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지?”
“….”
너까지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따지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낸 나 자신에게 박수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 자신이 내뱉었던 말 중 무엇이 잘못된 것이 모르겠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저…. 이번이 첫 임무인데 대장과 단둘은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너랑 둘은 아니지 않냐는 의미와 이왕이면 나 말고 다른 애들 넣어서 가라는 의미를 담은 말을 변화구로 던지자, 반응은 다른 애들한테서 터져 나왔다.
“그래. 박하가 우리 팀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맡은 일인데 누군가는 옆에서 박하를 돌볼 사람이 더 필요할지도 몰라.”
“응 응 그럼 그럼.”
역시 부장다운 정확한 판단력이었다. 나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마주잡고 흔들어댔다. 잘한다! 더해라 더해!
“…. 그런가?”
“응. 그러니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더 붙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응 응 그럼 그럼. 그렇고말고.”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 적어도 한 명 더 붙여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잠시만 근데 그게 너는 안 되는데.
“저요! 저요! 제가 가고 싶습니다. 부장님!”
발표를 하고 싶은 아이처럼 한 손을 높이 든 채로 콩콩 뛰어대는 이라온을 보자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까부터 눈을 반짝거리며 정완이 하는 말에 맞장구치던 게 다 이를 위한 밑밥이었나.
“라온이 네가?”
“넵!”
“음...”
정완은 난처한 마음을 감추며 애매한 웃음을 흘려댔다. 아무래도 어떤 말로 거절해야 좋을 지 그 방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다행히도 지원사격이 여자 쪽에서 쏟아졌다.
“야. 괜히 갔다가 미아나 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그래 네가 가면 네가 막내를 챙기는 게 아니라 막내가 너를 챙기게 될 거야.”
맞아. 안 그래도 서도담 때문에 정신 사나울 예정이니 제발 거기에 너까지 보태지 말아 주라. 나는 한서리와 진하나가 이라온을 격하게 만류하는 걸 속으로만 열심히 응원했다. 지금의 내 처치로서는 그를 거절할 수가 없으니 이 아이들이 성공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싫어 싫어 내가 갈 거야!”
“무조건 우기지만 말고 생각을 좀 해 인마! 비공식 임무면 윗대가리들이 시키는 일인데 막내가 길치인 너를 챙기게 만들어야겠어?”
“….”
그러자 이라온의 시선이 서도담을 향했다. 대충 우리가 하게 될 임무가 그런 종류의 일이 맞냐는 물음이었다.
“나를 어떻게 보고. 당연히 아니지. 그냥 불량배들 잡으러 가는 거야.”
“거봐! 아니라잖아.”
이라온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한서리를 향해 으스대었다. 이거 어째 예감이 안 좋은데. 가만히 내버려뒀다가는 정말 이놈이랑 같이 일하러 갈 판이었다.
“근데…. 안타깝지만 남은 인원 중 이라온이 우리와 함께 가는 게 가장 적합하긴 해.”
“뭐?”
“야 너까지 왜 이래?”
그러게.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서도담이 대뜸 이라온을 지지하고 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야 그날 일정이 비워진 쟤밖에 없거든.”
“… 아.”
”“….”
“앗싸! 역시 신은 내 편이었어!”
이럴 거면 앞의 그 말싸움은 왜 한 거고 너는 왜 그걸 이제 와서 말해주는 건데? 어쩐지 쟤가 가겠다고 나설 때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하더라니.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신이 난 이라온이 어깨동무를 하며 잘해보자고 소리치는 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정말…. 인생 뭐 하나 되는 게 없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 혹부리 영감님이 된 기분이었다.
떠오른 석양빛이 온 방 안을 붉게 물들였다. 슬슬 저물 준비를 시작한 온 하늘은 붉은빛과 파란빛이 섞여 온통 분홍색으로 바뀌는 것을 우리는 창문을 통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분명 해가 저물기도 전 이곳에 도착했는데 어느새 날이 저물고 말아 버렸다.“….” 그렇다. 우리는 현재 무한 대기 중이었다.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임무에 투입되었겠지만 예상치 못한 변동 사항으로 모든 계획이 잠시 중단되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소탕할 마약 사범들이 본인들의 아지트에 나타나고 있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지트와 컨테이너에서 내내 활동하는 모습을 포착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아지트 주위로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고 형사는 말했다.
잘하면 이대로 임무가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형사들은 긍정적이었다. 원래 이놈들이 주 활동 시간은 저녁에서 새벽 때이니 그때가 되면 반드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믿음에 우리도 긍정을 표하자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형사들이 안내한 창고에서 셋이 나란히 앉아 죽치고 기다리는 결과가 돌아왔다.
‘참으로 이상하네. 예전에는 이런 사건 같은 건 발생하지 않았는데.’
내 기억에 따르면 우리 둘은 임무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었다. 즉 이런 방치 따위는 과거의 시간 선에서는 경험한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 시간 선에서는 왜 이런 변수가 등장한 것 인지 그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남이 듣는다면 이거 심각한 거 아니냐며 끙끙 앓았을 문제였지만 나는 깔끔하게 모든 생각을 포기하는 선택지를 골랐다. 아무리 골머리 앓아봤자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게 없기도 하고 이런 변수 같은 건 지금껏 몇 번이고 겪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 임무는 애초에 첫 시작부터 변수를 안고 시작한 임무나 다름없었다. 마침 지루한 표정으로 내내 가만히 있던 변수가 입을 열었다.
“대장. 이쯤 대면 저 사람들 우리 잊은 거 아니야?”
“설마.”
“아니 1시간만 기다려 달라며. 근데 지금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아? 해가 지고 있어요. 해가! 이 정도면 우리가 여기서 튀어도 모를 정도라고!”
가만히 있는 것과 조용히 있는 걸 누구보다 못하는 이라온은 길길이 날뛰어댔다. 잔뜩 열을 받아 붉어진 얼굴과 석양빛이 꼭 한 쌍처럼 어울렸다. 그래. 이 정도면 슬슬 인내심이 바닥날 줄 알았다. 마침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서도담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한 태도였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금방 제풀에 지쳐 조용해질 것이다. 괜히 상대하면 나만 피곤해진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내가 이라온이 뭔 짓을 벌이든 철저히 무시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내 우리를 이곳에 처박아둔 형사가 모습을 보였다.
“아이고 미안해요. 단화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죠?”
그렇게 말한 형사의 품에는 음료수와 초콜릿 등 각종 간식이 한 가득 이었다. 아무래도 해가 다 저물도록 우리를 이곳에 처박아 둔 것에 대한 사죄의 표시 같았는데. 우리가 어린애인 줄 아나. 간식 받고 좋아할 나이는 이미 옛적에 지난 지 오래거든.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다 하십니까 형사님. 우리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한다면 당연히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죠!”
“….”
간식을 보고 태도가 돌변한 이라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호탕하게 하하 웃어댔다. 아까 우리 잊은 거 아니냐며 길길이 날뛰던 이라온 어디 갔냐? 뭐든 입에 들어가면 만사 오케이냐? 아마 아까 날뛰었던 것도 당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제가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래도 여러분을 긴 시간 기다리게 한 건 저희 쪽 책임이니 부디 받아주세요. 슬슬 입이 심심할 참이잖아요.”
“감사합니다. 마침 출출하던 차이니 사양 않고 받겠습니다!”
형사의 품 안 가득 안고 있던 간식들을 책상 위에다 모두 쏟아내자 이라온이 눈을 빛냈다. 이상하다. 출출하다고? 우리 아까 도시락 먹었는데? 거기다 넌 내가 남긴 것까지 전부 처리했잖아. 근데 뭘 그리 많이 챙기는 거지? 그러나 이라온은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에도 과자봉지 하나를 잽싸게 뜯었다.
“자자~ 우리 화제의 신입! 박하 학생도 하나 들어요. 여기 초콜릿도 있고 젤리도 있어요.”
“아뇨. 괜찮습니.”
“감사합니다.”
“?”
내가 사양하려던 간식을 대신 받은 건 생뚱맞게도 서도담이었다.
너 뭐해? 혹시 너도 쟤처럼 도시락 가지고는 배가 안 찼던 거야? 그러나 서도담의 기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건네받은 초코바의 포장지를 일부러 까, 내 손에 쥐어주었다.
“….”
익숙한 행동에 잠시 생각이 멈추었지만 나는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 당황하면 안 되었다. 나에게는 의미 있던 행동이라고 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그저 새로 들어온 신입을 챙기는 친절에 불과했다. 나는 이 사실을 잊어버려선 안 된다.
“감사합니다.”
“이야…! 난 서도담 학생이 누구를 이렇게 챙기는 건 처음 보는데 신입이라 그런가? 서 대장 눈에도 새로 들어온 막내는 귀여운 가 봐?”
“당연하죠. 형사님. 대장만이 아니라 우리 팀원 모두에게 막내는 귀여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요.”
“하하 하긴. 그렇겠네.”
대체 뭐가 그리 웃긴 건지 호탕하게 웃어대는 두 남자 덕분에 나는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쪽팔려 죽겠네. 아주 고맙습니다. 너희 두 사람 때문에 다른 생각은 안 드는구나. 점점 더 뜨거워지는 얼굴이 바닥을 향해 하염없이 내려가고 있을 때쯤이었다.
불쑥 내민 손이 초코바를 쥐고 있는 한 손을 잡고 들어 올렸다.
“얼른 먹어.”
“….”
오냐. 알았다. 먹으면 되잖아 먹으면. 본인이 이 사건의 발단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는 평온한 서도담의 행동에 내 얼굴은 이젠 다른 의미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