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인간은 아틀란티스가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절대 시도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계층의 고착화.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복제 인간이었다.
인간 복제의 합법화는 가뜩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경계를 더욱 단단하게 굳혀 버릴 게 분명했다.
게다가 죽지 않는 인간의 등장은 만성적인 자원 부족과 과중한 인구에 시달리고 있는 아틀란티스에 또 다른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었기에 연합 정부가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복제된 인간도 엄연한 생명체고 인간이었다.
그러나 생명 연장과 불치병 앞에서는 그런 인도주의적 사상은 허공 속의 외침에 불과했다.
인간을 복제해 장기만 취하고 신체는 폐기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이를 반인륜적 행위로 규정지은 당국에 의해 금지된 것이다.
물론 공식적으로만 말이다.
인공 장기로 연명하고 있는 바이단 몬티아.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암암리에 인간 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인간 복제를 인정하겠다는 건가?’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베흘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시그넬린은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향후,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시작할 인구는 고작 300만 명에 불과합니다.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숫자죠. 게다가 예상할 수 없는 여러 변수를 고려하면 우리들의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야 한다고 보는데, 아닌가요?”
베흘란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늙은 여우 바이단이 왜 쉽게 의장직을 내어놓았는지를 깨달았다.
‘거래를 했군. 어쩌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말이야. 그것도 공식적으로….’
베흘란의 예상대로였다.
세간의 눈을 피해 불법으로 복제 인간을 양성해 장기만을 취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를 합법화하겠다는 시그넬린의 제안은 의장직을 내려놓더라도 바이단에게는 분명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그리고 두 번째, 뇌 개선 계획도 공식화하겠습니다.”
시그넬린은 넋 놓고 앉아있는 인원들 앞에서 긴급 선언이라도 하듯 재빨리 말했다.
“뇌 개선 계획?”
“그게 뭐였지?”
갑작스러운 시그넬린의 선언에 이곳저곳에서 수군거리는 말로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미쳤구나. 시그넬린.’
순간 베흘란의 미간이 찌푸려지다 못해 굵은 선이 아로새겨졌다. 그는 시그넬린의 거듭된 충격적인 선언에 망연자실한 채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수순대로 흘러가는군.’
뇌 개선 계획.
복제 인간이 연합 정부의 주도라면 뇌 개선 계획은 우주군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물론 처음에는 연합 정부가 전면에 나섰다.
비록 에녹스3을 발견했지만 빠르게 소진되어 가는 자원과 늘어가는 인구의 분산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식민 행성의 필요성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상에 진출할 수 없는 에녹스3은 반쪽짜리 행성이었다.
이에 연합 정부는 고민을 거듭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단시간에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 그것은 바로 속도였다.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을 추정했더라도 그곳까지 이동하는 것이 가장 큰 난제였다.
에녹스3에 설치한 공간 도약 게이트도 그나마 가까운 거리이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좀 더 발달되고 세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이에 연합 정부는 이 모든 벽을 한 번에 허물 수 있는 계획을 세웠으니 바로 뇌 개선 프로젝트였다.
인간의 뇌, 그리고 신경세포.
100억 개가 넘는 뇌세포는 수십 개의 화학물질을 생산해 신체 구석구석에 지시를 내리고 신체는 그 지시에 반응한다.
울고 웃고, 흥분하는 등의 정신적 반응뿐 아니라 위장의 연동운동으로 소화에도 영향을 미치며 알러지를 생성해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도 바로 신경 전달 물질의 역할이다.
하지만 에녹스계의 공간 게이트와 탐사에 많은 비용과 자원을 소모한 연합 정부는 더 이상 프로젝트를 지속할 여유가 없었다.
이에 모든 실험과 계획이 중지되고 프로젝트는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렇게 묻힐뻔했던 뇌 개선 계획이 우주군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군이 관심 있게 살핀 것은 바로 신체 능력 향상이었다
흔히 분노, 투쟁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이 신경전달물질은 신체를 자극해 인간의 운동능력을 향상시킬 수도, 저하시킬 수도 있었기에 이를 활용한 슈퍼 솔저의 개발등 군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로는 충분했다.
이렇듯 신체의 모든 기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뇌 개선 프로젝트.
하지만 인간의 뇌는 첨단 문명을 자랑하며 우주로 뻗어 가는 아틀란티스의 과학도 아직 점령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다.
물론 성과는 났지만 소요되는 경비와 인력에 비해 그것은 아주 미미한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뇌 개선 연구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군 당국도 깨닫고 말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임상 실험에서의 각종 사고와 알 수 없는 후유증으로 인명 피해마저 일어나자 정부는 군의 주도로 이루어지던 연구 또한 금지해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사장된 줄 알았던 뇌 개선 계획이 시그넬린에 의해 다시 언급된 것이다.
“자료 화면 송출하세요.”
시그넬린의 지시가 떨어지자 메인 스크린에 그간의 연구 성과에 대한 기록이 펼쳐졌다.
“뭐야? 설마 성공했다는 건가?”
“대단한데! 하도 많이 죽어 나가서 금지한 것 아니었나.”
“그러게 말입니다. 그걸 기어코 성공시키다니. 역시 아메리 가문이군요.”
화면에 송출되고 있는 내용은 뇌 개선 프로젝트의 성공을 알리는 선전물이나 다름없었다.
스크린을 수놓은 영상들은 사고나 전염을 우려하여 1식민지와 2식민지 행성의 인원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행한 이 마지막 임상 실험이 결국 성공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허, 라세탄! 역시 아틀란티스 최고의 과학자 답구먼.”
바이단이 눈가의 주름을 잔뜩 끌어당기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러자 미소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그의 묘한 표정에 라세탄의 기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녀는 조용히 속닥이듯 시그넬린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의장님.”
“무슨 일이죠?”
시그넬린은 자신을 부르는 라세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 임상 실험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공표하시면 안 됩니다.”
“끝나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박사?”
시그넬린 특유의 거만하면서도 권위적인 말투에 젊은 과학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답했다.
“저기, 의장님도 아시다시피 식민지 행성에서의 실험은 확인해 봐야 할 게 아직 남았습니다. 행성의 인공 중력은 아틀란티스의 반도 되지 않고 생활 환경, 하다못해 산소 함유량조차 이곳과 다릅니다. 게다가 실험체들이 적의 공격에 몰살당해서 더 이상 경과를 지켜볼 수도 없고,”
“그래서요?”
왁자지껄한 주위의 소란에도 묻히지 않는 시그넬린의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라세탄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최종적으로 아틀란티스, 아니 하다못해 에녹스3으로 이동할 달 기지에서라도 실험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 시그넬린의 손끝이 올라가며 라세탄의 말이 중단됐다.
그러고서는 라세탄의 양 볼이 움찔거렸다.
시그넬린의 입술이 그녀의 귀에 닿을 듯 말 듯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박사, 당신의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임상 실험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의장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라세탄의 거센 항의에 시그넬린은 한숨과 함께 조용히 말을 건넸다.
”후우, 답답하군요. 좋습니다. 생각이 많은 당신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말씀드리죠. 당신이 할 일이란 백신을 대량 생산해서 명단에 오른 사람들에게 접종시키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박사?”
“하, 하지만…,”
그러나 라세탄은 그녀가 왜 저리 자신만만한지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라세탄, 만약, 당신 말이 적중해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에게는 복제기술이 있습니다.”
복제기술.
라세탄은 복제기술을 언급한 그녀의 말에 더 이상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시그넬린이 믿는 구석, 그것은 바로 복제 인간의 존재였다.
인간 복제기술은 뇌 개선 계획과는 달리 여러모로 교차 검증된 안전한 방법이었다.
시그넬린의 저 자신감은 만약 문제가 생기더라도 복제로 다시 리셋하면 그만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의장님.”
결국 빠른 시일 내로 백신을 대량 생산하겠다는 라세탄의 확답만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
의장 집무실.
아틀란티스 역사에 길이 남을 긴급회의가 끝나고 집무실에는 시그넬린과 그녀의 아들 네시안이 함께하고 있었다.
“정말 이 방법 외에는 없는 겁니까?”
“무슨 방법 말이니?”
정말 모르겠다는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그넬린을 보며 네시안은 혀를 내둘렀다.
“어머니!!”
“마셔보렴. 아틀란티아의 특산품이란다.”
시그넬린은 아들의 외침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를 건네며 말했다.
“엄마는 아쉽구나. 얼마 후면 이제 이 그윽한 향을 맡을 수가 없을 테니 말이야.”
“후우. 그래요. 잠시 잊고 있었네요. 시그넬린 아메리가 어떤 사람인지 말입니다!”
네시안은 문득 깨달았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것을 말이다.
자신의 앞에 있는 저 여인이 얼마나 냉혈한인지를.
그렇게 네시안은 냉혈한의 자식으로 살아 온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하며 더는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네시안은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아, 깜빡할 뻔했구나.”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시그넬린은 찻잔을 거세게 내려놓으며 아들의 등 뒤로 무심히 말을 던졌다.
“카라, 그 애와의 관계를 정리해.”
“네?”
네시안은 뜬금없는 어머니의 말에 막 문을 나서려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오늘 베흘란이 잠자코 있었던 것은 그가 겁쟁이라서가 아니야. 아틀란티스의 위기 때문이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한 것일 뿐 그의 속내는 알 수가 없어. 언젠가는 내게 칼을 들이댈 자야. 베흘란은….”
“비약이 심한 거 아닌가요? 아저씨가 왜,”
그때 시그넬린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막으며 네시안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베흘란은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 비단 베흘란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지. 톨베르트 가문은 항상 우리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아메리가의 진정한 호적수라고나 할까. 그리고 언젠가는,”
잠시 말을 멈춘 시그넬린은 답답한 듯 가벼운 심호흡을 한 후 말을 이어나갔다.
“후우. 그래 언젠가는 내게 반기를 들 거야. 그는 원래 그런 남자란다. 자신의 신념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베흘란 아저씨와 대립할 때를 대비해서 카라를 정리하라는 건가요? 우습군요 어머니.”
하지만, 시그넬린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꿀꺽, 꿀꺽….
조용히 차를 넘기는 소리만이 은은하게 퍼져나갈 뿐, 시그넬린은 아들의 말을 외면했다.
“방금 그 말은 못 들은 걸로 할게요. 그리고 나도 한마디 하죠.”
어머니에게 등을 보인 네시안은 문을 향해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