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축제의 한마당이 된 장례식장.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등장하는 기다란 검은 벤츠를 타고 우리 일행이 남천동 성당에 도착했다. 한 대가 아니었다. 수십 대였다. 기다란 검은 벤츠뿐 아니라 최고급 외제 차가 줄을 이었다. 하늘엔 헬기도 대 여섯대 날았다. 누가 보면 우리나라 최고 부자나 최고 권력자의 장례식으로 볼 정도로 초호화 장례식이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큰 구경거리인 양 서서 지켜보고 지나가던 차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창을 통해 우리 일행이 지나갈 때까지 서서 보고 있었다. 남천 성당에 가서 알았지만 스에마쓰 그룹 관계자와 한국 지사 사장 등 중역들도 미리 와서 대기했고 혼다 그룹, 노무라 그룹, 사카모토 그룹, 이시하라 그룹의 최고위급 인사들도 와 있었다. 스에마쓰 그룹에서 미리 완벽하게 장례 준비를 해놨다. 갑작스럽게 차도를 가득 메운 장례 행렬에 언론에서도 속보를 보낸다고 난리가 났다. 일본의 NHK 등 유수의 방송국과 일본 지사 CNN 방송국에서도 급히 부산으로 날아왔다. 미국 본토의 지상파도 취재를 위해 전세기를 띄웠다.
육손 작은아버지 조권이 와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아버지 관을 잡고 울던 작은아버지가 성제를 죽인다고 총을 꺼내 들었다. 침착하기로 소문난 작은아버지가 불덩이가 되었다. 나는 작은아버지의 심정을 알겠지만, 한국에서 권총 소지나 사용은 불법인데 하는 마음이 쓰였다. 마침 우리 쪽 사람들만 있어서 다행이었다. 총을 들고 성당 본당을 걸어서 나가는 작은아버지를 엄마가 제지했다. 단 한마디였다.
- 삼촌!!
작은아버지는 엄마의 외침에 오열을 터뜨리며 멈춰 섰다. 숙모도 어지간한 충격이 아닌 것 같았다. 냉철해서 금속 마녀라 소문난 숙모가 펑펑 울었다. 엄마가 숙모의 손을 잡고 등을 쓰다듬어주었고 숙모는 엄마 품에 안겨 또 울었다. 숙모의 미모는 여전했다. 세월이 비켜 갔는지 10년 전과 차이 나지 않았다. 사촌 동생들을 보고 이제 숙모도 중년이구나를 알았을 정도였다. 정례식장만 아니었다면 부둥켜안고 한 바퀴 돌고 싶었다. 그럴까 봐 숙모가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조심스러워 나랑 조금 떨어져 나를 대했다.
- 나를 왜 피하지?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 내가 대시할까 봐?
카나의 거침없음은 여전했다. 카나는 욱 자라서 처녀티가 물씬했다. 빼어난 미모와 쭉 뻗은 몸매, 귀티 나는 풍채가 주위를 압도했다. 사람들은 그랬다. 숙모의 처녀 때 모습 그대로라고, 대신 훨씬 부드럽고 온유하다고 했다. 도쿄대학 다니는데 하버드 교환학생으로 가 있다고 했다. 실리콘 벨리에서 IT 기업도 경영한다고 했다. 매출이 어지간한 대기업 정도라고 했다.
- 우리나라는 병역의 의무가 있어, 그 기간은 빼 줘야지, 그러면 안 본 기간은 얼마 안 돼잖아? 한 번 봐주면 안 되나
요?...
- 씨, 나빠...
- 미안, 내 동생, 아가씨가 다 됐네...
- 아가씨야, 치...
눈물을 글썽이며 카나가 나한테 먼저 불쑥 안겼다. 가슴 가득 들어왔다.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느껴졌다.
- 형은 형이 잘났다고 생각하지?
- 아냐, 니가 훨씬 잘생겼어, 이리 잘생긴 마초는 처음보네...
덩치는 산 만 해도 아직 얼굴은 앳된 미츠토시가 늠름했다. 이 잘생긴 놈은 유전자는 작은아버지보다도 숙모의 입김이 강했다.
안으려고 하자 미츠토시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약 2,000여 명의 작은아버지 수하의 야쿠자들이 숙모의 지시하에 허드렛일과 경비를 삼엄하게 섰다. 5,000여 명의 스에마쓰 그룹의 직원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성제 일당들이 놀란 것 같았다. 거머리 일당들이 분주하게 성당 주위를 움직여 동태를 파악하고 어디론가 보고했다. 이윽고 일본의 야마구치구미 등 야쿠자 조직의 보스와 중간 오야붕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한국의 전국구 조폭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그러자 경찰들도 비상을 걸어 수십 대의 경찰차에 나눠타서 남천 성당을 빙 둘러쌌다. 스에마쓰 그룹은 남천 성당 옆 KBS 홀을 빌려 그곳에서 문상객을 대기시켰고 대접도 했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메뉴얼 대로 움직이었다. 언제 음식을 준비했는지 돼지머리 편육과 밀양 돼지국밥, 소고기국밥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다. 세계 각국에서 문상이 몰려 그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음식도 준비했다. 부산을 비롯한 울산 창원 등 고급호텔 셰프나 고급 음식점 셰프들도 동원되었다. 움직이기 힘들면 호텔에서 만들어서 음식을 공수했다. 문상객들도 다양했다. 한 나라의 정상들로부터 부산역 노숙자, 홈리스, 내일모레 숨넘어가는 할아버지까지 문상을 왔다. 물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음식만 먹고 갔다. 갈 때 한 보따리씩 선물을 들고 갔다. 아야코의 누구 한 사람도 절대로 섭섭하게 돌려보내지 말라는 엄명(?)이었다. 물론 비공식적이라고 발표했지만 일본 내각 수상을 비롯해 프랑스 대통령, 이란의 최고 지도자도 조문을 왔다. 나머지 국가 정상이나 지도자들은 아예 공식적으로 활동였다. 아프리카나 남미 쪽 나라에서 조문 온 정권 수반들이 그랬다. 우리나라 정부와 장제갈은 생색내기 바빴다. 자기들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왔다고 선전했다. 시간이 남아서 조문한 거라 했다. 사실은 조문하고 시간이 남아서 나 이런 사람이요, 하고 정상회담을 했는데 그런 거짓말을 한들 삼척동자도 모를 리가 없었다. 북한의 장마당 꽃제비들도 아는 뻔한 사실을 거짓말하면 누가 믿겠는가? 그러나 대부분 각국의 정상들은 타고 온 전용기로 그대로 돌아가거나 발인을 보고 묘에 안장할 때까지 장지(葬地)에 따라와 지켜봤다. 5 일장이라 부산의 호텔이나 숙박시설은 때아닌 특수로 불티가 났다. 숙박시설이 부족해 바가지요금이 기승을 부렸다. 왜냐하면 세계의 젊은이들이 단체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야코는 전국의 공공시설을 임대해서 그들을 위해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다. 그 이유는 베일에 싸였던 미녀 삼총사 아야코, 유리나, 미나미의 정체를 밝혔을 뿐 아니라 이시하라 유우도 베일을 벗었다. 노래와 영화와 소설, 웹툰으로 전 세계를 달궜던 전설 속의 인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것은, 역대급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하루 내내 미녀 삼총사와 이시하라 유우의 노래가 길거리를 도배했다. 심지어 노래방에서도 그녀들의 노래만 불렀다. 소설책과 만화도 전 세계의 서점을 점령했다. 온라인도 그녀들이 독점했다. 영화도 그녀들의 리바이벌 영화만 표가 팔렸다. 엄숙한 장례식장이 축제의 장으로 바뀐 듯했다. 우리나라는 때아닌 관광 특수로 연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북새통이 되었다. 아야코의 전략이었다. 성제 일당들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치안이 거의 완벽한 국가에서 바주카포를 쏴대는 성제 일당들의 천방지축 무도한 행위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에 사전에 으름장을 놓은 거였다. 그리고 선전포고였다. 너희 일당들은 내 손에 죽는다였다. 스에마쓰 아야코가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고 유리나가 그랬다. 어렵게 연결된 영상 통화에 비친 얼굴이 분노 그 자체였다고 했다. 반대로 성제의 회사는 매출이 폭락했다. 바주카포를 쏜 자가 성제 일당으로 소문이 돌자 래퍼 썬디인 성제 노래는 불매운동으로 판매고(販賣高)가 곤두박질쳤다. 성제 회사는 비상이 걸렸다. 무엇보다도 조문(弔問)을 가느냐 마느냐로 의견이 분분했다. 차기 대권주자로 대통령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되는 장제갈도 긴장했다. 임기가 거의 막바지라 식물인간 취급당하는 현직 대통령의 옆구리를 찔러 바주카포를 쏜 자는 필리핀산 마약을 구매해 먹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러시아산 바주카포를 러시아 마피아에게 비밀리 구입해 미쳐 날뛰다가 우발적으로 쏜 게 민간인 집을 폭파한 거였으며 장성제 일당이랑 전혀 상관없는 거라고 대통령이 명목상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읊은 변명이었다. 이 모든 게 장성제의 머리에서 나온 거였다. 대통령이 장제갈에게 어떤 약점이 잡혔는지 아무리 레임덕이라도 꼼짝 못 했다. 꼭두각시였다. 여당들은 한술 더 떠 필리핀, 러시아와 국교단절 해야 한다며 말 같지 않은 호들갑을 떨었다. 야당은 철통같아야 할 치안이 뚫렸다며 행정안전부 장관 사퇴를 부르짖었다. 한 발짝 물러나 보면 다 쇼 같아 보였다. 하향은 연일 터지는 바주카포 사건 보도를 TV로 보며 냉소를 흘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검사 출신으로 경찰청에 특채로 들어간 박하향 경정. 그녀의 칼끝은 성제를 향하고 있었다.
- 저기 뭐야?!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
- 어디?
- 저기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