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둘이었지만, 살기 위해서 잠깐이라도 산책하기로 둘은 합의했다. 지금 집에 간다면 새벽 내내 끄억 거리며 나뒹굴었을 것이다.
“공기가 이제 추위에서 쌀쌀로 바뀌었네요.”
“곧 선선으로 바뀔 거예요.”
“그러다 후텁지근으로 바뀌겠죠? 전 여름이 싫어요.”
“앗, 주임님도요? 저도 여름을 안 좋아해요. 벌레를 엄청나게 싫어하거든요.”
“오? 바퀴벌레 못 잡으시나요?”
“등장만으로도 패왕색 패기에 짓눌려 기절한답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주임님도 못 잡죠?”
“왜 당연히 ‘도’가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생명 존중 사상에 힘입어 살생을 금한답니다.”
“불교?”
“무교.”
“올.”
“전 벌레도 벌레인데,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 땀 때문에 싫어요.”
“회색 반팔티 입어줘요.”
“회색이 뭐죠?”
“그래도 추위에 움츠려 있다가 여름만의 낭만을 즐길 수 있으니 설레기도 하네요.”
“갑자기요?”
“생각해 보세요. 더운 날에 냉면이나 계곡에 놀러 가서 숯불로 구운 삼겹살, 시원한 아이스크림 등등 여름만의 낭만이 있잖아요.”
“뭔가 공감이 되긴 한데 장르가 이상하네요.”
“나중에 물놀이가요.”
“저랑요? 주임님 나랑 친해요?”
“고기 잘 굽잖아요. 민지 대리님한테도 말해 놓을게요.”
“뭘 말해요.”
“바다보다는 계곡으로 가요. 바다는 소금기 때문에 물놀이 끝나면 찝찝해요.”
“저기요? 제 말 안 들리세요?”
“고기는 삼겹살로 사고 새우나 소시지도 사서 구우면 맛있겠당.”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저 돼지바요.”
“안 들리는 척한 거였네요?”
“ㅈㅅ.”
“놀러 가는 건 생각해 볼게요.”
“아, 왜요.”
“회사 사람들이랑 사적으로 놀아본 적이 없어서 부담스러워요.”
“저랑은 사적으로 놀고 있잖아요?”
“엥? 그러네.”
뭐지? 잊고 있었는데 한우주 주임과 밥을 먹는 게 어느 순간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이렇게 산책까지 하고…. 내향적인 성격이라 친한 친구들 이외에는 사적인 자리를 즐기지 않는다. 게다가 회사 사람과 사적인 대화나 사적인 시간을 갖는 건 더더욱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일하는 곳에서 나와 상대방의 히스토리를 알고 지낸다니….
“어디 가세요?”
“네?”
“아이스크림 먹자면서요. 여기 편의점.”
“아, ㅇㅋㅇㅋ.”
흠…. 뭔가 싱숭생숭했다. 집에 도착해서 삼겹살 냄새를 빼기 위해 씻고 옷도 세탁기 안에 넣었다. 평소처럼 행동했지만, 마음속은 뭔가 평소와 달랐다. 맛있게 밥을 먹은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아까 하던 생각에 뭐가 꽂힌 건지 자꾸 신경이 쓰였다. 웃긴 건 뭐에 꽂혔고 뭐가 신경 쓰이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머저리인가?
나는 메로나, 한우주 주임은 돼지바를 물고 들어오면서 한우주 주임은 자연스레 헤어졌다.
“뭐가 문제인 거지….”
모르겠다. 혜미와의 연을 끝내서였을까, 대패 삼겹살을 맛있게 먹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병신새끼.”
<시즌1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