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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의 이야기
작가 : 쉼표
작품등록일 : 2024.6.7

매일 상상만 하던 헤어진 첫사랑에게 연락이 왔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평범한 지훈의 소소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8화. 밥친구 득템
작성일 : 24-06-28 17:27     조회 : 11     추천 : 0     분량 : 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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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가끔 그런 날이 있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어느 날은 아무런 할 일이 없어서 무료할 정도로 한가한 날 말이다. 오늘이 그러했다. 바쁜 일도 없어서 한우주 주임에게 이것저것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선미 팀장님도 마침 시간이 남았는지 오늘 온종일 한우주 주임을 옆에 데려다 놓고 업무에 대해 알려주어 진짜 심심할 지경이었다. 옆에 있는 김민지 대리는 이런 시간을 제법 여유롭게 보내는 듯했지만 나는 아직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서 이상하게 불안했다. 이러다 진짜 김 첨지 꼴이 나지는 않을지 걱정을 했지만, 세상 무난하게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 정혜미: 아 그래요? 많이 피곤한가 보다. 밥이나 같이 먹으려 했는데….

 

 그녀의 문자가 중간에 오긴 했었지만, 그냥 다음에 보자는 답장을 보내었다. 그냥 이렇게 무료한 김에 이번 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에 치킨을 시켜 먹을까, 아니면 고기를 사다가 구워 먹겠느냐는 즐거운 상상을 하다 보니 대표님과 실장님이 퇴근했고, 금요일이라 그런지 직급 순으로 차례로 빨리빨리 퇴근하였다.

 “주말 잘 보내고 다음 주에 봐~”

 고선미 팀장이 마지막으로 퇴근하자, 김민지 대리도 미리 싸두었던 가방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도 어서 퇴근하시죠.”

 “네, 금요일이라 차 좀 막히겠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차가 있는 김민지 대리는 따로 헤어졌고 나와 한우주 주임은 회사 앞에서 덩그러니 서 있었다. 같은 건물에 사는데 따로 가기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자 어색하게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도 가시죠.”

 

 퇴근길은 그래도 생각보다는 어색함 없이 지나갔다. 둘 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먹는 이야기가 대화 주제의 90%였었기 때문이었다.

 “전 치킨이랑 피자가 당겨요.”

 “둘 다 드시면 되죠.”

 나의 간단한 해결 방법에 한우주 주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소식가여서 다 먹지 못해요. 냉동 보관한 음식이 아직도 남아있답니다….”

 “정말 생각보다 의외네요. 하긴 음식물 처리가 빡쌔긴하죠.”

 “하나를 포기해야 하나….”

 “오늘 하나 먹고 내일 또 나머지 하나를 시켜 먹으면 돼요.”

 “오늘 다 먹고 싶은 걸요?”

 “욕심이 많으시네.”

 “인간의 본능이랍니다.”

 “틀린 말은 아니군요.”

 “음….”

 한우주 주임은 잠깐 고민을 하더니 집에 도착할 때쯤 물었다.

 “같이 시켜 드실래요?”

 “네?”

 밥 먹는 거야 같이 먹을 수 있지만 시켜 먹는다는 것은 저쪽이나 이쪽 집에서 먹자는 이야기인데 그건 좀….

 “제가 쏠게요.”

 “엌?”

 “맥주까지 쏠게요.”

 “오?”

 최저시급과 비슷한 월급쟁이에게는 귀가 번뜩이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배달시간이 있으니까 지금 시킬게요.”

 대답도 하기 전에 어플 주문을 끝낸 한우주 주임의 입가에는 이미 침이 고여 있었다.

 “그럼 씻고 있다가 내려오세요.”

 “네? 아, 네. 아니다. 한우주 주임이 올라오시는 것이 낫겠네요.”

 “왜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는 게 좀….”

 “그런가요? 전 상관없는데…. 그럼 제가 배달 오면 가지고 올라갈게요.”

 “넵.”

 이게 맞는 일인가 싶었지만 요즘 혼자 먹는 밥에 질려가던 차에 그냥 동네 밥 친구라도 생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간단하게 바닥에 떨어진 털들을 정리하고는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다. 씻고 나온 후 로션을 바르면서 핸드폰을 확인하자 한우주 주임한테 문자가 와있었다.

 “뭐지? 배달 도착했으면 그냥 올라오면 되는데.”

 - 한우주: 저희 집 보일러가 고장 났나 봐요. 찬물만 나와요ㅠ

 “우리 집이 아니라 다행이다….”

 아직 겨울이 안 끝난 이런 날씨에 보일러 고장이라니…. 더군다나 주말까지 껴서 주말 내내 시베리아 간접 체험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자로는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 박지훈: 안타깝네요.^^;

 - 한우주: 저 한여름에도 미지근한 물로 씻어요.

 - 박지훈: 이런, 이런….

 - 한우주: 박 주임님 욕실 좀 빌려도 될까요?

 - 박지훈: ?

 이 여자가 뭐라 하는 거야.

 - 한우주: 치킨 값 대신한다 생각하시고 빨리 쓰고 나올게요!

 아니 빨리 쓰고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닌데….

 - 한우주: 치킨이랑 피자 들고 지금 가겠습니다!

 생각보다 막무가내였다. 양손 가득 치킨과 피자를 들고 오면서 기어이 자기 수건과 세면도구를 챙겨오는 한우주 주임이었다.

 “재빨리 씻고 나올게요. 먼저 드시면 안 돼요.”

 “?”

 에라 모르겠다.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왔었기에 4인용 접이식 식탁을 피고는 음식들을 세팅했다.

 “와…. 역시 따뜻한 물이 최고예요.”

 벌써 씻었다고? 빨리 쓰고 나온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음식 세팅보다 빠르게 씻고 나오다니….

 “씻은 거 맞아요?”

 “세수하고 손발 다 씻었어요.”

 “그걸 다 했다는 게 더 이상한데….”

 “네?”

 “아, 아뇨, 아뇨.”

 화장을 옅게 하는 스타일이었기에 그냥 남들보다 덜 씻어도 되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와, 맛있겠다!”

 한 손엔 치킨을, 한 손엔 피자를 든 한우주 주임은 정말 잘 먹었다. 체격은 되게 왜소했는데 의외였다.

 “어서, 드세요.”

 “넵.”

 지기 싫어서 나도 양손 가득 음식을 쥐고 먹었다.

 “넷플릭스라도 볼까요?”

 “넹.”

 현대 사회인의 친구인 넷플릭스를 키고는 무얼 볼지 열심히 고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못 고르고 있자, 한우주 주임이 자신의 집에서 가져온 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그거 아시죠? 넷플릭스는 미리 보기가 제일 재미있는 거?”

 “인정….”

 “그냥 드시죠.”

 “넵.”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둘은 먹는 데만 집중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한우주 주임은 GG를 치며 식탁에서 물러나 벽에 기대었다.

 “진짜 생각보다 못 드시네요?”

 처음 스타트에 비해 지구력이 달리는 듯했다.

 “제 위장이 식탐을 못 따라가서 서러워요.”

 “안타깝네요.”

 그럼 이건 다 내꺼~ 히히.

 “보일러 고장은 그냥 수리업체 부르면 되나요?”

 “아뇨. 이런 건 집주인이 수리비를 내줘야 해요. 그러니까 내일 집주인한테 전화해서 설명하면은 알아서 처리 해주실 거예요.”

 “오…. 그럼 제가 돈 안 내도되는 거예요?”

 “넵. 저희가 고장 낸 게 아니니까요.”

 “좋네요.”

 “집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죠.”

 “수리는 그럼 바로 안 되겠죠?”

 “아마도요?”

 “하…. 하루라도 안 씻으면 찝찝한데….”

 “?”

 그냥 물 묻히고 나온 거 아니었나?

 “내일도 욕실 빌릴 수 있을까요?”

 “예?”

 이 여자가 진짜 그래도 직장선임인데 너무 편하게 생각하네.

 “내일도 밥 살게요!”

 “오?”

 “어차피 혼자 밥 먹는 거 싫어하는데 같이 드시게요.”

 “아….”

 “그럼 잘 먹었습니다!”

 안 치우고 가냐?

 진짜 다행히 밥만 먹으러 왔었는지, 자신의 굶주린 배를 채운 한우주 주임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이 먹은 쓰레기들을 들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 네, 네. 들어가세요.”

 아직 식사가 덜 끝났기에 양손에 음식을 들고는 나도 일어나 인사를 했다.

 삑삑삑삑.

 현관문 앞에 선 한우주 주임은 자동으로 현관문이 열리자, 의아한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여긴 자동문이에요?”

 이 사람아, 그럴 일이 있나. 지읏됐네.

 “어잌후, 잘 못 찾아왔네요. 죄송합니다.”

 혁권은 자신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음에도 낯선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예의 바르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아, 예.”

 한우주 주임이 얼결에 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려다, 뭔가 이상했는지 뒤돌아 나를 바라봤다.

 “많이 부족한 제 친구예요.”

 “아, 아. 네.”

 어떻게 이해했는지 한우주 주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관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아,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재미있게 노세요.”

 혁권에게도 인사를 하고는 내려가자, 혁권은 아직 상황파악이 됐는지 한참을 넋 놓고 서 있었다.

 “거, 그냥 서 있을 거면 문 좀 닫아줄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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