던 영주 아니었던가.

  영주에게 잘못이 있다면, 공부보다 일보다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직장 생활이 얼마나 전쟁 같은데 한가하게 결혼기념일 타령이냐며 면박을 주는데. 도대체 뭘 위해 사는 건지...마누라 위해 한 번도 못 사주는 화장품을 직장상사에게 바쳐야 하는 내 남편도 불쌍하고, 그 마누라인 나도 불쌍하고.”

 

  그런데 그 사랑은 생계를 향한 전쟁터 안에서 잘 가꿔지고 있지 않는 것인가. 씁쓸해진다.

 

  이 시대 한 쪽에선 어떤 여자는, 저보다 나이 많은 남자 부하직원들은 부리며 호령하고 그에게 아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도록 그렇게 살아가나보다. 진호의 직장 상사라는 ‘그년’은 결혼을 했을까? 결혼을 안 했다면 애인은 있을까?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년’이지만, 아마, 결혼도 못했고, 애인도 없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하나를 가지면 하나는 잃어야 하는 게 우리 여자들의 삶일 거라고, 그래야 그 중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나는, 세상을 조금은 공평하다고 여길 수 있을 거 같다.

 

  “어쩌겠어.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했겠지.”

 

  고작 할 수 있는 위로가 그 정도뿐이다. 같이 화를 낼 일도 아니고, 더 길게 얘기해 봤자 영주도 나도 비참해질 테니까.

 

  “그래도 말이래도 하니 속이 좀 가라앉는 것 같네.”

 

  내가 한 역할은 별로 없다. 그저 듣고 윗사람에게 아부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세대의 비참함에 같이 잠시 우울해지는 것 뿐.

 

 “그 사람은 정말 연락 없는 거야?”

 

  “누구? 아...”

 

  영주가 이제 마음이 진정됐나보다. 현성의 이야기를 하는 모양인데, 요 며칠 난 현성의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현성의 빈자리는 이젠 모두 수현이 채우고 있나 보다.

 

  나를 처참하게 만들었던 건 현성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망각이 빠르니, 태라처럼 독하지 못하고, 맨날 차이고 상처받기를 반복하며 사나보다. 바보같은 나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난다.

 

  “끝났다니까...”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쉽게. ”

 

  여태껏 단 한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영주에게는 쉬운 이별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영주는 말을 이으려다 책상 위의 그림을 발견하곤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어, 이거 뭐야?”

 

  “별 거 아니야.”

 

  영주가 그림을 보는 게 쑥스럽다.

 

  “잘 생겼다. 누군데?”

 

  “그림이니까 그렇지. 그냥, 학생.”

 

  이라고 말했지만, 난 영주에게 수현이 얼마나 근사한지, 요즘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조금 전 들은 영주의 고민과 너무 차원이 너무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서이다. 같은 나이를 사는데도 결혼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은 마치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아이고, 뉘집 아들인지 우리 아들만큼이나 훤하네.”

 

  영주는 녀석의 그림을 보며, 아들을 떠올리는구나. 영주의 아들은 중3이다. 작년에 이미 아빠의 키를 뛰어넘었으니, 신체로만 본다면 영주의 아들과 녀석이 달리 보일 것도 없다. 영주에게 녀석에 대해 말하지 않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계속 공부 잘하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지금 적당히 화제를 바꿀만한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물었는데 영주의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도는 걸 보니 성공한 것 같다.

 

  “그럼, 수학 경시 대회에서 은상 탔잖아. 뭐, 금상이 아닌 게 조금 아깝긴 하지만, 워낙 쟁쟁한 대회니까.”

 

  도대체 수학 경시 대회란 왜 하는 거며, 그 수상이 무얼 의미하는지도 모르지만, 영주가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대단한 것인가 보다.

 

  “축하해.”

 

  “아이구, 축하는 무슨...”

 

  영주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얼굴에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남편 직장 부부 동반 모임 가면, 쥐 죽은 듯이 있다가 오곤 하는데, 학부모 모임 나가면, 안 그런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날 부러워하는 눈빛이 막 느껴지고, 공부는 어떻게 시키냐, 어느 학원 보내냐. 심지어 우리 아들 뭐 먹이는 지까지 물어본다니까.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묻는 말, 대답해 주기도 바뻐. 난 솔직히 다 말하는데 내 말 믿지도 않는다니까. 내 우리 아들은 반드시 판사 만들어서 지 애비나 나처럼 더러운 꼴 안당하고 살게 할 거야.”

 

  영주가 자랑스레 말했던 수학경시대회와 미래의 판사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영주에겐 새로운 희망이란 게 있다. 영주의 사랑이 잘 가꿔지고 키워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은 거두기로 했다.

 

 ***

 

  이젠 지칠 때도 된 것 같은데, 수현은 계속 나를 집에 바래다주었다. 집 앞까지 걸으며 녀석은 학교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을 잘도 얘기한다. 이젠 녀석의 수업 시간표도 외우겠다.

 

  “민지가 묻던데요. 같이 오신 분 누구냐고.”

 

  축제에 갔던 날 밤, 터무니없이 화를 내었던 일을 상기시키고 있다. 민지라는 아이가 진짜 그렇게 물었을 지도 모르지만, 녀석의 말이 나를 놀리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해진다.

 

  이젠 녀석에게 쓸데없이 화를 내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도 어쩌면 문제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남과 여가 꼭 연인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너 수학 경시 대회 나가 본 적 있니?”

 

  집 앞에 다다랐을 무렵 난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고등학교 때 금상 타서 집안 잔치 했죠. 그것 덕분에 대학도 비교적 수월하게 들어 왔구요. 그 때 부모님 동료 분들이 한 턱 쏘라고 하시는 통에 기둥뿌리 뽑히겠다고 비명을 지르셨는걸요.”

 

  녀석도 생각하며 흐뭇해한다. 게다가 녀석은 영주가 못내 아쉬워한 금상이란다. 내가 녀석을 영주의 아들과 비교하고 있단 말인가. 대견한 마음에 녀석을 얼싸 안고 등을 두드릴 뻔 했다. 그런 행동을 하기 전에 이성이 돌아온 게 다행이라 여기며 웃음이 터졌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아니야.”

 

  웃음이 멈추지 않아 겨우 대답을 했는데, 이번엔 녀석이 좀 언짢은 표정이다.

 

  “부모님들은 거의 다 그렇던데요 뭐. 자식 성적에 웃고 울고. 뭐 그렇게 웃긴 일 아니거든요.”

  “아니, 그게 아니구.”

 

  녀석을 언짢게 한 것 같아, 솔직히 고백을 하려는데,

 

  “아, 나 배 고파요. 라면 하나만 끓여줄래요?”

 

  녀석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9 기억(2) 2016 / 10 / 17 444 0 6378   
8 기억(1) 2016 / 10 / 14 597 0 5112   
7 기억속으로 2016 / 10 / 13 439 0 5902   
6 낡은 세월속에서 2016 / 10 / 12 581 0 5126   
5 같은 공간, 다른 세상 2016 / 10 / 11 569 0 4722   
4 축제가 끝나고 2016 / 10 / 10 496 0 5094   
3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 2016 / 10 / 7 486 0 5039   
2 그가 떠난 자리에 2016 / 10 / 6 857 0 10270   
1 실연앞에서 2016 / 10 / 5 833 0 535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