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어벤져스 친구들이 오다.
영안실에서 아버지 시신 (屍身)을 봤다. 얼굴엔 큰 상처가 없는데 뒷머리가 함몰되고 깨져 있었다.피가 응고되어 머리카락과 붙어 있었고 피가 흘러 눈 안으로 들어간 자국이 선명했다. 몰골이 처참했다. 아버지 눈은 감지 못하고 부릅떴다. 옆에 선 베아트리체 엄마가 아버지 눈을 감겨드리라고 눈짓을 했다. 어머니가 아들 몽대가 오면 아버지 눈을 감겨드리라고 했다고 했다. 아버지 부릅뜬 눈을 가슴에 새기라는 뜻이라고 했다.
스에마쓰 아야코가 갑자기 생각났다. 엄마가 누운 병실에 갔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김일성 앞에서도 당신 누구요? 할 배포를 가진 여장부 엄마가 영원히 함께 갈이 갈 거라 믿었던 인생의 동반자 아버지를 잃자 엄마는 한없이 내려앉았다. 엄마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면서도 분하고도 분함에 치를 떨며 피눈물을 흘렸다.
아빠를 발가락 사이 때만도 안 여기던 딸 조선의가 아빠 하면서 내 품에 안겼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이시하라 유우도 울고 수진 누나도 울고 베아트리체 엄마도 울었다. 나는 땅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 울지마! 사내새끼가 짜기는?!
엄마가 갑자기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링거를 후두둑, 뽑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 내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곽세린이 아니지... 우선 아빠 장례부터 치르자...
잔다르크 같은 아우라가 엄마 몸을 감쌌다. 저 손에 칼만 쥐면 잔다르크가 따로 없었다.
엄마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의 말속에는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성제 일당들 처단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 * *
- 노무라 증권이죠? 노무라 쥰페이 알아요? 핸드폰 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나는 무작정 노무라 증권에 전화를 걸었다. 쥰페이 전화번호를 가르쳐 줄 리 만무했다. 고문실이나 회장, 사장실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 누굴 찾아?
- 노무라 쥰페이라고 알아?
- 알긴 아는데 혼다 유리나의 절친이라서 같이 몇 번 봤어...
- 그래? 혼다 유리나 전화번호는 알겠네?
- 응... 가르쳐 줘?
- 아니, 혼다 유리나를 통해 쥰페이 전화번호 알아 봐줘.
- 알겠어...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이시하라 유우가 내가 안타까운지 적극적 나섰다.
- 여보세요...
- 야이 손 오브 비치야?! 넌 만나면 죽여버릴 거야?!
전화기 너머에서 대뜸 욕하며 길길이 뛰는 자는 노무라 쥰페이였다.
- 빨리 와! 엉엉, 빨리 오라고! 아버지가 성제 개새끼한테 당했어! 아버지가 죽었어!!
- 뭐?!, 알았어! 거기 어디야?! 내가 알아서 갈게?!
나는 어린애처럼 울며불며 말했다. 쥰페이 목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그랬다. 쥰페이 가슴에 안겨서 피를 토하며 울고 싶었다.
쥰페이는 안다. 내가 성제에게 학폭을 당해 일본으로 도망치듯이 온 것을, 쥰페이는 언젠가 성제를 따끔하게 혼내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다짐했다.
노무라 증권 그룹을 이용해 성제 아버지 장제갈을 사면초가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그랬다. 그런 인간과 똑같은 인간 될래? 그러자 쥰페이는 그만큼 화가 난다고 했다. 그때 쥰페이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막심했다.
* * *
삼선병원 장례식장에 아버지 영정을 모셨다.
노무라 쥰페이가 2시간도 채 안 돼서 병원에 허위허위 도착했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온 거였다. 귀티가 줄줄 흐르는 귀공자의 모습으로 쥰페이가 나타났다. 쥰페이 뿐만 아니라 혼다 유리나, 사카모토 미나미, 다이히토도 같이 왔다. 그들이 나타나자 장례식장이 그들의 아우라로 도배한 것같이 상서로웠다. 네 사람은 아버지 영정에 절을 했다. 쥰페이는 퍼더버리고 앉아서 귀공자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 쥰페이가 일어셨다. 내가 안으려고 하자 밉다고 나를 무시하고 엄마를 안았다.
- 어머니 아들이 왔습니다.
- 그래 잘 왔다 아들...
엄마는 쥰페이를 안으며 나보다 더 살갑게 대하고 등을 두드렸다.
- 넌, 인간이 아니야!
혼다 유리나가 나를 아주 매섭게 노려보며 한 말이었다.
- 넌 맞아야 인간이 돼.
사카모토 미나미가 표독스럽게 거침없이 내게 던진 말이었다.
- 니 머리에 내가 있긴 있어?
그나마 황위 계승 7위 다이히토 말이 유순했다.
- 미안해, 이것들아, 니들은 갈수록 더 멋있어지고 잘생겨졌어, 한번 안아보자?...
다이히토만 억지로 안기고 나머지 세 사람은 쌩깠다.
친구들은 엄마 손을 잡고 진심 어린 위로를 했다.
그때였다. 검은 옷을 입은 수십 명의 남녀가 몰려왔다.
처음엔 성제가 보낸 조폭인 줄 알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한바탕 싸우려고 격투기 폼을 잡았다.
아닌가? 작은아버지와 숙모가 경호하기 위해 보낸 야쿠잔가?
아니었다. 아버지 시신을 운구하기 위해 온 장례 회사 직원들이었다.
- 뭡니까?
- 장례식장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 아니 무슨 이유로?...
- 상주께서 옮기라고 했습니다, 회장님이...
장례 업체 대표 격인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 내가 상준데?...
- 돌아가신 분의 며느리라고 했습니다.
- 네?!
중년 남자의 말에 내가 놀라자 엄마도 누나도 선의도 베아트리체 엄마도 놀랐다.
- 누가 며느린데?...
- 어머니, 스에마쓰 아야코밖에 더 있습니까?
너무나 황당무계해서 엄마가 눈물을 닦으며 물었고 쥰페이가 그 의구심을 풀어줬다.
- 아야코?
- 응, 내가 여기 오면서 연락했어.
내 물음에 유리나가 시원하게 의문을 풀어줬다. 엄마는 아직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내가 아야코와 다테야마 산장에서 친구들 입회하에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처음에 아야코와의 결혼을 팩트구나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고 아야코가 사라졌기에 하나의 해프닝으로만 여겼다.
- 아야코라면 그때 니 대가리 깨졌을 때 이틀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널 지켰던 그 여고생?
- 네 맞습니다.
쥰페이가 나 대신 답했다.
- 진행하세요.
쥰페이가 나 대신 장례 업체 대표인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중년 남자는 스에마쓰 그룹에서 나온 회장 비서실의 중역(重役)이었다.
- 아마 남수단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중일 겁니다. 어머니 이런 싸가지없는 인간 말 듣지 말고 지금부터 저희 말만
들으시면 됩니다.
쥰페이가 엄마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어디로 옮기나요?
- 부산 남천동 성당입니다.
엄마가 묻자 그 중역이 답했다.
스에마쓰 아야코는 어느새 남천동 성당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빌려놨다는 거였다.
아마 교황을 움직였을 것이다, 하긴 스에마쓰 그룹의 힘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 가족분들과 친척분들, 친구분들 타고 가실 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타고 그리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 중역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리를 지키고 안내할 우람한 체구의 남자들이 그 중역의 지시를 듣고 우리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게 멀찍이 서 있었다.
- 니 진짜 내 안 볼 거야? 미안하다고 하잖아, 임마...
- 안 봐, 자슥아.
쥰페이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다.
- 아 자슥, 진짜... 내게 또 엄마가 있어, 아버지의 또 다른 여자가 아니고 내 영혼의 엄마야 내가 베아트리체 엄마라고 불러, 내가 밉더라도 인사는 해, 니들도...
친구들은 자기 이름을 말하며 베아트리체 엄마와 공손히 인사를 했다. 쥰페이는 아예 큰절까지 했다.
- 여긴, 내 딸 조선의...
내 딸 조선의라는 말에 친구들은 찰나였지만 흠칫 놀랐다.
친구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형언할 수 없는 뭔가가 뒤통수를 쳤다. 배신감은 아닌데 미묘한 그런 거였다.
- 여긴 수진이 누나, 여긴 안면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시하라 유우...
미나미만 예의 무표정한 그 자세를 유지했다.
친구들은 수진 누나와도 인사를 했다. 서로 서로의 미모에 감탄하는 것 같았다.
쥰폐이가 선의를 보자 손을 내밀었다.
싫지는 않은지 선의가 악수했다.
- 썬디는 내가 처단할 거야...
-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도울게...
선의의 결의에 찬 말에 쥰페이가 거들었다.
매몰차게 손을 쳐낼까 걱정을 했는데 호감이 가는 것 같았다. 하긴 선의도 여잔데 빼어난 미남 앞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유리나, 미나미, 다이히토도 선의의 뜻에 동감한다는 표시로 선의와 손을 마주쳤다. 유리나와 미나미는 이시하라 유우와 중학교 동기고, 친하게 지냈던 사이라 반가워했다. 다만 이시하라 유우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몽대와 무슨 관계지? 그런 의구심이 얼굴에 스쳤다.