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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희곡]양심이있다면
작가 : hisei
작품등록일 : 2025.1.6

80대 노모가 100키로그램이 넘는 50대 중년 아들을 살해해 경찰에 끌려간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 사건과 관련해 추가 조사를 위해 형사가 찾아온다.
노모가 살던 다가구주택에 거주하는 거주민 드레, 파니, 산다라는 찾아온 형사가 찾아오고서야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2장
작성일 : 25-01-06 14:27     조회 : 1     추천 : 0     분량 : 2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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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정적

 산다라가 파니와 드레의 눈치를 살핀다.

 파니, 드레를 빤히 보다가 피식 웃으며 맥주를 들이킨다.

 하지만 거품이 사라진 맥주는 얼마 남지 않았다.

 파니 맥주컵을 빤히 바라본다.

 

 파니 (맥주컵을 보며) 어쩌면 난 이 거품 빠진 맥주일지 몰라. 나는 가득 찬 맥주라고 여기저기 소개하고 있지만 남들은 아는 거지. 거품이 사라지고 나면 결국 남아 있는 건 얼마 없다는 걸 말이야. (맥주를 단숨에 들이킨다) 양심 없는 거 맞아. 실은 나도 알아. 거품이 빠지면 내게 남은 건 거의 없다는 걸.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나라는 존재 자체가 거품처럼 사라질 거 같았어. 살고자 하는 의욕은 왜 이렇게 큰지 나중에는 그깟 양심 쉽게 팔아먹었어. 내게서 거품처럼 사라진 건 내 양심이었을지 몰라. 상관없었어. 내가 살 수만 있다면 양심 따위... 거품이 되어 사라져도 상관없었어. (사이) 미안해. 양심 없이 너랑 누나에게 얹혀살려고 했어.

 드레 네가 진짜 양심 없었다면 이곳 일을 하지 않았겠지. 오히려 내가 양심 없었어. 이곳에 얼마나 보탠다고... 어쩌다 세일 하는 재료 사와서 같이 나누어 먹는 정도로 더 써봤자 2-3만원인데 그게 무슨 생색낼 문제라고 누나도 안하고 권사님도 안 하는 행동을 내가 했어. (사이) 미안해. 솔직히 두려워서 그랬어. 이 집에서 쫓겨날까 봐. 두 달 후면 계약도 끝나고 나는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가야 하는 데...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나도 모르게 트집을 잡았어. 양심 없이 이곳에서 더 비집고 살고 싶었던 건 나야.

 산다라 자자, 이제 화해했으니 서로 양심 없다고 자책하지마. 양심 없이 살면 좀 어때? 양심 없이 산다고 미안할 게 또 뭐야? 그까짓 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야. 살 수만 있다면 양심 따위 없는 샘 쳐도 되지 뭐.

 

 문 밖에서 샘의 깔깔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샘 (목소리)걔한테 양심 없다고 뭐라 하고서는 네가 더 비양심 같은데?? (깔깔깔) 말 자체가 비양심이야 (깔깔깔) 응 네 얘기~ 응 네 얘기~ 하하하 (갑자기 웃음을 멈추며, 한숨) 이제 그만 끊어야 해 집에 도착했어. 이따 봐~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밖에서 깔깔 웃었던 모습과 다르게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집안에 들어선다.

 그런 샘에게 더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드레.

 

 드레 어서 와. 배고프지? 삼촌이 오뎅탕 끓이고 있어. 엄마가 매운 떡볶이도 시켰어.

 

 샘은 대답 대신 끄덕이며 곧장 팬트리방으로 향한다.

 

 산다라 제대로 인사 안 해?

 드레 목이 많이 말랐나 봐요.

 산다라 친구들이랑 통화할 목소리는 있고 어른들한테 인사할 목구멍은 없어?

 샘 (짜증) 물 마시고 하려고 했어. 그리고 내 얘기 엿들었어?

 파니 엿들은 게 아니고 웃는 소리를 들은 거야. 절대 오해하지마~ 무슨 얘기 하는 지는 못 들었어~

 샘 거짓말

 산다라 말 돌리지 말고 당장 인사 안 해?!

 

 샘, 산다라를 노려본다.

 산다라도 지지 않는다.

 샘, 씩씩 거리며 대충 고개만 까딱한다.

 

 산다라 제대로 안 해?

 파니 한 거야, 한 거야. 괜찮아, 삼촌들 인사 받았어.

 

 드레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산다라 제대로 해!

 샘 (짜증이 가득 담겨 억지로) 안녕하세요, 삼촌.

 파니 (산다라를 달래며) 했다. 진짜 했다. (샘도 달래며) 물 마셔 물.

 

 샘, 씩씩거리며 물을 마신다.

 드레, 걱정스럽게 샘을 바라본다.

 

 산다라 (식탁에 앉으며) 네 아빠 앞으로 못 만나. 양육비 붙일 때까지 면접 교섭권은 없어.

 샘 (분노) 엄마가 무슨 자격으로? 내가 내 아빠 만나는 데 엄마가 왜 참견이야!

 산다라 양심 없이 자식 양육에 필요한 기본적인 생산활동에 보탬을 하지 않았으니까. 난 그걸 강요하고 요구할 자격이 있어.

 샘 양심 없는 건 엄마야.

 산다라 내가 뭘? 널 안 먹여? 안 입혔어? 안 재웠어? 학원이며 필요한 거 안 사주길 했어? 난 네 엄마로서 해야 할 모든 일을 책임감 있게 하고 있어. 나의 어떤 점이 양심이 없다는 건지 얘기 해 봐.

 샘 (할 말이 없어 따질 거리를 찾다가 식탁 위에 맥주를 발견하고) 여기서 권사님이 음주 흡연 다 금지라고 했어. 근데 권사님 없다고 바로 이렇게 마시는 건 양심 없는 거지! 거짓말쟁이지!

 산다라 내가 여기서 맥주 마시는 거 너가 몰랐어? 알면서도 지금까지 권사님한테 얘기 안 한 거는 너도 여기 사는 게 좋으니까 숨긴 거잖아. 그러면 이 사실을 지금까지 숨긴 너도 양심 없는 거 아니야?

 

 산다라 말에 대꾸 못하고 씩씩 거리며 그녀를 노려보던 샘이 갑자기 온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른다.

 

 샘 아!!!!!!!!!

 

 샘의 비명에 익숙한 듯 산다라는 고개를 돌려 눈만 감을 뿐 미동도 없다.

 드레와 파니는 귀를 막은 채 두 모녀의 기싸움을 바라보고만 있다.

 

 샘,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씩씩거리며 걷는 소리, 거칠게 문이 닫히는 소리, 위층 도어락이 눌리는 소리, 문이 쾅하고 닫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천장에서 샘의 비명소리와 욕하는 소리, 발을 구르며 엉엉 우는 소리가 들리다 소리가 잦아든다.

 

 산다라 층간 소음이 없는 건 아니라니까.

 

 산다라의 말에 파니가 무언가 번뜩 떠올랐는지 산다라 앞에 앉는다.

 

 파니 누나 혹시 위층에서 나는 소리 들었어?

 산다라 (샘의 소리를 말하는 줄 알고) 나 들으라고 저렇게 크게 소리 지르는 데 못 들은 게 이상한 거 아니야?

 파니 아니, 사건 당일 권사님네 댁에서 말이야.

 

 산다라가 찰나의 순간에 멈칫하며 파니와 드레의 눈치를 보고 맥주를 다시 마시려 하자 파니가 그녀의 맥주잔을 빼앗아 치운다.

 드레도 이 순간을 눈치채고, 오뎅탕을 끓이던 불을 잠시 끄고 산다라 앞에 앉는다.

 

 파니 뭔데? 무슨 소리를 들은 건데?

 산다라 (눈을 못 마주친다) 뭘 들었다는 거야? 맥주나 줘.

 드레 (산다라가 못 가져가게 맥주잔을 자신이 챙기며) 얘기해야 줄 거예요. 뭐에요?

 산다라 (드레의 손에 있는 맥주를 빼앗으려 하며) 얘들이 진짜 왜 이래?

 파니 (이전과 다르게 강한 어조로, 산다라의 팔을 붙잡으며) 누나!

 

 산다라, 한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잠시 부여잡고 생각을 정리하더니 결심한 듯 바깥 눈치를 보며 파니와 드레 가까이 의자를 끌어안는다.

 

 산다라 실은 전날에 여자가 화 내는 소리를 들었어.

 파니 권사님이?

 드레 3층에 사는 여자는 권사님뿐이니 당연하지.

 파니 권사님이 화내는 건 본 적이 없는 데?

 산다라 아까 샘이 못 봤어? 지 친구하고 통화할 때는 깔깔이인데 나랑 있을 때는 까칠이랑 버럭이 종합 세트야.

 파니 그런가?

 드레 뭐라고 하며 화를 내셨어요?

 산다라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들린 건, “지겹다 지겨워. 널 언제까지 우리가 뒷바라지 해야 하는 거야. 죽어버려 그냥.”

 파니 우리?

 산다라 우리가 아닌가? 뭐 대충 지겹다는 내용이었어.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니 세세하게.

 드레 (파니에게) 아까 편의점에서 권사님이 매일 술을 사갔다고 했지?

 파니 응. 항상 소주로 사갔다고 했어. 근데 한 병이 아니고 매일 4-5 병씩 사갔다고 했어.

 산다라 여기에는 소주가 들어온 적이 없잖아.

 드레 요리할 때 쓰기는 하는데, 4-5병까진 안 써요. 생선요리 같은 비린 음식 만들 때 써요. 아! 청소할 때도 쓰기도 해요. 기름기 음식은 소주가 잘 닦여요.

 파니 권사님은 소주로 주방 안 닦아. 락스 쓰지. 그때 그때 지워야 깨끗하다고 요리 끝나고 아주 철저히 닦으셔.

 드레 그럼 그 술이 다...

 산다라 아들이 먹은 거지. 아프다는 게 실은 알코올중독인 거야.

 파니 근데 아까 형사 말이 알코올중독으로 죽을 정도의 알코올 수치가 안 나왔다던데?

 산다라 그때는 중독자처럼 안 먹고 만취자 정도로 먹었나 보지. 얼마 전에 음주운전 사건 보니까 사고 내고 다음날 술 먹고 경찰에 갔다잖아. 전날 얼마나 만취였는지 모르게 하려고. 아드님도 그 상황 아니야? 그냥 사건당일 중독 이상을 먹지 않은 정도?

 드레 권사님이 왜 지겹다고 했는 지 이해가 가요. 우리 할아버지가 술을 매일 만취 상태로 드셨었는데, 그렇게 드실 때마다 며느리인 우리 엄마를 쥐잡이 했어요. 밤낮없이 할아버지가 취한 날은 집이 지옥이었어. 그래서 지겨워서 왜 저 인간은 빨리 안 죽나 매일 생각했어.

 산다라 집에 그런 사람 하나만 있어도 가족 전체 삶이 망가지니까 그런 마음 들지.

 파니 그 이후로 들은 소리는 없어? 때린다거나 던진다거나?

 산다라 남 싸우는 소리 들어서 뭐 하니? 나도 맨날 싸워서 지겨운 데. 그냥 창문 닫고 자버렸어.

 드레 (혼잣말) 그래서 죽였나?

 산다라 (깜짝 놀라며)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마! 자식한테 나가 죽으라고 말을 했다 해도 진짜 자식이 죽길 바라는 부모는 없어.

 파니 근데 요즘은 존속살해가 계속 늘어나니 완전히 아니라고 확신할 수도 없지. 솔직히 나만 봐도 그래. 우리 아빠가 지긋지긋하다며 날 내쫓았는데 비정한 아버지 같지만, 20대부터 지금까지 대학 졸업 기점만 놓고 봐도 10년이 넘는 세월을 아직도 내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거잖아. 지겨울만하지. 차라리 낳지 말 걸 그랬다고 얼마나 후회하겠어. 나도 나 자신이 지겨운 데...

 

 둘 다 아무 말이 없다.

 

 파니 이 동네에서 아드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 얼마나 긴 세월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드님이 집에만 있었던 거 아닐까?

 드레 원래 서로한테 관심이 없는 세상이니 봤다 해도 모를 수 있지.

 산다라 그렇다고 80대 노모에게 술 심부름을 시키지는 않아.

 파니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면 가정폭력범일거라 생각했지만 경찰이 둘 다 아니라고 하니 결국 남은 건

 드레 은둔형 외톨이다?

 산다라 (혼잣말) 그래서 옆집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던 거구나.

 드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산다라 사건 당일 할머니가 체포되고, 뒤이어 아드님 사체가 검은 큰백에 담겨 나왔잖아. 그걸 보고 나와계시던 옆집 아주머니가 “이제야 얼굴 보나 했더니 가방에 쌓여 끝까지 얼굴도 못 본다”고 말씀하시더라고.

 파니 그때 누나도 나와 있었어? 3층으로 사람이 오르내려서 나오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아니, 아예 마당으로 나와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산다라 화장실 창문이 골목 쪽으로 나 있잖아. 그래서 거기 매달려서 봤지. 작긴 해도 높은 곳에 있어서 보이긴 다 보여.

 드레 큰 쓰레기를 버리는 건 못 봤어요?

 산다라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 우리 없는 낮에 버리시는 거 아니야?

 파니 우리 분리수거함이랑 여기 공유공간 쓰레기는 내가 버려.

 드레 아니, 3층에서 나온 쓰레기.

 

 산다라와 파니, 서로 주시하며 못 봤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파니 넌 본적이 있어서 묻는 거지?

 드레 사건 당일 경찰 오기 1-2시간 전에 퇴근해서 들어오다가 봤어. 언덕 올라오며 보니까 권사님으로 보이는 분이 큰 쓰레기봉투를 골목 밖으로 계속 가지고 나와 버리시더라고. 그래서 권사님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까 3층 현관 불이 켜져 있고, 도어락 소리가 나더라고. 그래서 진짜 내가 본 게 권사님인가 했어. 근데 타이밍이 비슷하게 맞았다고 권사님이 쓰레기를 버렸다 할 수 없잖아. 현관 밖에 나와 바람 쐬고 계시다가 들어간 건데 내가 엉뚱하게 오해하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니까.

 산다라 맞아. 바람 쐬고 들어간 걸 거야.

 파니 (혼잣말) 쓰레기를 치우고 싶었던 건가?

 드레 쓰레기를 치우고 싶어서 아들을 죽였다?

 산다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드레 결벽증이 있는 분이라면 지옥 아니었을까요? 보이진 않아도 틈새로 쓰레기 냄새도 났을 거고, 냄새야 무감각해진다 해도 보지 않아도 보이는 그런 게 있잖아요.

 파니 쓰레기를 생산하는 쓰레기 괴물이 그 방 안에 있다 생각했을 수도 있어.

 산다라 그렇다 치더라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생각 같은 거 못한다고. 너희가 자식이 없어서 몰라.

 파니 누나! 은둔형 외톨이가 그냥 방이나 집에 박혀 자기 자신만 괴롭힌다 생각하는 거예요?

 

 산다라, 아무 말도 못 한다.

 

 파니 누나도 자의든 타의든 집 안에 갇혀 결국 이성의 끈도 끊어졌던 경험이 있었던 거 아니야? 아무리 내 속에 낳은 예쁜 딸이라도 견디기 힘든 그 상태가 있었던 거 아니야? 산후우울증이 심해서 우는 샘이를 보면서 이걸 던지면 조용히 할까 베개로 누르면 조용히 할까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그때 친정엄마가 곁에 없었다면 샘이도 누나도 다 죽었을 거라고 했었잖아. 그때 누나만 힘들었을까? 누나를 보고 우는 샘이는? 그 둘을 보는 친정어머니는? 그런 3대를 보는 누나의 남편은 안 힘들었다 장담할 수 있어요?

 

 산다라, 말이 없다.

 

 파니 그저 한 사람이 고립되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야. 그 가정이 곪아 썩어 문드러지다 병들어 죽는 거라고.

 

 긴 사이

 

 파니 나도 그랬어. 글 쓴다는 변명으로 방안에 처박혀 있었지만,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점차 나갈 이유가 사라지기 시작했어. 이유가 사라지니 의욕도 사라졌어. 그렇게 방 안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어. 내가 왜 집에서 순순히 나왔는지 알아요? 아빠가 내쫓았다고 했지만 실은 엄마 말 때문에 나왔어.

 

 드레와 산다라는 묻기보다 그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파니 손으로 때리고 말로 때려야 폭행은 아니라고, 너처럼 모든 걸 등지고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것도 무언의 폭력이라고요. 어쩌면 손으로 때리는 것보다 말로 때리는 것보다 무언의 폭력이 가장 상처가 깊다고 했어요. 그리고 내 앞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우시는 데 정말 힘들어 보였어.... 마치 나한테 살려달라고 비는 것 같았어....

 

 파니가 손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삼킨다.

 산다라와 드레도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바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드레 형사님들이 벌써 온 건가?

 파니 (눈물을 삼키며) 배달온 걸 거야. 문방구 떡볶이 시켰어.

 산다라 죽음의 떡볶이를 시키라니까. 내가 계산할테니까 넌 얼굴 좀 닦고 진정해. 드레는 밥 먹을 준비 좀 해줘.

 

 문 두드리는 소리.

 파니가 화장실로 들어가고,

 산다라가 핸드폰을 챙겨 문을 열자 문 앞에 형사2가 서 있다.

 

 형사2 세입자이신가요? (메모지를 꺼내 확인하며) 202호 산다라님?

 

 형사2의 목소리에 오뎅국을 뜨려던 드레가 놀라서 형사2에게 산다라를 소개해준다.

 

 드레 (형사2에게) 오셨어요. 맞습니다. 202호 산다라님이십니다. (산다라에게) 누나, 사건 담당하시는 형사님이요.

 

 산다라, 그제야 나와서 형사2에게 인사한다.

 

 산다라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형사2 (주방 안을 살피며) 자녀분은 안 오셨나요?

 샘 (목소리만) 제가 딸인데요.

 

 샘이 떡볶이를 들고 등장한다.

 

 샘 나가서 계산해. 배달 기사 기다려.

 산다라 기사 아저씨!

 샘 기다린다고!

 산다라 (나가며) 너 형사님 가고 나서 보자.

 샘 뭐래.

 

 산다라 나간다.

 샘이 형사2의 어깨를 툭 치며 아일랜드 식탁 앞에 앉아 포장을 제대로 뜯지도 않고 바로 떡볶이를 집어 먹는다.

 

 드레 (형사2에게) 죄송합니다.

 

 드레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샘의 눈치를 살피자,

 형사2도 대충 괜찮다며 넘어간다.

 

 드레 들어오시죠.

 형사2 아니요.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들렸습니다.

 드레 말씀 하십시오.

 형사2 권사님한테 따님이 있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보신 분은 있나요?

 드레 (고개를 가로저으며) 처음 듣고 보지도 못했어요. 봤다 해도 모를 수 있겠지만 권사님과 함께 본 적은 확실히 없습니다.

 형사2 따님이 인근에서 부동산을 하시다가 이사를 가시면서 정리하셨다던데 알고 계셨습니까?

 드레 (놀라서 나오며) 혹시 제가 만난 부동산 아주머니가 따님이셨다고요?

 형사2 인근에 부동산이 하나였습니까?

 드레 아니요. 여러 군데 있긴 하지만, 중년 여성분이 운영하시는 부동산은 한 곳이었어요.

 형사2 명함 있으실까요?

 산다라 (목소리) 부동산을 끼고 계약한 게 아니라 명함은 없어요. (형사 옆에 서며) 계약서상에도 중개인이 없어요.

 형사2 (이전 메모를 확인하며) 이곳 주소지를 비밀스럽게 주셨다더니 작정하고 모녀가 여러분을 속인 거군요.

 산다라 (형사2의 옆에 서며) 그렇게 볼 순 없죠. 저희가 묻지 않아 이야기하지 않은 거지 작정하고 속였다고는 볼 수 없어요.

 드레 맞습니다. 요즘 묻지 않은 개인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요?

 형사2 글쎄요. 한 두 번 스치는 사람한테는 그럴 수 있지만 여러분은 스치는 사이가 아니지 않나요? 그러기엔 이곳이 좀 특별하다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산다라 (강한 부정) 전혀요! 같이 밥 먹는다고 식구라는 개념은 버려야 해요. 그럴 거 같으면 급식시간에 같이 먹는 학생들은 다 친하게요? 같이 한 음식으로 한 공간에 같은 시간에 밥을 먹잖아요.

 샘 (혼잣말) 뭐래

 형사2 같이 밥은 먹었으나 친하지 않았다?

 산다라 형사님도 생각해 보세요. 밥 같이 먹는 부모님이랑 친하세요? 같이 밥 먹었던 중고등학교 친구들하고 아직 친하세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친하다고 다 말하고 다 안다는 건 교만이죠.

 형사2 듣다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네요.

 드레 회사에서 같이 밥은 먹으나 깊은 사이는 아닌 그런 비즈니스 관계? 그런 거라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결국엔 저희는 집주인과 세입자이니까요.

 산다라 맞아요! 맞아!

 샘 (혼잣말) 양심 없어.

 형사2 (샘의 말을 정확하게 듣지 못하고, 방을 향해) 학생 뭐가 없다고요? (신발을 벗고 들어서며)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산다라와 드레, 혹시나 샘이 말실수를 할까 봐 다급하게 형사2를 쫓아 들어간다.

 화장실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파니도 나와 문 앞에 서서 샘의 말을 주시한다.

 

 형사2 아저씨가 잘 못 들었는데 아까 한 말 다시 해줄래?

 산다라 튀김이 없다고 한 거를 잘못 들으신 거 같은데요?

 형사2 형사 촉으로 그런 단순한 음식 같은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이응이 들어가는 단어였던 거 같은 데 뭐가 없었다는 거니?

 드레 (샘을 설득하는 척 회유한다) 그래 형사님께 말해 봐봐. 할머니가 안 계시면 이제 우리가 이곳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형사님이 사건 조사를 하시는 데 어렵지 않도록 도와드리는 건 시민의 의무니까 도와드려야지. 우리가 이곳에 계속 살기 위해 할머니 편만 드는 건 옳은 행동이 아니야. 사실을 말씀드려 봐.

 

 드레의 말 뜻을 알아 들었는지 샘이 그를 빤히 본다.

 산다라 이를 놓치지 않고 말을 보탠다.

 

 산다라 (혼잣말처럼) 그러고보니 권사님께 연장 이야기를 못 했네... 안 돌아오시면 난 영락없이 3개월 후 나가야 하잖아? 혹시 모르니 집부터 알아보러 다녀야 겠다. 대출이 되려나? 여기 보증금이 있는 건 아니라... 당장 대출도 문제내.... 이러다 텐트치고 살게 생겼네 진짜.

 

 샘, 산다라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흔들리는 듯 생각에 잠겨 있다.

 형사2, 산다라가 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형사2 (매우 반기며) 아~ 그러세요? 그러면 제가 권사님꼐 다음 계약을 말씀드려도 되겠네요.

 산다라 (어이없어 하며) 네?

 형사2 (혼잣말) 잘하면 이 집에서 살 수 있겠는 데~

 산다라 (다급하게) 저기 형사님

 샘 (결심한 듯) 엘사옷이 없었어요.

 형사2 엘사옷?

 샘 학원 끝나고 들어오는 데, 어떤 차에서 애기가 내려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그 애가 엘사옷을 입고 있었어요. 차는 아이만 내려놓고 골목을 빠져 나갔고, 제가 골목 안에 들어섰을 때 엘사옷 입은 애가 없어졌어요. 근데 권사님네 집 앞 현관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고, 도어락 잠기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이후로는 몰라요

 형사2 그 아이가 권사님 집에 갔다는 거지? 차로 데려다 준 사람은 권사님 따님 같고?

 샘 저야 모르죠. 엘사는 사라졌고, 차 안에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형사2 소리는? 애를 차에서 내려줄 때든, 아니면 학생이 집에 있을 때든 들었던 소리가 있니?

 

 샘, 잠시 고민하듯 먹던 것도 멈추고 잠시 있더니 다시 떡볶이를 먹기 시작한다.

 

 샘 그날은 아니고, 이전에 들었어요.

 형사2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고?

 샘 공부도 못하는 데 남의 말까지 기억하고 살아야 해요?

 형사2 그럴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기억이 어렴풋이 날 수도 있잖아.

 

 샘, 대답을 하지 않고 그녀 앞에 서 있는 드레의 눈치를 살핀다.

 뒤에서 보고만 있던 파니가 나선다.

 

 파니 목요일 소그룹예배 때 맞지?

 

 파니의 대답에 놀라 샘이 그를 돌아본다.

 

 형사2 파니씨도 들으셨던 겁니까?

 파니 바로 옆집이다 보니 출입구에서 작별인사할 때 한 번씩 들렸습니다. 제 집 부엌 창문이 여기 부엌 창문이랑 나란히 있거든요.

 

 형사2, 출입구로 나가 바깥을 확인한다.

 

 형사2 (창문을 확인하며) 그렇군요. 그래서 작별인사할 때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셨습니까?

 파니 아니요. 엄마 갈게. 정도였던 거 같습니다.

 형사2 그럼 파니씨는 따님이 있으셨던 걸 아셨던 거군요?

 파니 확실하게 안다기보다는 짐작이죠. 낮엔 거의 잠에 빠져 있어서 비몽사몽 간에 들었던 것들이라 꿈인지 현실인지 착각했던 거 같기도 하고요.

 형사2 그래서 따님에 대해 묻지 않았다?

 파니 생각해보세요. “권사님 여자 목소리가 들리던데 엄마 잘가 라고 하는 거 보니 따님 인 거 같던데 맞나요?” 이렇게 물으면 좀.. 변태같지 않나요?

 형사2 왜 변태 갔죠? 우연히 들을 수도 있잖아요.

 파니 상대가 말하지도 않은 걸 굳이 들었다고 얘기하는 건 좀... 그런 데요. 형사님은 어떻게 생각해도 전 좀 변태 같은 질문 같아서 묻지 않았고, 묻지 않아서 권사님도 따로 말한 적은 없습니다.

 형사2 작가라면서 질문이 없는 것도 문제네요.

 

 형사2의 말에 파니가 인상을 찌푸리자 형사2가 헛기침을 하며 돌아선다.

 

 형사2 (황급히 자리를 뜨며) 우선 알겠습니다. 이따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형사2, 도망치 듯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산다라, 샘 옆에 바짝 다가 앉는다.

 샘은 그런 산다라에게 살짝 돌아 앉는다.

 

 산다라 너 무슨 소리 들은 거지?

 샘 알게 뭐야.

 산다라 알아야 널 지키든 말든 하지.

 샘 내가 아니라 이 집과의 계약을 지키고 싶은 거겠지.

 산다라 너도 마찬가지니까 얘기를 안 한 거 아니야?

 

 샘, 산다라 노려본다.

 산다라도지지 않고 그녀를 본다.

 샘, 먹던 젓가락을 던지듯 내려놓고 자리를 뜬다.

 

 샘 (나가면서) 죄다 비양심이야.

 

 거칠게 문을 닫는다.

 도어락 소리

 바깥 문이 거칠게 열고 닫히는 소리

 쿵쿵 거리며 계단 오르는 소리

 도어락이 빠르게 눌리며 문이 열리는 소리

 거칠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방 안은 잠시 고요하다.

 

 파니 양심 있는 놈이면 지가 알아서 죽어야지. 아직도 버티고 있데?

 산다라 (파니를 보며)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파니 양심 없이 나한테 얹혀살 생각해 봐.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드레 딸이 하는 소리를 들었던 거구나.

 파니 매주 벽 너머로 들리는 그 소리가 나한테 하는 소리 같아서 더 모른 척 하며 살았어. 안 들리는 척, 못 들은 척. 근데 그날은 아는 척을 했어야 했나 싶어.

 산다라 사건 관련한 무슨 소리를 들었던 거야?

 파니 사건 관련한 건 아니지만, 발단은 되지 않았을까 싶어.

 드레 싸움 소리가 크게 났었어?

 파니 엉엉 우는 소리? 우리 삶을 좀먹는 저 기생충 같은 새끼를 언제까지 살게 할 거냐고 그냥 굶겨 죽여버리라고 지긋지긋하다고 이젠 먹다 먹다 엄마를 넘어 이제 나까지 좀먹기 시작한다고 빨리 죽여버리라고 소리 지르며 우는 소리가 들렸어.

 

 산다라와 드레,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한다.

 

 긴 정적

 

 이 분위기를 깨기 위해 산다라가 팬트리 방 안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얼음컵과 맥주 3개를 꺼내 와 아일랜드 식탁 위에 깔아놓고 맥주를 채운다.

 맥주를 보고도 드레와 파니가 다가서지 않자 산다라가 두 남자를 끌어와 각각 맥주잔을 손에 쥐어 준다.

 

 산다라 이거 마시고 지금 들은 말은 잊는 거야. (파니를 빤히 보며) 특히 넌 그 소리를 들은 적도 없는 거야. 알겠어? 마셔! (맥주를 들이켠다)

 

 산다라가 맥주를 마시면서 두 남자를 보지만, 두 남자는 마시지 않고 맥주잔을 여전히 들고 있다.

 산다라가 마시라고 재촉하나 아무 소용 없다.

 

 드레 정말 그 이유 때문에 죽인 건가?

 파니 누가?

 드레 (긴 사이) 그걸 모르겠어.

 산다라 바로 그거야! 누가 죽였는지도 모르잖아. 어떻게 죽였는지도 모르고. 하물며 그 증거와 목격자도 없잖아. 그 말은 자연사나 지병으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소리야.

 파니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

 산다라 사람이 죽는 데 날을 정하고 죽진 않으니까 어느 날이든 상관없지.

 

 파니, 팬트리 방으로 들어가 배달봉투를 들고나온다.

 파니는 배달봉투를 찢어 그들에게 보여준다.

 티니핑 생일파티세트다.

 그걸 보고 산다라가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한다.

 

 드레 설마 손녀딸 생일에 그런 짓을 한 거야?

 파니 그날 사건이 안 터졌으면 권사님이랑 손녀딸 생일파티 준비를 했을 거야.

 드레 따님에 대해 물어봤구나?

 

 파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파니 무서워서 물어볼 수 없었어. 집 안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들었다고 하면 당장 나가라고 할까 봐. 너무 무서웠어. 난 여기 아니면 살 곳이 없어.

 산다라 (파니를 단도리하듯,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우리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우리도 나갈 생각이 없고, 나갈 일도 없어. 그러니까 너도 쓸데없는 감정이입 하지마.

 드레 우리 이야기 같아서 그래요, 누나. 우리의 예견된 미래 같아서. 우리 이제 곧 40대에요. 이 상태로 파니는 계속 취직에 실패하고, 난 다시 취준생이 되어 살아간다면 우리도 곧 모든 걸 포기하고 아드님과 같이 살게 될 거에요.

 산다라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우린 우리야. 어떻게 부모 등에 빨대 꽂고 사는 벌레 같은 놈이랑 우리를 비교해.

 드레 IMF요.

 산다라 IMF?

 드레 외환 위기때 20대였던 취준생들이 장기 실업자로 살다 현재 4-50대 캥거루족이 되었데요. 지금 우리가 겪는 삶을 아드님은 먼저 살았던 거예요.

 파니 20대 때는 그래도 30대에는 되겠지 하는 희망이라도 있었어. 하지만 30대가 되니 더 살기 힘들어졌고 나 같은 스펙도 없는 인간은 점차 면접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 이제는 서류를 넣어도 불러주는 곳 조차 없어. 내가 권사님 아드님과 다른 게 뭔데?

 드레 불러줘도 겨우 1년, 10개월, 5개월짜리 계약직이고 불안정한 직장은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시켜요.

 파니 취준생 생활이 장기화된다는 건 무일푼의 상태가 장기화된다는 거고 결국 부모님 연금이 내 생계 수단이 되고, 형제의 벌이가 내 도움이 되는 양심 없는 삶을 선택하게 돼. 선택지가 전혀 없으니까.

 드레 외환위기 이후 27년이나 흘렀으니, 짧아도 20년은 취업이 되지 않은 상태로 살았을 거야. 아무리 인성 좋은 권사님이라도 참을 수 없었을 거야.

 산다라 너희는 권사님이 죽였다 생각하는 거야?

 

 파니와 드레, 말이 없다.

 

 산다라 (매우 단호하다) 그딴 생각 버려! 권사님은 아드님을 절대 죽이지 않았어!

 파니 (사이) 권사님이 울었어.

 

 산다라, 놀라서 파니의 팔을 당겨 그의 얼굴을 빤히 본다.

 

 산다라 제대로 말해.

 파니 사건 전날 오전에 수요예배 가시고, 오후에 짐 정리하는 거 도와달라고 부르셨어. 권사님은 다음날 손녀딸 먹인다고 음식 준비를 하고 난 그날 온 식자재를 정리하고 있었어. 근데 싱크대에서 물만 틀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거 같았어. 그날은 그냥 은혜를 많이 받으셨나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새벽에 경찰에 끌려가는 권사님 보고 내가 잘 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 그래서 밝히고 싶었던 거야! 권사님이 범인이 아닌 증거를! 내가 들은 게 잘못 들은 거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

 산다라 이 얘기 형사한테 했어?

 

 파니 대신 드레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산다라 그럼 앞으로도 영원히 넌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 거야. 죽였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우린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야. 양심에 찔릴 일 한 적 없어.

 

 밖에서 형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형사2 (목소리) 양심 없는 거죠. 나이가 50 넘도록 취직도 못하고 20대부터 지금까지 부모 등짝에 빌붙어서 부모 등골을 쪽쪽 빨아 먹었으니 부모는 말라 비틀어지고 자식은 배가 터져서 죽은 거잖아요.

 형사1 (목소리) 말 조심해 듣겠어.

 형사2 (목소리) 여기 어차피 전부 벽돌집이라 방음이 잘 된다면서요.

 형사1 (목소리) 완전한 방음이 어디 있어.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거지. 내 일이 아니길 바라면서.

 

 산다라 형사들이 온 거 같은 데, 너희들도 마음의 결정한 거지?

 

 파니와 드레, 고개 끄덕인다.

 산다라, 아까보다 날카로운 눈매로 집 안을 둘러본다.

 그녀의 눈에 맥주병과 맥주잔들이 보인다.

 

 산다라 맥주병이랑 맥주잔부터 치우자. 음주 금지인 곳에서 음주를 한 걸 들키면 우리가 계속 거짓말을 했다 생각할 거야.

 드레 아까 샘이 있을 때 방에 있었는 데 못 봤겠죠?

 산다라 못 봤을 거야. 봤어도 착각하신 거 같다 하면 되지 뭐.

 

 바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산다라 빨리 서둘러.

 

 드레가 맥주잔들을 챙겨 싱크대에서 닦아 내고,

 파니는 맥주캔을 챙겨 아까 드레가 맥주캔을 숨겨 놓은 창문 뒤에 똑같이 놓아둔다.

 산다라, 그 사이 냉장고에서 찻물을 미리 끓여 넣어둔 유리차주전자를 가지고 온다.

 드레가 익숙하게 맥주잔 3개에 산다라가 가져온 찻물을 담는다.

 문 두드리는 소리.

 산다라가 상황 정리 된 걸 보고 문을 연다.

 밖에 형사1이 서 있다.

 산다라가 당황해 바깥을 살핀다.

 

 형사1 왜 그러십니까?

 산다라 아... 그게...

 드레 아까 다른 형사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셔서 같이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산다라 (고개를 끄덕이며) 네. 맞아요.

 형사1 그 녀석은 지금 202호에 가 있습니다. 학생에게 추가로 질문할 게 있어서요. 혹시 어머니께서 걱정되시면 가 보셔도 됩니다.

 산다라 다 큰 아이인데 걱정은요. 잘 하겠죠.

 형사1 신경 쓰이시면 나중에라도 가 보셔도 됩니다.

 산다라 감사합니다.

 형사1 들어가도 될까요?

 산다라 물론이죠.

 

 형사1, 집 안으로 들어와서 집 안을 둘러본다.

 

 형사1 (티니핑 생일파티세트를 가리키며) 이건 뭐죠?

 

 형사가 찢어진 봉투의 택배 송장 내용을 확인한다.

 산다라와 드레, 파니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할 말을 찾기 시작한다.

 

 형사1 권사님이 시키신 거 같은 데, 혹시 학생이 목격했다는 엘사옷 입은 아이의 생일파티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었나요?

 파니 목요일이니까 그날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소그룹 예배가 예정되어 있어서 그날 따님이 오셨을 겁니다.

 형사1 이 물건에 대해 파니씨는 아셨던 건가요? 그럼 따님의 정체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었던 거 아닌가요? 아까 묻지 않았다고 증언하셨다 들었습니다.

 드레 여기 물건은 전부 권사님이 시키세요. 이런 티니핑생일파티세트는 권사님이 못 사셨을 리 없죠. 그리고 보시다시피 저희도 이걸 지금 발견하고 사건 당일에 대해 추측해 보고 있어서 파니가 그렇게 증언한 겁니다.

 형사1 (쉽게 수긍한다) 그렇군요. (팬트리방을 가리키며) 여기도 좀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드레 네. 편히 보십시오.

 형사1 식자재를 대용량으로만 사시는 이유를 아십니까?

 산다라 싸니까요. 저희가 드린 건 1년에 10만원이 전부에요. 그 돈으로 이 집 식구들 밥 먹이려면 식당용 대용량으로 사야 남죠.

 형사1 이렇게 매번 사시면 더 안 남을 거 같은 데요.

 산다라 권사님의 마음인 거죠. 교회를 다니셔서 그런가 사랑이 참 넘치는 분이에요. 그런 분이 그 아끼던 아들이 죽었으니 얼마나 충격을 받으셨겠어요. 그러니 그런 실언을 하셨던 거예요.

 형사1 권사님과 한 교회 다니는 다른 어르신께 아드님에 대한 증언은 들었습니다. 권사님도 많이 힘드셨을 거 같더군요. 그나마 여러분들과 소통하며 희망을 품으셨다고 해요.

 드레 저희를 통해서요?

 형사1 아, 그런 얘기는 안 나누셨습니까?

 드레 네...

 형사1 하긴... 부끄러워서 이야기 안 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여러분을 이 집에 들인 것도 아드님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섬기면 아드님이 변화될 거라 믿어서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근데 섬기는 게 말은 쉽지 막상 하기 시작하면 안 좋은 생각이 들잖아요.

 산다라 권사님이 저희가 불편하다고 하셨다던가요?

 형사1 이 이상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산다라, 파니, 드레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세 사람 사이에 묘한 기운이 감돈다.

 그들은 마음을 완전히 굳혔는지 아까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형사를 응대하기 시작한다.

 

 형사1 (팬트리 가장 하단 락스를 포함한 세재도 가득 쌓여 있는 걸 보고) 근데 청소용품도 엄청 사 놓으셨네요. 이것도 싸서 대량으로 사 놓으신 건가요?

 파니 그건 권사님이 청소를 좋아해서 그렇게 사셨어요.

 형사1 청소를 좋아해요?

 드레 결벽증인가 싶을 정도로 깔끔하세요. 쓰레기는 물론 얼룩 하나 없이 이 공간을 운영하셨을 정도입니다. 얘기 듣기로 이 전에 청소가 너무 좋아서 청소업체에 들어가 일하셨다고 했습니다.

 

 드레, 갑자기 피식 웃는다

 

 형사1 (드레에게) 왜 그러십니까?

 드레 아니 옛날 생각이 나서요. 아니 옛날도 아니죠. 코로나 시국 때 일이니까. 제가 코로나 걸려서 집 안에서 자가격리 중인데 권사님이 선물이라면서 문 앞에 락스 두 통을 가져다 놓고 락스가 살균 소독에 좋으니 자주 청소하라고 메모를 남겨 놓으셨어요. 락스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게 너무 웃기지 않나요?

 파니 그래서 맨날 여기도 락스 냄새가 진동했지. 화장실이며 싱크대, 가스레인지까지 마무리 청소는 항상 락스로 했잖아.

 형사1 그래서 현장도 락스 냄새가 진동했던 거군요.

 산다라 혹시 피를 락스로 지웠다 생각하셨던 건 아니죠? 락스는 피를 못 지워요. 과탄산..... (갑자기 말을 삼킨다)

 

 산다라의 태도에 놀라 드레와 파니가 그녀의 눈치를 살핀다.

 형사가 눈치채기 전에 파니가 말을 돌리기 시작한다.

 

 파니 혹시 속옷 담가 놓고 왔어?

 형사1 속옷이요?

 드레 누나 빨리 올라가요.

 

 산다라, 죄송하다며 바로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바깥 문 여는 소리, 그녀가 뛰어 올라가는 소리, 도어락 소리가 들린다.

 

 형사1 매우 당황해 하시네요.

 파니 일반 속옷이 아니라서 그래요. 아주 특별한 날 입는 그런 거거든요.

 형사1 그걸 어떻게... 아! 두 분이 연인사이군요?

 파니 형사님! 저도 보는 눈 있어요!

 드레 (키득거리며) 누나도 마찬가지일 걸?

 형사1 근데 여성분의 속옷이 어떤지 어떻게 아십니까?

 드레 저기 보시면 저희가 세탁기도 여기서 공용으로 사용하거든요. 빨래방처럼 세탁기가 많은 건 아니니 빨래 하나가 끝나야 다른 빨래를 넣을 수 있어서 그 과정 중에 본 거 같습니다.

 형사1 드레님도 보셨습니까?

 드레 아니요. 다행히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파니 다행이지. 그걸 보는 순간 내 눈을 파버리고 싶었어.

 형사1 그 정도입니까?

 파니 내 여자는 좋지만, 남의 여자 꺼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형사1 그 눈을 지키려면 내 여자가 되면 되겠군요.

 파니 형사님!

 형사1 (껄껄 웃으며 냉동고를 열어본다) 근데 음주가 금지인데 맥주잔으로 얼음컵이 여러 개 들어 있네요? 아까 싱크대에도 있는 것 같았는데, 이곳에서 맥주를 드십니까?

 드레 각자 집에 냉장고가 따로 없으니까 얼음컵에 물을 담아서 갑니다. 그러면 집에서 시원한 물이 먹고 싶을 때 꽤 오랜 시간 차가운 물을 계속 마실 수 있어요.

 파니 요즘은 겨울이라 창가에 컵 올려놓으면 찬기가 더 오래 가서 좋아.

 형사1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네요. 지난 여름은 얼음컵도 못 버텼을 거 같은데요.

 드레 그래서 이번 여름은 거의 자기 직전에 들어갔어요

 파니 집에선 뭐 거의 잠만 잤지. 무더웠어도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MT 온 거 같고 즐거웠잖아.

 형사1 진짜 재미있었겠네요. 권사님도 함께 계셨나요?

 파니 함께는 있었죠. 대신 끝까지는....

 

 파니와 드레가 서로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서로 얼굴을 본다.

 

 형사1 뭔가 떠오른 거 있으신가요?

 파니 아... 아니요... 끝까지 남았는지 안 남았는지 기억이 안 나서요...

 드레 저도... 기억이 안 나네요. 계신 날도 있었고, 안 계신 날도 있었던 거 같아서 여름 내내 늦게까지 함께 하셨던 게 정확하지 않네요.

 형사1 그건 사건과 관계없으니 굳이 이야기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탁기로 향하며) 세탁은 사건 발생 이후 누가 하셨습니까?

 

 그때 형사1의 전화기가 울린다.

 형사1, 전화를 받는다.

 짧은 전화통화를 마치고 출입구로 향하는 형사.

 

 형사1 확인할 게 있어서 301호에 다녀오겠습니다.

 드레 비밀번호를 알고 계시나요?

 형사1 권사님이 협조해주셨습니다.

 

 형사1이 나가고

 바깥문 열리는 소리

 도어락 열리는 소리

 형사1과 2의 목소리가 들린다.

 

 형사2 (목소리) 아래에서 뭐 좀 들으셨어요?

 형사1 (목소리) 락스 냄새 났던 이유?

 형사2 (목소리) 뭐랍니까?

 형사1 (목소리) 우리가 본 그대로지. 수사 중에도 대답하면서 계속 책상을 닦고 계시잖아.

 형사2 (목소리) 학생도 유리 깨지는 소리 같은 건 들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들어가서 본다고 나올까요?

 형사1 (목소리) 그냥 보는 거지 뭐. 보고는 해야 하니까.

 

 도어락 열리고 닫히는 소리.

 

 드레 권사님이 우리를 불편하게 생각했던 때가 여름부터인 거지?

 파니 우리가 그때부터 사이가 좋아지고, 권사님한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편하게 얘기하면서 불편한 것도 얘기하고 ...

 

 드레와 파니, 말을 하던 중 서로 생각이 통하여 서로를 바라본다.

 

 드레 우리가 캥거루였어

 파니 남의 주머니를 비집고 들어온 캥거루.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산다라가 이불을 들고 들어온다.

 그녀가 이불을 넣기 위해 세탁기를 열었다가 그 안에 락스로 옷이 오염되어 색깔이 변한 권사님의 옷과 신발, 앞치마를 발견한다.

 파니와 드레가 놀라 그것들을 꺼내 보자

 산다라가 재빨리 빼앗아 이불과 함께 넣고 세탁기를 돌려버린다.

 

 세탁기 소음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드레 아까 형사가 사건 이후 세탁기를 돌린 적이 있냐 물어봤어요.

 파니 아까 열어보려고도 했어.

 

 산다라, 두 남자를 이끌고 부엌 쪽으로 끌고 온다.

 

 산다라 락스가 살해 도구야.

 드레 락스로 어떻게...

 파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

 산다라 사건 며칠 전에 [친절한 금자씨]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샘이 생일이라고 데려가 놓고는 그 양심 없는 새끼가 그 미친년을 데리고 나왔다 해서 나도 꼭지가 돌잖아. 그래서 차라리 안 순간부터 금자씨처럼 락스나 먹여서 시름시름 앓다 죽게 만들 걸 그랬다고, 쓸데없이 비싼 속옷만 사댔다고 얘기했었어. 근데 권사님이 나더러 그렇게는 안 죽고 락스를 끓이면 죽는다고 하더라.

 드레 방법을 알고 있었군요...

 산다라 락스랑 세제를 섞어도 유독가스가 나와서 섞어 쓰면 안 된다고 하시는 분이야. 끓일 때 더 많은 유독가스가 나온다는 걸 모를 리가 없지.

 파니 말도 안 돼....

 드레 (괴로워하며) 며칠 전에 가열식 가습기를 빌려 가셨어.

 산다라 나한테는 버너를 빌려 가셨어. 가열식 가습기로는 안 될 수도 있다 생각하고 나한테 버너도 빌려 갔던 거야.

 파니 (괴로워하며) 우리보고 그냥 나가라 하시지.....

 산다라 그게 무슨 소리야?

 드레 아까 형사가 지나가는 말로 권사님이 우리를 불편해했다는 얘기 기억해요?

 산다라 응

 드레 우리가 자식도 안 빠져나간 그 주머니를 비집고 들어간 다른 집 캥거루들이었더라고요. 그래서 불편해 하셨던 거 같아요.

 산다라 그래서 양심에 찔려? 그래서 이 주머니를 빠져 나갈 거야?

 

 산다라의 질문에 드레와 파니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산다라 다른 집 캥거루건, 이 집 캥거루건 중요하지 않아. 어떻게든 이 주머니 붙잡고 안 나가야 살 수 있어. 그깟 양심. 주머니 밖으로 내던져버려.

 

 드레와 파니, 고개를 끄덕인다.

 

 산다라 이 사건은 결벽증이 있는 권사님이 여름 내 썩어 문들어진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집 안을 열면서부터 시작된 거야.

 

 산다라가 무슨 얘기를 하는 지 눈치 챈 파니가 산다라의 말을 잇는다.

 

 파니 문을 열었는 데 아들이 쓰레기더미에 깔려 이미 죽어 있었어. 그래서 놀란 마음에 쓰레기를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고, 악취와 벌레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권사님이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방을 치우기 시작했어. 강력 탈취와 소독을 위해 락스를 몇 통이나 써가며 청소를 했어.

 드레 사건 현장인 301호가 락스 냄새가 강하게 났던 것도, 내가 권사님이 쓰레기 봉투를 여러 개 버리는 걸 목격한 것도 그 때문이야.

 산다라 딸이 온 거는 권사님이 오빠가 죽은 것 같다고 전화를 해서 바로 달려온 거야. 그날 딸은 손녀딸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어서 손녀딸이 엘사옷을 입었던 거야.

 파니 아드님이 죽은 건 굳게 닫은 문 안에 온 갖 쓰레기를 쌓아 놔서야. 여름 내내 지속된 폭염 때문에 쌓아둔 쓰레기가 썩어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고, 그 악취에 취해 자리에서 일어나던 중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진 거지. 근데 하필 쓰러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잡은 게 가장 큰 쓰레기 더미였고, 그 쓰레기 더미가 쓰러지면서 아드님 몸 위로 떨어져 결국 쓰레기에 깔려 질식사한 거야.

 산다라 어쩌면 치우고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엄마한테 얹혀산다는 죄책감때문에 양심상 그냥 이대로 죽어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고 그냥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거지.

 드레 파니랑 다음날 손녀 생일파티 준비하느라 계속 이곳에 있었던 권사님은 아드님의 죽음을 늦게 발견했다는 죄책감으로 경찰에 신고할 때 자신이 죽였다 거짓 자백을 했어. 이게 권사님이 이미 재정신이 아니었다는 증거야. 재정신이었다면 사건 현장을 치울 생각을 못했을 거야. 정신이 나간 상태라 무의식적으로 청소를 한 거야. 청소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니까.

 산다라 거짓 자백을 했으니 증거가 없는 거야. 살해한 적이 없으니까.

 

 3층에서 형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형사2 (목소리) 아직도 락스 냄새가 안 빠진 거 보면 락스 냄새 때문에 질식사 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형사1 (목소리) 락스로 죽을 거 같으면 모든 청소업자들 다 죽어야지.

 

 산다라 가습기랑 버너 찾아. 분명 락스 묻은 옷이 있으면 그것들도 여기 어디 있을 거야.

 

 산다라의 말에 세사람 모든 찬장과 가구 아래를 구석 구석 뒤지며 버너와 가습기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 산다라의 눈에 있으나 사용하지 않는 환풍기 위쪽 찬장 문을 연다.

 환풍기 통 양 옆으로 버너와 가습기가 세워져 있다.

 산다라가 가습기를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가 세척을 하고,

 파니가 버너를 식탁방에 가지고 들어가 행주로 버너를 닦는다.

 드레는 주방 찬장에서 납작한 냄비를 꺼내와 오뎅국을 좀 더 담고, 식탁에 이미 차려 놓은 오뎅국을 냄비 안에 넣는다.

 하지만 버너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부탄가스를 흔들어 보니 가볍다.

 파니는 팬트리 방으로 가 서랍장 안에서 부탄가스를 꺼내온다.

 바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형사2 (목소리) 근데 보통 파편이 튀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떨어져서 남아있을 법도 한데, 진짜 결벽증이 심하신 가 봐요. 유리 파편 한 조각도 없는 거 보면요.

 형사1 (목소리) 병으로 내리친 적이 없는 거지.

 형사2 (목소리) 그럼 여기서는 주방만 뒤져 봐요?

 형사1 (목소리) 식탁 있는 방은 뭐 숨길 곳이 없으니까.

 형사2 (목소리) 뭘 찾아요 근데?

 형사1 (목소리) 글쎄. 뭐든?

 

 산다라가 가습기에 물을 담아와 식탁 위에 올려두고 스위치를 켠다.

 마치 모닥불과 같다.

 

 문 두드리는 소리.

 드레가 상황이 정리된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준다.

 파니와 산다라도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문이 열리자 온 방 안을 채운 오뎅탕 냄새에 형사2가 코를 킁킁 거린다.

 

 형사2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드레 함께 드시겠어요? 누나가 바로 일 가야 해서 더이상 식사시간을 미룰 수가 없어서요.

 형사1 저희는 알아서 둘러보고 가겠습니다. 편하게 드십시오.

 드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형사들이 들어오고, 드레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식탁방으로 들어가 밥을 먹는다.

 

 세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대화를 나눈다.

 

 형사1 빨래는 누구 빨래지?

 형사2 202호 학생 이불 일 겁니다. 어머니가 빨래 담가 놓은 거 땜에 왔다고 하니까 자기 것만 빠는 이기적인 엄마라고 구박하더라고요. 침대랑 이불에서 냄새난다고 엄청 투덜거려서 어머니가 이불이랑 시트를 그제야 걷어내셨어요. 중학생이면 직접 해도 될 텐데... 중딩은 너무 어렵습니다.

 형사1 너도 지나온 이야기야.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형사2 지금도 어머니가 해주셔서 할 말 없네요.

 형사1 캥거루가 여기 있었네.

 형사2 엄마 품이 최고죠.

 

 형사들은 의미 없는 수색을 진행한다.

 산다라와 파니, 드레도 그들의 눈치를 보며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파니 권사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까 우선 이번 달 공과금은 우리가 모아서 내야 할 거 같은데?

 드레 계속 권사님 혼자 부담하셨으니 오실 때까지 저희가 부담해도 되죠.

 파니 공과금만 문제가 아니야, 식자재도 문제야.

 드레 우선은 누나랑 내가 네 것까지 나눠서 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대신 파니는 여기 청소 빨래, 설거지까지 맡아서 관리하면 되잖아.

 파니 요리는 못하는데?

 드레 내가 할 게. 어차피 샘이 땜에 누나가 식비 더 낼 테니까 요리는 제가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산다라 나야 고맙지. 난 돈 내고 몸만 오면 되잖아.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샘이 들어온다.

 

 샘 뭐야? 딸내미 배고픈지 묻지도 않고 자기만 배 채우는 거야?

 산다라 그냥 와서 먹어. 시비 걸지 말고.

 

 산다라의 핸드폰이 울린다.

 

 산다라 (알람 확인하고) 나 이제 가야겠다. 엄마 가방 가지고 올라가.

 샘 싫어.

 파니 잘 다녀와요.

 

 산다라가 외투를 챙겨 나가면서 형사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드레가 샘을 자리에 앉힌 후, 젓가락을 챙겨와 건넨다.

 엄마와 있을 때의 심통은 사라지고 삼촌들과 이야기하며 까르르 웃기 시작한다.

 

 형사2 특별한 건 없는 거 같습니다.

 형사1 그럼 우리도 가지.

 형사2 사고사 처리하면 될까요?

 형사1 사고사도 뭔가 증거가 있어야 하고, 그냥 지병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하지.

 형사2 지병이 뭔데요?

 형사1 50대 사회부적응자 긴 은둔생활로 초고도 비만이 되어,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호흡 곤란 후 사망. 용의자가 자수한 이유는 사고로 사망한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한 행동으로 보임. 대충 이렇게 적어.

 형사2 시간 낭비만 했어요.

 형사1 시간 낭비라도 해야 양심에 안 찔리지.

 

 형사2의 전화가 울린다.

 

 형사2 네, 끝났습니다. 네. 10분 거리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전화 끊는다)

 형사1 또 사건이야?

 형사2 백골 사체랑 40대 후반 여자랑 원룸에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형사1 백골 사체면 몇 년이나 집에 있었다는 거잖아? 집에 갇힌 거래?

 형사2 신고자 말로는 언니가 문을 안 열어줬다고 합니다.

 형사1 그 동생이란 사람은 그럼 사체가 백골이 될 때까지 몰랐다는 거야?

 형사2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던 거겠죠. 속이 뻔해요. 그 40대 후반 여성은 엄마 연금 파먹고 살았던 사람이고, 나중에 발견한 동생은 유산 받으려고 이제 찾아 온 거겠죠. 양심 없는 것들.

 

 형사1이 식사 중인 드레와 파니에게 인사를 건넨다.

 

 형사1 (드레와 파니에게) 협조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제 돌아가 보겠습니다.

 드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형사들 퇴장.

 파니와 드레, 그들을 배웅하고 문을 굳게 잠근 후 마주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파니 너무 양심 없는 건가?

 드레 양심이 있다면 주머니 밖에 버려야지. 주머니가 너무 비좁잖아.

 

 FIN.

 
작가의 말
 

 배경 : 다가구주택 공유공간-식사와 빨래를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계절 : 겨울

 

 드레- 201호 세입자. 1년 계약직 회사원. 다가구주택에 들어와 산지는 10개월차

 

 파니- 102호 세입자. 무명 작가라고 하지만 장기 무취업자. 다가구 주택 거주한 지 8개월차

 

 산다라- 202호 세입자. 이혼모. 들어와 산지 9개월차. 중학교 딸과 함께 거주 중. 경단녀로 살다가 현재 오전 8시 ~ 오후 5시까지 공장 업무. 오후 8시 ~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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