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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의 이야기
작가 : 쉼표
작품등록일 : 2024.6.7

매일 상상만 하던 헤어진 첫사랑에게 연락이 왔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평범한 지훈의 소소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11화 과연 시작만 어려울까?
작성일 : 24-07-03 18:49     조회 : 10     추천 : 0     분량 : 3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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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치킨 두 접시를 비우고 500cc 잔이 세 번째 바뀌었을 때, 이성을 찾은 한우주 주임은 만족한 듯 배를 두드렸다. 사실 식탐이나 초반 스타트에 비해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하는 위인이었기에 두 번째 간장치킨은 거의 손도 데지 않았었다. 사실 두 번째 치킨까지 걸신처럼 먹었다면 진지하게 500cc 잔으로 뚝배기를 내려칠까 고민했었을 것이다.

 먹는 동안은 사실 영양가 있는 대화는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보니 서로 조심하는 눈치였기 때문이었다. 회사 동료와 첫 술자리는 사실 이 사람과 앞으로 술자리를 가져도 될지 안 될지를 판가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모여요.”

 생각보다 술이 약한 듯 얼굴에 홍조가 핀 김민지 대리가 배시시 웃으며 말하자, 한우주 주임이 얼른 대답했다.

 “너무 좋아요!”

 “왜 박 주임님은 대답이 없으세요?”

 김민지 대리가 서운하다는 듯 표정을 짓자, 얼른 대답했다.

 “자주라는 단어 대신 종종 이라는 단어가 서운해서요.”

 “하하하, 죄송해요. 자주 모여요, 우리.”

 회사에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김민지 대리였기에 이런 모습은 왠지 당황스러웠다. 예전에 뽀뽀하던 부모님을 발견했을 때 들었던 감정이랑 비슷했다.

 “대리 불러드릴까요?”

 “여기 김민지 대리님이 계신 데 또 어떤 대리님을 불러요?”

 지금이라도 500cc 잔으로 내려칠까? 한우주 주임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김민지 대리를 바라보자, 김민지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뇨, 여기서 집 가까우니까 걸어가려고요.”

 “어…. 괜찮으시겠어요?”

 “생각보다 저 안 취했어요.”

 저 말 되게 위험한 말인데….

 “두 분은 어떻게 가세요?”

 “아….”

 “저랑 박 주임님은 같은 동네에 살아서 같이 택시 타면 돼요.”

 굳이 비밀로 할 생각은 없었지만, 한우주 주임이 이렇게 시원하게 깔 줄은 몰랐기에 나는 슬쩍 김민지 대리의 눈치를 봤다.

 “아…. 그래서 두 분이 빨리 친해지셨구나.”

 

 시대가 변했것만 술 취한 젊은 남녀가 한 원룸 건물에서 내리니, 택시기사님은 작게 혀를 찼다. 애써 변명하거나 싸울 힘이나 이유가 없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택시에서 내린 나는 한우주 주임에게 말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

 “?”

 “저희 같은 건물에 사는데요. 인사가 너무 빨랐어요.”

 “아... 가시죠.”

 

 술을 못 마시는 편은 아니었으나, 나이가 들수록 다음 날이 힘들어져 가는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주량보다 적게 마셨기에 다행히 큰 탈이 없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안녕하세요!”

 사무실에 혼자 있던 나는 평소와 다르게 더 반갑게 인사하는 김민지 대리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하하하, 뭘 그렇게 놀라세요.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네? 아, 네, 네.”

 “출근할 때는 같이 안 오시나 봐요?”

 슬쩍 한우주 주임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말하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출근 시간은 맞추기가 어렵기도 하고, 굳이 같이 올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하.”

 “그런가요?”

 대답을 듣는 둥, 둥 마는 둥 하던 김민지 대리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커피 드실래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물이라도….”

 “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지. 물론 이 정도 대화는 평소에도 하긴 했지만, 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어제 술자리 때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묘하게 과한 느낌이다.

 나의 거절에 혼자 탕비실에 가려던 김민지 대리가 멈칫하고는 잠시 고민을 하고는 뒤돌아 머뭇거리며 물었다.

 “박 주임님?”

 “네?”

 이거 어째 위험한데?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김민지 대리가 괜찮은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애 상대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게다가 이 작은 회사의 사내연애라니….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다.

 “아…. 없긴 한데….”

 “그래요?”

 나의 대답에 활짝 웃는 김민지 대리의 모습에 살짝 설렐 뻔했다. 이거…. 진짜 위험할지도?

 “그럼 소개팅 하실래요?”

 “예?”

 “소개팅이요.”

 아…. 젠장…. 지읒 니은 쪽팔릴 뻔했네. 아니 이미 혼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뭐야? 부끄러우세요?”

 김민지 대리가 키득키득 웃으며 놀리듯 묻자, 괜히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부끄러운 건 맞긴 하는데….”

 “제 친군데 주임님이랑 잘 맞을 것 같아서요. 전부터 생각하긴 했는데 말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아, 뭐….”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적당히 거절할 명분을 생각했다.

 “근데 제가-”

 가만, 근데 왜 내가 거절할 명분을 찾고 있는 거지? 결혼한 유부남도 아니고,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이 궁한 백수 상태도 아니었고, 시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근데도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설마…. 그녀 때문에?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아, 할게요. 하겠습니다. 제발, 하게 해주세요.”

 “네? 아, 네, 네. 많이 외로우셨나 보네요. 헤헤.”

 “그랬나 봅니다.”

 “그럼 친구한테도 물어보고 연락처 바로 드릴게요.”

 “넵.”

 

 소개팅. 20대 초반에는 그나마 익숙했던 단어였지만, 30대가 되고 나서는 처음 듣는 단어였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성을 만나기 어렵다는 말이 실감하는 나이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김민지 대리에게 연락처를 받은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첫 연락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몇 시간 째 고민 중이었다.

 “뭐에요? 아직도 연락 안 하셨어요?”

 퇴근길 버스 안에서 나의 핸드폰을 힐끗 쳐다보며 말하는 한우주 주임의 말에 나는 금세 얼굴이 새빨개 져버렸다.

 “큼, 큼. 거, 남의 핸드폰을….”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시면서 안절부절못하는데 안 볼 수가 있어야지요.”

 “그 정도였나요?”

 “네.”

 “하…. 이게 첫 스타트가 어렵네요.”

 “스타트만 어려울까요?”

 “오늘 공격적이시네요?”

 “앗…. 죄송합니다. 남자친구하고 다툰 티를 내어버렸네요.”

 응? 남자친구가 있었구나? 저렇게 대놓고 말하며 나의 눈치를 쓱 살피는 한우주 주임이었다. 아마도 남자친구와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듯했다.

 “남자친구랑은 왜요?”

 사실 나의 연애사에 관심이 없었지만, 예의상 질문을 안 할 수는 없었다. 한우주 주임은 나의 질문에 눈을 번뜩이며 무섭게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게 글쎄, 제가 직장을 구하면서 장거리 연애가 되어버렸거든요. 근데 별수 없잖아요? 저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그거에서부터 삐졌는지, 말할 때마다 툭, 툭. 그거까지는 저도 참았어요. 서운했을 법하니까. 근데 이제는 뭐만 하면 연락이 왜 늦냐, 퇴근해서 뭐 했냐 하면서 제 말을 의심부터 한다니까요?”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문장에 살짝 과부하가 왔지만, 더듬더듬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멀어진 게 처음이라면 남자친구로서는 불안할 만하지 않을까요? 한우주 주임은 괜찮으세요?”

 “그야…. 저도 그럴 때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냥 믿는 거죠.”

 믿음…. 그 단어 하나에 예전에 아물었던 상처가 덧나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짓고 중얼거렸다.

 “연인 사이에 믿음이란 단어가 거론된 순간부터 망한 건데….”

 “네?”

 나의 말을 못 들었는지 한우주 주임이 되물었지만, 굳이 다시 해줄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그냥 힘드시겠다고요.”

 “흠….”

 내가 기분이 가라앉은 걸 눈치챘는지, 한우주 주임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버스에서 내리며 슬쩍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맥주 한잔하실래요?”

 평소라면 ‘그러죠’라고 시원하게 대답했겠지만, 이제는 그러기 어려워졌다.

 “남자친구 있으시다면서요.”

 “엥?”

 “이런 오해에서부터 보통은 시작해요.”

 “뭐가요?”

 “믿음이란 단어 때문에 사랑이 금가기 시작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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